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남편과 아내는 병고(病苦)를 겪으며 서로 간병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약골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잔병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는 큰 병을 앓아 한 달 넘게 입원한 적이 있다.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아내가 극진히 나를 간호하여 병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건강 회복은 아내의 정성스러운 병간호 덕분이었다. 아내는 입원 중에도 병원식과 별도로 이런저런 건강 음식을 구하여 먹도록 하고 퇴원 후 학교에 출근할 때는 건강에 도움 되는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었다. 

더구나 아내는 같은 선생님께 불교를 공부한 도반이기도 하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독송하고 평소에는 마음에 올라오는 모든 상념을 미륵존여래불 염송으로 부처님께 바치는 공부이다. 병고가 오래 머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입원 중 한번은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친하게 지내던 도반을 따라 무속인으로 보이는 낯선 남녀가 문병을 온 적이 있다. 그들은 염라대왕을 거론하면서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암시까지 했다. 심신이 약할 것으로 생각하고 나를 끌어들이려고 한 것 같다. 도반 중에 그들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곧바로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병실에서 내보냈다. 함께 온 문병객들이 놀랐다. 알고 보니 그들은 사기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병을 계기로 나는 술과 담배를 끊었다. 과거에도 끊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었다. 그때 가능했던 것은 강한 유혹일수록 단숨에 끊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담배는 오래 피워 인이 박이면 혈액 속의 니코틴 함량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피가 담배를 부른다고 한다. 혈액 속 니코틴 함량을 일정 수준으로 낮출 때까지는 담배가 생각나는 순간마다 한 모금의 유혹을 물리쳐야 했다.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보왕삼매론〉의 말씀과 같이 나에게 병고는 술 담배를 끊은 양약이었다.

 

그 후 아내가 큰 병으로 입원 시술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 같았으면 생명을 잃을 뻔한 병이었는데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입원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간병인이 되어 아내를 보살폈다. 

10년이 지나 내가 큰 병을 얻어 아내가 다시 간병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러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수술에 동의한다는 본인과 보호자의 확인서를 쓰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아내와 아들딸의 손을 꼭 잡고 나서 수술대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했다. 수술 의사의 의술에 기대했으나 마지막 의지할 곳은 역시 부처님밖에 없었다. 

“중생을 제도 구원하시는 부처님, 이 중생이 병고에서 벗어나 재앙은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해서 부처님께 복 많이 짓기 발원”하고 부처님께 기원을 드렸다. 아내와 나를 부처님께 이끌어주신 백성욱 박사님이 일러주신 발원문을 응용한 것이었다.

수술은 8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이라고 했다. 수술이 시작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미륵존여래불”을 입속으로 염송했다.

그런데 이상인 일은 내가 미륵존여래불을 세 번 부르고 나자 바로 눈이 떠졌다. 수술이 끝난 것이다. 나의 의식에는 분명 세 번 염불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이 세상은 여덟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부처님의 자비가 역사(役事)하신 것 같다. 수술 끝나고 6개월에 한 번씩 여러 번 검사를 받았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백 겁 동안 지은 죄 한 생각에 없어지네(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라는 《천수경》의 문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내 나이 여든 살에 아내가 입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다시 재활실로 옮겨 모두 6주를 입원했다. 처음에는 보호자인 내가 간병인이 되었으나 아빠를 염려한 아들이 따로 간병인을 구했다. 

당시 코로나 때문에 간병인이 있으면 보호자도 병실 입실이 금지됐다. 딸과 함께 병원을 방문하여 물건을 전할 때 간병인이 입구에 환자를 데리고 나와 상봉을 시켜주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다가 떨어져 있으니 걱정도 되고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 나이 들면 남자는 아내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퇴원 후 미리 준비한 보행기로 아내가 몸을 이동할 수 있어 나의 간병인 역할이 아주 수월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으면서 유튜브의 재활운동 프로그램을 매일 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좋아졌다. 이제는 보행기 의존에서 벗어났고 내가 대신하던 주방일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아내도 병원에서도 《금강경》 독송과 염불을 쉬지 않았다. 백팔 배만을 계속하지 못했는데 나는 며칠 전 다시 시작했고 아내도 다시 할 날이 그리 머지않다. 

어쨌건 아내를 다시 만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중국어로 아내와 남편은 모두 애인(愛人, 아이런)이라고 부르고 우리말로 애인은 정인(情人, 칭런)이라고 부른다. 이 나이에 애인과 정인이 따로 있을 수 없으니 이제 아내는 애인이고 동시에 정인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부처님을 함께 모시는 도반이다.

 

정천구 /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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