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이신 박병기 교수님으로부터 올해 불교평론 뇌허불교학술상 수상자로 필자가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정말 믿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뇌허불교학술상은 20년 만에 새로 부활하는 불교학계 최고의 학술상으로, 과거 불교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분들이 받았던 가장 권위 있는 학술상이다. 필자가 이 뇌허불교학술상을 받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더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이번 학술상에 선정된 수상 저서는 졸저 《초기불교사상》이다. 사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
강산(糠山)절강산절. 우리는 그 절을 그렇게 불렀다. 내가 우리 나이로 다섯 살 때 약 여섯 달 동안 생활했던 절이다. 어머니가 앞장서고 머슴의 지게에 얹혀 산길을 십 리나 걸어서 들어간 절이었다.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신길리 강산이라는 산속에 묻힌 절. 지금 생각나는 건 거의 없다. 조그만 대웅전과 풀이 무성한 마당 건너에 요사가 있던 작은 절. 절 뒤편의 옹달샘에서 개구리 알을 막대기로 헤집었던 기억이 있을 뿐.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태어날 때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나온 탓에 절에 목숨을 팔아야 했고, 아버지가
1. 질병이란 무엇인가우리 시대의 화려한 문명 한편에는 패역에 가까운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새로운 시대 구분을 가능하게 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문명 질서의 오작동은 노골적이다. 그러므로 현대문명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근본에서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특징적인 현상들에 대하여 불교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비판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를 관조할 필요가 있다. 질환(疾患) 또는 질병(疾病)이란 무엇인가. 설문해자(說文解字) 방식의 한자 풀이를 하면 이렇다. 질(疾)은 하늘(天)로 솟구치며(丿) 빠르게 날아가
흔히 불교는 효도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오해되곤 한다. 집을 떠나서 세속과 멀리하기 때문에 불효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부처님은 성인이며 자비를 가르치는데, 어찌 부모에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겠는가.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교적 효와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교 경전에는 많은 효도 관련 자료들이 보이는데, 이것들은 또한 고대 인도의 효와 연관되어 있다.이 자료들을 살펴보면 불교가 얼마나 효를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 불교의 효도 방법1) 자식 된 도리와 의무그레고리 쇼팽(Gregory Schopen)이란 학
얼마 전에 작고한 세계적인 신학자 겸 종교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은 이웃 종교에 대한 기초적 연구가 없으면 종교 간의 대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한국의 양대 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서 상호 간의 원만한 이해와 대화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불교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일본이 배출한 ‘인도철학 불교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비교사상 연구 개척자로서도 명성이 높은 학자이다.나카무라 박사는 1912년 11월 28일, 일본 남부 시마네현 마쓰에시 토노마치에서 출생했다. 마쓰에 지방 관청 관리직 출신의 집안이었다. 나카무라 박사는 출생하자마자 집안 사정으로 인해 도쿄도 분쿄구 동경대학 근처로 이사해 살게 되었는데, 평생토록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더 없이 사랑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같은 평판으로 인해 1989년 ‘동양사상 연구의
역사적 · 사상적 배경중국 근대 시기에 불교가 맡은 역할은 매우 독특하다.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로 인한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는 상황 앞에서 불교는 서양철학에 대항하는 사상적 무기로서 역할과 동서 문화 교류의 계합점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였다.서양 사상이 새로운 시대사조로 대두하게 되자, 근대 이전의 사회 이데올로기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속해온 주자학에 눌리고 있던 불교가 부흥하게 되었다. 주자학은 세계와 인간을 동일한 영역으로 파악하고 동일한 메커니즘인 이(理)의 실현
1.산업화와 함께 서구 문명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던 1970년대 문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축약할 수 있다. 이는 문학의 사회적 확대로 이어지는 현실참여, 주체 이념화 경향, 민족문학의 방향 정립으로 편성된다. 문단에서는새롭게 등장한 의식으로 리얼리즘, 순수이성, 전통의식 사이에서 다양한 갈래의 문학적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다. 여기서 1960년대 중반부터 대두되었던 문학의 현실참여 문제는 참여와 순수라는 양분법으로 현실에 대응하지 못했고, 각 진영은 서서히 문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현실의 문제와 문학의 지향점이라는 또 다른 메커니즘
* 정승석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 전공 교수로 불교대학원장과 일반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도의 이원론과 불교》 《윤회의 자아와 무아》 《인간을 생각하는 다섯 가지 주제》 《법화경: 민중의 흙에서 핀 꽃》 《상식에서 유식으로》 《버리고 비우고 낮추기》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불전해설사전》 《고려대장경 해제》가 있다. 이 밖에 역서로 《리그베다》 《대승불교개설》 《딴뜨라불교 입문》 등이 있다.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
사람은 언제 일부터 기억할 수 있을까요? 제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때인데, 할아버지의 죽음입니다. 자다가 깨어나 보니 큰 방 윗목에 누군가가 누워 계시고, 사람들이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습니다.제 할아버지는 1893년에 태어나셔서 1951년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59세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산 선암사의 시주셨다고 합니다. 집안에 불단을 모셔두고 매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선암사는 경허의 세 달 가운데 한 분인 혜월 스님께서 주석하셨던 곳이지요. 혜월 선사는 1862년에 나셔서 1936년에 입적했으니 제 할아버지는 그 뒤에 선암사와 인연
