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 원형을 탐구한 탁월한 저술

 

평소 마성 스님을 신념이 있는 초기불교 학자라고 생각해 오고 있다. 불교 일반을 다루는 데에 초기불교의 관점에 서 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스님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애매하게 절충하거나 그때그때 대세에 따라 편승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피력해 오고 있다. 또한 출가자이면서도 학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는 집필의 동기는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궁극의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초기불교 사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개론서”를 내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붓다의 가르침은 지적 만족이나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붓다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직접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치 남의 소를 세는 목동이나 종일토록 남의 돈을 세는 은행원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여, 우리 삶에서 앎과 삶의 일치가 공부하는 목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불교 흥기의 배경을 바라문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본다. 불교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어서 당시의 시대적, 종교적 상황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목차 구성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1부에서는 불교 흥기에 즈음한 인도 사상, 2부에서는 초기불교의 근본 가르침, 3부에서는 초기불교의 수행론과 깨달음, 그리고 초기 교단을 다루었다. 또한 부록에서는 초기불교의 경제사상과 개인과 사회윤리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가 중요시하는 초기불교 이해를 읽어 낼 수 있다.

흔히 초기불교는 목차 구성과 순서에서 교조론, 교리론, 교단론으로 구성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교리론→교단론→교조론의 순서로 목차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집필의 비중은 초기불교 사상이라는 책 제목과 부합되게 교리론에 있다. 마찬가지로 개론서라는 집필 의도에 걸맞게 대부분의 논의가 초기불교의 기본교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목차 구성은 기존의 선행 연구서와 비슷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책만의 특징과 차별성이 나타난다. 초기불교의 기본 교설로 먼저 ‘삼법인설’을 배치시키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만큼 초기불교를 포함하여 모든 불교 교리사에서 삼법인설이 불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삼법인설로 이어지는 각 장의 연계성이 분명하다. 삼법인의 가르침을 통해 불교의 당간지주를 재천명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저자는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교의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설은 삼법인”으로 보아야 하며, 더 나아가 “인도에서 발생한 다른 종교, 철학과 구별되는 불교만의 고유한 사상”임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다음은 연기법에 관한 논의로서 “연기법은 모든 불교철학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붓다의 깨달은 내용이라고 한다. 연기법의 세계관적인 문제와 실천적 문제를 또한 논의하면서 십이연기의 삼세양중인과설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다. 부파불교에서 낮은 입장으로 채용한 경우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이지의 각 항목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을 펼치면서 십이연기의 태생학적인 해석은 붓다의 본래 입장이 아닌 아비달마 시대의 창작에 불과한 것으로 맺고 있다.

연기법에 이어 사성제에 대한 논의를 자세하게 전개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집성제의 삼애(三愛)의 해석에서 주석서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삼애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쟁론되었는데, 현대 학자들의 이해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모두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본다. 특히 일본 학자들이 “인도의 종교사상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잘못된 해석”이라고도 지적한다.

