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1960년대 부여군 내산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마을 모퉁이에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고 누이와 동네 친구들을 따라 주일학교에 다녔다. 예배는 지루했지만 노래와 선생님의 재미난 이야기 그리고 레크리에이션은 농촌 문화 속에서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던 무렵 기독교 신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종교 체험을 했다. 그 후 신학대학을 가고 목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청소년기까지 불교를 접한 기회는 절에 간 것밖에 없다. 그것도 소풍 가면 유명한 절을 둘러보는 정도에 그쳤다. 기억나는 절은 부여의 고란사와 외산의 무량사 그리고 공주의 동학사와 갑사이다. 당시에는 후에 이름을 알게 된 사천왕문을 통과하려면 위에서 무섭게 쏘아보는 사천왕상이 두려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불교에 대해 호감과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무서운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첫인상으로 남는다. 이런 걸 생각하면 보성 대원사(주지 현장 스님)의 ‘어린 왕자 선(禪) 문학관’은 얼마나 참신한지 갈 때마다 감탄한다. 어린 시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지 않고 자란 어린이는 없을 듯한데, 여기에 불교, 특히 선(禪)을 접목한 현장 스님의 창의적 지혜는 놀라운 것이다. 어린 왕자와 선재 동자가 교묘하게 결합된 모습들에서 동양과 서양의 회통 정신을 읽게 된다. 특히 〈어린 왕자 십우도〉는 걸작이다.

청년 시절 전국 여행을 다니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사찰은 거의 다 가본 것 같다. 신학대학 시절 좋은 전통과 좋은 선생님을 만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동양 종교와 철학을 동시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모교인 감리교신학대학은 토착화 신학 전통으로 유명하다. 탁사 최병헌 목사(1858~1927)의 유불선기 대화의 정신을 이어받아 유동식 교수님의 샤머니즘과 풍류(風流) 신학, 이정용 교수님의 역(易)의 신학, 윤성범 교수님의 유교적 기독교로서의 성(誠)의 신학을 공부했다. 이와 함께 김흥호 교수님은 다석 유영모를 소개하면서 유불선기 회통의 종교성을 가르쳤고, 마지막으로 변선환 교수님은 불교적 기독교를 가르쳤다. 변선환 선생님은 종교다원주의 신학, 그중에서도 불교와의 대화를 매우 강조하셨는데, 그 영향으로 동기생 중 한 명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 입학하는 바람에 목사가 되라고 신학대학에 보냈는데 불교대학원을 보냈다고 교단으로부터 지탄받기도 했다.

지난 세월 오랫동안 탁발하는 스님들을 거리 모퉁이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집을 방문해 탁발을 청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 하면서 탁발을 거절했고 스님은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좀 안쓰럽고 마음이 켕기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탁발하는 스님을 맞이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오래오래 남았다. 이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불교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가르침, 훌륭한 불교 사상가와 기독교 사상가를 비교한 글들을 읽는다. 특히 한국인으로서 삼국시대 이후 한국의 사상과 문화를 형성한 정신으로서의 불교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 나의 인격적 정체성을 넓히고자 노력한다. 석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조요한 교수님의 《한국미의 조명》(1999년)은 불교 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었다.

최근에는 불교를 이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나려고 시도한다. 한번은 남원의 실상사에서 1박 2일을 보내면서 아침 예불에 참석했다. 그러나 암송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나는 책자를 보느라고 예불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예불 후 처음 참석한 신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기독교 목사로서 생애 처음 예불에 참석했노라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불교환경연대에서 주관하는 ‘죽임의 경제에서 살림의 경제로’ 강의에 10번을 모두 참석해 배웠고, 월정사에서 이어진 1박 2일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월정사 현기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분의 파안대소하는 웃음과 해학에서 한국 종교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사진도 같이 찍었다.

나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한국의 불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2022년에는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때 쓴 글의 초입이다.

대한민국의 불자들에게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성탄절이 되면 불교방송국에서 구세주 오신 날 축하 방송을 보내고, 부처님오신날에는 기독교방송국에서 축하 방송을 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인의 영혼에 새겨진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에 실린 시를 읽고 느낀 점을 인사로 갈음할까 합니다.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 인류의 사랑과 정의, 평화와 생명을 위한 종교인들의 실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종교 간 협력은 고사하고 대화도 요원해 보이지만 이미 걷기 시작한 신실한 사람들의 뒤를 따라 한 걸음씩 걸어야 합니다. 100년도 더 전에 일어난 3 · 1 독립운동은 종교 간 협력을 통해 시작되었고 실천되었던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기억합니다. 3 · 1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기미독립선언서〉에 공약 삼장을 첨가했으며, 33인의 선두에 서서 만세 삼창을 선창한 시인, 만해 한용운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종교인들은 이웃종교의 좋은 점, 본받을 만한 점들, 자신에게 부족한 점들을 생각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하고, 때로는 축하 공연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불교인들은 신약성경의 “포도원의 품꾼들”의 비유에서처럼 한국 종교사의 마지막에 도착한 기독교인들도 동일한 영적인 몫을 얻을 수 있도록 환대해 주시길 바란다.

 

심광섭 / 목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