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원 돌탑들이 있다.

소년: “우와! 저렇게 많은 돌탑을 조각가가 만든 게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쌓았단 말이지!”

아빠: “그렇다네.”
소년: “대체 몇 개나 될까?”

아빠: “아마,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걸? 세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돌탑을 쌓고 갈 테고, 또 쓰러져 넘어지는 것도 있을 거니까!”

소년: “그럼, 세상에서 제일 많은 돌탑을 가진 절이라고 기네스북에 올리려 해도 숫자가 자꾸 변하니까 올릴 수가 없겠네!”

아빠: “쉽진 않을 거야. 분명한 것은 저 돌탑 숫자만큼 수많은 사람이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서 돌탑을 쌓았다는 거지.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많은 소원 탑을 많이 가진 절로는 이 백담사가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걸!”

소년: “(감동에 젖은 듯) 그렇구나……  세상엔 이렇게 많은 소원들이 있구나! 아빠, 여기에 내 소원을 보태도 이뤄질까?”

아빠: “이뤄지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많은 돌탑이 서 있는 거 아니겠어?”

소년: “좋았어! 나도 소원탑 하나 쌓고 갈래!”

산을 오르던 소년과 아빠는 이런 대화 끝에 메고 있던 배낭과 신발을 벗어 놓고 냇가로 향했다. 행여 다른 이들이 쌓아 둔 돌탑을 무너트릴세라 온몸을 비틀어 피해 가며 탑을 세울 만한 자리에 이르러 큼지막한 돌덩이를 골라 받침돌을 만들었다. 윗돌을 올리고 그 위에 올라갈 맞춤한 돌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산만하고 무심할 그 또래 소년이겠건만, 어떤 놀이보다 집중력 있고 진중하게 돌덩이를 찾고 있는 소년 주위로 설악의 짙푸름 녹음이 무금천(無今川)을 따라 흐르고 있다.

설악산 백담사(百潭寺)는 대청봉에서부터 시작된 백 개의 담(潭)이 위치한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해서 이름조차 백담사이다. 절 앞으로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무금천이 흐르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 수심교(修心橋)를 지나 금강문에 들어야 비로소 절 경내에 다다른다. 무금천은 강폭이 제법 넓고 냇가에는 수천 년 전부터 설악산 계곡을 굴렀을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하다. 바로 그 무금천 물가에 절을 찾는 신도들은 물론이고 오가는 길손들이 쌓아 올린 돌탑이 숲을 이뤄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백담사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있다.

돌밭에 우뚝우뚝 솟은 소원 탑을 세웠을 사람들의 간절함과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수많은 돌탑의 숫자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자연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각각의 생김새가 어떤 예술가의 작품보다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결코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동글동글한 돌탑의 불안정한 긴장감이 눈물 날 만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 나도 소박한 돌탑 하나 세우고 소망을 발원했으면 하는 마음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돌탑들 중에는 어찌 저 큰 돌덩이를 들어 올려 쌓았을까 싶게 우람한 돌탑도 있고, 제법 조형감각을 뽐낸 솜씨 좋은 돌탑도 있고, 아슬아슬해 보이는데도 설악산 계곡 바람에 무너짐 없이 버티고 있는 기묘한 돌탑도 있다.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지 소박하게 작은 돌 몇 개 쌓아 올린 앙증맞은 아기 돌탑의 행렬도 보인다.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유려한 곡선의 작품도 아닌데 자연 그대로 쌓아 올린 크고 작은 돌탑의 무리가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냇가를 구르는 돌을 쌓았다 해서 그저 무감한 돌탑의 행렬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돌탑 하나하나를 쌓은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이 오롯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 하나 올려놓고 간절한 소원 하나 빌고, 동글동글한 돌덩이 위에 또 다른 돌을 올리며 떨구지 않으려 손끝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왕에 쌓는 탑 한 층이라도 더 얹으려 마음을 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 소원이 하늘에 가 닿기를 정성을 다해 빌었을 것이다. 자신의 돌탑을 쌓고 돌아 나오며 허튼 발길에 행여 다른 이의 돌탑이 무너질까 조심히 나오는 그 발걸음까지 소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들도 나의 돌탑을 이처럼 귀히 여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겨났을 하나하나의 돌탑들이 간절한 기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리 큰 욕심을 빈 것도 아닐 것이다. 살아가며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는가. 또한 오늘은 그럭저럭 살았다 해도 내일을 알 수 없어 엄습해 오는 불안감들. 그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될 듯 될 듯 안타까이 피해갔던 소망들이 이루어지길 기도했을 것이다. 돌탑을 쌓으면 그 소망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쌓았을 것이다.

“신심은 도의 근원이고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온갖 착한 법을 길이 기르며, 의심을 끊고 애착에서 벗어나 열반의 무상도(無上道)를 드러낸다.”라고 《화엄경》에도 나오지 않던가. 간절함과 믿음의 마음, 신심으로 일궈낸 바람들이 저토록 많은 돌탑의 무리를 이루게 했을 것이다.

여름 큰비에 돌탑이 무너진다 해도 오가는 길손들은 염원을 담아 돌탑 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니, 백담사 앞 무금천에는 여전히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탑이 숲을 이룰 것이다. 그 돌탑의 행렬 위로 설악의 짙푸른 녹음이 깃들고, 바람 소리가 깃들고, 새소리가 깃들고, 백담사의 종소리가 깃들고,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깃들고, 부처님의 자비가 깃들 것이다. 그렇기에 그 소원 탑의 행렬만 봐도 눈물겹게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리라. 세상에 이토록 간절하고 수많은 소원이 어깨를 겨루며 서 있다니…….
설악산 백담사엘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소원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어떤 예술작품보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소원의 행렬들을.

nawull35@naver.com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