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불교의 역사와 현황

1. 영국과 불교의 만남

영국은 식민지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만나게 된다.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서구의 스리랑카 식민화가 시작되었고, 160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가 스리랑카 남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1796년부터 영국이 스리랑카를 전역을 장악하면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1815년 캔디협정을 통해 스리랑카를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당시 식민지 스리랑카의 관료들은 스리랑카불교를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종교로 여겼고, 개신교 전파를 통해 스리랑카를 기독교화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했다. 이는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에 비해 식민지의 문화와 종교를 열등하다고 인식,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도구로 보았다. 

1800년대 빅토리아시대 일반적인 영국인들은 불교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들은 불교를 자신들의 식민지에 있는 낭만적인 모험의 대상으로 보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불교에 대한 문헌들을 접하면서 불교의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에 감화되었고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경이로운 분석과 철저한 수행에 놀라게 되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붓다를 신화적이고 초인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았다. 초기 스리랑카 불교 문헌이 소개되면서 붓다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면모에 매료된 사람들은 붓다를 빅토리아시대의 완벽한 신사로 생각했다. 물론 사회 전반을 짓누르는 기독교적인 분위기 때문에 식민지의 불교를 기독교적인 ‘원죄’에 대한 관념이 결여된 원시적인 종교로 보기도 했고, 신격화된 붓다를 다양한 전설과 함께 숭배하는 식민지의 불교를 인간적인 붓다에 기초한 초기 경전에 나타나는 불교에 비해 열등한 종교로도 보았다. 이들은 붓다의 일생에서 신성과 초월성을 배제하여 그를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초월적인 신성에 기초한 기독교 아래 불교를 위치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에 의해서 인간으로서 붓다의 모습은 점차 강조되고, 초월적인 신으로서 붓다의 모습은 점차 이질적인 것 또는 불교가 아닌 것으로 취급되게 되었다. 따라서 초기불교 문헌에 나타나는 불교만이 진정한 불교이고 그 이후의 불교는 타락한(corrupt) 것으로 평가했으며, 식민지의 불교인들에게 당신들의 과거는 뛰어났지만 당신들의 현재는 타락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했다. 즉, 당시 살아 있는 전통으로서 불교는 평가절하되었고 불교 전통은 수동적인 개혁의 대상으로 매도되었다.

2. 리즈 데이비스와 빨리경전협회

빅토리아시대 영국인들의 이러한 불교관 형성에 가장 큰 공헌 사람은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 였다. 그는 웨일스 출신의 회중교회 목사 출신 아버지와, 런던 하급 법무관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법률을 공부하다가 독일에 유학하여 가정교사를 하면서 산스끄리뜨어를 공부했고 1863년 세일론 파견공무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스리랑카로 파견되어 총독 비서 등 다양한 직책을 거치다가 골(Galla)의 지방순회판사로 가서 불교를 만나게 되었다. 

리즈 데이비스는 불교 교단 내부의 분쟁과 관련된 법률사건을 계기로 불교와 접하게 되고, 싱할라 문자(Sinhalese scripts)로 기록된 빨리어(Pali) 율장을 통해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스리랑카 고대왕국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 고고학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고대 스리랑카 비문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영국의 동양학계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결국 세일론 파견공무원에서 해임되었고, 런던으로 돌아와 법률을 공부하여 고등법무관이 되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점차 조지 터너(George Turnour)와 로버트 실더스(Rovert C. Childers)와 같은 세일론 파견공무원 출신 인도학 불교학자의 계보를 잇게 되었고, 왕립아시아학회 총무와 런던대학 UCL의 빨리어 및 불교문헌학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스리랑카 남방불교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1882년 그가 설립한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는 대부분의 빨리 경전들을 로마자로 교정 출판했고 이들 대부분을 영어로 번역되면서 서구에 남방불교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리즈 데이비스는 기독교전도협회(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의 의뢰를 받아 만든 저서인 《불교(Buddhism)》에서 빨리 경전에 의거하여 붓다를 합리적인 인간으로 묘사했고, 초기불교를 신화와 의식이 결여된 냉철한 종교로 보았다. 그는 대승불교와 티베트불교의 예식과 의례에 반감을 보였고 빨리 경전에 나타나는 불교만을 진짜 불교로 보면서 당시 살아 있는 전통으로서 남방불교의 가치를 격하했다.

