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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고 작은 스님 되십시오
[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오명철 전 동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여러분은 ‘성직자(聖職者)’가 아닌 ‘목자(牧者)’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 자비, 순수, 소박의 대명사인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여름 한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8월 15일 저녁, 예정에도 없이 서강대를 전격 방문한 교황은 예수회 소속 100여 명 신부들에게 ‘겸손’을 당부했다. 예수회는 1534년 성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와 초대회원들로부터 시작됐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혼란 속에서 가톨릭의 반성과 혁신을 촉구하며 출발했다. 가톨릭 내부에서는 ‘예수회원들의 박사학위 개수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할 만큼 엘리트 그룹이지만 영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치고 봉사하는 걸 중시한다. 서강대는 그 예수회가 설립한 학교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예수회 출신이다. 말하자면 신학교 동문들을 상대로 강론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참석한 사제들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전했다.

“우리의 사제 중심적인 태도가 성직자주의를 유발하고, 교회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사제가 되는 걸 성직자 반열에 드는 것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발 군림하고 잘난 척하면서 위세 부리는 성직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위로해 주는 진정한 사목자(司牧者)가 돼주십시오.”

종합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한 나는 교황이 한국에서 남긴 많은 말씀과 메시지 중에서 이 얘기를 가장 소중한 말씀으로 꼽는다. 이 한마디로 교황은 신부들의 오만과 독선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참회를 요구한 것이다.

절집에도 프란치스코 교황 못지않은 고승들이 많다. ‘무소유(無所有)’의 법정 스님(1932∼2010)은 자신을 ‘큰스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기(驚氣)하듯 반응했다.

“나는 ‘큰스님’이 아니라, ‘작은 스님’입니다. ‘작은 스님’ 역할도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50년 기독교인이지만 스님의 유발상좌(有髮上佐)임을 자처해 온 나는 해마다 결제를 마친 스님을 모시고 매화와 연꽃 구경을 하며 절이나 암자, 강진의 다산 유배지 등을 찾아다니는 복락을 누렸다. 그때마다 스님은 크다 못해 거대한 고승들의 사리탑과 비석들을 가리키며 “상좌들이 은사 스님을 잘못 모시는 겁니다. 아마도 살아계셨더라면 호통을 치며 내치셨을 거예요.”라고 했다. 스님은 또 “잘 보세요. 옛날 고승들의 사리탑과 비석은 오래될수록 작고 수수하고 심플해서 더 아름답잖아요. 요즘 들어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사리탑과 비석을 세우는 것이 유행이 된 거예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 스님(1926∼2014)이 성철 스님을 모시고 살던 시절 일화는 절집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하심(下心)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법전 스님이 수백 명의 대중을 뒷바라지하면서 해인사 주지를 할 때였다. 그해 안거철에 모인 대중이 종무소 소임자들에게 얼마나 불평을 늘어놓는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주지고 뭐고 매이지 않는 선객(禪客)답게 걸망을 지고 그냥 떠나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형식은 갖추어야겠기에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저간의 사정을 가만히 듣던 성철 스님께서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한 말씀 하셨다.

“그래도 그런 대중이라도 있으니까 니하고 내하고 어른 노릇 하고 사는 거 아니가?”

말문이 막혀 버린 주지는 호주머니에 있던 사표는 꺼내 보지도 못한 채 큰 절로 내려왔다. 한 생각 돌이키니 미워 보이던 대중이 갑자기 예뻐 보였다. 그래도 결제 때 공부하겠다고 이렇게 모여준 것만 해도 기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대중을 받들어 시봉했다. 이렇게 ‘하심’을 배운 법전 스님이 음식 솜씨가 없는 초짜 제자를 위해 손수 김치찌개를 끓여주신 일화는 절집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다.

전남 곡성 태안사 등에 주석하셨던 청화 스님(1924∼2003)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겸손과 ‘하심’의 대명사로 소문난 분이다. 시인 홍사성은 신문기자 시절인 1980년대 여름 어느 날 청화 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절에 인기척이 없어 뒤뜰로 갔더니 어느 노스님이 연탄을 갈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고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노스님은 아무 말 없이 객실로 안내하고 후원에 일러 공양을 차리도록 했다. 객(客)이 공양을 마치고 밥상을 물리며 공양주 보살에게 “큰스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까 뵌 그분이 바로 큰스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홍 시인은 그때를 “심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다”고 회고했다. 공양주 보살의 안내로 조실로 찾아가 절을 올리자 노스님은 맞절로 받았다. 무릎을 꿇자 노스님도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객이 먼저 평좌(平坐)를 하자 그제야 비로소 스님도 평좌를 하셨다. 홍 시인은 나중에 “어떤 큰스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꼈다”고 썼다.

한국 천주교의 자랑인 김수환 추기경도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분이시다. 언젠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추기경은 “모든 사람이 나를 섬기고 존경하지만 사실 내게는 부끄러움밖에 없어요. 그 많은 신도들이 꿈에서라도 하느님을 만나거나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데 명색이 추기경인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느님을 만나거나 그분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어요…….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추기경의 시대정신이 듬뿍 담긴 강론이나 글을 수도 없이 듣고 읽었지만 이 말씀이 가장 감동적이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지낸 월주 스님도 평소 교분이 깊었던 김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가장 존경받고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언제나 하심(下心)하는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김 추기경 말년에 그와 강남성모병원의 병실 이웃사촌이기도 했던 작가 최인호(1945∼2013)는 생시에 김 추기경을 회고하며 “……최고의 성직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도자, 아니 한갓 평범한 평신도로 살고 싶어 하셨던 분”이라고 말했었다.

하용조 목사(1946∼2011)가 세운 서울 온누리교회는 ‘아버지학교’와 같이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해 온 교회다. 문화선교로 유명한 하 목사는 평소 “온누리교회는 ‘모이기’ 위해 세운 교회가 아니라 ‘흩어지기’ 위해 세운 교회”라고 강조했다. 이런 정신을 계승한 이재훈 담임목사는 어느 날 주일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평생 자신이 기도한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람을 만나면 좀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한꺼번에 모두 들어주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치 내 육신의 아버지께서 일주일에 한 번 용돈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나에게 돌아가기 직전에야 조금씩 돈을 주시는 것처럼 우리를 좀 더 자주 만나고 겸손하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들의 성직자 모시기와 섬김은 남다른 데가 있다. 스님 신부 목사들에게 지나친 충성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요,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추종한다. 그런 태도가 한국 종교의 성직자들인 스님 신부 목사들을 망치고 있다. 스님 신부 목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몸담고 있는 절 성당 교회에서 당신보다 못한 보살과 처사, 신도, 교인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제발 수행도 설법도 제대로 못 하면서 시주밥만 축내고 대접받으면서 높은 법석(法席)만을 원하는 ‘큰스님’, 거룩하고 똑똑한 척하면서 시대비판에 앞장서지만 정작 사목(司牧)에는 게으른 ‘세속적 정의구현 신부’, 설교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영성과 자비심은 부족한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지 마시고 ‘작은 스님’ ‘겸손한 신부’ ‘잘 섬기는 목자’ 되십시오. 오래전부터 세상은 그런 스님 신부 목자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omc12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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