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독교 교육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교육’이라고 배웠습니다. 따라서 삶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는 나의 스승이며, 마주하는 모든 일은 배움의 연속이고, 수련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시로 잊는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신학생 시절부터 이웃종교 간 대화 모임에 참석하거나 그와 연관된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학대학원 운동장은 화계사와 수유1동 성당 그리고 송암교회가 매년 이웃사랑 바자회를 여는 ‘나눔의 공간’이면서, 때때로 화계사 스님들과
사색과 성찰
이현아
2024.03.11 14:16
-
내 나이 이미 70, 고희의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47년 전 젊고 패기 있었던 청년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한 사람이 있다. 나는 당시 ROTC(학군단 장교 후보생) 2년 차 후보생의 신분으로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광주에 있는 모 사단에서 한 달 동안 땀을 흘리며 군사훈련을 마친 때였다. 부모님께서 살고 계시는 경상남도 하동읍에 가려고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지리를 잘 몰라서 한 젊은 여성에게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녀는 송광사로 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시간이 남아 차표를 산 뒤
사색과 성찰
이승열
2024.03.11 14:16
-
지난해 늦가을 아침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돌풍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대문이 덜커덩거리고, 집 앞의 큰 은행나무 잎들이 거센 바람결에 사방 흩날렸습니다. 우수수 우수수 쏟아지는 노란 은행잎들에 섞여 부고(訃告)도 한 닢 툭, 떨어졌습니다.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춘천에 사는 후배로부터 마근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죠. 느닷없는 일이라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 종교가 다르지만 수십 년을 지친처럼 지내오던 스님, 마근 스님이 딴 세상 분이 되시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요즘 들어 친한 동무들의 부고를 심심찮게 받긴 합니다
사색과 성찰
고진하
2024.03.11 14:16
-
1960년대 부여군 내산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마을 모퉁이에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고 누이와 동네 친구들을 따라 주일학교에 다녔다. 예배는 지루했지만 노래와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 그리고 레크리에이션은 농촌 문화 속에서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던 무렵 기독교 신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종교 체험을 했다. 그 후 신학대학을 가고 목사가 되었다.어려서부터 청소년기까지 불교를 접한 기회는 절에 간 것밖에 없다. 그것도 소풍 가면 유명한 절을 둘러보는 정도에 그쳤다. 기억
사색과 성찰
심광섭
2024.03.11 14:16
-
기독교인의 구도 과정에는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영적 진보와 정진이 불가능하며 철저히 혼자임을 느끼는 고독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마주하는 고난의 시간이다. 그것은 진리와 참나(眞我)를 찾아 떠나온 순례자에게 깊은 절망감을 주며, 가르멜수도회의 아빌라의 데레사의 말처럼 사라져버린 신의 빛을 찾기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나에게도 찾아와 존재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불안감, 진리에 대한 타는 목마름과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여자로서 신학을 공부하
사색과 성찰
김나경
2024.03.11 14:16
-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창립기념식에 많은 손님이 초대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부처님오신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님이 축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원장이셨던 강원용 목사님과의 개인적 연분도 있어 사양하지 못했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에 오게 했습니까. 우리는 일 년에 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그런데 목사님들 보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매주 벌어 먹고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교 쪽으로 넘어오시지요……”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지요.여해 강
사색과 성찰
채수일
2024.03.11 14:16
-
-
코로나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일부 개신교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템플스테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피정(避靜)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일상생활을 벗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데, 개신교에는 딱히 그럴 만한 곳이 마땅히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있다면 기도원일 텐데, 그동안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기도원은 조용함이나 고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개신교인들도 이런저런 곳을 찾아 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가톨릭의
사색과 성찰
이은경
2024.03.11 14:16
-
-
