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분단사 초유로 ‘늘 바랐지만 이루어질지 믿을 수 없던 일’을 벌이려고 작심한 듯하다.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양측은 비핵화, 종전, 평화, 교류협력 등에 합의했다.

지난해까지의 남과 북의 관계에 비하면 놀람과 환호 그 자체였다. 연전에 북한이 발표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대남 성명이 기억난다. “전쟁은 시간문제다. 핵탄두들의 단추만 누르면 원수들의 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될 판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야 아무 소용이 없으며, 애당초 살아남아 후회할 놈도 없게 될 것이다.”

당시 남측의 대응도 만만찮았다. 미국과 함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그물망을 더 촘촘히 엮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틀 로켓맨’이라는 모욕을 안겼다. ‘코피 작전’이니 뭐니 해서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미국의 한 언론은 전쟁 발발에 대비해 한국 내 미국인의 철수를 걱정하는 보도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내보냈다.

그런데 북한이 그 극한대결의 원인이 되었던 핵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물론 현재는 미국의 싱가포르 회담 포기 선언으로 상황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지만 어쨌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참이다. 벌써 사람들은 ‘포악한 리틀 로켓맨’을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로 인식하기도 했다. 그런 인식을 북한의 진정성으로 간주하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다녀간 직후에도 〈노동신문〉은 “우리 공화국이 핵을 포기할 것을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란 주장을 폈다. 기대에 들떠 이를 단지 전략적인 목소리로 치부하고 있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비교적 오랜 세월 북한을 관찰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 같은 상황전개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 기세가 기대한 목표지점까지 순항할까?

비핵화 합의가 이행완료될 때까지는 험로가 기다린다.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바라는 경제제재 중단, 경제지원, 체제 보장도 이행완료 시에야 가능해질 것이다.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이행되기까지는 빨라도 2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이미 미국은 정상회담 전부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영구히’라는 단어를 끼워 넣으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생화학무기의 폐기와 인권보장 문제도 거론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미국에 제재 중단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고 북한은 항변하고 있다. 특히 자기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꼽혀온 인권문제가 거론되면 완전한 체제보장이 아니라고 반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비핵화 합의나 그 이행과정에서 분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만약 그래서 합의가 깨진다면?

1989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몇 차례 법을 어기며 방북했던 황석영은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방북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그 소감은 남한의 독재정권이 고집스럽게 접촉을 차단한 북한 사람들이 같은 문화,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가진 같은 동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불교계에도 황석영과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다. 김도안, 신법타 스님 등이다. 이분들은 미국 영주권을 가졌다는 신분상의 지위를 활용하여 합법적으로 방북하여 ‘거기에도 나름의 불교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남한의 불교계에 보고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종교계처럼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에 한몫을 담당했다.

1990년대 후반 이래 남과 북의 불교계 사이에는 적잖은 교류가 전개되었다. 북한 불교의 외형적 확인을 넘어서 불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들에도 눈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북한 사람이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된 것처럼 북한 불교가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북한 체제의 속성이 그것들에 미친 영향이 그 원인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나는 몇 차례 방북하면서(불교교류를 목적으로 한 방북은 아니었다) 몇몇 절들을 돌아보고 불교계 인사들을 만났다. 남북 불교계가 회담하는 석상에도 서너 차례 참석했다. 그때의 느낌을 솔직히 고백하면, ‘아, 이곳에는 불교가 없구나. 있는 척할 뿐이구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있는 척해도 없음이 확연히 들여다보였다.

절에는 스님이 살지 않았다. 신자도 없었다. 묘향산 보현사의 경우에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있었지만, 북한에 살지 않는 외부인들에게 불교가 있다고 강변하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당 간부들은 그들을 ‘중 선생’이라고 불렀다. 아랫사람 다루듯 함부로 대했다. ‘중 선생’은 문화재 관리인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못 볼 꼴도 보았다. 조선불교도연맹의 최고 간부에 해당하는 사람(그분의 이름은 우리 불교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을 내 앞에서 사소한 일로 폭행하기도 했다. “어떻게 불교 지도자를 폭행하나? 그러고도 당신이 불자라고 할 수 있나?”라고 나는 폭행을 행사한 자에게 강력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물론 그가 불자라는 모자만 썼을 뿐인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나는 남북의 불교교류를 적극 찬성한다. 북한 ‘불교’를 현장에서 바라보면서 ‘가짜’가 차츰 ‘진짜’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온 까닭이다. 승복을 입은 것이나 머리를 깎은 것이나 불전을 내면 염불을 해주는 것 따위의 작은 변모들이 봄날 고목에 돋는 새싹처럼 그나마 반가웠던 까닭이다. 이젠 교류가 불교의 외형 확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북한 안에 불교를 넓고 깊게 펴야 한다. 불교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남북 간에 서로 같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민족, 문화, 언어, 역사가 같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제는 분단 73년 동안 달라진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달라진 것들을 같게 만들 동력이 생긴다. 통일이라는 낱말이 바로 그런 뜻을 내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북한의 ‘불교’가 시늉에 그치지 않고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가 그 이행과정에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그땐 다시 정상회담 이전처럼 ‘살아남아 후회할 놈도 없게 되는’ ‘불바다’와 ‘전쟁’을 떠드는 상황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반대로 정상회담의 합의 이행이 순조롭게 완결된다면, 그땐 아마도 패러다임이 바뀌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서로 가장 빠른 속도로(김정은은 ‘만리마 속도’라는 표현을 썼다) 한미 양국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관계를 진전시키려 할 것이다. 통일까지야 어렵겠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통행, 통신, 통관에서 제약이 상당 부분 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대만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사업하고 거주하는 것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되기보다는 곧 다가올지 모를 교류협력의 시대를 차분히 대비하는 게 좋겠다. 연구조사팀을 구성해 북한불교를 어떻게 복구해나갈지, 어떻게 동질성을 회복해나갈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들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사찰 복원이 능사가 아니다. 경전과 의식, 승려 양성, 교육, 포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기독교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웬만한 교회들이 모두 나서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람직한 방법일지는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하다못해 북중 국경지대를 통해서까지 주민들에게 신앙을 주입하고, 성경을 밀반입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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