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법정(法頂) 스님(이하 ‘법정’으로 약칭함)은 1954년 효봉(曉峰)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승에게 받은 법명만으로 ‘비구 법정’이라 자칭(自稱)하였을 뿐 법호(法號)를 갖지 않았다. 이 사실에는 그 특유의 ‘비구 의식’ 내지 ‘출가자 의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1. 머리말 일반적으로 이상주의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현실주의가 사용되지만, 이 두 가지의 복합적 개념으로 ‘현실적 이상주의’ 혹은 ‘이상적 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거나, 상호 균형을 추구한 경우 사용되는데,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1. 광덕의 자전적 고통과 시대적 고뇌 1) 약력 비구 금하당(金河堂) 광덕(光德, 1927〜1999) 1927년 음력 3월 3일,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리. 부친 고준학(高準學), 모친 김동랑(金東浪)의 2남 3녀 중 넷째로 출생. 속명 고병완(高秉完). 1942년(16세) 오산초등학교 졸업. 통신강좌로 중학교 졸업자격 취득. 서울 영등포의
1. 쌀 한 가마니와 《순수이성비판》을 바꾼 이상주의자 종교인의 삶은 깨달음이나 구원과 같은 이상을 좇아가는 길이다. 범부의 삶이 현세에 안주하는 것이라면 종교인의 삶은 현실의 저편, 피안(彼岸)이라는 이상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원대한 서원을 세우면 부처의 종자[佛種]가 끊어지지 않고, 원력을 따라가면 여래의 집[
1. 서언 1960년대 범어사에는 이상주의자로 불렸던 3인의 중견 승려가 있었다. 그 세 명의 승려는 지효(智曉, 1909~1989), 능가(1923~ ), 광덕(1927~1999)이었다. 이들은 각기, 당시 불교의 현실을 개혁하여, 자신들이 꿈꾸던 미래지향적 불교를 이룩하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지효는 수행도량인 총림(叢林) 건설을, 능가는 세계적인 불교단
1. 이찬호, 순호 그리고 청담 청담(靑潭)은 190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이찬호(李讚浩)이다. 늦은 나이에 진주 제일보통학교(현재 진주 중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진주 공립농업학교(현재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입학했다. 언제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무렵 감화를 받고 출가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글을 시작하면서 소천(韶天, 1897~1978) 스님에 대한 집필을 의뢰받고 인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필자가 소천 스님을 처음 뵌 것은 6 · 25전쟁으로 피난 간 마산의 어느 목욕탕 이층집에서다. 당시 소천 스님은 광덕 스님(당시 고 처사로 불림)과 함께 그곳에서 ‘금강경 독송 구국원력대’를 조직하여 활동
1. 경전 읽고 번역하던 운허 법사 여기에 소개하는 운허(耘虛, 1892. 2. 25~1980. 10. 15, 음력)는 경기도 남양주 소재 봉선사의 스님이다. 그는 한글은 물론 한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도 알고 또 남의 생각을 읽을 줄도 안다. ‘읽기’와 ‘쓰기’가 평생 몸에 밴 사람이다. 그것도 품격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