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불교에 관한 사색이나 추억’이 있으면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부터 불교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써지는 대로 써보겠다.

이십여 년쯤 전 얘기다. 마산 어느 천주교회에서 강론을 부탁받았다. 강론 마치고 질문 시간에 한 중년 남자가 말했다. “내가 아는 개신교 목사가 셋 있다. 그들은 나를 보면 우상 숭배하는 천주교에서 나와 개신교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실은 오늘 여기 오고 싶지 않았는데 수녀님이 자꾸 와보라고 해서 왔다. 하지만 막상 당신 말을 듣고 보니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고 개신교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좀 달라지는 느낌이다. 오늘 성당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가톨릭 신자인 나보다 성인들에 대하여 더 잘 아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듣기 괜찮은 덕담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떤가? 천주교에 대하여 그렇게 잘 알고 호의를 품고 있다면 아예 천주교로 개종할 의사는 없는지?”

좌중이 요란한 웃음과 박수로 술렁거렸다.

잠시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나보고 천주교로 개종하라는 말인데 그럴 수 없다. 혹시 불교로는 모르겠으나 천주교로는 개종 못 한다.”

술렁거리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불교로는 모르겠으나 천주교로는 개종할 수 없다고 하니 듣기가 거북하고 기분도 묘했을 것이다.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개종(改宗)이란 이 종교를 저 종교로 바꾼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천주교는 나에게 다른 종교가 아니라 같은 종교다. 가르침의 뿌리와 내용이 같다는 말이다. 당신들이 섬기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나도 섬기고 당신들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대로 가톨릭과 개신교는 한 아버지의 ‘갈라진 형제들’이다. 천주교도 그리스도교, 개신교도 그리스도교다. 하지만 나에게 불교는 다른 종교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혹시 개종한다면 불교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은 내가 속한 내 종교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제 것을 제 것으로 바꾼다는 말인가? 그래서 천주교로는 개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어서 천주교로 개종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던 남자에게 웃으며 물었다. “선생은 아랫방에서 윗방으로 이사합니까?” 좌중이 아까보다 더한 웃음과 박수로 환호했다.

그랬다. 한 이십 년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비슷한 무렵에 모교인 감리교신학대에서 한 학기 시간강사로 ‘종교와 문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불교문학을 소개할 차례가 되었는데 도무지 아는 게 없는지라 정토회 법륜 스님에게 한 시간 특강을 부탁했다. 스님이 기꺼이 승낙하여 신학교 채플에서 거의 완벽한 ‘유마경 강의’를 90분 동안 훌륭히 마쳤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뜬금없이 몽둥이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승복을 입고 머리를 밀었다 해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마라. 중은 하느님 자식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느 만큼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입을 열어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벌침 같은 사자후(獅子吼)였다. 뒤에 여러 학생들로부터 스님의 그 한마디가 상당한 충격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법륜 스님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책을 냈다. 불교 스님과 기독교 목사의 책이 동시에 나왔으니 출판사에서 쇼 한번 해보자 기획하여 합동출판기념회를 서울 강남에서 열었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물어왔다. “여기 와서 보니 기독교 신자들과 불교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주인공으로서 소감이 어떠한가?” 대답했다. “기자 눈에는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들이 보이는 모양인데 내 눈에는 그저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불교 신자든 기독교 신자든 저마다 신자로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었다. 그들이 마침내 해탈하여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고치에서 벗어나면 사람이라는 이름의 나비로 창공을 날 것이다. 바로 그 사람, 천상천하에 홀로 존귀한 사람으로 귀의(歸依)하는 것이 이른바 종교의 길 아닌가? 이것이 석가모니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신 가르침의 알속 아닌가?

그날 마산 어느 천주교회에서 “불교로 개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그때만 해도 아직 불교가 다른 종교 이른바 타 종교였기 때문이다. 이십여 년 세월이 흐른 오늘, 누가 불교로 개종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누가 제집에서 제집으로 이사를 간단 말인가?”

내가 사는 프랑스 오두막 제단에 불상(佛像)과 예수상(像)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제단에 촛불을 밝힐 때마다 나는 두 분을 영적 조상으로 만난다. ……당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일 때 당신은 또한 불교 신자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 틱낫한

틱낫한 스님, 당신 말에 기꺼이 동의하는 어느 목사가 여기 한국에 있소이다. 옴(ૐ)……

이현주 / 목사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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