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학불교학을 창시한 세계적 석학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일본이 배출한 ‘인도철학 불교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비교사상 연구 개척자로서도 명성이 높은 학자이다.

나카무라 박사는 1912년 11월 28일, 일본 남부 시마네현 마쓰에시 토노마치에서 출생했다. 마쓰에 지방 관청 관리직 출신의 집안이었다. 나카무라 박사는 출생하자마자 집안 사정으로 인해 도쿄도 분쿄구 동경대학 근처로 이사해 살게 되었는데, 평생토록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더 없이 사랑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같은 평판으로 인해 1989년 ‘동양사상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마쓰에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 계명(戒名)을 ‘자서원향학창원거사(自誓院向學創元居士)’로 칭한 나카무라 박사의 약력을 간추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2  11월 28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토노마치(日本國島根県松江市殿町) 출생.
1930  제1고등학교 문과 을류 입학.
1933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인도철학 범문학과(梵文學科) 입학.
1943  동경제국대학에서 〈초기 베단타 철학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취임. 
1951  저서 《동양인의 사유방법》이 높은 평가를 얻어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부터 일본인 최초의 객원 교수로 초빙. 그 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50회넘게 초빙됨. 
1954  동경대학 교수로 취임.
1957  일본 학사원(學士院) 은사상(恩賜賞) 수상(《초기 베단타 철학사》).
1964  동경대학 문학부장으로 취임. 문화교류 연구시설 설립 진력.
1967  오스트리아 학사원 원격지 회원에 선출. 《불교어대사전》 집필. 원고 분실 사건 1개월 후 새로운 집필 개시.
1970  재단법인 동방연구회(東方研究會) 창립과 동시에 이사장직에 취임. 젊은 학자들의 연구를 계속적으로 돕기 위한 개척자로서 문호를 개방.
1973  동경대학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 동방학원(東方學院) 설립, 학원장으로 취임.
1974  비교사상학회 초대 회장 취임. 일본의 문화훈장인 자수포장(紫綬褒章) 수훈
1975  《불교어대사전》 간행. 마이니치출판(每日出版) 문화상, 불교전도협회 불교전도(仏教傳道) 문화상 수상.
1977  일본 천황으로부터 문화훈장 수상.
1978  영국 왕립아시아협회 명예회원으로 선정됨. 네팔 국왕으로부터 훈장 받음.
1982  독일 학사원 객원회원으로 선정됨. 스리랑카 국립켈라니야대학 명예박사학위 받음. 중국 서북(西北)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됨.
1984  훈1등 서보장(勲一等瑞寶章) 수상. 일본 학사원 회원 선출.
1994  제24대 아시카가(足利)학교 학장 취임.
1999  NHK 방송 문화상 수상. 《나카무라 하지메 선집(中村元選集)》[결정판] 전 40권 간행 완료.
1999  10월 10일 향년 86세로 별세. 유해는 유언에 따라 고향 시마네현 마쓰에시 신고우지(眞光寺), 동경도 공동묘지 다마영원(多磨霊園), 인도 갠지스강 등에 분골 매장됨.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별세한 5년 후인 2004년 3월, 인도 뉴델리에서 박사의 업적을 현창하는 ‘일본, 인도불교철학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 식장에는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영정과 전 40권 한 질로 된 《나카무라 선집(選集)》(결정판) 외 많은 저서를 쌓아 놓고 전시했다. 세미나 참석자 중 한 사람은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 영정 앞에서 오체투지로 예의를 갖추기도 했다. 이는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학문적 업적이 일본 안팎에서 높이 평가되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실제로 박사의 학문적 범위는 일본, 인도, 중국, 한국에서부터 유럽 또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광대할 뿐만 아니라 광범한 분야의 영역에서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학문적 공적의 하나는 세계 전체를 시야에 두고 인류의 사상사를 구축한 《세계사상사》(전 4권)를 완성한  것이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이 대저작의 제일 마지막 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의 고찰에 의해 인류가 하나로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상은 각양각색으로 그 형체를 표명하겠지만, 인간성은 오직 하나뿐이다. 금후 세계는 하나로 될 것이다. …… 세계의 철학 종교 사상사에 관해 이 같은 연구가 지구 전체에 걸친 사상이 통상되어 많은 보람이 되어 사상계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 상호 간 이해를 육성시켜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라는 이념을 확립시킴에 도달할 것을 오직 바라고 또 바랄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들이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힘썼다. 박사는 평생에 걸쳐 어려운 한문 술어, 통상적으로 사용치 않는 불교 용어 등을 일반적인 현대어로 표현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성과의 하나가 《붓다의 말씀》 《붓다의 마지막 여행》 등으로 초기불교 경전을 알기 쉬운 말로 번역한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불교어대사전》과 《광설(廣說) 불교어대사전》 편찬이다. 이 책은 방대한 사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시에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전문 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저서이다. 

