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중화권에서는 ‘성운대사(星雲大師)’나 ‘불광산(佛光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록 대만에 근거지를 두고 있지만 성운 스님은 중국 본토(대륙)와 해외의 중국계 사회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은 불교 지도자이다.불광산을 창건한 성운 스님은 1927년에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태어났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어머니를 따라 남경(南京)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나갔다가 서하산(棲霞山)에서 지개(志開)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오철(悟徹)이라는 법명과 금각(今覺)이라는 호를 받았다. 그 후 초산불학원(焦山佛學院)에서 체계적인
동양의 근대는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듯,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동양으로 침범해 들어오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로, 동서양 문화와 사상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갈등 · 융합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동서양을 포함하여 세계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를 들었다. 근대 이후로는 마르틴 루터, 베이컨, 데카르트를 근세의 성인(聖人)으로 꼽았는데, 이들 사상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 엄복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이 중
1. 머리말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열여덟 차례의 식민통치를 받는 등 여러 서양 국가의 식민지 시대를 거쳤다. 식민지 역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한 득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450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러한 무형의 의식 지배로 인한 갈등 끝에 결국 ‘국가부도’를 불러온 상태이다.이런 국가 위기를 진단하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 인식을 새롭고 올바른 방향을
1. 씨줄과 날줄 위에서 선 술락의 90년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틱낫한 스님이지만 국제 참여불교운동을 실질적으로 조직화하고 이끌어온 지도자는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1933~ ) 박사이다. 1989년 술락 시바락사의 주도로 아잔 붓다다사,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여러 나라의 불교운동 지도자와 활동가, 학자들이 결합한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가 창설되었다.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날줄인 경도와 씨줄인 위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1. 암베드까르(1891~1956)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1858년부터 인도를 직접 지배했다. 이를 위해 1858년 인도통치법과 1861년 인도입법위원회법(Indian Councils Act, 1861)을 제정하고 이후 영국의 정책에 따라 수차례 개정했다. 한편으로 1835년의 매콜리(Thomas Babington Macaulay)에 의한 교육안, 1854년 우드교육특송문(Wood’s Educ-ation Despatch) 등에 의거하여 인도의 교육제도를 수립하였고 커즌 총독은 1902년에 인도대학위원회를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불교 명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할 때 대개 한국의 간화선과 남방불교 특히 미얀마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수행이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법이 한국에 알려진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미얀마의 수행 선사들이나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을 체험한 한국의 수행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런데 30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의 불교 명상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빼놓을 수 없는 수행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법이 지닌 몇 가지의
1. 머리말20세기 전반기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온통 황폐해진 시대였다면, 후반기는 그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사람들이 입은 육체적 ․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며 인류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자 여러 분야에서 출현했던 선각자들은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이 가운데 불교계에도 세계적인 스승들이 나타나 불교적 가치와 사상을 바탕으로 피폐해진 인류의 정신세계를 회복시키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그들 가운데 한국불교의 전통과 사상을 세계
티베트의 운명14대 달라이 라마(1935~ )는 정치적 불교도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정치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종교적 은둔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대승불교 전통에 있다는 점, 최근 300여 년의 티베트 전통에서 달라이 라마의 직위가 종교적, 현세적 지도자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티베트의 슬픈 운명이었을 것이다.티베트 현대사는 참 슬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폭압은 일본의 조선 탄압보다 10배, 100배 더 무자비해 보인다. 1950년 10월 중국이 한국
틱낫한(1926~2022)은 1995년, 2003년, 2013년 세 차례 한국을 찾았다. 첫 번째 방문 때는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두 번째 방문 때는 그의 저서 《화》가 베스트셀러여서 국내에서 세계적 가수나 영화배우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대중이 운집했고, 카메라 불빛이 쏟아졌다. 그 소란 가운데도 시종일관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듯 온화한 표정과 몸짓,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빨리빨리’라는 성급함이 지배하는 한국인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1. 들어가며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는 서구사회에 선불교를 소개한 불교학자로, 1950년대 선불교 열풍을 이끌어 미국 사상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영향으로 선의 영문 표현은 일본어 발음 그대로 젠(Zen)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없었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선이 인기를 끌 수 없었을 것이다.1870년 일본이 근대화의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에 태어난 스즈키 다이세츠는 삶에 대한 고민에서 자연스럽게 선 수행을 시작했다. 출가한 선사는 아니었지만 선사처럼 살았던 그는 1897년 미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