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불교는 효도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오해되곤 한다. 집을 떠나서 세속과 멀리하기 때문에 불효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부처님은 성인이며 자비를 가르치는데, 어찌 부모에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겠는가.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교적 효와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교 경전에는 많은 효도 관련 자료들이 보이는데, 이것들은 또한 고대 인도의 효와 연관되어 있다.이 자료들을 살펴보면 불교가 얼마나 효를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 불교의 효도 방법

1) 자식 된 도리와 의무

그레고리 쇼팽(Gregory Schopen)이란 학자는 기원전 2세기에서 4 ‧ 5 ‧ 6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인도의 아잔따(Ajantâ), 산치(Sâncî), 마투라(Mathurâ), 카로스티(Kharosthî) 등지와 스리랑카의 수많은 불교의 비문(碑文)에 보이는 제기(題記, 유적에 씌어 있는 글자)들을 조사했는데, 이 기록에는 자주 현재 부모 또는 망부모를 위해 석굴, 탑, 조각, 그림 등을 공양으로 바친다고 적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공양의 40% 이상이 승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출가한 승려들에게도 부모를 향한 공경과 강한 추도심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물적 증거이다. 

한편 불교의 초기경전에 해당하며 빨리어로 쓰인 장부(長部, Dîgha-nikâya), 《시갈로바다(Sigalvâda: 시갈로에 대한 가르침)》에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다섯 가지 의무를 나타내고 있다.

① 부모는 우리를 양육하고, 우리는 부모를 모신다. ② 그들을 위해 우리의 도리를 실천해야 한다. ③ 가계를 보존한다. ④ 재산을 승계한다. ⑤ 적절한 시기에 조상에게 공양한다.

또 부모가 자식에 대해 준수해야 할 의무도 빼놓지 않았다. 

① 베풀어준다 ② 친절한 말을 한다 ③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실천한다 ④ 각종 일에 대해서 친절하게 협조한다. 

서역 국가 중 하나인 안식국(安息國)의 태자로서 승려가 되어 중국에 온 안세고(安世高, 2세기)가 번역한 《시가라월육방예경(尸迦羅越六方禮經)》(일명 《六方禮經》)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자식의 의무를 서술한다.

① 부모 모시기를 생각하라. ② 일찍 일어나 노비에게 칙령을 내리고, 때에 맞추어 식사를 준비한다. ③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는다. ④ 부모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⑤ 부모가 병이 들면 의사를 구해서 치료해야 한다. 

이어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태도 또한 잊지 않았다. 

① 악을 버리고 선으로 가게 하도록 생각해야 한다. ② 책들을 다 가르쳐야 한다. ③ 경을 수지하고 계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④ 일찍 부인을 맞도록 해야 한다. ⑤ 집안 소유물들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식은 여하히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4세기 말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구운승가제바(瞿雲僧伽提婆, Gautama Sam-ghadeva) 역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과 안세고(安世高) 역 《부모은난보경(父母恩難報經)》은 그 지난함을 신화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이르기를:

이때 세존이 모든 승려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선에 대하여 보답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누구인가. 부모이니라. 만약 어떤 승려가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왼쪽 어깨에 태운 채 천만세가 지나도록 식사와 침구 그리고 병났을 때 약을 드린다 하자. 게다가 어깨 위에 대소변을 보게 한다고 하여도 은혜를 갚을 수 없느니라. 승려여 마땅히 알라. 부모의 은혜는 지중하여서 안고 기르며 수시로 보호하고 시절을 놓치지 않고 일월을 보게 한다. 이러한 일 때문에 은혜 갚기가 어려우니라. 그러므로 모든 승려는 마땅히 때를 놓치지 말고 부모를 공양하고 항상 효순하여야 한다.

다음은 《부모은난보경》의 일부분이다.

이때 세존이 모든 승려들에게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에게 큰 이익을 준다. 젖 먹여 자라게 하고 언제나 돌보아서 사대(四大: 地水火風으로, 곧 이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물질)가 이루어지게 한다. 오른쪽 어깨에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원망하는 마음 없이 천 년 동안 등에 대소변을 보게 하여도 이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기에는 부족하다.