 

3. 영국불교협회

따라서 1900년대 초반까지 영국에서 불교는 신행과 수행의 대상이기보다는 흥미로운 호기심의 대상이자 일종의 교양으로서 받아들여졌다. 1907년 영국 아일랜드 불교협회(Buddhist Society of Great Britain and Ireland)가 리즈 데이비스를 회장으로 만들어졌으며, 약 15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매주 강의와 토론과 강독이 이어졌다. 1908년 영국인으로 미얀마에서 최초로 남방 테라와다(Theravāda)불교의 수계를 받은 알란 버넷(Allan Bennett)이 아난다 메테야(Ananda Metteyya)란 법명으로 영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강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음식과 수면 등 다양한 제약에 실망하여 6개월 만에 미얀마로 돌아가 버렸다.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영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남방불교에 국한되었으며, 불교를 계율의 실천과 수행을 하는 하나의 종교로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종의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생각해, 불교의 윤리적이고 지적인 측면에 대한 탐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사정은 1924년 크리스마스 험프리스(Christmas Humphr-eys)가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를 만들면서 변화하게 된다. 그는 불교를 학문적인 활동이 아니라 수행과 신행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로 받아들였다. 학회 회원들에게 5계를 수지하고 정기적으로 불교 경전을 낭송하도록 했으며 불교적인 장례의식을 권장했다. 1925년 스리랑카불교를 중흥시키고 마하보디협회(Maha Bodhi Society)를 창립한 아나가리까 다르마빨라(Anagarika Dharmapala)가 런던을 방문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영국 최초의 불교사원인 런던불교사원(London Buddhist Vihara)을 건립하였다. 

협회는 이 시기에 영국을 방문한 스즈키 다이세츠(Suzuki Daise-tz)를 초청하기도 하면서 수행의 중요성을 알렸으며, 몇 주간의 경전 읽기보다 선승과의 대화 1시간이 더욱 중요했다고 험프리스는 소회했다. 험프리스는 자신의 신지학회를 불교협회(Buddhist Society)로 발전시키며 영국에 불교를 종교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영국에서 불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까지 이 불교협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무신론이고 개인숭배 사상이란 비난 속에서도 영국불교는 발전을 거듭했고 수천 명 이상의 영국인들이 불교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불교협회는 의욕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52년부터 정기적으로 여름학교를 열어서 에드워드 콘제(Edward Conze), 아이비 오너(I.B. Horner), 스즈키 다이세츠(Suzuki Daise-tz) 등을 초청하여 강의를 진행했다. 이 시기 영국불교협회는 특정한 지역이나 종파에 편향되지 않은 범불교적 모습을 보였다. 불교협회는 지역과 종파를 초월한 자신들의 모습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고 스스로를 유럽불교의 중심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마스 험프리스는 이 시기에 서구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불교(Buddhism)》를 펭귄 문고판으로 출판했는데, 단 4년 만에 11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1967년까지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불교협회는 협회 출신으로 태국에서 비구계를 받은 윌리엄 퓨퍼스트(William Purfurst)가 까삘라왓도(Kapilavaddho)라는 법명으로 1955년 영국에 돌아온 것을 크게 환영했다. 불교협회는 그의 귀환을 영국불교에 새로운 장이 열린 것으로 축하했지만 불행히도 까삘라왓도는 건강상의 문제로 1957년 환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훗날 영국에 남방불교 테라와다 승단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그리고 1966년 태국 왕가의 후원으로 붓다빠디빠(Buddhapadipa) 사원이 영국 런던에 건립되었다. 

 

4. 영국불교의 발전

영국불교는 1960년대에 영국 사회의 종교다원주의적 경향과 함께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아시아의 불교권 국가에서 밀려들어 오는 이주민들의 영향과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회의 및 새로운 종교에 대한 열망이 1960년대 영국 사회를 휩쓸었다. 영국 불교협회는 다양한 불교 전통에 대해 열린 태도를 고수하면서 남방 테라와다불교를 중심으로 스리랑카와 태국 이주민들의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그리고 1962년 햄스테드 불교사원(Hampstead Buddhist Vihara)이 영국 출신의 출가 승려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1964년 영국인으로서 인도에서 출가한 상가락시따(Sangharakshita)가 지도법사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전기가 만들어졌다. 