이러한 학문적 업적은 2012년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 탄생 100년을 기념해 출생지 마쓰에시에서 설립한 나카무라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박사가 생전에 애독했던 인도철학 및 불교학의 희귀서적 등 3만5천여 권이 전시되어 있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뛰어난 업적 가운데에서도 그 영향력에서 특히 대표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동경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모태로 한 저술들이다. 즉 《초기 베단타 철학사》 4부작이다. 이 역저는 세계 각국의 학계가 공인하고 있어 베단타 연구의 세계적 표준이 되고 있다. 박사는 이후 20년의 세월 동안 연구를 거듭해 인도철학 연구 5부작을 완성했다. (1) 《초기 베단타 철학》 (2) 《부라흐만 수트라 철학》 (3) 《베단타 철학 발전》 (4) 《언어 형이상학》(이상 1950~1956 동경 이와나미 서점) (5) 《샹카라 사상》(1989 이와나미 서점)이 그것이다. 이 저술들은 (1)권과 (2)권을 묶어 영문판 A history of Early Vedanta Philosophy, 제1권(Motilal Banarsidass, 1983)으로 출간되고, 계속해서 (3)권과 (4)권을 한데 묶어 제2권이 2004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5)는 아직 영문판이 출간되지 않았다.

이 저술은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완성한,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성이 큰 저작물으로 손꼽힌다. 베단타 연구의 시작으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 학자들에게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복음서가 된 위대한 저술이었음에도, 영어판 출판에 많은 세월이 걸렸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할 수가 있다. 영어판 제1권은 미 하버드대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한 다니엘 잉걸스 교수의 지원에 힘입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 수제자 마에다 센가쿠(前田專學) 박사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의 노력으로 번역되어 1983년에 출판되었다. 영문판 출간은 생전의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최후까지 열망했던 중대사였지만, 서거 후에야 제2권 출판이 가능했다. 제2권은 2001년 동방연구회(東方研究會) 출판 특집호로서 2004년이 되어서야 출판이 이루어져 세계에 공표할 수 있었다. 베단타 철학사 4부작을 완성한 후 4반세기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연구 완성과 영어판 출간에 40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격이 있었음에도, 그 학문적 가치는 전혀 변함없음이 이 업적의 위대성을 증명한다. 연구 성과의 원저서가 일본어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연구의 탁월성이 세계적으로 파급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이 중요한 박사학위 청구 논문인 〈초기 베단타 철학사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37년부터다. 1943년에 동경대학으로부터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같은 해 30세의 나이에 동경대학교 조교수직에 보임되었다. 그 후 1950년부터 1956년 사이에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출판된 것이 위의 대논저 베단타 철학사 4부작이다. 그동안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1954년 조교수에서 교수로 승진되었으며, 1957년 이 저작은 일본 국민으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일본 학사원 은사상(恩賜賞, Imperial Prize)을 일본 천황으로부터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물론 이 기간은 일본이 전쟁과 패전 후 전 국민적인 고통을 피할 수 없었으며, 학문 연구나 문화 활동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시기였다. 따라서 중요한 집필 원고를 연구실 등에서 분실 또는 산실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에도 고충을 겪기도 했다. 

