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1. 들어가며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는 서구사회에 선불교를 소개한 불교학자로, 1950년대 선불교 열풍을 이끌어 미국 사상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영향으로 선의 영문 표현은 일본어 발음 그대로 젠(Zen)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없었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선이 인기를 끌 수 없었을 것이다.

1870년 일본이 근대화의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에 태어난 스즈키 다이세츠는 삶에 대한 고민에서 자연스럽게 선 수행을 시작했다. 출가한 선사는 아니었지만 선사처럼 살았던 그는 1897년 미국으로 건너가 11년간 동양고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1909년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영어로 불교를 소개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1949년 하와이대학교에서 1년간 불교를 가르친 후, 이듬해 클레어몬트대학교에서 1년, 그 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불교에 대한 세미나 강의를 진행했다. 1957년 6월 컬럼비아대학에서 은퇴한 후, 미국과 유럽 대학에서 선에 대해서 강의하였다. 그의 강의와 책은 당시 지식인과 문화 예술계의 인사들에게 전폭적인 호응을 받았다. 음악가 존 케이지, 심리학자인 칼 융과 에리히 프롬, 젊은 소설가 잭 케루악, 앨런 와츠 등이 그를 통해 접한 선불교를 자신들의 분야에 적용하였다. 이후 선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서양 특히 당시 미국인들이 원하는 바에 잘 맞춰져 있었고, 당시 서구 사상계의 종교적 경험(religious experience) 담론의 연장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 스즈키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스즈키 다이세츠가 미국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추어 선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은 11년간의 미국 생활과 그의 아내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893년에 그는 자주 다니며 참선하던 가마쿠라의 엔가쿠지의 주지였던 샤쿠쇼엔(釋宗演, 1859~1919)이 스즈키에게 원고의 영어 번역을 부탁했고, 그 번역본을 시카고에서 열리는 세계종교회의에서 발표하였다. 그의 발표를 들은 폴 캐러스(Paul Carus, 1852~ 1919)는 이후에도 샤쿠쇼엔과 교류하면서 번역을 도와줄 사람을 의뢰하였고, 쇼엔은 스즈키를 추천하였다.

캐러스는 스즈키를 초대하여 자신이 편집자로 있더 오픈코트(open court) 출판사에서 일하게 하였다. 오픈코트 출판사는 동서양의 고전을 출판하였는데, 이때 스즈키는 《도덕경》 《대승기신론》 등 여러 경전을 번역하였고, 대승불교에 대한 그의 영어 저작을 출판하였다.

캐러스는 당시 사상계의 흐름에 밝은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화두였던 종교와 과학의 화해를 시도하던 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다윈주의의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이해했으며, 모든 진리의 근원에 깔린 본질적 하나를 강조하는 일원론(monoism)에 서서, 이 본질적 하나는 과학적 이성의 작업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적 종교라는 개념을 세워, 계시 대신 법칙을 수용하고, 의례나 교조로부터 자유로운 종교를 주장했다. 카루소의 교조나 의례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적 방법론의 사유와 일원론적 관점은 스즈키의 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스즈키 선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이는 그의 아내 베아트리스 레인(Beatrice Erskine Lane, 1878~1939)이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하던 중에 그녀는 스즈키를 만났고, 스즈키가 일본에 귀국한 뒤 일본으로 그를 방문하여, 1911년 결혼하였다. 결혼 후 그녀는 스즈키와 함께 도반으로서 많은 역할을 했다. 함께 대승불교를 연구하고, 동방불교학회(Eastern Buddhist society)를 설립하고 불교에 대한 글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도왔다. 스즈키의 선에 대한 기본적 영역서들은 모두 그녀가 사망하기 전 동방불교학회에서 출판되었던 것이 이후 재출판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지만, 그녀와 스즈키의 공동작업 기록은 그녀가 스즈키의 이야기를 미국인의 관심에 맞게 소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래드클리프대학교(Radcliffe College) 재학 시절에 초월주의자이면서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수업을 들었고, 초기 신지학회 회원이었다. 일본에서 머무르는 동안, 스즈키와 베아트리체는 일본에서 신지학회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3. 스즈키의 선불교에 영향을 준 사조들

19세기 후반은 격동의 시절이었다. 역사적으로는 서구 국가들이 세력을 확장하여 아시아 지역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이며, 사상적으로는 기술의 발달로 모든 사상의 중심에 선 과학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종교의 신비적 사고를 대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되었던 천둥 번개의 경우, 과학의 발달로 공기 중의 전기가 방전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 것이다. 이에 신비적인 사고의 전통을 따르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학적 사고와 신비주의적 사고를 조화롭게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대한 답을 동양의 사상에서 찾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사조가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와 신지학파(Theosophosy)이다.

