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가 길 양쪽으로 하늘길을 만들어 놓았다.

곡성에서 전라선 철도가 섬진강을 끼고 산비알을 아슬아슬 돌아서 가는 길, 고행자의 외로움 같은 것이 배어 있어서 좋다. 삼나무 길은 그 외로운 비알길의 입구다.

강은 수백 번 몸을 뒤집고 몸을 뉘며 흐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길을 여기다 내려놓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물 위에 썼던 자가 눕는다’라고 25세에 요절한 영국의 시인 존 키츠가 묘비명을 쓰고 싶었던 게 이런 강이 아니었을까. 섬진강은 그렇게 묘비명을 쓰고 싶은 강이다.

남원에서 섬진강 길을 달려 황전리에서 천마산 깃대봉 쪽으로 기울은 해가 마산 천변에 이글이글 타는 듯 쏟아붓고 뒤통수 찌르며 쫓아오는 역광을 뒤로 받으며 화엄사에 닿으니, 해는 원사봉을 넘어 산그늘만 길게 절 마당에 드리웠다. 종무소를 찾아가 평전과의 독대를 청한다. 그러나 스님은 서울로 출타 중이다. 평전은 화엄사 주지 스님으로 내 동생 태우와 중학교 동창이다. 이런 인연으로 태우가 내 거처를 부탁했고 어제 오기로 약속했는데 섬진강에 취해 하루 늦은 것이다. 여래장(종무를 맡은 스님)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니 사미승이 구층암으로 안내해 준다.

《금강경》을 읽다가 방문을 연다. 여치 한 마리 기다렸다는 듯 얼른 방으로 뛰어든다. 무수히 명멸하는 개똥벌레들, 화엄 계곡의 물소리, 따스함이 그리워 찾아든 여치. 오늘 밤은 여치와 동침을 하자. 너와 내가 한 이불 속에서 동상이몽의 꿈을 꾸며 하얗게 잠들어 보자.

새벽에 명완 스님이 끓여주는 흰죽으로 아침을 먹는다. 선대에는 보성에서 백 리 안쪽 그 집 땅을 밟지 않고는 가지 못할 만큼 명완 스님은 대지주의 후손이라고 들었다. 속가에서 동생인 종태 스님이 중이 되자 네가 중이 되어서야 하겠느냐고 데려가려고 왔다가 자기도 스님이 된 분이다. 명완 스님은 얼마 전 종태 스님을 잃었다. 천불전 뜨락에 서서 노고단을 바라본다. 산은 한철 살고 가는 앞모습이 아름답고 명완 스님은 슬픔을 참아내느라 고요한 뒷모습이 아름답다.

천불전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밑에 모과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육중한 몸집에서 새 움이 나 달랑 모과 한 알이 달려 있다. 나무는 오직 모과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서 있다. 명완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 가운데 기둥 두 개도 이 모과나무 모체를 베어서 세웠다 한다.

몸체를 베어내도 다시 움이 트고 큰 나무로 자라나는 모과나무의 생명력, 나무가 오래 묵으면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이적(異蹟) 같은 힘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불전 출입문 좌측 기둥 위에 거북 조각상이 등을 45도 기울기로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고, 토끼 한 마리가 거북이 등을 타고 올라앉아 있다. 토끼가 용궁에 들어갔다가 용왕이 은혜를 베풀어 다시 땅으로 나올 때 거북이 등을 타고 나왔다는 토끼와 별주부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큰 절에서 평전이 찾는다는 전갈이다. 감을 전지로 따지 않아 키만 까마득히 자란 감나무 밑을 지나서, 한 발쯤 되는 돌다리를 건너서, 동쪽이 허한 땅을 두어 길 쌓아 올려 그 세월만큼 이끼도 청청한 돌담을 돌아서, 몇백 년은 살았을 느티나무 고목 아래로 산죽이 빽빽이 들어찬 오솔길을 싸락싸락 걸어서 간다.

평전은 삼전(三展)에 있었다. 시자 스님이 우려낸 우전차를 한 모금 넘기고 평전을 자세히 본다. 이마가 넓고 동그란 얼굴에 눈빛이 영롱하게 빛나던 소년, 바로 그 소년이 지금은 구레나룻이 허옇게 귀밑을 덮고, 9년 동안의 토굴 수행 탓인지 빛나는 눈만 남아 마르고 초췌해 보인다.

사람은 고통스럽고 외로울 때 자기를 바로 본다. 이제까지 살았던 것은 뜬구름 같은 것, 허상만 보고 살아왔으니 자기를 바로 보고 그다음에 쓰는 글이 진짜 글이라고 평전은 말했다. 광조문(光照門)을 나오는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절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부산하다. 아득히 먼 세상 풍경 같다.

이 세상에는 빛이 제일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빛보다 몇백 배 더 빠른 것이 있다. 그것은 염력(念力) 즉 마음이다. 마음은 생각하는 즉시 지구를 수백만 바퀴도 돌 수 있다. 그렇다. 모든 것은 마음 가운데 있다고 하지 않는가.

형,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머물러 계시오.
삼전 마루에 서서 평전이 내 등 뒤에다 대고 화두처럼 던졌다.

물소리 바람소리에 실려 구층암에 날이 저물어간다. 부산에 사는 김우길로부터 전화가 왔다. 화개 범왕리 보천산장에 있다고. 우길은 지난가을 말기 암 환자인 아내와 함께 화엄사에 왔을 때 만난 친구다.

어스름 달빛 속 섬진강 변을 달린다. 두 시간 만에 도착한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거리마다 청사초롱에 불을 밝혔다. 쌍계사를 지나 목동까지 벚꽃길 이십 리. 아버지 대를 이어 삼십 년 찻집을 하는 수석원에 들러 녹차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보천산장에 도착한 것은 부산에서 온 우길 일행이 산장의 불을 있는 대로 모두 다 켜놓은 채 나를 기다리며 소주 한 상자를 어지간히 비우고 난 뒤였다.

우길은 나에게 지난번 형 만났을 때 형의 방랑을 보고 역마살이 낀 것 같다고 한 말 사죄한다며 소주를 한 잔 따라주고는 자신도 거푸 석 잔을 비웠다. 그는 외항선에서 흘러가 버린 많은 세월을 반추하듯 눈을 감고 로드리고의 〈알함브라의 추억〉을 코를 퉁겨서 내는 기타 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아니 부른다기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오는 흐느낌이었다. 부산의 김 기자, 제주도 김 선생, 우길이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는 새벽녘까지 취해 있었다.

희붐히 날이 새고 바로 옆방에서 우길의 아내가 칠불사를 향해 그림자처럼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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