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키야 · 요가 사상체계 철저분석한 역저

*   정승석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 전공 교수로 불교대학원장과 일반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도의 이원론과 불교》 《윤회의 자아와 무아》 《인간을 생각하는 다섯 가지 주제》 《법화경: 민중의 흙에서 핀 꽃》 《상식에서 유식으로》 《버리고 비우고 낮추기》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불전해설사전》 《고려대장경 해제》가 있다. 이 밖에 역서로 《리그베다》 《대승불교개설》 《딴뜨라불교 입문》 등이 있다. 

 

인도의 이원론과 요가 / 정승석
인도의 이원론과 요가 / 정승석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고 포괄적인 표현을 통해서 많은 사회적 담론이 양산되고 있지만, 인도철학은 그런 위기라는 표현조차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국내 소수의 학자들이 힘겹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분야이다. 출판시장에서도 인도학/인도철학 신간을 발견하는 것은 연중행사와 같은 일이다. 

그런 시기에 정승석✽ 동국대 석좌교수의 《인도의 이원론과 요가》가 출판된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학술서적으로서 거의 1,3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이 발간될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로서, 인도철학의 상키야-요가 분야를 평생 연구해온 저자의 근래 성과를 집대성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알려진 사실대로, 힌두 전통 내에서 자매 학파라고 할 수 있는 상키야(Sāṃkhya) 학파와 요가(Yoga) 학파는 불교와 많은 용어를 공유하면서 아비달마 논서들이 성립되는 전후 시기, 즉 불교의 세부적인 교리가 정립되고 확장되는 시기에 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 상키야-요가 분야의 방대한 분량의 학술서적이 출간된 것은 국내 불교학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연구 방향과 그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차크라바르티(Chakravarti)의 저작과 관련된 초기 상키야 철학 연구사의 한 단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32년, 노르웨이에서 출생하고 독일에서 활동했던 인도 고전학자 라센(Lassen)이 상키야의 표준적인 논서인 이슈와라크리슈나(Īśvara-kṛṣṇa, 4~5세기)의 저작 《상키야송(Sāṃkhyakārikā)》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주로 독일과 영국학자들에 의해서 근대 학문으로서 상키야-요가가 20세기 초반까지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몇 편의 《상키야송》 주석서들의 원전 편집본이 인도에서 발간되었다. 

그렇게 상키야-요가의 사상 체계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던 20세기 초에 유럽 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교와의 선후 관계 여부를 중심으로 상키야의 기원이 되는 시점에 관한 논의가 쟁점이 되었다(이 책의 9.2.1에서 그 논의에 관한 내용을 일부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문헌이 거의 없어서 관련 자료가 부족했던 초기 상키야에 대한 연구는 결코 논의가 다각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본격적인 상키야 철학 체계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상키야송》 직전의 수 세기─불교와의 논쟁과 상호영향이 가장 활발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주로 불교 문헌이나 다른 힌두 학파들의 문헌에 적대적으로 인용된 내용, 혹은 《마하바라타》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사상이 혼재된 서술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한계가 명확하였다. 그런 상키야-요가 연구에 전환점을 마련했던 사건이 《유크티디피카(Yuktidīpikā)》 사본의 발견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차크라바르티의 연구이다.

