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읽을 것인가, 신화로 읽을 것인가

새로운 맥락을 따라 읽는 붓다의 생애

역사로 읽을 것인가, 신화로 읽을 것인가

붓다의 생애를 최초로 다룬 책은 장편서사시 형식을 빌린 아슈바고샤(Asvaghosa, 마명)의 《붓다차리타(Buddhacharita, 불소행찬)》이다. 이 책은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자타카(본생경)》를 비롯, 붓다의 전기에 해당하는 사실이 기록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중허마하제경(中許摩詞帝經)》 《불본행경(佛本行經)》 《중본기경(中本起經)》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중본기경》 등 붓다의 생애를 언급하고 있는 경전을 바탕으로 쓰였다. 붓다의 ‘집안 내력’을 담은 전기도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석가보(釋迦譜)》는 석가족의 시조와 계보를 다룬다. 《불설십이유경(佛說十二遊經)》은 석가족 계보와 함께 성도 후 전법교화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년) 운묵무기(雲默無寄) 스님이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을 편찬했다. 조선 세종 때는 훈민정음으로 찬술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용성 스님이 《석가사(釋迦史)》 《팔상록(八相錄)》을 만들어 대중포교에 활용했다. 1954년에는 안진호 스님이 《신편 팔상록》을 지어 1970년대 이전까지 오랜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붓다의 역사적 성격을 살피고, 인간적 면모를 살핀 저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이 일본학자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를 번역해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신화적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지만 시적인 표현은 배제한 채 담담하게 붓다의 삶을 조명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담백한 번역에 힘입어 널리 읽혔다. 2009년에 나온 성열 스님의 《고따마 붓다: 역사와 설화》나 마성 스님의 《샤카무니 붓다》는 인간 붓다라는 맥락에서 쓰였다. 서구 학계가 19세기부터 역사적 붓다 혹은 인간 붓다의 맥락에서 붓다의 일대기를 다뤄온 것에 비하면 이러한 시도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맥락의 서사, 여성 수행자에 대한 주목 

이번에 나온 《붓다 연대기》는 역사적 붓다, 인간 붓다의 면모를 952쪽의 지면에 156가지 에피소드로 엮은 방대하면서도 과거의 책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전기이다. 

첫 번째는 인간 붓다를 다루면서도 깨달음의 신비함이나 위대함에 주목하기보다 깨달음의 성격이나 사건이 가진 역사적 맥락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에 머무르지 않고,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으며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고들고 있다. 이 같은 서술이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니까야 번역, 다양한 주석서들의 소개가 이뤄졌기에 가능했다. 우리 불교계의 시야가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 이학종✽은 전재성 박사의 니까야 번역서와 무념 · 응진 스님의 《법구경 이야기》, 데이비드 깔루빠나의 《혁명가 붓다》 등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저자는 붓다가 경험했던 수행의 내면을 살피기 위해 직접 미얀마의 사띠파타나 수행처에서 출가를 결행하기도 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러한 저자의 노력은 기존의 붓다 전기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한 묘사로 책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그동안 불교계가 외면해왔던 여성 수행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복원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덟 개의 장 중 하나인 6장을 ‘위대한 여성 수행자’ 편으로 다뤘다. 집필의 흐름상 여성 수행자들의 이야기가 6장에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대목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여성 수행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재성 박사가 완역한 《테리가타-장로니게경》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100여 명의 비구니가 읊은 16장 522수의 게송을 재구성해 고대 인도 사회에서 여성 수행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질곡의 삶과 수행과정을 복원했다. 붓다는 자신의 양어머니 고따미가 출가를 간청함에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가를 간청하는 여성들의 수가 500명에 이르자 마침내 출가를 허락했다. 여성들에 대한 출가 허용은 보수적이던 당시 인도 사회의 분위기상 혁명적인 일이었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걸식하며 숲에서 밤을 보내던 상가의 현실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당시 사회상을 두루 살피며 여성 출가를 허용한 맥락을 다룬다. 

또 다양한 여성 수행자들의 수행과정을 찬찬히 살폈다. 붓다의 속가 양모 고따미나 기녀 암바빨리는 물론 빔비사라왕의 왕비 케마, 설법에 뛰어났던 담마딘나처럼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던 인물에서부터 위사카 같은 위대한 여성 재가자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어떤 붓다 전기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일이다.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에 천착하고 주석서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대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니 여성 수행자들에 대한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그동안 외면받았던 불교사의 한 페이지를 복권시킬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진리에 이르는 붓다의 여정이 어떤 태도로 점철되고 있는지를 다룬 점이다. 깔라마족에게 설한 이야기나 웨살리의 역병을 물리치는 과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서양 학자들에게 자유탐사 헌장이라고 불렸던 《깔라마경》의 이야기 즉 진리란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 아니라 연기의 원리에 따라 숙고하고 면밀히 검증해볼 것을 권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깔라마족에 대한 설법은 권위와 전통보다 스스로 탐구하고 수행하여 얻은 진리를 믿으라는 과학적이고 합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이야기다. 웨살리의 역병 퇴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주술과 신통이 아니라 위생과 봉사, 헌신, 그리고 모든 존재들에 대한 자애의 마음챙김을 강조했던 《보배경》의 이야기는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도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맥락의 가르침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붓다 

붓다의 일생을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하기에 저자의 관점과 해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느 경전도, 어느 주석서도 관점과 해석을 배제한 것은 없다. 《붓다 연대기》는 인간 붓다를 다루고 있다. 불교의 교조이지만, 신이 아닌 인간 붓다 이야기다. 

오랜 여정으로 등이 아프고, 병에 걸려 힘들어했던 인간 붓다. 실존적 인간이었지만 무상, 고, 무아의 진리를 깨치고 세상 뭇 사람들을 평화의 자애의 삶으로 이끌어주려 했던 스승 붓다. 열반을 앞두고 가장 아꼈던 제자 사리뿟다와 목갈라나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붓다. 부인이었던 야소다라, 양어머니 고따미의 죽음을 지켜봤던 인간 붓다의 처연한 모습은 그래서 더욱 새롭다. 

“태어나서 존재를 이루고 합성되었기에 언젠가는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이니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제자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이야기 속 맥락에는 말 못 할 쓸쓸함이 담겨 있다. 

과거 팔상록에서 우리가 만났던 붓다가 천상에서 속세로, 다시 천상으로 오간 신비로운 교조였다면, 《붓다 연대기》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맥락으로 복원되고 사회상과 시대상 속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된 붓다의 삶이다. 

불교를 이해하는 데에 붓다의 전기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이 책을 읽다 보면 팔만대장경 속 위대한 사상가 붓다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와 곁에서 자비로운 웃음을 띠며 우리를 바라본다. 

신화는 사실이 설명할 수 없는 원형적 진실을 추구한다. 시적 묘사는 사실을 뛰어넘어 감동을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바탕에는 역사적 맥락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붓다 연대기》를 덮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고따마 붓다, 그는 누구인가?’ ■ 

 

유권준  reamont@gmail.com
동국대 지리교육과 졸업. 신문기자와 방송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 불교TV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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