지리산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 을 먹고 풀들이 자란다. 풀을 먹 고 소들이 자라고 소의 젖을 먹 고 사람의 아이들이 자란다. 지 리산 자락 산청은 소를 먹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태어나 고 자란 곳이다. 맨 처음 어머니 에게 글자를 배우고, 서울에서 공부하던 삼촌 서랍에서 소월의 〈초혼〉을 뭔지 모르고 읽고 외 운 곳이다.첫 경험이란 그렇듯 외우려 하 지 않아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 린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문 익점이 붓두껍 속에 무명씨 세 알을 숨겨와서 처음 이 땅에 심 었던 밭이 거기 있다. 그 자리에 시비 제막식을 하던
사색과 성찰
이경
2023.10.31 05:16
-
-
북쪽으로 창이 하나 있다. 거 실 옆에 싱크대가 자리 잡고 그 싱크대 바로 위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창 하나가 있다. 나는 그 창을 내려다보며 그릇을 씻고 채 소를 다듬고 도마질을 한다. 시 선은 늘 창밖으로 향해 있다. 시 선이 창밖으로 나가 있어 손으로 하는 일이 가끔 실패를 볼 때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그래도 나는 창을 본다. 설거 지를 끝내고도 나는 창 앞에 서 있다. 커피를 한 잔 들고 천천히 마시면서 나무들과 인사도 하고 아 봄이구나 계절의 변화도 여기 서 만난다. 핸드폰을 받는 곳도 여기다. 친구들의 전화 끝에 나
사색과 성찰
신달자
2023.10.31 05:16
-
발터 옌스와 한스 큉이 지은 《문학과 종교》라는 책의 첫머리 에 보면 17세기에 시작된 근대의 특징을 과학과 기술, 그리고 과 학과 기술에 의해 생산된 산업 을 들고 있다. 또한 중세 로마 가 톨릭 교회가 곧 교황이고, 종교 개혁에 와서는 ‘하느님의 말씀’ 이 핵심어였다면 근대에 이르러 서는 합리성, 이치, 이성이 핵심 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학과 산업을 통해 촉진된 합리 주의화된 근대에서 무엇보다 결 핍된 것은 파스칼이 포괄적으로 ‘가슴’이라고 부른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다시 말해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합리
사색과 성찰
불교평론
2023.10.31 05:16
-
지난여름 개정판 《 이용악 전 집》을 냈다. 2014년 이용악 탄 생 100주년을 맞아 이경수 평론 가, 이현승 시인과 함께 2년여의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을 펴낸 것이 2015년 1월이니, 8년 반 만 에 개정판을 낸 것이다(이 개정 판은 이경수 평론가의 노고에 힘 입은 바 크다).전집을 낸 이후 여러 선배와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으로 미발 굴 시와 산문들을 새로이 찾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시 7편(〈거 울 속에서〉 〈북으로 간다〉 〈おらが天ゆゑ(나의 하늘이기에)〉 〈물 러가는 벽〉 〈새로운 풍경〉 〈불붙 는 생각〉 〈당 중앙
사색과 성찰
곽효환
2023.10.31 05:16
-
자전거를 타고 제민천 길을 따 라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금학 동 아파트에서 시내 쪽으로 가려 면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른바 외통수 길인데 이 길은 금강으로 흘러가는 제민천을 따 라서 나 있어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은 길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 쪽으로 가려면 가볍게 페달을 밟기만 해도 자전거가 굴 러간다. 저절로 기분이 가벼워지 고 상쾌해진다.그런데 요즘 며칠 나는 심히 앓았다. 아니 혼돈된 삶을 살았다.내내 잘하던 문학 강연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가 풀 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고 입속 에서 말이 잘 나
사색과 성찰
나태주
2023.10.31 05:16
-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어 머니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고려 대장경의 한 구절이 내 시심( 詩心)에 깊이 들어온 적이 있다. 그 때부터 마음속에 박혀 있던 가 시가 뽑히고 생각까지 바뀌게 되 었다. 마치 불법(佛法)이 ‘바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에 대한 각성이 생겼던 것이다.세상에는 너무 기막혀서 절대 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 참혹 한 일들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풀이된 두어 권의 경전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처럼 부처님이 설한 교법은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고 통을 빼주는 것이며 괴로움의
사색과 성찰
천양희
2023.10.31 05:16
-
사람에게는 일생에 몇 번의 전 환기가 오게 되는데 나의 경우 20대 말과 40대 초반이 그러하 였다. 그리고 올해 예순 중반에 내게 또 한 번 생의 변곡점이 찾 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 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후의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 다. 이것은 내 뜻과 무관하게 도 래한 것으로서 우연으로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우 리는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볼 수 없다. 개체의 운명을 좌우하 는 실재를 따를 도리밖에는 없 는 것이다. 나는 미래를 모른다.산등성이에서 태어나 사람의 몸을 타지 않은 최초의 바람과 풋풋하
사색과 성찰
이재무
2023.10.31 05:16
-
-
어느 해였던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해 겨울방학은 유독 길었다. 친구들이 시골 할머니 집에 가곤 하던 그 겨울, 나는 꽁꽁 얼어붙은 화계사 앞마당 호수에서 혼자 스케이트를 탔다. 아무도 없는 절 마당의 꽁꽁 언 호수는 초록색 빙판이었고, 난 동화의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는 그 초록빛 고요함이 좋았다. 빙글빙글 호수를 천천히 돌고 있으면, 지나던 스님들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때 내가 받은 질문들은 엉뚱하고 재미난 것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꼬마야, 너 저기 구름은 어디로 가는지 알아?” “너는 어디서 왔니?
사색과 성찰
박정은
2023.08.1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