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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관계 들여다보기
[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성윤갑 건국대 석좌교수

지난해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자주 만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다.

불교공부를 같이 하는 독실한 불자인 그가 나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대충 이렇다.

그의 아들은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가장이다. 아들은 최근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 원금상환과 이자 갚기에 헉헉거리는 하우스 푸어 상태. 그런데 아들은 자신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고 자동차가 오래되었다며 또 빚을 내서 비싼 차를 사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우선 빚을 갚는 데 전념하고 차는 계획을 세워서 천천히 사거나 아니면 탈 만한 중고차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충고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의견을 묵살하고 빚을 내서 비싼 차를 샀다. 이를 본 친구는 자기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차를 산 행동이 못마땅할뿐더러 아버지로서 무시를 당했다는 섭섭함과 괘씸함, 부모 · 자식 간에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배신감과 늙은 아버지로서의 무능함에 대한 자책으로 며칠 밤을 속앓이하면서 지냈다. 친구의 하소연을 듣자니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 아버지의 권위 문제, 자식의 삶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 등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지난 연말 송년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는 몇 달 전의 우울하고 속상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훨훨 벗어던졌는지 편안한 얼굴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둘이 되자, 나는 아들과의 갈등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았다. 친구는 잘 해결돼서 이제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사과를 하더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내가 더 궁금해하자 친구는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비밀이란 게 참 특이했다. 친구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스님을 찾아가 이런저런 사정을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스님은 위로의 말 대신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간단한 말씀에 깊은 뜻이 들어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흥미를 보이자 친구는 자기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친구에 따르면 우리는 대체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말씀을 듣고 온 날부터 친구는 차분하게 자신의 언행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우선 대화 방식부터 그랬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식이 차를 사겠다고 말하는 순간 충분히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해 아들에게 강요하듯 결론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자식이 상의도 없이 차를 구입했을 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문제는 결국 가치관의 차이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 자식은 빚은 나중에 갚고 우선은 차를 사겠다는 것이고, 자기는 빚을 먼저 갚는 데 집중하고 차는 나중에 사라는 주장이었다. 차를 사는 게 우선이냐 빚을 갚는 게 먼저냐는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로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걸 부정하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자식의 삶의 방식에 개입하는 문제도 그렇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그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결혼해서 살아가는 가장이다. 그러므로 부모라 할지라도 사사건건 개입하기보다는 자기 책임하에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는 여태 그런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이다. 무시한다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이면을 관찰해보니 자식은 무조건 부모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효도는 일방적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의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무시한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 증폭돼 괘씸하고 배신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친구 부자의 자동차 사건의 근본 원인은 수직적 상하관계에 뿌리를 둔 권위적인 부자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적인 부자관계를 내려놓고 좀 더 자식의 편에서 생각하니 속상함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설명이었다.

이 친구가 자기성찰을 통해 해답을 찾게 된 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부자관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지만 점차 문제에 대한 몰입도가 깊어지면서 부자관계라는 것이 정녕 있기는 있는 것인가, 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급기야는 부자관계는 우리의 관습과 인습이 지어낸 인위적인 마음의 건축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부모 자식 이전에 아버지나 아들 둘 다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고난 본성이 맑고 깨끗하여 서로 차이가 없다. 그리고 자식이 있으므로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므로 자식이 있는 것으로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다시 말하면 부자관계는 수평적 평등 관계이며 서로 의지하는 관계다. 그러므로 선후니 부자니 주종이니 상하니 하는 생멸변견(生滅邊見)의 분별망념이 개입되기 이전의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권위적 · 수직적 상하관계가 생멸변견의 부자관계라고 한다면, 수평적 평등 관계야말로 바람직한 진정한 부자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평적 평등 관계는 진심을 다하여 부모는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식도 진심을 다하여 부모를 모시는 관계다. 어느 일방에게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서로가 함께 진심을 다하는 수평관계여야 한다.

우리는 평소 자주 불자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불자다운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대답이 쉽지 않다. 공부 따로 행동 따로 해오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때마다 그 문제를 화두로 삼아 불자답게 심층적으로 근본 원인을 짚고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것이 바로 불자다운 삶일 것이다.

yunkap@hot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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