특히 1957년에는, 인도 수상 J.네루가 일본을 방문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와 환담했다. 그때,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일본과 인도 사이의 문화교류 촉진을 진언했다. 그 후 1958년 인도와 일본의 문화교류가 결실을 보았다. 이 같은 경위가 있어 나카무라 하지메 서거 후 박사를 추도하고 그가 남긴 업적을 크게 현창하는 의미에서 인도철학 및 불교학의 발상지 인도에서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업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생애를 마치는 순간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은 저술로서 일본 동경의 출판사 춘추사(春秋社)에서 발행한 《신판(新版) 나카무라 하지메 선집(中村元選集)》 전 40권(1988년~1999년)을 들 수 있다. 그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제4권 《동양인의 사유방법》(1권 인도, 2권 중국, 3권 일본, 4권 티베트/한국)
제5권~제7권 《인도사 I. II. III》
제8권 《베다 사상》
제9권 《우파니샤드 사상》
제10권 《사상의 자유와 자이나교》
제11권~제18권 《원시불교(I. II. III. IV. V. VI. VII. VIII)》
제19권 《인도와 서양사상 교류》
제20권~제23권 《대승불교 I. II. III. IV)》
제24권~제27권《인도 6파철학 I. II. III. IV)》
제28권~제29권《인도철학 체계(번역 주석 I. II)》
제30권 《힌두교와 서사시(叙事詩)》
제31권~제32권 《근현대 인도 사상 I. II》
별권 1~별권 4 《세계사상사 I. II. III. IV》
별권 5~별권 8 《일본사상 I. II. III. IV)》

 

이상의 선집 40권은 대단히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각기 그 분야의 전문성을 상실치 않은 내용의 저작물로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나카무라 박사의 업적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3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불교어대사전》(전 3권, 동경서적, 1975년)이다. 이 사전은 이후 1981년에 1권으로 축약하여 발행했다. 발행된 후 일본의 권위 있는 마이니치출판(每日出版) 문화상과 불교전도(佛敎傳道) 문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동시에 세계 불교학계에서 지금까지도 이 사전이 제공하는 정보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사전이 간행되기 전  큰 사건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20년을 걸쳐 노심초사하며 집필, 완결한 《불교어대사전》이 출간을 바로 앞두었을 무렵, 출판사의 실수로 그 방대한 원고 전부를 분실하고 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언론은 대서특필하여 그 사실이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 관해서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당시에 보도진에게 ‘발생한 사건에 대해 당사자에게 원망한다 해도 분실된 원고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히며 관용과 자비를 보여주었다. 이 인터뷰는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그다음 날부터 다시금 원고를 새롭게 작성하기 시작해 약 8년에 거쳐 완결하였다. 그리고 원고를 분실했던 출판사가 아닌 ‘동경서적’이라는 출판사에서 전 3권을 간행해, 지금도 불교학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세계적인 사전으로서 그 명성이 높다. 완성판은 4만5천 항목의 대사전이며, 그 뒤 개정판으로 《광설(廣說) 불교어대사전》이 나왔다. 이 사전은 원래 사전보다 8천 항목을 추가하여 발행했다. 교정 관련 작업이나 색인 작성에 문하생들의 도움이 일부 있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 자신이 혼자의 집필로 완성한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방대한 작업으로, 누구도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으로써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인도철학 연구와 불교학 연구 그리고 비교사상 연구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그 성과를 영문으로 출판해 일본뿐만 아니라 언제나 세계를 시야에 두고 학문 연구를 촉진하고 발전시켰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인도철학뿐 아니라 ‘인도 논리학 연구’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좋은 예가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년까지 손을 놓지 않고 추진했던 《나카무라 하지메 선집(결정판)》 제25권 《니야야와 바이세시카 사상》의 출판이다. 알려져 있듯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니야야와 바이세시카 철학 연구와 인도 논리학 연구는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 분야에 관해서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자의 항목별로 실린 주석은 일본어 문헌 459건, 외국어 문헌은 542건이 넘는 연구 서적을 인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두 합하면 1001건의 저술을 주석에서 언급 소개하고 있다. 이같이 방대한 참고문헌을 포함하고 있는 저술은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어떤 방법으로 어느 경로를 통해 이처럼 방대한 문헌을 입수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필시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친구분들의 논문이나 저서를 증정받았을지도 모르지만, 박사 자신이 일본 국내 또는 세계 각국의 주요한 학술 잡지를 주의 깊게 수집하여 파악했음이 틀림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집 제25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이 분야의 저명한 프라샤스타파다(Praśastapāda)의 《파다르 다르마 샹그라하(Padārtha-dharma‐saṅgraha)》와 다르마키르티(Dharmakīrti)의 저서 《니야야 빈두(Nyāya‐bindu)》의 일본어 번역 및 《인도 논리학 이해를 위해서-Ⅱ 인도 논리학 술어집성》이라는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저술이 있다. 이 저작은 니야야와 바이세시카 학파, 논리학 연구와 함께 그 학파의 산스끄리뜨 텍스트를 평이한 일본어로 알기 쉽게 번역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분야의 연구 발전을 가속화하고 제2, 제3의 작품을 계속 발표해 전문 연구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 학문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불러일으킨 저술이다. 

