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오랫동안 공부를 하다 보니 젊었을 때는 몰랐었는데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본디 성인들의 가르침은 이해하기 쉬운 것인데 뒷사람들이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공자와 노자, 인도의 석가모니, 이스라엘의 예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등이 남긴 말들은 대부분 쉬운 언어로 되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언어는 전혀 일상을 떠나지 않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눈 있는 자 보고 귀 있는 자 들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했다. 부처님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했다. 예수의 최고 가
프란치스코 교황이2014년 음성 꽃동네에서평신도협회장들을 만났을 때였다.준비된 교황용 의자가너무 크다며그 옆 식탁 의자에 앉으셨다그래서 진천 배티성지 최양업박물관에는교황용 의자와 실제로 앉았던 의자가함께 전시돼 있다.작고 평범한 의자는전시대 위에 올려져 있고크고 화사한 의자는바닥에 놓여 있다— 시집 《훈(暈)》(밥북, 2021) 백우선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춤추는 시》 《길에 핀 꽃》 《봄비는 옆으로 내린다》 《미술관에서 사랑하기》 《지하철의 나비 떼》 등.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남편손뼉까지 치며 선창해 보이는환갑 지난 아들의 재롱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앞에서기억을 찾아주려는 아들 앞에서봄날은 길을 잃었는지뒤뚱거린다— 시집 《각을 끌어안다》(현대시학, 2021) 김금용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광화문자콥》 《넘치는 그늘》 《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 등.
봄에 갈무리해놓았던곤드레나물을 해동시킨 후들기름에 무쳐 밥을 안치고달래간장에 쓱쓱 한 끼 때운다강원도 정선비행기재를 지나나의 위장을 거친 곤드레는비로소 흐물흐물해진 제 삭신을내려놓는다반찬이 마땅찮을 때 생각나는곤드레나 톳나물,아무리 애를 써도조연일 수밖에 없는그런 삶도 있다 — 시집 《심장을 가졌다》(현대시학사, 2020) 김지헌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회중시계》 《황금빛 가창가오리 떼》 《배롱나무 사원》 등.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투구꽃을긴 시간 검은콩과 함께 푹푹 삶으면보약인 초우가 된다독성이 강한 옻나무도 율피와 함께 삶아 말리면위장을 다스리는 최고의 약이 된다독이 있는 것들은 모두누군가와 더불어 뜨거운 시간을 지나야만쓸모 있는 그 무엇이 된다내가 당신을 만나 이토록 물컹한계절을 살아내는 것도쓸모 있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함일 것이다 — 시집 《불이론》(천년의 시작, 2001) 문숙200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단추》 《기울어짐에 대하여》 등. 2005, 201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비 듣자가만 드셨다가비 긋자가만 떠나셨다혼자 사는 누옥의처마가 좁지는 않았는지서운하고오래 적적하다 — 시집 《슬쩍》(서정시학, 2021) 오인태 1991년 《녹두꽃》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 《혼자 먹는 밥》 《등뒤의 사랑》 《아버지의 집》 《별을 의심하다》 등. ‘작은 詩앗 · 채송화’ 동인.
1. “집이 불타고 있다.”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호소하며 세계 정치 경제 지도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으며 조르조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재인용함으로써 그것은 기후변화를 넘어 이 시대의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집이 불타고 있을 때처럼 행동하라는 툰베리의 호소에 아감벤은 불타는 집에서 평상시처럼 행동하며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지젝은
-불교에서 바라본 프롬의 소외 이론 1. 서론: 소외의 일반적 개념 현대산업사회에서 사람의 상실감, 절망감, 불안감 등의 심리상태 또는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포괄하는 적절한 용어가 소외(alienation)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외라는 말은 상당 부분 일상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동료나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 간에 서먹한 느낌이 들 때, 그리고 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할 때도 소외라는 말을 쓴다. 또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나 직무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때,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본질적인 보상과 보람을 가져
1.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징후들위기는 언제나 숨어 있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사람이든 제도이든 위기를 통해 성장하든가 아니면 쇠퇴하거나 몰락한다. 위기가 새로운 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될 것인지는 모두 위기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올바로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해주는 징후는 많지만, 2020년 전 세계를 동시에 위험에 빠뜨린 코로나 팬데믹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측정할 수 있는 분명한 지표다. 전쟁과 기아, 천재지변처럼 우리의 자유와 권리뿐만 아니라
1. 서론-왜 불평등이 문제인가?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중요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었고, 그래서 경제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의 불평등은 이미 일상화된 ‘만성적 질병’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불평등이 시대의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2013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라는 두꺼운 책을 통해 불평등을 세계적 이슈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개되었던 사회경제적 상황 때문이었
1. 머리글지금은 ‘빈틈이 사라진 시대’다. 환경에서 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빈틈이 사라지고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서자 위기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빈틈이 사라진 맥락에서 우리는 지금 초유의 길을 걷고 있다. 인간이 생물을 조작하고 창조하는 호모 데우스의 지위에 올랐다. 기후위기와 환경과 생명의 위기는 38%의 생명을 멸종위기에 몰아넣으면서 인류 사회에도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여 착취와 불평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
