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의 극심한 정치 경제적 갈등 상황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밖으로 주변 4강의 압박 속에 고립무원인 국제정세도 걱정이지만, 안으로는 좌(左)와 우(右)라는 낡은 이념의 상(相)에 사로잡혀 서로 반목하는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양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중도를 취하라는 붓다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이 글은 중도의
1. 누가 지금 중용을 논하는가서양철학사에서 망각의 늪에 빠져 지금까지 아무런 형체도 드러내지 못했던 불운한 개념이 있다면 바로 ‘중용’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철학에서는 아무도 중용을 학문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만약 있다면 서양 고대 철학에서 중용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정도라 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철학의 수많은 철학적 개념들
1. 시작하는 말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이렇다. 지금 극단적 대립과 갈등의 재생산으로 혼란한 한국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려면 ‘절제와 양보의 중도철학의 정신’이 필요하니 동 · 서양의 중도, 중용 철학을 통틀어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이 제안에 필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혹시 중도, 중용 철학을, 사회적 갈등이 극단화되
1. 붓다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붓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 답이 맛지마 니까야 18. 《꿀덩어리경(Madhupiṇḑika-sutta)》에 있다.단다빠니 싹까는 세존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공손한 인사말을 나눈 후에 지팡이를 짚고 한쪽에 서서 세존께 말씀드렸다. “사문(沙門)은 어떤 교리를 가지고, 무엇을 가르치는
들어가며 게송 하나연기(緣起)인 그것바로 그것을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바로 그것에 의지하여[緣] 시설(施設)된 것[=假名]그 자체가 바로 중도(中道)이다.— 졸역, 용수 《중론》 〈제24품.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고찰〉 [362. (24-18)]번 게송 장면 1“부처님은 무슨 화두를 드셨습니까?&r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