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코로나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일부 개신교인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템플스테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피정(避靜)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일상생활을 벗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데, 개신교에는 딱히 그럴 만한 곳이 마땅히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있다면 기도원일 텐데, 그동안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기도원은 조용함이나 고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개신교인들도 이런저런 곳을 찾아 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가톨릭의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을 찾았고, 그중 일부는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조용한 기도원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부는 사찰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를 방문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종종 수도원을 찾아 피정을 해왔던 터라, 언젠가는 템플스테이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또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번이 벌써 두 번째 템플스테이였다. 처음엔 불자인 친구와 함께 여럿이 갔었고, 이번에 홀로 다녀왔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리 좋아서 기독교인인 그가 템플스테이를 가는지 자못 궁금했다. 독실한 기독교인 중에는 사찰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북해하거나, 사찰에서 풍기는 향냄새를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템플스테이는 전라남도 해남 두륜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흥사였고, 이번에 간 곳은 보성 대원사로 티베트박물관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니 역시 고즈넉한 산사에서의 쉼 자체라고 말했다. 도시의 번잡하고 바쁜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으리라. 거기에 싱잉볼(명상 주발) 소리에 따라 명상하고, 몸을 깨우는 요가를 하고, 108배를 드리는 것이 번뇌와 잡념을 잠시나마 몰아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자고 일어나 건강한 식사를 하고, 침묵 속에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한없이 소박한 일상인데 그곳에서는 참으로 특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일상에서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분주한 우리네 삶은 그만한 짬도 선뜻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써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사찰이나 수도원을 찾아가는 것일 테다. 또한 아무런 사심 없이 내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오는 위안도 있을 것이다. 템플스테이나 수도원에 피정을 가면, 스님이나 신부님 혹은 수녀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그때마다 참으로 ‘그저 편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왠지 속세와는 한 걸음 떨어져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그들에게서 받는다. 같은 종교인이기는 하지만 개신교 목사의 삶이 속세와 매우 밀접하게 느껴진다면, 그들의 삶은 왠지 속세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찰과 수도원이 사람들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그들의 삶의 공간이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지의 공간, 그래서 신비로운 곳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사찰이나 수도원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고, 태도가 공손해지고, 말소리도 잦아든다.

그곳에서는 절대적 존재자의 임재나 그에 대한 경외 혹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종교적 매혹을 느끼는 누미노제(das Numinose)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불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사찰을 방문하거나 수도원을 찾는 것이리라. 또한 수도원의 의식들과는 달리 사찰의 의례는 동양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에게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이 요즘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를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은 대부분 학교 근처에 있는 사찰로 갔다. 사찰에 가면 제일 먼저 일주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제까지 머릿속에 지니고 있던 중생의 생각이 이 문턱을 넘으면 사라지고 오직 보살의 대승 마음만 지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일주문부터가 부처님의 세계인 셈이다. 당시에는 물론 이런 뜻을 알지는 못했지만, 사찰 입구에 있는 일주문을 지나기만 해도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고는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일주문을 지날 때는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속세를 벗어났다는 생각에 숨이 크게 쉬어지고, 마음이 열리는 기분.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이 불자가 아니어도 기꺼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것이리라.

지인들이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나도 한번 가야겠다, 나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또 분주한 일상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번 가을에는 낙엽이 다 지기 전에 꼭 템플스테이를 다녀와야겠다. 다시 한번 일주문을 지나 절대적 존재의 넓은 마음에서 큰 숨을 쉬면서 피정,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나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이은경 / 감리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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