— 지구환경위기의 현황과 불교의 실천1. 들어가는 말지구환경위기에 대한 문제는 1960년대 말부터 제기되어 왔고, 1972년 6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하나뿐인 지구(only one earth)’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연합 인간환경회의를 기점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그 결과로 지구환경선언과 환경의 날 제정 및 유엔 산하에 환경전담기구로서 유엔환경계획을 설립하는 등 지구환경위기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지구환경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면서 다시 지구 전체의 공존과 공생에 관한 문제가 심
기후위기의 인식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구적 기후환경 변화는 나와는 관계없으며, 내 일이 아니라 외면하고 싶지만 이미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헤치며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늘 일정함을 유지하던 에너지 순환 흐름의 문제가 생긴 것이 그 원인입니다. 세계를 넓혀, 온 우주로 바라보면 티끌만큼이나 작은 지구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떻게 이렇게 큰 영향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언뜻 피부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구만의 심각한 변화는 우주 차원에서는 단지 서로 순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거나 무감각해지기까지 했다. 기후위기나 생태순환 장애, 환경파괴 같은 말들이 그 구체적인 맥락에 속한다. ‘또 그 이야기야?’ 하는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폭염과 혹한, 폭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일상화 등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징후들이다.살아가다가 넘어질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거나 난관이
[권두언]- 위기의 지구, 누구의 책임인가 / 박병기[불교평론 창간 22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위기의 지구촌, 어떻게 구할 것인가- 기후위기의 시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홍석환- 환경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이병인- 코로나 이후 사회의 위기와 대안의 길 찾기 / 이도흠- 불평등 심화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김병권-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 이진우- 인간 소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이병욱- 무위를 실천하는 공동체를 향하여 / 명법[내 마음의 시]- 청개구리 손님 / 오인태- 법제 / 문숙- 곤드레밥 / 김지
주제 : 위기의 지구촌, 어떻게 구할 것인가불교평론이 창간 22주년을 기념해 ‘위기의 지구촌 어떻게 구할 것인가’이란 주제로 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합니다. 불교평론은 8월27일 오후1시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세미나실에서 개최되는 심포지움에서는 지구촌의 물리적 환경과 관련된 논문 3편, 사회적 환경과 관련된 논문 4편에 대한 발표가 진행됩니다.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여 BTN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시청 가능합니다 이날 발표되는 논문과 발제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00:23:59 세미나 시작 (1부 사회 서재영 성균관대 교수, 박병기 편집
순천 송광사를 찾는 사람들은 극락교(極樂橋)와 능허교(凌虛橋)를 건넌다.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 올린 이 두 돌다리 위에는 팔작지붕을 한 화려한 회랑(回廊)이 세워져 있다. 극락교에는 청량각(淸凉閣), 능허교에는 우화각(羽化閣)이다. 청량각은 일주문 밖에, 우화각은 일주문 안에 있다. 마음을 맑게 씻고(淸凉) 일주문을 들어가면 한 마리 나비가 되어(羽化) 자유로이 허공을 날아오른다. “김 선배, 뭐해요? 얼른 들어가야 해요.”앞서 우화각을 건너간 사진기자 박선태가 회랑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까지 소설가 김진우는
1. 머리말불교사학자 장만타오(張曼濤)는 그가 주편한 현대불교 학술 총간지 《일한불교연구(日韓佛教研究)》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한국불교는 근 100년 동안 타이완불교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었지만, 그 내재적인 부분과 전쟁 후 객관적인 형세는 전혀 다르다. 타이완불교는 대륙으로부터 전해져서 일본의 통치와 일본화를 거쳐 이미 많이 변질되었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일본 통치와 일본화를 거쳤음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전쟁 후 매우 빠르게 그들 전통적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였다.”장만타오는 전후 타이완의 제1세대 불교사
새로운 맥락을 따라 읽는 붓다의 생애역사로 읽을 것인가, 신화로 읽을 것인가붓다의 생애를 최초로 다룬 책은 장편서사시 형식을 빌린 아슈바고샤(Asvaghosa, 마명)의 《붓다차리타(Buddhacharita, 불소행찬)》이다. 이 책은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자타카(본생경)》를 비롯, 붓다의 전기에 해당하는 사실이 기록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중허마하제경(中許摩詞帝經)》 《불본행경(佛本行經)》 《중본기경(中本起經)》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중본기경》 등 붓다의 생애를 언급하고 있는
평소 마성 스님을 신념이 있는 초기불교 학자라고 생각해 오고 있다. 불교 일반을 다루는 데에 초기불교의 관점에 서 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스님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애매하게 절충하거나 그때그때 대세에 따라 편승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피력해 오고 있다. 또한 출가자이면서도 학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다.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는 집필의 동기는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궁극의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초기불교 사상의 전체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