상가락시따는 테라와다불교에서 수계를 받았지만, 전통적인 남방불교의 승려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상가락시따를 두고 불교협회는 기존의 남방불교 전통을 고수하는 쪽과 새로운 불교를 원하는 쪽으로 갈라졌으며 결국 불교협회에서 추방되게 된다. 상가락시따는 1967년 테라와다와 티베트불교를 혼합한 웨스턴부디스트 교단(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FWBO)을 설립하고 그를 따르는 회원들에게 직접 계를 주었다. 웨스턴부디스트 교단은 독신주의를 포기하고 승가와 재가의 중간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스리랑카와 태국의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남방불교 교단과 신도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험프리스의 불교협회는 1967년 기준으로 영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22개 불교 모임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불교협회는 점차 보수화되었다. 1967년 유럽과 미국을 휩쓴 반전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강의와 도서관을 중심으로 협회를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학생운동에서 좌절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불교협회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들은 직접 아시아의 각 지역으로 나가 살아 있는 불교를 접하고 수행했다. 이들은 점차 종파적인 색채를 띠었으며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활동에 빠져들었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으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람살라로 탈출하자 그를 따르는 티베트불교 승려들이 영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달라이 라마는 1961년부터 불교협회의 후원인이 되었고 1967년에는 유럽 최초의 티베트불교 사원인 삼예링(Samye Ling)이 스코틀랜드 남부 덤프리스(Dumfries)에 설립되었다. 설립자인 아콩 린포체(Akong Rinposhe)는 까르마 까규빠(Karma Kagyu)의 전통을 따르는 티베트불교를 표방했는데, 티베트불교의 가르침과 계행 그리고 명상과 이타행은 영국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편 일본에서 교육받고 수행한 영국 여성 로시 케넷(Roshi Ken-nett)이 좌선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선불교 전통을 따르는 스로셀 홀(Throssel Hole) 사원을 설립했다. 그녀는 일본의 소토선(Soto Zen) 전통을 영국에 소개했고, 일본식 좌선수행이 자비행과 불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알려지면서 동아시아불교가 최초로 선보였다.

또한 태국의 사마타 명상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빨리어 합송 및 문헌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사마타협회(Samatha Trust)가 1973년에 설립되었다. 이 협회의 회원들은 명상과 연구를 병행했으며 영국 중부지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마타협회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학자로 랑스 커진스(Lance S. Cousins)가 있는데, 그는 맨체스터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쳤고 은퇴 후 옥스퍼드에서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갔으며 빨리경전협회 회장을 역임한 학자이자 명상가였다. 

그리고 일본 일련종 계열의 창가학회(Soka Gakkai)가 1975년 설립되어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염불 중심의 불교를 영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약 200명 정도의 소수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남묘호렌게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염불이 좌선보다 쉽게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영국 창가학회는 리처드 커스톤(Richard Causton)의 지도하에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남방불교 전통 또한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태어나 태국에서 수계를 한 아잔 수메도(Ajahan Sumedho)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1978년경 햄스테드 사원에 자리 잡으면서 웨스턴 테라와다(Western Thera-vada)를 표방했다. 이들은 신도들의 도움으로 런던 남부 서섹스의 광대한 부지에 치서스트(Chithurst) 사원을 건립했다. 이들은 남방불교의 전통적인 수행과 계행을 중심으로 하는 숲속수행전통(Forest Sangha tradition)을 영국에 확립하고,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를 병행하며 사띠(sati) 명상과 보시행을 강조했다. 

영국불교는 1980년대에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게 된다. 기존의 불교협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가운데 웨스턴부디스트 교단과 창가학회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그리고 티베트불교의 4대 종파가 모두 영국 내에 둥지를 틀었다. 까르마 까규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티베트불교의 종파로 성장했는데, 까르마 까규 계열의 캄 티베탄 하우스(Kham Tibetan House)가 1973년에 개원하고 서양인으로서 거의 처음으로 티베트불교를 가르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데이비드 스톳(David Stott)의 까규링(Kagyu Ling)이 1975년 맨체스터에 개원했다. 그리고 1988년 거대한 티베트불교 사원인 까규 삼예링(Kagyu Samye Ling)이 만들어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한편 1976년 컴브리아(Cumbria)에서 만주스리연구소(Manjushri Institute)가 갤룩빠의 가르침을 내세우며 개원했다. 하지만 이곳은 1977년 게쉐 켈상 갸초(Geshe Kelsang Gyatso)가 지도법사로 오면서 수많은 분란에 휩싸이게 된다. 게쉐 켈상은 1990년 뉴까담빠(New Kadampa)란 종파를 만들고 갤룩빠에서 독립했다. 주로 영국인들을 위주로 한 뉴까담빠는 사실상 티베트불교를 표방하면서도 전통적으로 티베트불교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수많은 이단 논쟁을 일으켰다. 특히 게쉐 켈상을 유일한 정신적인 지도자로 받아들이면서 달라이 라마 중심의 갤룩빠와 대립하며 영국에서 달라이 라마 반대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편 태국과 스리랑카계 이민들과 테라와다불교를 선호하는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숲속수행전통이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1984년 하트포드셔에 아마라와띠(Amaravati)란 이름의 거대한 사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위빠사나 명상이 대중화되면서 소규모의 명상센터들이 영국 전역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이 되면서 영국에는 16개의 남방불교 사원들이 건설되었고 영국인들과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이주민들이 남방불교의 승원 전통을 굳건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일본 임제선 계열의 런던 선센터가 1984년 쇼보안(Shobo-an) 사원으로 발전했다. 물론 영국에서 선불교의 주류는 여전히 소토선이었지만 점차 양자 모두가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을 대변하는 것으로 영국 사회에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이후 가장 급속하게 발전한 종단은 염불을 중심으로 하는 창가학회로서 6,000명 이상의 영국인 회원들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했다. 

