―고광영*을 기리며 * 불교시대사 대표와 《불교평론》 편집장을 지냈으며, 올봄 타계했다. 가슴으로 교유한 필자의 선지식이다. 밥을 먹지 못한 때가 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독하게 아파서 밥 한술 뜨지 못했다. 지난해 이루어진 실직은 가장의 무능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창피하다고 여겨졌고 자괴감은 나날이 커 갔다. 부처님 말씀이란 전혀 가
내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 백월산의 발치, 용봉산 턱밑이다. 용봉산 너머 덕숭산 중턱에 수덕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수덕사 아랫동네인 빗기내(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서 태어나 마흔 살까지 살다가 십리 상거의 한내(홍북면 중계리 홍천)로 이사했다.그래 봤자 수덕사에서 홍성 읍내 오가는 지름길 중간에 있는 길갓집이었다. 할아버지는 만공 스님이 출가하던 14세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시내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풍양속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것이 이젠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얼마 전에도 60대의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아이를 만졌다가 아이 엄마에게 폭행당하기도 했고, 70대의 노인이 옆좌석에 앉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생을 ‘이승’이라고 부른다. 이승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군림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다. 논리상 이승 앞에는 ‘전생’이 있고, 이승 뒤에는 ‘저승’ 혹은 더 나아가 ‘후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중국의 동해바다, 곧 동중국해에 ‘신라초(新羅礁)’라는 암초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도를 들여다보면 양쯔강(揚子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예로부터 유명한 무역항인 닝보(寧波)가 있고 그 동북쪽 바닷속에 주산군도(舟山群島)라고 부르는 섬들이 있다. 가장 큰 섬은 주산도(舟山島)이고, 그 동쪽에 보타도
칠월 지나 처서 무렵이 되면 산과 들의 나무나 풀들은 기색이 완연히 수상쩍어진다. 널리 알려진 대로 처서는 더위가 물러가기 시작하는 반환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푸나무들이 물 긷는 일을 막 접기 시작하는 절기로 생각한다. 봄부터 한여름 내내 푸나무들이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수액을 밀어 올리는 일에 열중해 왔다. 그 수액들이 밀려 올라와 짙푸른
1. 생과 사에 대한 불교적 인식인간은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불가항력인 전제 앞에서 끝을 절감하기도 하고 죽음을 디딤돌로 삼아 저편에서 전개될 새로운 세계를 내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세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 이전에, 존재의 영속성에 대한 추구는 인간 본연의 종교적 심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생명의 유한함과 소멸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죽음이란 끝이 아
1. 머리말 불교는 전래된 이후 국가에 정치외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와 신라에서는 불교적 정치 이념인 전륜성왕사상을 수용했고, 왕실에서는 적극적으로 불교를 신앙하면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에도 계승되어 고려 왕실에서는 여러 불교의례가 국가적 행사로 치루어졌고, 국왕은 보살계를 받은 불제자임을 분명히 하기도
1. 들어가는 말전혀 다른 이종(異種)의 문화체계 혹은 아주 유사한 동종(同種)의 문화체계가 서로 만난다고 했을 때, 양측의 문화체계에 일어날 변화의 크기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동종의 문화체계가 서로 접촉했을 때보다는 이종의 문화체계가 접촉했을 때 일어날 변화가 더 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 있어서 불교의 유입 혹
불교는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방면에 걸쳐 문화적 교류를 해왔다. 문학과 미술, 음악은 물론이고 민속과 언어생활 등 광범한 분야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불교가 국가적 이념이었던 고려시대와 유교를 이념으로 하였던 조선조에서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승려와 유생들이 교류의 수단이었던 시의 수창을 살핌으로써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을 짚어 보고, 이것을
-석가여래와 관음보살에 관한 문자언어와 조형언어 1. 서언예술가들은 조형언어로 불교사상의 본질을 그린다.요즈음 통도사에서 개암사 괘불을 바라보며, 예술가들은 아무리 증명법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적 직관을 가지고 나름의 해석을 표현했을 것이라는 점을 지울 수 없었다. 불화는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대부분의 학자 등은 믿고 있으며, 따라서 도상의 근
한국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강한 종교 심성이 흐르고 있다. 외래 종교가 유입되면 한국인의 종교 심성은 외래종교를 받아들여 포용하는 다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는 여러 종교들이 함께 공존해 왔다. 새로운 종교의 유입은 단순히 종교의 교체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지도이념과 정신의 세계까지 변화시킨다. 불교
1. 서론: 정의와 방법‘정의’불교가 종교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종교인가?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자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종교(religion)라는 말의 서양식 어원에 따라 신과 인간의 재(re)결합(ligion)이라는 식으로 창조주나 유일신격을 염두에 두고 묻는다면 불교는 종교라고 하기 어
이번 불교평론 특집은 한국인에게 불교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주제로 다루었다. 과연 현대 한국인에게 불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전통적으로 불교는 한국인에게 무엇이었는가를 회고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기획이었다. 현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과거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해 보자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교는 종교이지만, 또한 철
[권두언]- 한국인에게 불교는 무엇인가/ 조은수 [특집] 2011 불교평론 학술 심포지엄 : 한국인에게 불교는 무엇인가 - 불교는 우리에게 어떤 종교인가/ 서정형 -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불교/ 김용덕 - 불교미술로 복원하는 불교사상/ 강우방 - 불가와 유가의 시적 교류의 한 단면/ 이종찬 - 설화에 나타난 한국불교, 그 변주의 양상/ 석길암 - 신라불교의
1. 들어가는 말 한국사회에서 근대는 밖으로부터 서구문물이 전래되어 우리 사회의 가치관 변화가 크게 일어났으며, 안으로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불교 역시 조선조의 배불 경향에서 벗어나 불교의 고유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사회에 적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굳건한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던 한국사회는 자주력 부족으로
1. 신흥불교청년동맹의 결성과 세노오 기로1931년 4월 5일 오후, 동경제국대학 불교청년회관에서는 신흥불교청년동맹(이하 신불청) 결성식이 있었다.“현대는 고뇌한다. 동포는 신애를 원하나 어쩔 수 없이 투쟁에 휘말리고, 대중은 빵을 구하나 탄압을 당한다. 도피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지금 세상은 온통 혼돈과 곤궁으로 방황하고 있다. (중략)
1. 머리말 동아시아에서 근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이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개인이나 사회가 겪은 혼돈과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이른바 산고에 가까운 고통과 노력으로 근대가 출현했다. 하지만 근대라는 삶의 형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근대의 온갖 폐해를 아는 우리로서는 섣불리 그것을 칭찬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근대를 과거로 대하는 우리와 달리 당시
1. 머리말티베트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의 삶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티베트인들이 믿고 따르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티베트불교에는 많은 스승들이 있다. 티베트의 4대 종파인 겔룩빠(dGe lugs
1. 들어가며 태국의 불교개혁운동은 1932년 입헌혁명 이래 승가 내부에서 마하니까이(Mahanikai) 승려들에 의해 승가법 개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편 승가 외부에서는 개인 승려 차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개인 승려 중심의 불교개혁운동의 발생과 전개 배경에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공업화, 도시화에 따른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