다음으로는 오온설이다. 오온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후대의 아비달마적 해석이 가미된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특히 색온에 있어 사대와 사대소조로 분류하는 것처럼 오온설이 후대로 갈수록 인간이 다섯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학자가 붓다가 의도한 오온에 대한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거나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오온설의 취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즉 오온설의 본래의 목적은 삼법인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 교설”로써 오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은 중도사상이다. 저자는 중도사상을 크게 둘로 구분한다. 팔정도와 같은 실천행과 십이연기와 같은 사상적 중도가 그것이다. 다시 실천적 중도는 고락중도이고 이 외의 유무중도, 단상중도와 같은 여러 중도를 사상적 중도로 묶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불교의 중도사상은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하나의 사상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으로 파악한다. 여기까지는 선행연구의 이해와 크게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이후 초기불교의 중도사상은 대승불교와 한국불교로의 연속성에 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의 실천적 성격을 망각하고 사상적 중도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이렇게 이론적, 관념적인 중도사상으로 흘러버린 배경에는 설일체유부의 실유사상에 대응하면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대승불교 전통의 한국불교에서 성철 스님의 중도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스님 또한 초기불교 본래의 의미와 달리 중도를 방법론이 아닌 목적론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기설을 중도가 진리임을 증명하는 도구로 이해”하는 주객의 전도로 대승과 성철 스님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동안 혼란을 겪어 왔던 저자의 오랜 고민을 잘 보여준다. 단지 초기불교 사상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초기불교를 통해 현 한국불교에 이르기까지 진단해보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장으로 ‘무아와 윤회의 문제’를 강조한다. 필자도 다른 장보다 눈길이 끌려 이 장부터 먼저 읽었다. 저자는 ‘무아설과 윤회설이 상호 모순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상호 모순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성공하였음을 밝힌다. 무아와 윤회의 교리상 문제는 과거는 물론 현재의 불교 연구에서도 난제 중의 난제였다. 국내에서도 호진 스님이 이 문제를 평생의 문제의식으로 꼼꼼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지만, 속 시원한 결론을 제시하고는 있지 않은 듯하다. 후학으로서 저자는 먼저 호진 스님의 이러한 선행연구를 충분히 검토하는 데 주력하고, 관련하여 새로운 논의들을 추가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이를 인용해 보면,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재가 없듯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통과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아주 명백하게,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통과하거나 윤회할 수 있는 영원하거나 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파괴되지 않고 지속하지만 매 순간 변화하는 것은 하나의 연쇄이다. 이 연쇄는 사실대로 말하면 단지 운동일 뿐이다.”라고 철학적 이유를 제시한다. 계속해서 《밀린다팡하》에서 밤새워 타는 불꽃처럼 현생은 물론 다음 생으로 연계되는 업과 윤회의 이치도 실체 개념을 배제하더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윤회는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무아와 결코 모순적이지 않는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삼법인으로 시작하여 업과 윤회의 문제를 상호충돌이 없는 저술의 일관된 전개를 보여준다.

마지막 제3부는 초기불교의 수행론과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구명하고 있다. 수행과 깨달음에 있어 초전법륜 시에 다섯 비구가 붓다의 설법을 들은 지 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이후 50여 명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후대 주석서에서 초전법륜 시 다섯 비구는 아라한과가 아닌 예류과의 성취였다는 주장을 반하는 이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동아시아 선불교에서 말하는 구경각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다.

수증론에서 저자는 초기불교는 단 한 번에 이루어진다는 동아시아 선종과 달리 점진적으로 성취된다고 하는 점수적 성격임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이 부분도 초기불교를 통해 한국불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는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팔정도가 없는 수행은 바른 수행법이라 할 수 없으며 깨달은 자라면서 사성제나 연기법 그리고 삼법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그의 깨달음을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언급으로, 초기불교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후반부는 이와같이 초기불교의 교리론에 이어 교단론과 교조론으로 정리된다. 초기불교의 교단은 비구니 승가가 비구 승가에 종속되지 않고 대등한 관계였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현 한국 불교계와 관련하여 시사점을 제공한다.

본 저술은 매우 흥미롭게도 마지막 결론으로 교조론을 배치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의 교리론에 바탕한 저자의 불타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붓다의 신격화와 바라문화는 이미 초기불교 경전에서부터 나타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붓다의 범천화와 바라문화는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본래 불교의 입장과 달리 붓다를 초월적 실재로까지 동일시하여 결국 불교가 힌두교로 흡수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붓다의 신격화는 불교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삼법인을 불교의 근본정신으로 파사현정하려는 정신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저자는 재가자들에 대한 친절한 배려로 초기불교의 경제사상과 재가신자의 실천윤리를 부록으로 싣고 있다. 아마도 초기불교의 중심이 출가주의에 놓여 있다는 이해에 따른 배려 차원으로 짐작된다.

 

마성 스님의 《초기불교사상》은 책의 제목대로 초기불교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저서로, 불교의 근본정신을 강조하여 앎과 삶이 일치하는 불교의 정초를 세우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일반 대중이 읽더라도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이해구조를 보여주어, 초기불교 사상의 이해를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저술을 계기로 필자를 포함한 다른 초기불교 연구자들에게 자극이 될 것인바. 새로운 관점의 후속 연구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동국대,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졸업(석사 · 박사).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고려대 철학과 연구교수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위빠사나 수행의 인식론적 근거〉 〈초기불교에 나타난 행복감의 차제적 고양단계〉 등과 저서로 《불교명상-사마타 위빠사나》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역서 《인도불교부흥운동의 선구자: 제2의 아소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등이 있다. 현재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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