초월주의는 19세기 초 뉴잉글랜드 지역의 유니테리언 목사였던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니테리언은 청교도주의를 비판하며 시작된 분파이다. 청교도주의는 신과의 직접적 교통을 주창하고, 신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예정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과 신의 은총을 증명하기 위한 금욕적 생활을 강조했다. 이후 청교도주의의 신의 예정설에 의해 야기된 지나친 경직성에 대한 불만으로 유니테리어니즘과 초월주의가 태동하며, 미국 내 종교 지형은 신 중심적 사유에서 인간 중심적 사유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초월주의자들은 기독교적 신 대신에 자연을 중심에 놓고, 감정을 통제하는 이성 대신에 본성을 자유롭게 하는 이성을 논하였다. 이들은 물질주의의 고급스러움보다는 자연주의의 소박한 우아함,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제약하는 문명보다는 본성을 자유롭게 하는 자연을 추구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로운 본성을 제약하는 사회의 관습에 저항하는 정신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신지학회는 러시아 귀족 출신 블라바스키 부인(Blavaski, 1831~ 1891)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안적 종교 전통의 일종이다. 1874년 올코트 대령(Henry S. Olcott, 1832~1907)은 영적 카리스마를 지닌 블라바스키를 만나 이듬해 “진리보다 높은 종교는 없다”라는 구호하에 동양의 현인들만이 알고 있는 우주의 법칙, 고대의 지혜를 공부하여 세상에 알리는 모임인 신지학파를 설립했다. 일종의 영매였던 블라바스키 부인과는 달리 올코트 대령은 영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사람으로 불교를 세계의 모든 신앙의 핵심으로 생각했으며, 불교가 종교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통합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스즈키에게 영향을 준 이로는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있다. 그는 초월주의와 신지학파의 신비주의 전통에 입각해, 종교적 체험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종교적 경험들이 공통적으로 신성함(divine)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그는 그 신성함에 대한 경험은 기독교적 신으로 한정하지 말고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성성으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스즈키가 선불교와 깨달음을 어떻게 규정할지 그 기본 방향을 제공해주었다.

 

4. 스즈키의 신비주의적 선

스즈키의 선은 이와 같은 미국의 신비주의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스즈키의 선과 깨달음에 관한 서술은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제임스의 어법과 유사하다.

깨달음은 선의 존재 이유로 그것 없는 선은 선이 아니다.

선에 대한 기본적 생각은 우리 존재의 내적 작업들과 접촉한다는 것이며, 이것을 가능하면 외적 또는 추가적 어떤 재손질 없이 가장 직접적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 선은 그 자체로 불교의 영혼이라 주장하나 사실 그것은 모든 종교와 철학의 영혼이다. 선이 완전하게 이해될 때 절대적인 마음의 평화가 얻어지고 인간은 그가 살아야 하는 대로 산다.

선의 핵심, 본질은 깨달음이며 그 본질을 가장 잘 구현한 선은 불교 나아가 모든 종교와 철학의 영혼이라는 그의 표현을 통해 불교는 모든 종교의 순수체로 규정되어버렸다. 제임스적 종교 개념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스즈키의 선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폭발적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체험이 종교의 본질인데, 선은 특히나 순수 신비체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보다도 종교의 본질에 가까운 것, 그것이 스즈키가 말한 선이었다.

특히 스즈키가 서술하고 있는 깨달음(satori)의 주요 특징 여덟 가지는 제임스의 종교 체험의 네 가지 특징과 유사하다. 제임스가 말하는 네 가지 특징은 형언할 수 없음(ineffability), 지적 특성(noetic quality), 잠시성(transiency), 수동성(passivity)이다. 첫 번째 형언할 수 없음이란, 직접적 경험으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지적 특성이란 산만한 지성에 의해서는 파악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깊은 직관을 말한다. 세 번째 잠시성이란 그 체험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점점 사라지지만, 불완전하게 재생산되어 반복함에 따라 미세한 발전의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 수동성이란 정신을 집중하고 주어진 절차를 따르면 신비적 느낌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주체에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스즈키는 여덟 가지 선의 깨달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비합리성(irrationality). 내가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깨달음이란 이성 작용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며 모든 지적 확인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일관성 있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곤란해한다. 어쨌든 그것을 말이나 몸짓으로 설명할 때는 그 내용은 많게든 적게든 손상을 입게 된다. …… 그래서 깨달음의 경험은 항상 비합리, 설명 불가(inexplicability), 전달 불가하다고 특징 지워진다. ……