《부모은난보경》은 이어서 부모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인 그들의 종교적 귀의에 대하여 설명한다.

만약 부모가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주어 평온하게 하고, 계를 받지 않았으면 계를 주어 평온하게 하고, 가르침을 듣지 않았으면 가르침을 주어 평온하게 하고, 탐욕스러우면 보시하게 하고, 가르침을 즐길 것을 권하여 평온하게 하라. (……) 이와 같이 그대들은 부모로 하여금 자비를 행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든 승려들에게 있어서 자식은 두 종류가 있다. 낳은 자식과 기른 자식을 일러서 비구에게 있어서 자식은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승려는 낳은 자식의 (도리를) 배워서 입으로 법의 맛을 내어야 한다. 이처럼 모든 비구는 배워야 한다.

2) 부모의 은혜

무명씨 역 《효자경(孝子經)》의 내용도 위에 인용한 《증일아함경》 《부모은난보경》과 근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처가 모든 사문에게 물으셨다. 부모님이 자식을 배어 열 달을 임신하여 몸이 크게 병든다. 출산 일에 어머니는 위태롭고 아버지는 두려워하시는데, 그 정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낳은 후, 마른자리는 자식에게 주고 당신은 진자리에 눕는다. 정성이 지극하여 피가 우유 되고 어루만지고 목욕시킨다. 의식(衣食)을 마련해 주고 가르치며 스승과 친구에게 예를 갖추고 임금과 웃어른에게 공양을 받친다. 자식의 얼굴이 기뻐하면 부모 또한 그러하며, 자식이 슬퍼하고 두려워하면 부모 마음 또한 초조하다. 자식이 밖에 나갔을 때 염려하고 들어왔을 때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가 선하지 않으면 슬프고 두려워한다. 부모의 은혜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는가.

한편 필자는 인도의 고대 문헌 가운데서 효에 할애된 장문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산스끄리뜨본 《마이뜨라깐야까Maitra-kanyaka》와 빨리본 《밋따빈다까Mittavindaka》라는 인도의 대표적인 두 언어로 된 본생담(本生談, 부처님 전생 이야기)이 그것이다. 

두 텍스트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야기는 ‘본생(本生)’이라는 장르에 속하면서도 그 서두와 말미에 경전의 형식을 빌려 부처가 직접 부모의 은혜와 효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편의상 이것을 서두, 본생, 말미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먼저 서두는 다음과 같다. 

세존(Bhagavat)이 승려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승려여, 브라흐마(Brahma: 우주를 창조한 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 · 숭배되며 완전한 만족을 주는 공양을 받는 그러한 가족과 함께한다. 왜 그러한가? 법에 의하면 가정의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진정한 브라흐마와 같기 때문이다.

스승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 · 숭배되며 완전한 만족을 주는 공양을 받는 그러한 가족과 함께한다. 왜 그러한가? 법에 의하면 가정의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진정한 스승과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 · 숭배되며 완전한 만족을 주는 공양을 받는 그러한 가족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왜 그러한가? 법에 의하면 가정의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물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불의 신(아그니Agni)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 · 숭배되며 완전한 만족을 주는 공양을 받는 그러한 가족과 함께한다. 왜 그러한가? 법에 의하면 가정의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진정한 불의 신이 되기 때문이다. 

신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 · 숭배되며 완전한 만족을 주는 공양을 받는 그러한 가족과 함께한다. 왜 그러한가? 법에 의하면 가정의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진정한 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존은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한 후 스승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브라흐마라네,
그들은 또한 첫 번째 스승이네;
그들은 제물을 받을 만한 존재들이네,
그들은 또한 그(자식)에 있어서 진정한 신이라네.

지혜로운 자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네.
향수 · 목욕물 · 洗足할 물을 바침으로써.
혹은 그들에게 음식, 음료, 
의복, 우유, 침대와 좌석을 제공함으로써.

이렇게 돌보아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혜로운 자는 
이 세상의 비난이 없이,
죽은 후 천국(스바르가, Svarga)에서 행복하다네.

