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서
구중서

정신적 형제애의 길
정(情)이 있어 종자를 심으니
(有情來下種)
땅에서 열매로 돌아온다
(因地果還生)
정이 없으면 종자도 못 되니
(無情旣無種)
생명의 성품도 결실도 없다.
(無性亦無生)

 

선문(禪門)의 5조 홍인 선사가 혜능에게 6조 대통을 물려주며 전한 게송이다. 철학자 막스 뮐러는 동양학에도 밝았으며 다만 한 편의 문예작품으로 소설을 남겼다. 그 소설 《독일인의 사랑》에서 작가가 말했다.

“육체가 없는 정신은 유령이고 정신이 없는 육체는 시체이다.” 여기에서 육체는 일상생활의 구체성이고 ‘정신’은 불멸의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의 사회 사정은 1960년대 초에 4 · 19 민주혁명의 이상이 군부세력에 의해 좌절되면서 여러 고비의 파란을 겪었다. 한 집권세력의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유신헌법의 문제와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 노조원들이 겪는 탄압이 특히 두드러진 사태였다.

이 어려운 시대에 또 달리 돋보이는 현상이 있었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른바 노동사목 또는 산업선교 운동에 나서고 있었다.

불교의 송월주 스님, 기독교의 강원룡 목사,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이 한자리에 모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로 손을 잡은 채로 사진을 찍은 것이 신문에 발표되었다. 이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이때 이들이 발표한 성명은 노사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탄압받는 현실에 대해 종교계가 비판과 저항운동의 선두에 선 것은 이 사회에서 정신 차원의 힘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 어려움 속에서는 종교와 철학도 인식론적 이론 단계에 머무는 것보다 실천적 행동에 나아가기를 요청받았다.

이때의 행동은 꼭 가두에 나가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성이 담긴 인간적인 일화가 신화처럼 생겨나는 것이 잠재적으로 역사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가톨릭의 원주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가 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주교를 겸임하고 있을 때의 일화가 있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등 큰 공장들이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하느라고 무더기 해직을 시킨 때가 있었다. 실업자가 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계속하려는데 최소한의 비용도 없다. 여성 노동자들은 원주교구로 지 주교를 찾아갔다. 지 주교는 젊은 비서 신부에게 “내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어? 그거 다 꺼내서 얘들한테 주어.” 했다.

활동자금을 받아든 여성 노동자들이 지 주교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저희는 주교님을 괴롭혀 드리려고만 찾아뵙는군요.”

주교는 말했다.

“나를 괴롭힐 일이 있을 때만 찾아와. 잘 되어 돌아갈 때면 올 필요 없어. 너희끼리 잘 살아.”

또 한 차례 여성 노동자들이 주교를 찾아갔다. 지 주교의 회갑연이 열리는 날에 축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저녁나절에 그녀들이 서울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드렸다. 지 주교는 “너희 가톨릭회관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다시 나를 보고 가라.” 했다.

이튿날 아침에 여성 노동자들이 다시 주교를 찾아뵙고 떠난다는 인사를 드렸다. 이때 지 주교는 신문지로 포장한 세 덩어리의 무언가를 가지고 가라고 내놓았다. 자기 회갑연에 들어온 축하금 전부라는 것이었다. 가지고 가서 노동운동 비용으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세 덩어리로 나누어 묶었느냐고 여성 노동자들이 물었다.

“한 덩어리로 된 것을 가지고 가다 혹 강도에게 빼앗길까 봐…….”

지 주교의 답변이었다.

이러한 지학순 주교는 1974년 7월 23일 서울 명동성당 앞 성모병원 현관 앞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했다. 유신 독재 반대 ‘양심선언’이었다.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민주 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므로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당시 이른바 유신헌법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며 폭력과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은 결연한 행동이었다. 특히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말은 순교 정신의 표명이다.

이 양심선언 때문에 지학순 주교는 바로 서대문교도소에 투옥되었다. 이 지 주교의 석방 운동을 하느라고 정의구현사제단이 생겼고, 사제단은 뒷날에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직선제 헌법을 탈환하는 민주주의의 획기적 새 단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그 어렵던 시절에 한때 추진되었던 한국종교지도자회의를 위해 불교계의 한 대표가 강원룡 목사에게 한 말이 있다. “종교가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만 있다면 불교 자체는 없어져도 좋소.” 했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생각했다.

‘정작 십자가 정신은 불교 쪽에 더 있는 것 같다.’

김수환 추기경은 송월주 스님과 함께 법정 스님이 문을 연 길상사를 방문해 축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의 영혼이 돈의 통치를 받아 극도로 쇠약해졌고, 물신(物神)은 얼마나 기승을 부립니까. 영혼이 청정하지 못한 속의 호황이라는 것은 처참한 몰락입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라는 세계적 대재앙을 겪으며 더욱 절실히 제기되는 반성의 과제가 있다. 물질보다 정신이, 능력주의보다 인정과 형제애만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kwangsanjs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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