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구도 과정에는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영적 진보와 정진이 불가능하며 철저히 혼자임을 느끼는 고독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마주하는 고난의 시간이다. 그것은 진리와 참나(眞我)를 찾아 떠나온 순례자에게 깊은 절망감을 주며, 가르멜수도회의 아빌라의 데레사의 말처럼 사라져버린 신의 빛을 찾기 위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나에게도 찾아와 존재를 모두 삼켜버렸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불안감, 진리에 대한 타는 목마름과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여자로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를 섬긴다는 어려움에서 온 복합적 결과였다. 현실도피라고나 할까! 섬기던 교회의 전도사 직분을 사임하고, 인도에서 진행되는 계절학기 수업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만난 달릿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 땅에 누워 바라본 인도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밝은 빛을 발하며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을 흘리며 찾던 빛을 만났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 후 영혼의 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름을 붙잡을 나(挐)와 빛날 경(耿)으로 개명하고 영어 이름을 타라(Tara)라고 지었다. 그것은 타라 브랙(Tara Brach)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책 《받아들임》은 기독교의 베스트 셀러였던 《내려놓음》과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그 책에서 강조하는 자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신학적 사유는 넓어지고 풍성해졌다. ‘나를 자비로 감싸 안기’라는 표현은 신께 나가기 위해서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 이원론적 신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비로운 신의 가슴에 안기는 만남이었고, 종교적 · 사회적 차별을 넘어서는 길이었다(《갈라디아서》 3장 28절). 또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켈트 기독교의 여성 영성을 연구하면서 켈트인들에게 신성한 의미의 타라(Tara)가 있다는 것과 켈트의 대표적인 성인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의 푸른 생명력(Viriditas)과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났다는 녹색 타라보살(Tārā-Bodhisattva)이 서로 상응하다는 것을 알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켈트인에게 타라는 ‘별’ ‘신성한 땅’과 ‘높은 곳(언덕 · 탑)’을 의미한다. 힐데가르트는 초록 생명력(viriditas)을 주장하며 ‘지구의 초록화’를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었다. 그녀는 이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이 자비로 품은 세상으로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자비(혹은 긍휼)는 성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은혜로서, 히브리어로 라훔이며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비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생명을 기르는 초록 생명력이다. 별을 의미하는 타라가 켈트 기독교와 불교에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발견은 놀라움이었다. 녹색 타라보살(多羅菩薩 혹은 綠頭母)은 북방 불교에서 유일한 여성 보살로서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나 부처님의 대자비를 실천하여 중생을 팔난(八難)에서 구제한 자비의 보살로 알려졌다.

이 보살은 별, 초록 생명력과 라훔을 담지한 구원의 여신(혹은 어머니)으로서, 언제나 중생을 자비로 구원할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것은 녹색 타라보살상에 상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왼쪽 다리는 명상 자세로 접혀 있지만, 오른쪽 다리는 언제나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손은 피난처를 의미하는 무드라를 취하고, 오른손은 순수함과 힘의 상징인 푸른 연꽃 웃팔라를 가슴에 들고 있다. 또한 녹색 타라보살이 종종 중성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칼 융이 말하는 ‘양성구유(兩性具有)’, 곧 남성성과 여성성의 연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녹색 타라보살의 자비가 남녀의 성적 차별을 넘어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진다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녹색 타라보살은 중생들이 가르침을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것은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켈트인의 후예인 아일랜드계 가문의 농장(Tara)을 지켜내는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여주인공 스칼렛처럼 중생들이 사바세계에서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라는 해방의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녹색 타라보살의 사상과 삶은 초록 생명력을 주장한 힐데가르트와 유사성이 있다. 그녀들은 모두 여성으로서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으며, 하나님과 보살의 자비로 세상을 구원하길 원했던 하나님의 자녀와 여성 붓다이다. 또한 그녀들은 성적 차별 사회에서 여성이 진리를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참으로 녹색 타라보살과 켈트 기독교를 대표하는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순례길을 밝혀주는 밤하늘의 별들이었다. 오늘날 탈종교화 현상은 종교계가 직면한 또 다른 영혼의 어두운 밤이다. 녹색 타라와 힐데가르트의 푸르른 생명력과 자비가 이 영혼의 어두움을 밝히는 참된 빛이 되기를 소망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옴 타레 투타레 투레 소하(Om tare tuttare ture soha).”

 

김나경 / 목사 · 성공회대 영성신학 연구교수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