나는 최근 3년여에 걸쳐 내 생의 마지막 소설 2권을 완성했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 40여 년 전에 발표한 《솔바람 물결소리》와 속편 《연꽃을 피운 돌》 그리고 30여 년 전에 발표한 《우담바라》에 이은 장편이다.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이 불교의 문턱에 서서 설레는 마음으로 불교를 바라보는 소설이라면, 《우담바라》는 불교 안으로 들어와 불교와 호흡하며 마음껏 불교를 향유했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우담바라》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70대 중반에
살다 보면 남편과 아내는 병고(病苦)를 겪으며 서로 간병인이 되기도 한다.나는 약골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잔병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는 큰 병을 앓아 한 달 넘게 입원한 적이 있다.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아내가 극진히 나를 간호하여 병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건강 회복은 아내의 정성스러운 병간호 덕분이었다. 아내는 입원 중에도 병원식과 별도로 이런저런 건강 음식을 구하여 먹도록 하고 퇴원 후 학교에 출근할 때는 건강에 도움 되는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었다. 더구나 아내는 같은
연말이 되면 대형 서점의 문구 코너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특히 새해 수첩을 파는 코너에 젊은 여성들이 많다. 문방구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정이라 나도 그 속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훑어본다. 요새 우리나라에도 해외의 명품 플래너, 공책, 수첩들이 들어와 있다. 고급품은 20만 원이 넘는 프랭클린 플래너도 있고 헤밍웨이, 고흐, 피카소가 즐겨 썼다는 몰스킨 공책, 가죽 커버에 고무줄로 허리를 묶어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시아크도 있다. 내가 좋아했던 물품들이다.진지하게 수첩을 고르는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새해에 대한 꿈은 어
정신적 형제애의 길정(情)이 있어 종자를 심으니(有情來下種)땅에서 열매로 돌아온다(因地果還生)정이 없으면 종자도 못 되니(無情旣無種)생명의 성품도 결실도 없다.(無性亦無生) 선문(禪門)의 5조 홍인 선사가 혜능에게 6조 대통을 물려주며 전한 게송이다. 철학자 막스 뮐러는 동양학에도 밝았으며 다만 한 편의 문예작품으로 소설을 남겼다. 그 소설 《독일인의 사랑》에서 작가가 말했다.“육체가 없는 정신은 유령이고 정신이 없는 육체는 시체이다.” 여기에서 육체는 일상생활의 구체성이고 ‘정신’은 불멸의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한국의 사회 사
들어가는 글다른 서양 국가와 비교하면 호주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나라다. 물론 남반구에 위치하여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심적으로 그리 가깝다고 볼 순 없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깝다고 한다. 특히 불교 인구가 2016년 18.1%로 보고된 크리스마스섬의 경우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350km 거리의 인도양에 위치하여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호주 땅이다. 이런 지리적 접근성은 아시아인의 이주나 교역을 일찍부터 용이하게 하여 호주의 주류 백인들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1901년에 ‘백인 호주 정책(White Australia
불교의 기원과 교설적 발전은 분명 인도 및 아시아 등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재 불교의 영향력은 더 이상 지역적 구분으로 범위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종교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독일에 불교가 처음 알려진 것은 약 150년 전의 일이다. 아시아에서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불교가 전래된 북미나 호주 등의 지역과는 다르게, 독일을 포함한 유럽 지역의 불교는 학자들의 지적 관심에 의해 자발적으로 소개되었다.지난 반세기 동안 불교는 종교로서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가시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이 가시적 성장이란 다양한 불교 종파
"(가톨릭) 교회의 맏딸인 프랑스는 불교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에릭 롬믈뤼에르"프랑스인에게 ‘불교’라는 단어는 무엇보다도 티베트불교를 연상시킨다."— 베르나르 포르 1. 부말(浮沫)에 불과한 프랑스에서의 불교 붐두 제사(題詞)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교는 프랑스인들에게 여전히 이국(異國)의 문화에 해당하며, 기독교와 조화로울 수 없는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는 예나 지금이나 ‘신비적인(mystique)’ ‘불가사의한(ésotérique)’ ‘비논리적인(illogique)’이라는 수식어가 거의 자동으로 따
1. 영국과 불교의 만남영국은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만나게 된다.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서구의 스리랑카 식민화가 시작되었고, 160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가 스리랑카 남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1796년부터 영국이 스리랑카를 전역을 장악하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1815년 캔디협정을 통해 스리랑카를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당시 식민지 스리랑카의 관료들은 스리랑카불교를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종교로 여겼고, 개신교 전파를 통해 스리랑카를 기독교화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기반을
1. 시작하며: ‘빨간 머리 앤’의 고장캐나다 동부 끝에 자리한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州)는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의 배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여름이 되면 주도(州都)인 샬럿타운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차게 북적이는데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0년대 후반부터 대만 관광객 수가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 관광청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에 연간 58명이었던 대만 관광객이 2010년대 후반에는 3,065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관광지에서
1. 들어가는 말“함께 일어서기 위해 함께 참선한다(Sitting Together So We Can Stand Together).”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는 영어의 ‘참선하다/앉다(to sit)’와 ‘대항하다/일어서다(to stand)’라는 표현의 대조의 맛을 살릴 수는 없지만, 이 표현은 미국불교 현주소의 주요한 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준다.종교와 철학은 인간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와 궁극적인 진리에 관한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한다고들 한다. ‘궁극적’이라는 말은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서 ‘보편적’이라는 개념으로도 이해되어 왔다. 삶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