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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실에는 잡동사니들이 많다. 뭘 잘 버리지 못해서이다. 버리는 것을 도와주는 ‘물품 정리사’란 요상한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최근 들어 집안 사물을 정리 · 정돈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에도 곧잘 방영된다. 나처럼 뭘 버리지 못해 처박아 두는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교수 연구실이라는 게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적
사색과 성찰
김동률
2018.06.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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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좋든 싫든 문득문득 자신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절에서는 함께 살아도 홀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 절의 삶은 평지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몸도 마음도 등 붙이지 못한 허공에 기대인 것처럼 절묘한 허허로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출가자가 아닌 세인이 절에 머문다는 것은 더욱 유정하고 아련하기 그지없다.
사색과 성찰
박규리
2018.06.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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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쌍계사로 길머리를 잡았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국도는 봄밤에 달리는 것이 제격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 한다. 3월 중순이라 벚꽃은 망울져 아직 피지 않았고 아침나절에 길을 떠나야 한다. 벚꽃이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봄밤에 그 길을 달리면 환상의 순간을 맛본다. 불빛 속에 춤을 추듯 흩날리는 꽃잎의 향연은 꿈결에도 황홀하다. 단잠을
사색과 성찰
김영재
2018.06.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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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원 돌탑들이 있다.소년: “우와! 저렇게 많은 돌탑을 조각가가 만든 게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쌓았단 말이지!” 아빠: “그렇다네.”소년: “대체 몇 개나 될까?”아빠: “아마,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걸? 세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사색과 성찰
박경원
2018.06.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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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분단사 초유로 ‘늘 바랐지만 이루어질지 믿을 수 없던 일’을 벌이려고 작심한 듯하다.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양측은 비핵화, 종전, 평화, 교류협력 등에 합의했다.지난해까지의 남과 북의 관계에 비하면 놀람과 환호 그 자체였다. 연전에 북한이 발표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대남 성명이
사색과 성찰
이정
2018.06.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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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친구들과 폐사지를 다녀왔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원주 황학산과 현계산 사이의 낮은 산자락 아래 넓은 터에 자리한 거돈사지. 거돈사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절터 한가운데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터를 쓸쓸히 지켜온 산 증거이다. 옛날부터 이 지역은 흥원창이라는 조창(漕倉)이 있을 만큼 흥청대던 곳이었다. 이런 번성으로 인해 남한강 주변에
사색과 성찰
최도선
2018.06.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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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 앞에서는 문상을 간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구순 고개를 넘은 어머니는 죽음에 민감하다. 혹 누구의 별세 소식이라도 들으면 대뜸 당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음을 책망한다.“그 사람은 복도 많다.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아. 날 잡아가라는 귀신은 어디서 무엇 허는지.”빈말이겠지 하면서도 막상 어머니께 드릴 말이 없다. 우리에게 1
사색과 성찰
김택근
2018.06.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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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구름 같은 세상을 만나보기 위해 나는 종종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하나하나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한편에서는 무언가 채우려는 삶이 계속되는데, 다른 한구석에서는 자꾸 비우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리를 깨닫게라도 된 것일까. 버려야겠다고 작심하고 옷장을 열고 시작해 본다. 빼곡하던 옷장이 헐렁하도록 안 입는 옷들을 몽땅
사색과 성찰
구명숙
2018.06.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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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수학 교과서에는 기원전 3세기 무렵 그리스인인 에라토스테네스(B.C.E 276~B.C.E 194)가 원의 중심각과 호의 비례관계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에서 하지 태양의 남중 각도의 차이점을 이용하여 지구의 둘레 길이를 측정했던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중학교 책에는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에라토스테네스와 거의 동시대 그리스인인 아리
사색과 성찰
김홍관
2018.06.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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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하던 일에서 물러나 쉬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을 하고 싶어 여행지를 물색하다가 중국 구화산을 떠올렸다. 언젠가 아내와 TV로 〈등신불〉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내가 등신불의 시발지인 중국 구화산 지장도량을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짐을 꾸렸다. 평생 고생만 한 아내가 같이 가
사색과 성찰
이승현