《상키야송》의 주석서로서 인도 판디트인 차크라바르티의 편집으로 1938년 인도에서 출간된 《유크티디피카》는 이전에 발견되었던 주석서들이 주로 용어들의 교리적 해석에 치중했던 반면에, 불교를 비롯한 다른 학파의 대론자들의 견해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논박 및 상키야 학파 내부의 비판에 대한 반론과 더불어 다양한 철학적 주제에 대한 초기 논사의 견해들을 망라하여 초기 상키야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풍부한 원천을 제공하였다. 그중에서는 불교의 대논사라 할 수 있는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최초 저작으로 알려진 《칠십진실론(七十眞實論)》의 소실된 단편들도 포함하고 있어 최근까지도 이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크티디피카》의 발견은 상키야-요가 연구자들에게는 불교학계에서 《아비달마구사론(Abhdharmakośabhāṣya)》의 산스끄리뜨 사본이 발견되는 것과 비견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출간된 《유크티디피카》의 편집본은 한 편의 온전하지 않은 사본만을 참조하였기 때문에 누락이나 오기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 《유크티디피카》는 이후에 몇 편의 사본이 새로 발견되면서 다른 편집본이 세 차례 더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원문의 교정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말하자면, 《유크티디피카》는 아직도 세부적으로 연구가 완결되지 않은 부분이나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는 부분이 남아 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나온 많지 않은 전 세계의 상키야 관련 박사학위 논문들 대부분이 《유크티디피카》를 주요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 문헌에 대한 연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유크티디피카》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1951년 출간되었으며, 이 글에서 소개하는 저서의 근간이 되는 책이 차크라바르티의 《상키야 사상 체계의 기원과 발전(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Sāṃkhya System of Thought)》이다. 차크라바르티는 그가 처음으로 접했던 《유크티디피카》의 연구성과를 활용하여 다른 인도 고전의 수많은 구절과 관련지으면서, 이 주석서가 제시하는 새로운 내용이 이전에 발견되었던 초기 상키야에 대한 단편적인 서술들을 종합하고 빈틈을 메꾸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다방면에서 보여주었고,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과감한 역사적 추측이나 철학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 책은 이후 상키야-요가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정승석 교수가 저서의 머리말에서 밝히는 것처럼, 실제로 “상키야 또는 요가를 전공한 학자들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적지는 않지만, 주로 이 저서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차크라바르티의 저서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종횡무진으로 인용하는 수많은 원문은─학술적 연구에서 최초로 인용된 구절이나, 심지어 《유크티디피카》의 구절조차도─ 번역이 제시되지 않으며, 일부는 출처 없이 원문만 제시하는 경우도 있어서 진의의 왜곡 없이 읽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가 제기했던 다양한 역사적 가설 중에는 이후에 발견된 자료들을 통해서 오류가 지적되는 곳들도 있어서, 최근의 상키야-요가 관련 연구성과를 숙지하지 못한 학자들이 무턱대고 이 책을 인용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가 제공하는 상키야 연구와 관련된 많은 주제가 여기에서 처음 다루어지고 이후에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확장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한 인도철학 연구가 크게 축적된 유럽이나 일본의 상키야-요가 연구에서 이 책을 인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의 가설을 의식하는─혹은, 일치하는─ 사례가 많을 정도로 《유크티디피카》 연구에서 이 책이 시발점으로서 의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정승석 교수는 그의 이번 저서에서 그 같은 차크라바르티의 연구에 대한 분석과 재검증의 역할을 자임한다. 그 결과 차크라바르티 저서의 목차는 본판을 추측하기 힘들 정도로 체계적으로 재조립되고 세목이 확장되었으며, 고전 요가와 현대의 요가 부흥에 관한 새로운 항목도 추가되었다. 차크라바르티가 제시했었던 수많은 구절은 모두 교정 · 번역되고, 최근의 편집본에 관한 해당 정보도 제시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가 인용하지 않았던 많은 자료가 추가되었으며, 학계의 최근 연구성과도 반영되었고, 그의 가설 중 일부는 추가된 자료를 통해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다. 그런 연구방식이 이 책이 분량이 늘어난 이유로 보이며, 이는 어떤 의미에서 차크라바르티 연구의 불완전했던 부분이 이 책을 통해서 보완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두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7.1~7.3으로서, 《상키야송》의 저자인 이슈와라크리슈나 이전 시대의 논사들을 소개하면서 불교 논사들과 연관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역사적 해석을 다루고 있다. 다른 하나는 9.1~9.3으로서, 불교와 상키야-요가 사이의 공통적인 관념을 순서대로 소개하면서, 9.3에서는 삼세실유와 시간 관념에 관한 불교와 요가 사이의 밀접한 영향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

 

강형철 djcesil@hanmail.net

동국대 인도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 《상키야와 불교의 찰나멸에 관한 대론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주요 연구 분야는 상키야 철학과 인도논리학, 불교논리학이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및 동국대 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초빙연구교수 역임. 현재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초빙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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