세존이 이 경전을 설하자, 승려들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의 의심이 생김을 알고 모든 의심들을 풀어주는 부처님께 물었다. “오! 존자이시여, 세존께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순종을 그토록 찬양하심은 훌륭한 일입니다.”

 

부모라는 존재를 신들과 동일시하는 생각은 불교 이전 고대 인도로부터 있어 왔다. 즉 《우빠니샤드》에 이르기를 “어머니를 여신처럼 존경하라. 아버지를 신처럼 존경하라”고 되어 있다. 불교는 이러한 개념을 나눠 가진 것으로 예를 들어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âya)(增支部)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브라흐마와 스승들처럼 존중된다”한 것을 읽을 수 있다.

《마이뜨라깐야까》에서 위의 인용문을 이어 부처님 전생 이야기가 나온다. 즉 부처 자신이 과거 전생에 마이뜨라깐야까라는 인물이었을 때 겪었던 본생담을 제자들에게 들려준다. 내용이 상당히 길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왕사성에 한 거상(巨商)이 결혼하여 마이뜨라깐야까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장성할 때쯤 장사하러 나갔다가 바다에서 죽게 되었다. 효자인 자식은 어느 날 아버지의 직업을 이으려고 바다로 나가려다가 극구 만류하는 어머니의 머리를 발로 차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는 파손되고 널빤지에 의지해 어느 황폐한 육지에 도달해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어느 날 쇠로 만들어진 도시에 들어갔다가 그만 머리에 불타는 쇠바퀴를 쓰게 되었다. 마이뜨라깐야까는 큰 통증을 느꼈지만 모든 중생을 위해 바퀴를 쓰고 있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서원을 다 말하자 바퀴는 사라지고 그는 죽어서 불교 천국 중의 하나인 도솔천(兜率天)에 다시 태어났다. 

본생담은 부처님 전생 이야기이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의 선행을 중심으로 짜였는데, 이 경우에는 효자인 마이뜨라깐야까가 아버지의 직업을 계승하려는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단 한 번 어머니를 구타한 죄로 큰 대가를 치른다. 이는 부처 전생의 선행을 중심으로 짜인 일반 본생담의 플롯과 비교하여 다소 특이한 것이다. 이것은 효와 불효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주인공이 수난을 겪고 다시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설정한 것이다. 

본생담에 이어 부처는 텍스트 말미에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부기(附記)한다.

따라서 승려들이여, 다음과 같이 알라.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모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저속한 마이뜨라깐야까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고 신의 아들이 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복리를 취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식으로 하여금 마시고 먹게 하고 젖을 주며 잠부드비파(Jambudvîpa: 인도)의 풍요함을 알게 한다. 만약 어떤 자식이 어머니를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다른 쪽에 100년 동안 올려놓는다고 하자. 또는 그들로 하여금 남쪽 지방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을 갖게 한다거나 진주, 청금석, 금 소라, 돈, 에메랄드, 산호 등이 넘치도록 하는 등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혜택과 안위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다 드린다 하여도, 신용이 없는 부모를 믿음으로 인도하고, 종교를 갖도록 안내하고, 믿음이 굳게 하고, 도덕이 없고 탐욕스럽거나 또는 지식이 결핍된 부모를 도덕 · 자유 · 관용 · 지식의 완성으로 인도하는 것만 못하다. 그렇다. 그러한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가장 큰 혜택과 안위를 주는 자이다. 

이렇게 세존이 말하자, 승려들은 기뻐하면서 세존의 설법을 찬양하였다.

이처럼 《마이뜨라깐야까》에는 부모라는 가족의 구성원을 브라흐마, 신들, 스승 등 신성한 존재에 비유하고, 자식들에 대한 은혜와 그 은혜를 갚는 방법 등이 일목요연하게 짜여 있다. 필자에게는 서술에서 이 인도본이 중국 당나라 때 불교의 효를 선전하기 위하여 허구로 만든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비하여 더 격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부모은중경》에는 일상생활에 보이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비근한 비유와 통속적인 언어에 의해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다. 

