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개정판 《 이용악 전 집》을 냈다. 2014년 이용악 탄 생 100주년을 맞아 이경수 평론 가, 이현승 시인과 함께 2년여의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을 펴낸 것이 2015년 1월이니, 8년 반 만 에 개정판을 낸 것이다(이 개정 판은 이경수 평론가의 노고에 힘 입은 바 크다).

전집을 낸 이후 여러 선배와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으로 미발 굴 시와 산문들을 새로이 찾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시 7편(〈거 울 속에서〉 〈북으로 간다〉 〈おらが天ゆゑ(나의 하늘이기에)〉 〈물 러가는 벽〉 〈새로운 풍경〉 〈불붙 는 생각〉 〈당 중앙을 사수하리〉) 과 산문 2편(〈손〉 ‘이용악이 최정 희에게 보낸 편지’)을 수록했다.

그리고 북에서 발표된 이용악에 관한 평론 6편을 더했다. 새롭게 추가한 작품 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로 일제 말기와 해 방기 자료들을 추가로 발굴하면 서 ‘이용악 전집’을 더욱 완성본 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문단의 3재( 才 )’로 불렸던 이용악은 1930 년대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유 이민(流移民)이라는 시대적 비극 을 침통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민 족의 수난으로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내내 그리운/ 그리운 그곳// 북쪽엔/ 눈이 오는가/ 함박눈 펑펑 쏟아 지는가”(〈그리움〉)에서 볼 수 있듯이 북방 전체를 그리운 우리 문학 공간으로 만들어낸 탁월한 북방의 시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용악의 전집을 8년 여 전에 처음 펴낼 때부터 당혹 스러웠던 아니 풀리지 않는 의문 으로 남은 것은 해방과 분단 공 간 이전과 이후의 극명한 시 세 계의 차이였다. 일제 말의 극심 한 민족적 수난과 분단으로 인 한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은 연이은 거대한 비극이라는 점에 서 어쩌면 이형의 쌍둥이와 같을 수도 있을 텐데, 이용악의 시는 해방공간 이전에는 ‘문학’이라는 지점에, 해방공간 이후에는 ‘이념 과 체제’에 각각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극적인 시대 가 낳은 결과이고 이와 비슷한 경우는 더러 있다고 지나칠 수 있지만 그것으로 그 차이를 설명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내 이 변 화 그리고 이것을 불러온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슴에 품고 있 었는데 이번 개정판 전집에 새로 수록한 최정희 소설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 었다(이 편지는 처음 《이용악 전 집》을 낼 때 이미 확인했으나 전 집의 성격을 놓고 논의한 끝에 넣지 않았었다).

1942년 8월 30일에 낙향한 고 향에서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강 인숙 편저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마음산책, 2011)에는 이 무렵 그의 삶이 몹시 곤궁했음 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말씀 하신 지저기깜은 집엣사람도 통 준비 못 했던 모양입니다. 내지 인이 아니면 배급도 주지 않는다 고 하기에 제가 입던 와이샤쯔 등속이랑 뜯어서 지저기를 맨들 었답니다. (중략) 아무튼 수일 내로 이력서 다시 써서 김 선생 께로 보내볼 작정이올시다. 딴노 릇은 아직 전혀 희망 없나이다” 에서 볼 수 있듯이 갓 태어난 아 기의 기저귀 감도 변변히 구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력 서를 (김동환에게) 보낼 터이니 힘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자신의 희망 없는 처지를 토로하고 있다.

이 생활인으로서의 곤경은 이 용악이 몸담았던 《인문평론》이 1941년 4월 다른 한글 정기간 행물들과 마찬가지로 폐간하면 서 비롯된다. 《인문평론》의 후 속인 《국민문학》에 계속 의탁하 며 서울에 남았을 수도 있었겠지 만, 그는 퇴사를 선택한다. 아마 도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을 것이다. 이용악은 이듬 해 낙향하여 일본인이 경영하던 일본어 신문이자 함경북도의 유 일한 신문인 청진일보사에 약 3 개월간 근무하다가 고향인 함 북 경성 인근의 주을(朱乙)읍사 무소 서기로 약 1년간 근무한다. 그런데 신념을 따른 선택은 극심 한 생활고와 함께 1943년 봄의 ‘모사건’으로 세 번째 시집 출간 무산과 원고 압수, 그리고 주을 읍사무소 서기 자리마저 내놓고 칩거와 절필에 들어가는 암울한 견딤과 인고의 시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3년 여의 시간이 그를 해방을 맞자 마자 급거 서울로 돌아가게 하고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것을 필두로 ‘이념과 체제’의 길을 걷게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인은 시적 대상에 대한 애정 으로, 연구자는 연구 대상에 대 한 경모로 출발해서 그것에 동 화되기도 하고 더러는 자신을 투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집 《낡 은 집 》 표지와 ‘오랑캐꽃’의 이미 지를 형상화한 개정판 《 이용악 전집》을 펼쳐 놓고 이용악의 시 세계를 극명하게 가른 견딤과 인 고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리고 그것이 그를 어떻게 단련시 키고 변화시켰는지를 내내 생각 한다. 그리고 사뭇 다르겠지만 내가 혹은 우리가 더러 맞게 되 는 견딤과 인고의 시간에 대해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거나 선택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곰곰 이 생각하게 된다.

시인. 제14회 유심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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