② 직관적 성찰(intuitive insight). 신비적 경험에 지적 특성이 있다는 것은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지적되어 왔고, 이것은 또한 깨달음이라고 알려진 선의 경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깨달음의 다른 표현으로는 본질 또는 본성을 본다는 의미의 견성이 있는데, 이는 깨달음에 봄 또는 인지함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 봄이란 일반적으로 특별하게 알아차릴 필요가 없는 지식이라고 지목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 이러한 지적 특성 없이 깨달음은 그 신랄함을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깨달음 그 자체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

③ 권위 있는 것(Authoritativeness).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깨달음에 의해서 깨닫게 된 지식은 최종적인 것으로 더 이상의 논리적 논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

④ 긍정(Affirmative). 권위 있고 최종적인 것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부정은 우리 삶에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도 데려갈 수 없다. ……

⑤ 감각을 넘어선 것. 종교에 따라 용어는 다를지 몰라도, 깨달음에서는 항상 감각을 넘어서 있다고 말한다. 경험은 참으로 나 자신의 것이지만, 나는 그것이 어딘가에 뿌리박고 있다고 느낀다. ……

⑥ 비인격적 톤(impersonal tone). 아마도 선 경험의 가장 뛰어난 면은 기독교 신비체험에서 관찰 가능한 (신에 관한) 인격적 서술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

⑦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feeling of exalatation). 이 느낌은 선과 동반되는 피할 수 없는 느낌으로 개인적 존재에게 부과되었던 제약들을 깨부수는 사실에서 기인하며, 이것은 단지 부정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무한한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부 중요한,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다. ……

⑧ 현재성(momentariness). 깨달음은 갑자기 오는 순간적인 경험이다. 사실 갑작스럽고 순간적이 아니라면 깨달음이 아니다.

스즈키가 제임스의 이론을 직접 언급하면서 서술한 것은 두 번째의 특징인 지적 특징뿐이기는 하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제임스의 나머지 세 가지 특징도 그 여덟 가지 안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스즈키가 말하는 비합리성은 제임스의 ‘형언할 수 없음’이라는 특성과 연결된다. 다만, 스즈키는 공안(公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반영하여 비합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스즈키의 현재성은 ‘잠시성’과 연결될 수 있다. 제임스의 경우 체험이 지속적이지 않음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스즈키는 그 갑작스러움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선 체험을 좀 더 자연적이고 신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제임스의 수동성은 스즈키의 ‘감각을 넘어선 것’과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수동성이란 신비체험 때 얻게 되는 어떤 외적 힘에 의한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신과 나눈 이야기(Conver-sations with God)》의 저자 닐 도널드 월시(Neal Donald Walsh)처럼 글을 쓸 때 자신이 아닌 외적 힘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말한다. 스즈키의 감각을 넘어선 것은 깨달음의 순간 느끼게 되는 외적 실재와 합일되는 느낌을 말한다. 이 둘의 설명은 조금 다르지만, 외재적 실재에 대한 느낌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제임스의 경우 외재적 존재보다는 그 힘을 강조한 반면, 스즈키는 외재적 존재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스즈키가 좀 더 기초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스즈키의 선은 당시 미국의 영성적 사조와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윌리엄 제임스의 이론, 신사고 운동과 당시의 시대사조에 맞게 깨달음의 특징을 규정하고, 나아가 이것이야말로 선의 핵심이고, 선은 바로 이 순수한 신비적 체험 그 자체라 규정하여 미국인들의 순수한 체험에 대한 갈망에 맞게 각색되었다. 물론 선불교에 스즈키가 언급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미국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신비주의 전통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강조점을 달리했을 뿐이다. 이렇게 접점이 마련되었던 스즈키의 선은 이후 1950년대 젊은 세대의 시대적 요청과 만나면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5. 스즈키 선의 영향

1950년대 스즈키의 선은 앨런 와츠(Alan Watts, 1915~1973), 칼 융(Carl Jung, 1875~1961),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등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인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책은 미국 내 비트 제너레이션과 1960년대 히피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1950년대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예사조로 이들은 기존의 획일화된 삶의 기준, 물질주의에 반발하고, 마약과 성에 개방적이고 실험적이었으며, 동양 사상에 심취했다.