한편 반야(般若, Prâjna, 744~810경)라는 승려가 번역한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이라는 불교 경전에는 부모의 은혜를 10개 항목으로 세분화하였다. 즉 이 경은 〈보은품(報恩品)〉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큰 은덕을 가리켜 1. 부모은(父母恩), 2. 중생은(衆生恩), 3. 국왕은(國王恩), 4. 삼보은(三寶恩)이라 전제하고, 어머니란 존재에게는 다음과 같은 십덕(十德)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 대지(大地)라 한다. (자식이) 모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능생(能生)이라 한다. 모든 고통을 체험하고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능정(能正)이라 한다. 항상 모친의 손으로 오근(五根: 눈 · 귀 · 코 · 혀 · 몸)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넷째 양육(養育)이라 한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잘 기르기 때문이다. 다섯째 지자(智者)라 한다. 능히 방편(方便: 수단)으로써 지혜가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장엄(莊嚴)이라 한다. 아름다운 구슬로 장엄하게 꾸며 주기 때문이다. 일곱째 안은(安隱)이라 한다. 어머니 가슴으로 안아서 쉬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덟째 교수(敎授)라 한다. 선하고 교묘한 방편으로 자식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교계(敎誡)라 한다. 좋은 말로 모든 악을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열째 여업(與業)이라 한다. 능히 자식으로 하여금 가업(家業)을 잇게 하기 때문이다.

당나라 불교에서는 이 십덕을 모방해 ‘십은(十恩)’을 만들고, 상게한 《부모은중경》의 핵심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로 지어 널리 구송(口誦)될 수 있게 하였다.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십은은 1) 임신하여 수호하는 은혜(懷胎守護恩) 2) 출산에 임하여 고통을 받는 은혜(臨産受苦恩) 3) 자식을 낳으면 근심을 잊는 은혜(生子忘憂恩) 4)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는 은혜(咽苦吐甘恩) 5) 젖 먹이고 양육하는 은혜(乳飽養育恩) 6) 진자리는 피하고 마른자리로 가는 은혜(廻乾就濕恩) 7) 더러운 것을 세탁하는 은혜(洗濯不淨恩) 8)악업을 짓는 은혜(造作惡業恩) 9) 멀리 떠나 있는 자식을 생각하는 은혜(遠行憶念恩) 10) 영원히 사랑하는 은혜(究竟憐憫恩) 등이다.

 

2. 불교의 효행담

1) 부처님의 효행담 

지금까지의 글은 불교 경전에 보이는 효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제는 부처와 그 제자들이 행한 효도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자. 석가족의 세자였던 싯다르타는 출가 6년의 고행을 하고, 마침내 깨달아 부처가 된 후에는 아버지 정반(Sddhodana)왕을 찾아뵙고 정법(正法)을 설함으로써 그를 불도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것은 축법호(竺法護, ?~310 이후) 역 《보요경(普曜經)》 저거경성(沮渠京聲, 5세기) 역, 《정반왕반야열반경(淨飯王般涅槃經)》 디바까라(Divâkara, 613~688) 역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등에 나온다.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Mâyâ)부인에 관한 효행담은 담요(曇曜, 5세기) 역 《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일명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에 실려 있다. 생후 7일 만에 사별한 모친 마야부인에게 최상승의 진리를 설할 목적으로, 석가는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도리천(Trâyastrimsa: 천국의 종류 중 하나)으로 상승한다. 천국에서 어머니에게 불교의 진리를 가르쳐 준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곧 열반에 들게 되었다. 도리천에서 아들의 부음을 들은 마야부인은 하늘로부터 천녀(天女)들을 인솔하고 아들(즉 석가)의 장례장으로 내려와 통곡한다. 그러자 석가는 관에서 나와서 “삶과 죽음이 모두 사라진 ‘적멸’의 상태가 곧 최상의 즐거움(生滅旣滅已, 寂滅爲最樂)”이라는 게송을 지어서 어머니에게 들려주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후 다시 관으로 들어간다. 

