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른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시내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풍양속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것이 이젠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얼마 전에도 60대의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아이를 만졌다가 아이 엄마에게 폭행당하기도 했고, 70대의 노인이 옆좌석에 앉은 젊은이에게 “신발이 옷에 닿으니 다리 좀 치워달라.”고 했다가 젊은이로부터 “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개xx야.”라는 폭언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세태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없지 않다. 젊은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노인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여 공공예절이나 공동체 의식 등에는 소홀했다.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70~80대의 노인들은 자식들만은 배부르게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피땀을 흘리며 살아왔다. 그 결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대한민국은 세계 11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고, 물질적 풍요로 1년 동안 버리는 음식물이 8조 원어치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풍요는 나 혼자만 편리하고 좋으면 된다는 이기심과 감각적인 향락주의에 빠지게 하여 노인을 섬기고 이웃을 돕는 미풍양속을 말살시켜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식과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이기심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학부모들의 교사 폭행사건에서 보듯이,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으면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선생님을 비방하고 책망하는 학부형들이 많다. 그런 행동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을 공경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괘념하지 않고, 얼굴을 마주쳐도 인사도 나누지 않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이웃에 누가 살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편협한 이기주의가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를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자업자득의 모습은 종교단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폭행과 사기로 서로를 고소하고, 엄청난 크기의 교회와 재산으로 재벌이 된 몇몇 종교단체의 2세들은 상속권 다툼으로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영적 수양과 진리를 추구하는 성직자의 본분보다는 물질과 허상을 숭배해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의 언설과 유혹에 현혹되어 재산과 정신을 바친 몽매한 신도들의 탐심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성직자들의 인격과 영적 수준은 허위와 가식으로 포장되어 고난과 역경에서 헤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신자들을 현혹하기가 쉽다. 언설이 현란하고 이름이 요란한 성직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보증할 수 없는 믿음을 강요하고, 자기도 실천하지 않는 고행과 헌금을 사후의 세계를 빌미로 권장하고 강요한다. 그러면 하루하루를 겨우 지탱해가는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의지하고, 희망과 구원을 위해 먹고 싶은 것과 입고 싶은 것을 참으며 푼푼이 모은 돈을 헌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도들의 간절한 소망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순박한 신앙심으로 발현된 것인데, 성직을 직업으로 여기는 위선자들이 신도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초대형 초호화 건물을 짓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신도들 위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자업자득의 단면이지만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한국불교는 하나같이 불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많은 돈이 드는 대형 불사가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스님 지원자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감소하는 출가수행자의 수치는 한국 불교의 장래가 걱정스러울 정도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출가수행자들이 머물고 생활할 사찰의 불사는 갈수록 더 크고 더 많이 이루어지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출가수행자들이 해마다 감소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이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불교의 위상은 현격하게 추락했다. 한국불교의 상징인 조계종 종정의 위상과 권위는 가톨릭 추기경에 비교되지 않고, 스님들도 신부들보다 존경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만큼 유대감도 없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으려면 외형적인 불사보다는 출가수행자의 본분인 마음의 불사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스님들이 마음의 불사에 정성을 쏟지 않으면 머지않아 한국의 사찰은 수행자가 아닌 사람들이 주인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 과보는 어찌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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