특히 《니야야와 바이세시카 사상(인도 6파철학 II)》은 전문 분야의 학자들까지도 전체에 걸친 업적 평가가 불가능한 뛰어난 작품으로, 문헌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한 비교사상 철학 연구에 국한하여 보면 광범위한 문제점을 야기하여 전체를 통괄 소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분야에 있어서 기초적인 주제 또는 필자의 주의 환기를 중심으로 주제를 집약해 언급하고자 한다.

니야야와 바이세시카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를 소개하며 바이세시카 철학과 비교사상 연구를 하고 있는 대목의 제목만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제25권 《니야야와 바이세시카 사상(인도 6파철학 II)》 가운데서 제5장 〈《니야야 수트라》 해명〉 제7장 〈보편과 특수〉 제9장 〈바이세시카 계통 고찰〉 제11장 〈《니야야 수트라》 번역〉 등이다. 

제3절에서는 인도 논리학과 서양 논리학을 비교하는 방법에 대한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언급하는 것이 제1장 〈인도 논리학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이며, 제4장 〈인도 논리학의 제반 문제〉이다. 이와 더불어 박사의 대저작인 《논리학의 구조》를 시작한 비교사상 연구 성과를 세계 각국에 유감없이 제시해 세계적으로 그 업적을 과시했음을 알 수 있다.

 

동방학원(東方學院)의 성과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1973년, 동경대학 교수를 정년 퇴임한 이후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千代田區) 소토간다(外神田)에 소재한 명승지 간다묘진(神田明神)에 인접한 메이코(明宏)빌딩을 거점으로 ‘동방학원’을 창립해, 오는 2023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당시 일본의 국립대학 월급은 대단히 약소해 자신의 연구를 위한 비용만으로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재단법인법에 따라서 동방연구회(東方究會)와 동방학원을 설립했다. 특히 동방학원은 진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인간 회복을 꾀하고자 시작한 학술단체이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동방학원과 그 배움의 터전에 수없이 많이 모이는 수강생을 수강생이라 부르지 않고 ‘연구회원’이라고 불러 학술단체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그가 전 생애에 걸쳐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전인격적 결정체’를 양성하고자 애썼다. 현재도 연구회원들이 인류사의 정신적 배움의 터전으로서 그 고마움을 감득하며 연구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 이 또한 하지메 박사가 남긴 큰 공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특히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동방학원 강사에 대해 오늘날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르바이트하는 단순 노동자’로서의 ‘시간강사’를 의미하지 않았다. 박사께서는 일본 고대로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국사(國師)’를 의미한다고 필자에게 직접 교시함으로써 필자는 그 의미의 명확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동방학원 설립 당초부터 숨을 거둔 1999년까지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 않는 일관되게 기라성 같은 강사진을 유지했던 것을 보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일관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동방학원의 운영에서 ‘영합주의(迎合主義)와 관권주의’를 엄격히 배격하여 오로지 독창적 연구에 주력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동방학원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풍부한 학문의 자유를 연마하는 배움의 터전이 되고 세계적인 학문의 전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카무라 박사가 특히 생애에 걸쳐 중히 여긴 것 중 하나가 ‘섹셔널리즘(sectionalism, 분파주의)’을 초월하는 것이다. 섹셔널리즘이란, 자신이 속해 있는 부문에 꽉 박혀 배타적이 되는 경향으로서 통속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내 편만을 인정하는 근성을 말한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교편을 잡고 있던 시대부터 현대까지 잔재하고 있는 아카데미즘의 세계에는 이 같은 섹셔널리즘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예컨대 서양철학, 중국철학, 인도철학, 윤리학, 종교학, 종교사학 등으로 점점 세분화가 촉진되고 있었다. 이 같은 풍조에 대해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분파주의 경향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학문적인 진리 추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박사는 특히 일본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끄리뜨어, 빨리어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학술을 연구하였다. 이같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 저술들은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연구의 파급효과도 함께 확산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저술만도 현재 30권이 넘는 것을 보아도 그 성과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섹셔널리즘의 초월’이라는 가르침은 현대적 시점에서도 극히 중요한 주제이다. 그럼에도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바, 참다운 진리의 추구를 위해서는 모든 영역을 뛰어넘고 통합하는 박사의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불교를 공부해야 영원한 진리(dharma)의 발견으로 인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사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공익재단법인 나카무라 하지메 동방연구소에 지원하는 연구자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했다. 즉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전임연구원을 모집하여 이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이런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과거에 학자들이 궁핍에 빠져 학문 연구를 제대로 못 하고 영양실조로 굶어 죽어간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아 왔던 박사의 기억이 있었다. 그런 현실을 고통스럽게 지켜본 박사는 가능한 한 응모자 모두를 받아들여 연구를 도와주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 각층 각계에서 추천이 있으면 주어진 인연에 따라서 어느 경우도 거부하지 않고 연구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여 훌륭한 학자를 양성하는 데 전념을 다 했다. 