한편 석가 생후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바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석가는 이모인 대애도(大愛道, Mahâprajâpatî)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백법조(白法祖, 3세기~4세기) 역 《대애도반니원경(大愛道般泥洹經)》 혜간(慧簡, 5세기) 역 《불모반니원경(佛母般泥洹經)》 고타마 삼가드바(Gautama Samghadeva, 4세기) 역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의 〈대애도열반품(大愛道涅槃品)〉 등에는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석가가 직접 장례식에 참석, 손수 관을 들려고 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또한 부처님 효행 중 하나로 자주 인용된다. 

2) 섬자와 목련의 효행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만을 싣고 있는 본생담에는 500여 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에는 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여러 개 있다. 또한 부처님 제자들의 효도 이야기도 경전에 실린 게 적지 않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동아시아에 전해져서 중국 · 한국 · 일본의 윤리 · 문학 ·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바로 부처님 전생 고사인 섬자(剡子, Syama)와 부처님 제자 목련(目連, Maudgalyâyana)의 효행이다.

먼저, 섬자 고사는 인도의 샤마가 눈먼 부모에게 사슴 젖을 가져다주면서 생기는 이야기들인데 후에 샤마는 섬자라는 중국인으로 ‘국적’이 변하여 ‘이십사효(二十四孝)’의 하나가 된다. 오늘날 알려진 《이십사효》라는 단행본은 송 대부터 전해진 것이다. 섬자 이야기는 삼국시대(三國時代, 220~265) 강승회(康僧會)가 번역한 《육도집경(六度集經)》 성견(聖堅, 4세기)이 번역한 《불설섬자경(佛說睒子經)》 그리고 무명의 승려가 번역한 《불설보살섬자경(佛說菩薩睒子經)》 등에 나온다. 그것들을 모아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자식이 없는 맹인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수도를 하기 위해 입산하기로 결심하였다. 도중에서 보살을 만났는데, 보살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식이 되려고 부인의 배로 들어갔다. 아내는 임신하여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10개월 후 아들이 태어나 ‘샤마’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성장하여 효성을 다하고 십계(十戒: 열 가지 계율)를 지키며 살았다. 그런데 부모는 수도의 정신을 잊어버렸으므로, 샤마는 그들에게 옛일을 환기시켰다. 샤마의 말을 듣고 그들은 산에서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은자 생활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샤마는 전과 같이 부모를 잘 모셨다. 샘물을 길으러 갈 때마다 그는 이 장소에서 노니는 사슴들이 놀라지 않도록 사슴 가죽을 어깨 위로 덮었다. 그런데 하루는 가이(迦夷, Kâsi)국의 왕이 사냥을 나와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샤마를 화살로 쏘아 맞혔다. 샤마는 그가 죽으면 부모가 더 살 수 없다고 외쳤다. 사람 소리를 듣고 놀란 왕이 다가와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의 효심에 매우 감동한 왕은 샤마가 죽으면 그의 부모에 대한 봉양을 자신이 책임질 것을 약속하였다. 효자는 부모가 있는 집을 가르쳐 준 후 숨을 거두니 이때 폭풍우가 치고 새들의 애절한 울음과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왕에게서 이 비극을 전해 들은 부모는 낮과 밤을 쉼 없이 아들의 상처 난 부위를 입으로 빨면서 화살 독이 빠져 재생하기를 기도했다.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한 제석천(帝釋天, Indra: 불교의 신)은 신들을 거느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다. 그리하여 샤마는 환생하게 되었다.