이들은 보헤미안적 정서를 가지고 있었고, 미국 내 신비주의 전통의 연장선에 서 있었다.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6~ )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1926~1997) 등이 중심 멤버로, 이들은 다양한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았으나 대부분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그러나 스즈키의 선이 비트 제너레이션을 매료시킨 것은 신비적 체험뿐만 아니라 도그마로부터의 자유로움이었다.

선에는 신에 대한 예배도, 참여해야 할 의식도, 운명 지워진 죽음을 기다려야 할 미래도,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떤 이에게는 중요한 관심일 불멸의 영혼도 없다. 선은 모든 이러한 도그마적 종교적 짐으로부터 자유롭다.

스즈키는 선을 모든 도그마와 2차적 종교적 요소들 철학, 의례, 조직 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순수 깨달음의 경험으로 치환하였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그의 책 속의 선은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삶의 정신과 딱 맞아떨어졌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교류했고 특히 1960년대 히피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앨런 와츠는 스즈키 선불교의 대중화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양 고전에 관심을 갖고 탐독했던 그는 어떤 한 종교에 정착하지 않고 보편주의적, 개인주의적, 절충주의적 입장에서 온갖 종교 전통을 선택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1936년 런던대학에서 열린 세계종교인대회(World Congress of Faith)에서 스즈키의 강연을 듣고 선불교에 심취해 선 수행도 하고, 선불교에 대한 책을 내고 강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불교도라 불리는 것을 꺼렸으며, 어느 불교 단체에도 정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스즈키가 말한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선을 몸소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스즈키의 가르침을 따라 선 체험이 결국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불교가 더욱 호소력을 갖게 하였다. 와츠의 지적은 이분법적 사유, 이원론적 사유에 익숙했던 서양인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고, 이것이 스즈키의 선이 뿌리내리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6. 나가며

스즈키의 선 사상은 이처럼 선불교를 미국의 신비주의적 전통에 자리매김하여 불교가 미국의 사상계에 뿌리내릴 수 있게 도왔다. 선불교의 깨달음(satori)은 가장 순수한 종교체험 그 자체이며, 이를 본질로 하는 선불교야말로 종교의 정수라는 그의 논리는 미국의 신비주의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1950년대 저항장신과 선의 신비체험 내용을 추상적인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만이 아닌,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한 지성의 획득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한 앨런 와츠의 해석에 힘입어 선불교는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히피 세대와 만나면서 선은 비 온 뒤의 버섯처럼 성장하여,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이후 스즈키의 선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 실제 선불교와의 괴리, 일본의 민족주의와 결합, 역사성을 제거한 이상적 불교의 문제 등이 미국 학계에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스즈키의 《선불교 입문》과 앨런 와츠의 《선의 정신(The spirit of Zen)》과 《선의 길(The way of Zen)》은 선불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의 필독서라는 점은 변함없다. 세대가 변해도 신비주의적 경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즈키를 읽고 열광하다가 그에 대한 글을 읽고 조금은 실망스러워하면서 불교를 이해해간다.

조금 달라진 것은 지금의 세대들은 스즈키가 뿌린 선의 이미지, 동양의 이미지가 담긴 〈쿵푸팬더〉를 보고, 애플의 상품을 쓰며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소개한 선불교가 비록 미국인들에게 맞춰진 형태라 할지라도 스즈키의 선불교가 없었다면 서구의 동양학에 대한 관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것이고, 나아가 지금의 미국, 서구도 없었을 것이다. ■

 

지혜경 schaffen@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불교철학 박사). 미 버지니아주립대 방문교수 역임. 주요 논저로 〈가상현실 시대에 불교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철학상담방법론으로서의 선불교 수사학〉 “A Rhetoric of Zen in contemporary Korean Buddhism-Pomnyun’s Quote” 〈어떤 정토를 꿈꾸는가〉 등의 논문과 공저서로 《근대불교 인물 열전》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 경희대학교 강의교수, 희망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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