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김동리 스승의 가르침이 주요했다. 그 인연의 은혜에 답하고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그런다 싶도록 스승의 실명으로 인물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이 〈마음 건너기〉란 제목의 단편소설인데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동리 선생은 학생들과 담론하다가 문학에 대한 당신의 지론을 요약했다.
“글로 감출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다. 글은 감춘 만큼 드러날 뿐이다. 감추고자 묘하게 묘사하고 다르게 설명해도 글은 드러나는 길만 열어놓는 데 정직하다. 글의 문학은 그렇게 순수한 것으로 공기처럼 사람에게 신(神)의 자생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작가의 글이 어떤 면에 있어 신과 내통하지 싶으면 그 문학은 거기서 한계가 드러나 끝장이 나고 만다. 항상 문학은 신과 싸우면서 사람의 길을 이야기로 열어야 하니까. 특히 소설의 무한한 이야기는 그래야 참 문학의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이 지론의 뒷부분의 신과 무를 부처로 바꾸어 곱씹으며 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

부처와 싸우면서 사람의 길을 여는 이야기꾼을 소설가라 한다. 그리고 소설가는 없음으로 있는 무와 끊임없이 싸우며 글을 쓴다. 우리 문학사에서 이 말에 합당한 소설가로 〈등신불〉 〈무녀도〉 〈황토기〉 들을 쓴 동리 선생을 첫째로 꼽는다. 또 선생은 나아가 시(詩)로도 빼어났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하늘로 올라간다
(중략)
어느 개인 가을밤
하늘 한가운데로
길게 깊게 비껴 누운 그것은

은하가 흐른다
— 〈은하〉 부분

나는 선생이 그리우면 무시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는 내 정수리로 쏟아져 가슴속으로 흐르고 흘렀다. 길게 깊게 비껴 누운 그것, 선생의 몸과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하여 선생의 시를 읽으면 시의 화음에 따라 선생과 제자가 함께 춤을 추게 되었다. 아, 동리 스승은 그래서 작가 정신이 주술한 문학이 제대로만 문학성을 확보하면 작가는 죽어도 문학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된다고 한 것이었다.

이제 나에게 동리 스승은 이승과 저승, 시공을 초월하여 있다. 정치권 문학이 이념의 깃발을 들 때 선생을 보수 골통으로 밀어붙였다. 이에 선생은 논쟁으로 맞서지 않았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을 까닭이 없다는 것이 무쟁의 변이었다.

‘너희가 문학의 진정한 순수와 이념 문학의 참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 혼돈의 시간은 잠깐 지나가지만 문학의 순수는 영원하다.’

그렇게 자연한 ‘동리문학’의 순수 정의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일 뿐이었다. 그 동리 선생 부동의 정신을 자전 에세이 〈무(無)와 신(神)과 리듬〉을 인용하면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

……있음 속에 없음의 가능성이, 없음 속에 있음의 가능성이 절로 내재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곧 리듬인 것이다. 리듬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닌 채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우주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 그것이다.

우주의 본질 무(無)를 동리 스승은 꿰뚫고 있어 순수문학의 길을 지켜 부동할 수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를 스승이 없는 시대라 한다. 그러나 어떤 전문성이든 스승 없이 경쟁에서 앞설 수는 없다. 정치의 전문성, 경제의 전문성, 예술의 전문성, 종교의 전문성, 그 경쟁에서 앞서는 영웅에게도 도덕과 규범을 가르치는 스승은 항상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의 부도덕한 규범으로 무장한 힘 센 말들에게 무의 본질을 가르치며 철퇴를 휘두를 참스승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무에 대한 인류의 스승 부처님도 없다 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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