2001년 통계에 의하면 영국 내 불교 인구는 152,000명 정도이다. 이 중에서 약 6만 명이 영국계 백인들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아시아 이민자들로 나타나고 있다. 남방불교, 티베트불교, 일본계 동아시아불교, 웨스턴부디스터 교단의 4개 불교를 대표로 다양한 종파들이 각기 발전하고 있다. 

남방불교 전통이 태국 스리랑카계 이주민들과 승려들의 후원 속에 아마라와띠 등과 같은 대사원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면, 티베트불교는 사실상 이단시되고 있는 뉴까담빠가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계 동아시아불교의 경우 소토선과 창가학회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웨스턴부디스터 교단 또한 상가락시따의 퇴진과 함께 뜨리라뜨나(Triratna) 불교협회를 설립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5. 영국 사회와 불교

그렇다면 불교는 영국 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을까? 영국에서 불교는 달라이라마, 보살행, 자비심, 불살생, 채식주의, 평화, 관용 등의 이미지로 일반인들에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불교를 하나의 종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류사회에서 전문적이고 긍정적이며 정신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로서 일종의 고급스러운 교양과 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체 인구에서 불교도의 비율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낮고 이마저도 수많은 종파로 나뉘고 아시아 이주민과 영국인들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영국 사회에서 불교는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종교가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불교가 영국에 와서 점차 지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가학회의 경우 많은 영국인들의 호응으로 일본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영국 창가학회에서 자체적으로 길러낸 인재들을 옥스퍼드대학과 아시아 · 아프리카학 대학(SOAS)에서 교육시켜 교리적으로도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 가고 있다. 

웨스턴부디스터 교단은 뜨리라뜨나 불교협회로 발전하면서 남방불교의 색채를 지우고 티베트불교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재가 불교단체로서 기존의 교단으로부터 독립된 자체적인 수계의식을 진행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뜨리라뜨나 출신의 많은 인재들이 옥스퍼드대학과 킹스칼리지 등에서 연구하고 있는데, 이들이 복귀하면 뜨리라뜨나는 교리적으로 수행적으로 그리고 수계 전통에 있어서도 기존의 아시아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티베트불교의 경우 게쉐 켈상 갸초의 뉴까담빠가 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뉴까담빠는 점차 티베트불교의 전통적인 4대 종파와 분리되는 모습으로 영국과 유럽 각 지역에서 종교의식과 믿음의 자유를 내세우며 달라이라마와 대립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는 곳마다 뉴까담빠가 나타나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영국인이 뉴까담빠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영국불교는 서서히 아시아의 전통과 멀어지면서 서구적인 종파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불교운동은 전통 교단의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이단으로 비치지만, 영국이라는 새로운 풍토에 불교가 지역화하고 자체적인 동력을 가지고 영국 사회에 적응해간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불교를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영국 도처에서 종교적인 부분이 제거된 불교 명상법이 위빠사나란 이름으로 영국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불교적인 부분이 제거된 위빠사나 명상법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지도하고 있는데, 개개인의 종교적인 부분과 상관없이 스스로 수행하면서 불교에 다가가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국에서 위빠사나 명상이 한국의 의료보험공단에 해당하는 NHS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심리학과에서는 중증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빠사나 명상법을 응용한 마음챙김 기반의 인지 요법(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MBCT)을 개발하여 환자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MBCT는 영국에서 중증 우울증 환자들을 자살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2004년부터 영국 NHS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했으며, 2017년부터 정신병원에서 꼭 준비해야 할 기초적인 치료법으로 올라 있다. 옥스퍼드대학 심리학과는 이를 위해 옥스퍼드마음챙김센터(Oxford Mindfulness Centre)를 설립하고 대대적으로 MBCT 교과과정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서 불교가 단순한 종교를 넘어서서 명상을 통해 일종의 치료법으로 발전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황순일 sihwang@dongguk.edu

동국대 인도철학과, 동 대학원 철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박사). 일본 사이타마대, 태국 출라롱콘대, 카자흐스탄 알파라비국립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Metaphor and Literalism in Buddhism, The Doctrinal History of nirvana, Sermon of One Hundred Days: Part One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무기설을 통해 본 무여열반의 의미〉 〈근대 돈황학의 성립과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불이상(연구 부문)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불교대학장.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