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일부터 기억할 수 있을까요? 제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때인데, 할아버지의 죽음입니다. 자다가 깨어나 보니 큰 방 윗목에 누군가가 누워 계시고, 사람들이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1893년에 태어나셔서 1951년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59세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산 선암사의 시주셨다고 합니다. 집안에 불단을 모셔두고 매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선암사는 경허의 세 달 가운데 한 분인 혜월 스님께서 주석하셨던 곳이지요. 혜월 선사는 1862년에 나셔서 1936년에 입적했으니 제 할아버지는 그 뒤에 선암사와 인연을 맺으신 것입니다.

젊어서 사업으로 큰돈을 버셨던 아버지는 선암사 앞에 산지를 샀습니다. 아버지는 부산 자손들의 선산으로 조성하실 뜻이 있었던 듯합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산소를 선암사에서 가까운 곳에 모셨습니다. 선암사 범종 소리를 들으며 영면하시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산소에 가면, 아버지는 꼭 선암사에 들르셨는데 스님이 아버지를 반갑게 맞았고, 두 분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집안과 선암사는 가까운 사이였나 봅니다.

할머니께서는 아침에 눈을 뜨시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기 시작하셔서 자리에 드셔야 그만두셨습니다. 무슨 날만 되면 물을 떠 놓고 비손을 하셨는데, 이 집 주인 즉 당신의 아들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제 어머니는 마흔여섯 살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심장병으로 숨을 헐떡이며 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형제자매 중에 저만 빼고는 모두 기독교 신잡니다. 막냇동생은 아예 안수를 받아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소망이 담겼던 선암사 앞의 산지도 없어져 버리고, 조부모님의 유골은 생전에 오래 사셨던 삼천포 가까이로 이장했습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타 종교 신자들에 비해 불자들이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직장에서 불자들은 신상명세서의 종교란에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SBS에서 박준영 선배가 법우회를 창립할 때 종교란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사람들을 회원 대상으로 했었습니다. 

또한 KBS의 신광식 선배가 불교언론인회를 만들 때 제게 전화를 하셔서 “혹시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제가 “안 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불교언론인회 부회장을 하라”고 벼락감투를 씌워주셨습니다. 신 선배의 지론은 “한국 사람은 교회 안 나가면 다 불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불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행 생활을 깊게 함으로써 확신을 갖게 됩니다. 저는 여기에서 경향신문사에 재직했던 고 강신철 법우를 추모합니다. 그는 대표적인 불교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내가 불자다.”라고 외치며 신행 생활에 앞장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불교 언론인들이 늘어갈수록 포교 활동도 힘을 받을 것입니다.

법원진제 종정 예하는 간화선 전도사와도 같은 분입니다.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만나기만 하면 간화선을 권하십니다. 간화선이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늘 강조하십니다. BTN의 특별기획으로 부산 해운정사에서 종정 스님과 인터뷰를 할 때 저는 ‘생활인은 바쁜데 어떻게 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종정 예하는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하면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활 선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부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진리의 길은 목숨을 걸 때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인사 방장스님을 인터뷰했을 때는 함께 들른 법보전에 이런 문구의 주련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圓角道場何處 (원각 도량이 어디인고)
現今生死卽時 (바로 지금이 생사 바로 그때니라)

 

지금 이 순간이 삶과 죽음의 순간인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있으니, 극락과 지옥도 바로 이 순간에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죽음을 여의신’ 바로 그 깨침인 것입니다. 승속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 승이자 속인 곳입니다. 그것이 경허의 참정신일 것입니다.

불자 언론인이라고 해서 아마추어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평생 아마추어밖에 안 됩니다. 자칫하면 불자로서도 아마추어고, 언론인으로서도 아마추어가 됩니다. 즉, 중도 속도 아니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평생 불교를 갖고 간다면 그만큼 믿는 세계가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유마거사는 비록 세속에 있었지만, 대승의 가르침을 자각했기에 십대제자들을 아이 다루듯 했고, 십대제자들도 그를 두려워해서 감히 상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유마거사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팔만대장경 중에 《유마경》이 목판 수십 개에 새겨져 있고, 경주 석굴암에도 당당하게 자리하고 계십니다. 재가 불자의 롤모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갈 길이 바빠졌습니다. 많지 않은 시간에 필생의 대업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자 언론인으로서 저의 마지막 소명이 될 것입니다.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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