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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이정표
[73호] 2018년 03월 15일 (목) 김미희 도서출판 몽트 대표

비행기를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을 할 무렵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창자가 뒤틀리는 듯해서 바른 자세로 앉을 수가 없어 구부리고 있으니 승무원이 약을 주고 걱정했다. 통증은 멈추지 않고 비행기는 이륙해야 하는데 계속 여행을 할 것인가 내릴 것인가를 결정하라고 했다. 아픈 데다 바로 결정을 하라고 하다니, 순간 눈물이 났다. 계속 아파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실크로드! 얼마나 기다린 여행인가 그런데 출발도 못 해 보고 멈출 수는 없었다. 간절히 기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 가셨다. 괜찮다는 말에 일행도 모두 안심을 했다. 드디어 나는 사막으로 떠났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사막의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볕으로 열기가 피어올랐다. 둔황(敦煌)을 앞두고 사막에서 1시간 정도 사막을 걷다가 나머지 1시간은 낙타를 타고 이동했다. 걸을 때는 조금만 더 가면 낙타를 타고 편히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버텼다. 그러나 낙타는 몸의 균형 잡기도 힘들고 모래바람이 불어서 눈을 가리는데 손이 자유롭지 못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낙타를 타는데도 멀미가 났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지? 그보다 쉽고 편하게 가는 길도 많은데.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실크로드를 체험하는 여행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아프기도 하고 어렵고 힘들게 마주한 둔황은 경이로움과 감동 그 자체였다. 수백 개의 막고굴. 바위산에다 동굴을 파고 그 안에서 불법과 관련된 벽화를 그리거나 불경을 쓰면서 수행한 동굴을 들여다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동굴 속에서 천 년이 넘도록 계속 미소를 짓고 있는 불상을 만든 사람, 부처의 비유를 그림으로 나타낸 화가들은 그 행위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을까?

둔황은 불교예술의 보고이다. 둔황학(敦煌學)이 생겨날 정도로 세계에서 둔황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둔황은 사막의 바위를 굴로 파고 들어가 수행을 하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도 필사본으로 둔황에서 나온 유물이었다. 또한, 둔황은 불교 경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던 승려가 쉬어가는 길목이었다. 둔황 그 자체가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겐 주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정표였다.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는 사막의 길을 승려들은 법을 구하러 서쪽으로 서쪽으로 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천축이었다. 하지만 먼 곳을 가기 위해서는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앞에 간 사람들이 남긴 이정표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사막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뒷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나씩 표지를 남긴다. 어떤 곳은 돌무더기를 쌓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이정표다. 이정표는 여행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길가에 세워둔다. 사람들은 이 표지를 중심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여행을 계획했다. 이정표는 지역 간의 경계지점이나 마을이 있는 곳, 교통의 요충지인 삼거리나 사거리 등에 설치되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솟대 · 장승 · 서낭당 등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주술적 기능뿐 아니라 이정표로서 기능도 함께 지닌 것이었다.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이런 이정표를 만나면 다음 지점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가늠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행을 가거나 산에 오를 때도 이정표는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외국에 가서 한국어로 된 이정표를 보면 여간 반갑지 않다. 그만큼 이정표는 여행하는 사람에게 불가결한 친구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스마트폰에 길잡이 앱을 심어서 운전하는 사람, 길 못 찾는 사람을 도와준다. 아마 스마트폰 기능 중에 가장 실용적인 것이 있다면 길잡이 앱일 것이다.

그러나 구법승들이 여행을 떠날 때는 이런 친구가 없었다. 요즘은 너무나도 당연한 안내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 길을 구법승들은 어떻게 걸어갔을까. 옛 문헌에 따르면 둔황이 번성하던 시기 이전부터 승려들은 실크로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길을 나섰다고 한다. 그들이 가는 길은 사막으로 애초부터 길이라는 게 없었다. 하늘의 별을 보면서 길잡이로 삼았다. 사막의 바람은 거칠고 메말랐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탈진해서 한 명씩 죽어 갔다. 법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나섰지만 길은 멀었다. 그들의 외로운 주검은 사막에 그대로 버려져 해골이 되었다.

그렇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죽어서 해골이 될지라도 길을 나선다. 오로지 법을 구하겠다는 희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설령 해골이 되어 그곳을 지나는 자의 이정표 역할이라도 기꺼이 감수한다. 사막에서 툭툭 차이는 해골. 사막을 지나면서 길인지 아닌지 모르는 많은 법사들은 해골을 보면서 이곳이 길이구나 하고 확인했을 터였다. 해골이 얼마나 고마운 길잡이가 되었던가.

삼장법사로 유명한 현장이 불교경전을 구하러 인도에 갈 때도 11명이 함께 불법을 구하러 길을 떠났다. 인도에까지 가서 경전을 구해서 돌아온 사람은 현장뿐이었다. 현장과 함께 떠난 10명의 구도자도 죽어서 해골로 이정표가 되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서유기》라는 판타지 소설이 만들어졌을까.

길을 나선다고 모두가 경전을 얻고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고생을 사서 한다. 설령 해골 이정표가 될지언정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삶. 그 길을 향해 떠나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나는 고작 열흘의 여행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 여행경비와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마음을 써야 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건강의 위협도 받았다. 문명의 시대를 사는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며 여행을 시작하는데 저 무수한 해골 이정표를 만든 옛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길을 나섰을까. 욕심인 줄 알면서도 그 결기가 부럽다.
memento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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