지금 우리는 인류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COVID-19(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은 ‘서로가 이 어려운 난세를 공유’하자는 공통 의식이 있었다. 즉, ‘서로 협력해 이 난국을 벗어나자’라는 의식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용이한 해결책이 없이 계속되자 세계인들 서로가 이 상황에 대한 공유의식이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병의 근원에 관해서 ‘발생 원인은 누구누구의 무엇 때문’인지 밝히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다. 소위 악인을 찾아내는 사안으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이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했으므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북동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러한 곤란을 틈타 한 재산을 마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직을 당했지만 구원도 받지 못해 궁핍에 빠져버린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처럼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확대되어 점점 사회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나와 남을 구분하는 일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이 같은 시기야말로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의 예지인 ‘섹셔널리즘의 초월’이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해 ‘인류에 대한 자비와 관용에 대한 평화 정신’을 되살리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한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주창한 ‘인류에 대한 자비와 관용에 대한 평화 정신’은 그의 학문적 업적과 함께 현대 글로벌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학술적, 종교적 부문에서 염두해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다. 

특히 COVID-19의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는 우리 인류에게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철학을 기반으로 문헌학, 사상학, 비교사상론, 불교학을 심도 있게 집대성한 그의 인도철학 불교학이 정신적 · 심리적인 평안과 안온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삼가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가 ‘전인격적 결정체’ 양성을 위해 창설한 동방학원은 설립 취지의 고매한 정신과 함께 이 지구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학문의 터전으로 승화되리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이 글이 독자 여러분의 지혜를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 같은 좋은 인연을 맺게 해준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느 일본인 못지않게 한국인도 중히 여겼던 나카무라 박사께서도 기쁘게 생각할 것으로 상상하면서, 졸필을 맺는다. ■

 

석오진 Shakugoshin@hotmail.co.jp

서울 출생. 조계종 승려. 일본 동경 고마자와(駒澤)대학 대학원 인도학불교학 석사 및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동경대학 강사, 동경대학 동양문화연구소 협력 연구원 등 역임. 저술 및 번역서로 《파아나두라 대논쟁》 《붓다 안의 예수, 예수 안의 붓다》 《원전으로 읽는 원시불교의 세계》 《中村元》 《붓다가 남기고 싶었던 말》 등과 학술 논문 130여 편이 있음. 현재 나카무라 하지메 동방연구소 부총괄 연구원, 동양사상 문화연구소 부소장, 동경 동방학원 강사 등으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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