2018.03.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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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때부터 스물두 살 때까지, 2년 동안 나는 일요일마다 절에 갔다. 일요일마다, 라는 표현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절에 가지 않은 일요일보다 절에 간 일요일이 더 많았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절은 집에서 거의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늦어도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여름의 오전 6시 반은 이른 시간
사색과 성찰
손보미
2018.03.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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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존재하는 한 인간들은 사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고 작가는 사회와 인간 문제를 소설에 담는다. 소설 속에는 각양각색의 사회가 있고, 무수히 많은 사회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해마다 ‘소설과 사회’ 강의를 시작할 때면 나는 이러한 말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소설에 나타난 다양한
사색과 성찰
서장원
2018.03.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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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가 언제부터 절에 다니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절에 다니셨는데, 곰곰 생각하면 그렇다고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불경을 읽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기억 속의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을 뿐입니다. 어머
사색과 성찰
박제영
2018.03.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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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가 길 양쪽으로 하늘길을 만들어 놓았다. 곡성에서 전라선 철도가 섬진강을 끼고 산비알을 아슬아슬 돌아서 가는 길, 고행자의 외로움 같은 것이 배어 있어서 좋다. 삼나무 길은 그 외로운 비알길의 입구다. 강은 수백 번 몸을 뒤집고 몸을 뉘며 흐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길을 여기다 내려놓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물 위
사색과 성찰
천성우
2018.03.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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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종교인 전수조사에서 무종교인이 급증하고 불교인의 수가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자 숨죽었던 포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스피치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인 포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다가온 스피치 교육의 교육생 대다수는 타 종교인들이었다. “돌아가면
사색과 성찰
이현정
2018.03.1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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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자주 만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다. 불교공부를 같이 하는 독실한 불자인 그가 나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대충 이렇다. 그의 아들은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가장이다. 아들은 최근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 원금상환과 이자 갚기에 헉헉거리는 하우스 푸어 상태. 그런데 아들은 자신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고 자동차가 오래되었다
사색과 성찰
성윤갑
2018.03.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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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을 할 무렵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창자가 뒤틀리는 듯해서 바른 자세로 앉을 수가 없어 구부리고 있으니 승무원이 약을 주고 걱정했다. 통증은 멈추지 않고 비행기는 이륙해야 하는데 계속 여행을 할 것인가 내릴 것인가를 결정하라고 했다. 아픈 데다 바로 결정을 하라고 하다니, 순간 눈물이 났다. 계속 아파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사색과 성찰
김미희
2018.03.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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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성직자(聖職者)’가 아닌 ‘목자(牧者)’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 자비, 순수, 소박의 대명사인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여름 한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8월 15일 저녁, 예정에도 없이 서강대를 전격 방문한 교황은 예수회 소속 100여 명 신부들에게 &lsquo
사색과 성찰
오명철
2018.03.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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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겨우 초등학교를 나와 그저 나무나 하고 풀 베던 산골 머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공부의 열망이 있어서 16세 때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공부하러 갔다. 나는 젖소 대여섯 마리 기르는 작은 목장에서 기식하며 아침에는 신문을 배달하고 학교에 다녔다. 학교라야 인가도 못 받은 공민학교였다. 나는 야간에 고등공민학교
사색과 성찰
장산
2018.03.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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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김동리 스승의 가르침이 주요했다. 그 인연의 은혜에 답하고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그런다 싶도록 스승의 실명으로 인물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이 〈마음 건너기〉란 제목의 단편소설인데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동리 선생은 학생들과 담론하다가 문학에 대한 당신의 지론을 요약했다. “글로 감출 수 있는 것이
사색과 성찰
황충상
2017.11.30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