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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한 사발 / 박규리
[74호] 2018년 06월 01일 (금) 박규리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홀로 있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좋든 싫든 문득문득 자신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절에서는 함께 살아도 홀로 사는 것과 다름없다. 절의 삶은 평지의 삶과는 사뭇 다르다. 몸도 마음도 등 붙이지 못한 허공에 기대인 것처럼 절묘한 허허로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출가자가 아닌 세인이 절에 머문다는 것은 더욱 유정하고 아련하기 그지없다. 제 손으로 자신을 가장 높은 벼랑으로 밀어 올리는 처연한 몸짓처럼. 다치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가장 위태로운 곳에 집을 짓는 제비의 심정처럼.

산 중턱에 제비집처럼 맺혀 있는 남녘의 작은 암자에 나는 근 십여 년을 깃들었더랬다. 신경림, 정희성 선생님의 추천으로 막 문단에 등단했던 푸르른 시절, 오직 좋은 시 한 편 쓰겠다는 치기 하나로 찾았던 산사. 그러나 무슨 마음의 변덕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세상은 왜 이다지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과연 진리란 건 있기나 하는 것인지, 정말 이것들의 실체가 있다면 내 이 두 눈으로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고 뻗치며 남은 산사.

그 산사에서 그리 오랜 시절을 보내게 될 줄은 나 역시 까마득히 몰랐다. 살아가면서 삶이 때로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길은 자기로부터 자기에게로 가는 길이라 했던가.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길 없는 길이었다.

그랬다. 사찰에서 한 시절은 깊은 어둠 속에 독하게 뿌리내리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스스로 갇혀 있던 인식의 굴레를 걷어차고 나와 감히 백척간두에서 허공으로 한 발 내뻗는 흉내라도 낼 수 있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한때였다.

그러나 어딘들 다르랴. 절에서의 시간도 기다림과 외로움과 반조의 연속이었다.

어느 봄날, 며칠째 스님에게선 소식 한 자 없는, 봄이라도 옷섶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매운 봄날이었다. 한번 길 떠나면 당최 연락을 주지 않으시는 스님. 그 때문에 절 식구들은 스님을 기다리느라 목을 빼고, 중요한 손님이라도 오시는 날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 스님을 찾느라 전국 방방곡곡의 절로 전화하느라 바빴다. 이번엔 보살과 처사가 함께 갔건만 그들도 스님 따라 함흥차사가 된 모양이었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불쑥불쑥 안거를 떠나던 스님 덕분에 산속에서 우리끼리 한겨울을 보낸 적이야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하루이틀 다녀온다던 사람들이 몇날 며칠이 넘어가도록 소식 한 자 없어 기다리는 것은 참 막막하다. 만날 날을 알고 기다리는 것과 만날 날을 모른 채 기다리는 것은 그 차원과 질이 전혀 다르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릴 때는 시간도 멈추고, 세상도 멈춘다. 멈춘 시간 속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은 남은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골 깊은 화염의 흔적을 잔인하게 남긴다. 일생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그래서 어쩌면 시공이 다 멈춘 어느 지옥과도 같은 경계에서 슬픈 영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리라.

아무도 없는 절집에 있다 보면 문득문득 피할 수 없는 의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이곳은 어디인가. 절에서 산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이 다시 솟구칠 때면 타다 만 돌덩이처럼 가슴이 뜨겁고 목이 멘다.

왜 내 젊음의 기억은 온통 고통 그 자체였을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사는 동안 왜 나는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껴보지 못했을까. 그래서일까. 서러운 별빛이 가로등의 허리를 아득히 적시는 밤이면 홀로 뜨거운 신열에 들뜨다가, 새벽이면 아무 말 없이 떠나갈 허망한 꽃무릇 사태를 견디다 못해 얼마나 많은 밤을 차라리 내가 먼저 머리 꺾어 쏟아져 내리고는 했던가.

그렇게 떨치고 신열과 눈물과 환화(幻華)의 세상을 등지고 선 길의 끝. 그러나 이곳에서도 검은 장대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슴에 탕탕 대못을 박듯 가뭇없이 쏟아지고, 길의 끝에도 사람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그리움이 있어 끝 모를 무지와 회한은 조각조각 고뇌의 불이 되어 한밤중이면 여린 속살을 어김없이 태웠다. 그러다 때로 새벽이면 그 화염들이 정수리의 꽃으로 피어오르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대낮에도 별빛보다 더 환한 고뇌의 꽃을 머리에 이고 사각사각 절 마당을 맨발로 밟으며 길 아닌 길을 하염없이 걷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나 더 흘렀을까. 다 타버린 바로 그 절명의 가슴 속에서 손톱만 한 소원 하나 우담바라처럼 아득하게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

모든 탐착이 사라져 이 한 마음 고요해지기를, 살아서 적막하고 순하게 소멸하기를, 그렇게 소리 없이 조용히 네게로 스며들어, 그렇게 네가 되고, 네가 되고, 네가 되어, 다시는 내가 되지 않기를······.

그날 해 다 지도록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법당 앞에 쭈그리고 앉아, 후두두 검붉은 노을 쪽으로 비상하는 새의 힘찬 날갯짓 소리와 가끔씩 제 빈 속을 다시 두드려가며 텅 빈 삶의 자세를 바로잡는 대나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참 오랜만에 손가락으로 흙마당에 시 한 편을 썼다.

죽 한 사발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biya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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