이상이 섬자 이야기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불교의 효행담은 무엇보다도 부처님 제자 중 한 명인 목련일 것이다. 목련의 효행은 축법호(竺法護, Dharmaraksa, 265~313경)가 번역한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전해진다. 그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출가해서 득도한 목련이 도안(道眼: 도의 눈)으로 세간을 살펴서 아귀 중에 태어난 그의 망모(亡母: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았는데, (어머니는) 음식을 보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하였다. 목련은 슬퍼서 바리에 밥을 담아 그의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밥을 얻자 곧 왼손으로 (다른 아귀들이 빼앗을까 봐) 바리를 막고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낚아챘으나,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숯으로 변하였다. 목련은 절규하고 슬피 울며 달려 돌아와 부처님께 이와 같음을 모두 설명하니 부처님이 우란분재라는 제사를 지냄으로써 어머니를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이에 목련이 7월 15일 우란분재를 거행함으로써 어머니는 마침내 지옥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7월 15일은 동아시아에서 불교가 널리 유포됨에 따라 누구나 절에 가서 죽은 부모와 조상을 위해 우란분재를 지내는 기념일이 되었다. 유교에서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처럼, 우란분재는 불교의 방식으로 효도를 실천하는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한 · 중 · 일 삼국은 각각의 전통과 결합시켜 개성 있는 다양한 의례를 창출하였다. 

특히 일본에서는 우란분재를 오봉(お盆)이라고 부르는데 기록상 606년부터 오봉에 관한 자료가 보이고, 8세기 무렵에 궁중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헤이안 시대의 말기에는 귀족사회뿐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도 보급되어 있었다. 현재에도 오봉은 설날과 함께 일본의 2대 명절로서 성대하게 일본인들 사이에서 치러진다. 고대에는 음력 7월 15일로 오봉이 고정되었지만, 일본 정부가 양력을 채택함에 따라 양력 7월 15일에 오봉을 하는 지역과 양력 8월 15일을 오봉으로 하는 지역이 생겨났다. 일본의 오봉은 한 · 중 · 일 삼국 중 가장 그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고 일본 전역에 걸쳐 대중적인 연중행사이다. 중국에서는 이전 공산당 정권하에서 종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우란분재 역시 자유롭게 지낼 수 없어서 위축되었다가 개혁개방 이후 전통 복원의 차원에서 다시 부활되었다. 우리나라는 매우 쇠퇴하여 일반인들은 7월 15일이 우란분절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오랜 역사 동안 한국인의 효도 정신에 큰 영향을 주었던 유구한 전통 중 하나가 빛을 바래 희미하게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3.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불교 경전에 보이는 효도 관련 이론, 고사, 의례 등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먼저 불교를 가리켜 효가 없다거나, 효가 부족하다거나, 혹은 불효의 종교라거나 하는 것 등은 불교의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오해의 소치임을 발견했다. 불교에도 풍부한 효도 정신이 있으며, 그것이 다양한 형태로 문헌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불교에서는 신화적으로 표현한 곳이 많은데, 이는 인도라는 나라가 본디 사실보다는 신화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즉 역사보다 신화를 중시하는 인도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실제를 표현할 때는 거기에 초자연적 상상력을 더하여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불교에서 주장하는 효는 유교의 효와 비교했을 때 수평적이다. 유교의 상의하달식이고,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의 은혜를 가르칠 때는 동시에 부모의 의무도 가르친다. 또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은 봉양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용이 없는 부모는 믿음으로 인도하고, 종교를 갖도록 안내하고, 믿음이 굳게 하고, 도덕이 없고 탐욕스럽거나 또는 지식이 결핍된 부모를 도덕 · 자유 · 관용 · 지식의 완성으로 인도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며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그런 자식이 바로 아버지‧어머니에게 가장 큰 혜택과 안위를 주는 자이다. 그런 것을 대효(大孝)라고 부른다. 

셋째, 불교의 효도 고사 중 섬자와 목련은 유가적인 중국의 효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섬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효자 고사 모음집인 《이십사효》 중 하나가 되었으며, 목련의 영향력은 어떤 중국의 전통적인 효자보다 더 커서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다. 그리고 목련 고사에서 비롯된 우란분재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조상에 대한 제례의식이 되었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오늘날 새해 설날과 더불어 가장 크고 중요한 전통 명절로 자리 잡아 사회 도처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 

 

장춘석 jcs9563@hanmail.net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전남대 박물관장 역임. 주요 저서로 《목련설화 신론》 《중국 인문학 읽기의 즐거움-중국의 문학 · 역사 · 철학 · 언어 · 예술에 관한 융합적 연구》 등이 있다. 현재 전남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이며, 인문학 공동체 ‘인문지행’의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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