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내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 백월산의 발치, 용봉산 턱밑이다. 용봉산 너머 덕숭산 중턱에 수덕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수덕사 아랫동네인 빗기내(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서 태어나 마흔 살까지 살다가 십리 상거의 한내(홍북면 중계리 홍천)로 이사했다.

그래 봤자 수덕사에서 홍성 읍내 오가는 지름길 중간에 있는 길갓집이었다. 할아버지는 만공 스님이 출가하던 14세에 태어났으나 세상을 등질 때는 한두 해 사이로 뒤따르셨으니, 만공 스님의 법랍 62세에 맞춘 생애였던 셈이다. 자연히 우리 집은 홍성 읍내 오가는 스님들이 냉수 사발로 해갈하는 다리쉼터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집안 어른들에게 수덕사에 주석하셨던 만공 스님의 이런저런 일화를 얻어들으며 자랐다. 그중에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랑을 버릴 테냐, 무겁다는 생각을 버릴 테냐’이다.

경허(鏡虛) 스님의 제자 중에서도 삼월(달 셋)로 불리는 큰스님이 수월(秀月) 혜월(慧月) 월면(月面)인데, 만공 스님이 서산 천장암에서 출가할 때 경허 스님에게 받은 이름이 월면이었다.

월면 사미승이 스물두 살이던 어느 날, 아침 일찍부터 스승 경허 스님과 함께 탁발을 나섰다. 그날따라 시주를 아주 많이 받았다. 처음엔 기분이 좋았으나 먼 길을 걷다 보니 무게를 이기기 어려웠다. 천장암으로 돌아가는 해 질 녘이 되자 월면 사미승은 녹초가 돼버렸다. 다리 아픈 것은 고사하고 바랑끈이 죄이는 통에 어깻죽지가 빠져나갈 듯싶었다.

그렇건만, 어찌 된 셈인지 경허 스님은 피곤한 기색 없이 성큼성큼 걸어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젊은 자신이 먼저 쉬자고 하기 어려워 참다못해 볼멘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아이고 나 죽겠네. 아이고 스님, 스니임.”

“어서 오지 않고 왜 부르느냐?”

경허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다.

“아이고, 스님. 제발 쉬었다 가십시다요, 예?”

“쉬었다 가자고?”

월면 사미승은 금방 쓰러질 듯 울먹였다.

“예, 스님. 다리도 아프고 어깻죽지가 찢어질 것 같습니다요.”

“원, 녀석. 뭔 엄살이 그리 심할꼬?”

월면은 아주 바랑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시주를 너무 많이 받아 무겁습니다요.”

“바랑이 무겁다고 했느냐?”

“예, 스님.”

“그러면 한 가지를 버리면 될 것 아니냐.”

“예?”

“바랑을 버리든지,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한 가지를 버리면 될 것을 왜 끙끙댄단 말이냐?”

경허 스님의 말씀에 월면 사미승은 길바닥에 부려놓았던 바랑을 왈칵 움켜 안았다.

“아이고, 스님. 이 귀한 시주물을 어찌 버리라고 그러십니까?”

“그럼 어서 짊어지고 가자. 아, 어서 와.”

경허 스님은 또 휘적휘적 앞서 걸었다.

“아이고, 스님. 그렇다고 혼자 가시면 어떡합니까요, 예?”

“저기 마을 앞까지만 가면 무겁지 않게 해줄 테니 어서 와.”

월면 사미승은 마을 앞까지만 가면 무슨 좋은 수라도 생기는가 싶어 부리나케 경허 스님을 뒤쫓았다.
한참을 걸어 마을 앞 우물을 지나게 되었다. 물이 가득한 물동이를 인 젊은 아낙네가 마주 오고 있었다. 그때 앞서 가던 경허 스님이 느닷없이 그 젊은 아낙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을 맞추더니, 냅다 뛰어 달아났다.
“에구머니나.”

“와장창.”

이고 있던 물동이는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젊은 아낙은 혼비백산하여 앙칼진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저놈 잡아요. 저놈 잡아.”

월면 사미승은 그제야 눈앞의 사태를 알아차리고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쫓아오고 보니, 앞서 도망친 경허 스님 부를 경황도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산마루에 당도하니 해는 이미 기울어서 땅거미가 내려앉는데, 숨길이 끊어질 듯 가뿐 가운데서도 부아가 치밀었다. 도대체 경허 스님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영문을 모르는 채 도망치기 바빴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개를 다 넘도록 경허 스님이 보이지 않자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곤욕이라도 치르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때였다. 수풀 속에서 뭔가 앞으로 쑥 튀어나왔다.

“으악.”

월면 사미승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헛허허허. 너 용케 붙잡히지 않고 도망쳐 왔구나. 핫하하하.”

체구가 장대한 경허 스님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아이고, 스님. 놀랐습니다요. 대체 그게 무슨 망측한 짓입니까요.”

“그래 내가 몹쓸 짓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너는 죽어라 도망칠 때도 바랑이 무겁더냐?”

“예? 바랑이요? 정신없이 뛰느라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요, 스님.”

“그것 봐라. 무겁다느니 괴롭다느니 그런 건 다 마음의 장난이니라.”

“예에?”

풀벌레 소리를 헤치며 남은 밤길을 줄이는 동안 경허 스님이 법문을 내었다.

“이제 또 이리 걸어가니, 바랑이 무겁겠구나?”

“아니올시다. 이젠 바랑이 무겁지 않사옵니다.”

“거 참 이상한 일이로구나. 곡식이 그대로 들었거늘, 지금은 왜 무겁지 아니한고?”

월면 사미승은 한참이나 머뭇거린 다음에야 막혔던 말문을 텄다.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님.”

“그래. 무겁다고 소리치던 놈, 쉬었다 가자는 놈, 잡히면 죽으니 도망치라던 놈,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쳐 온 놈, 그놈들이 대체 몇이더냐? 그놈들의 정체는 또 무어더냐?”

“그, 그건 하나입니다, 스님. 그리고 마, 마음이옵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만공 스님과 경허 스님이 나누시던 법문을 되씹는다. 좀처럼 책상 앞에 다가앉지 못하는 마음, 알자리 찾는 암탉처럼 끙끙거리면서 핑계만 떠오르면 미루려고 꾀부리는 마음을 버리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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