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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가 된 사나이
[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서장원 독문학자·전 고려대 교수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인간들은 사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고 작가는 사회와 인간 문제를 소설에 담는다.

소설 속에는 각양각색의 사회가 있고, 무수히 많은 사회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해마다 ‘소설과 사회’ 강의를 시작할 때면 나는 이러한 말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소설에 나타난 다양한 사회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을 강의의 목표로 설정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제도, 가족, 불평등문제, 풍요와 빈곤, 순응과 일탈, 범죄, 인권, 환경 등등’ 사회문제를 소설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예년과 다르게 이번 학기는 중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다. 강의 시작 전 ‘외국인’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한글로 된) 소설을 읽을 수 없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 없으니 어떤 소설을 미리 읽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정중히 메일을 보내왔다. 나 역시 20년 이상 외국에서 그 나라 문학을 그 나라 말로 전공했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만나니 꼭 내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대학에서 매 학기 수강 신청을 하던 당시, 얼마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고 동시에 논문 작성의 어려움을 겪었던가! 그 희망과 그 두려움의 시간이 지금 중국 학생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외국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거울삼아 적절하게 지도해야 하지 않는가!

어려운 점이 있으면 항상 문의하고 불안해하지 말 것을 우선 당부했다. 선생으로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었다. 좋은 선생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가까이에서 조언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선생은 학문이 모자란 분들이 대부분이다. 가르칠 줄만 알고 대화를 모르는 사람이다. 대화는, 좀 더 정확히 말해 논쟁은 정신과학의 핵심이다. 주저하지 말고 문의할 것을 당부한 다음 ‘굳이 한국소설이 아니라, 중국소설을’ 선정하여 작업해도 된다고 일러주었다.

나의 강의 방식은 전반부에는 강의자가 강의하고 후반부에는 수강생 각자가 선정한 주제를 발표 토론하고 세미나아르바이트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르치고 대화하는 방식을 합한 것이다.

전반부는 1920년대 한국소설을 선별하여 주인공이 겪는 사회와의 대면 양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다음,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론과 실제를 바탕으로 강의했다. 외국 학생이지만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쉬지 않고 질문하고 공부하며 열심이었다. 동료 학우들과도 토론하고 질문하며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독일에서 그러지를 못했다. 더구나 이 학생은 이제 한국에서 막 1년 지낸 1학년 학생인데…… 게다가 문학 전공도 아니고 경영학 전공자인데…….

전반부 강의가 끝난 후 이 학생은 위화(余華)의 소설 〈인생〉을 세미나아르바이트 연구 주제로 선정했다. ‘소설과 사회’를 강의하며 전반적인 한국 소설과, ‘서양문학의 이해’를 강의하며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략의 서양 소설들은 훤히 알고 있지만 위화의 〈인생〉은 처음이었다. 위화가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알았고, 잊고 지냈던 중국 근대사와 중국문학의 세계를 새로이 경험했다.

원제가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의미의 〈활착(活着)〉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발표를 하며 학생이 특히 강조한 부분이다. 평생 외국문학을 공부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생(人生)’과 ‘활착(活着)’은 다른 의미임에 틀림없다. ‘인생’과 ‘활착’의 차이가 바로 위화 문학의 묘미일 것이다. 발표가 끝난 후 학생은 강의해준 교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특별히 책을 주문해서 선물했다. 빨간색 바탕에 중국인 인물화가 뚜렷했다. 본인은 중국 원전으로 읽는 것 같았고, 나는 한글 번역본으로 읽었다.

이 소설 역시 격랑의 중국 근대사의 흐름 속에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난과 궁핍 속에 살아가는 한 사나이의 인생역정이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굴곡진 시대변천에 따른 주변 인물들의 부침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 줄거리의 뼈대는 사회 최하층으로 몰락한 주인공 앞에서 어린 아들이 폭력에 희생되어 죽고, 귀머거리 벙어리로 시집간 딸이 아이를 낳다가 죽고, 평생 가난에 찌든 아내가 죽고, 농아 딸에게서 태어난 어린 손자까지 배고픔으로 인한 죽음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비참한 현실이다.

책을 읽으며 손을 놓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이야기의 구성이나 문체가 옛날 할머니나 시골 어르신들께서 지나온 인생사를 회상하듯이 읊으시던 것과 비슷해 정감이 갔다. 중국문학이 그러한 것인지, 위화의 문학이 그러한지 흥미롭고 편안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늙은 소가 된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은 조상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지만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한 후 평범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던 일생이 오히려 시대의 격랑에 위세를 떨치다 제 명에 살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소중하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제 꾀에 제가 속는 사람보다는 평범함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터득한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가 인간들에게 고깃덩어리가 될 뻔한 소를, 게다가 농사짓기에는 너무 늙어 별로 쓸모없는 소를 사서 자기와 합일화하는 노인의 자존과 생명 사랑에는 인간의 위대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집과 커피집을 번갈아 가며 위화의 소설 〈인생〉을 다 읽었다.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는 법 [……] 그런데 너는 소 주제에 어째서 밭을 안 갈겠다는 거야?” 하는 소리나, “황제는 나를 불러 사위 삼겠다지만/ 길이 멀어 안 가려네” 하는 노래나, 앞세운 자식과 부인의 이름을 소에다 대고 “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펑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라고 붙여 부르짖는 소리는 애잔하게 들린다. 늙은 소가 된 사나이! 처절하고 애잔하다.

봄이 오면 소를 모는 시골 산비알 밭에 한번 가 봐야겠다. 그리고 저 멀리 벌판을 바라봐야겠다.

seoj0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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