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옌스와 한스 큉이 지은 《문학과 종교》라는 책의 첫머리 에 보면 17세기에 시작된 근대의 특징을 과학과 기술, 그리고 과 학과 기술에 의해 생산된 산업 을 들고 있다. 또한 중세 로마 가 톨릭 교회가 곧 교황이고, 종교 개혁에 와서는 ‘하느님의 말씀’ 이 핵심어였다면 근대에 이르러 서는 합리성, 이치, 이성이 핵심 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학과 산업을 통해 촉진된 합리 주의화된 근대에서 무엇보다 결 핍된 것은 파스칼이 포괄적으로 ‘가슴’이라고 부른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다시 말해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거나 정 서적인 것을 의미하는 센티멘탈

리즘이나 감정에의 탐닉 등과 구 별되는 인간의 정신적 중심을 의 미한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것 을 다음과 같이 “가슴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적 바탕을 가 진다. 인간은 그것을 수천 가지 사물에서 경험한다”고 설파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확실히 가 슴에도 논리학이 있고, 가슴은 그 자신만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 고 여겨진다.

여기서  말하는 가슴의 논리학, 가슴의 이성을 나는 불교에 접목 할 때 그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 게 다가온다. 불교의 선(禪)이 석 가모니의 한 송이 꽃과 미소, 즉 이심전심에서 시작되었다면, 선 이란 위의 파스칼이 말한 ‘가슴 이 인간 정신이다’라는 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합리나 이성으 로는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정 신적 중심을 선은 확실히 겨냥하 고 있기 때문이다.

존 C.H. 우가 지은 《선의 황금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스트레 스를 주제로 열린 한 학술대회에 서 스트레스의 원인들이 철저히 규명되고 난 뒤에도 한 학생이 여전히 제 마음을 괴롭히는 문 제가 남았다며, “심장(마음)이 너 무 좁아서 숨을 쉴 수가 없습니 다”라고 한 말이다.

확실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쉼 없는 마음의 움직임만이 가시 화된 채로 완결된 마음과 완결 된 지식, 그리고 완결된 예술을 요구하는 것들로 꽉 차 있다. 이 런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서구 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 예술이 다. 반면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선(禪)이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4행시의 절구 “문장은 끝이 나되 뜻은 끝나지  않았다”와 연결되어 있다.

동양인의 심성에서 보자면 언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들을, 소리는 침묵을, 빛깔은 무 형의 공(空)을 불러일으키는 것 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적인 것들이란 영혼을 일깨우는 도구 이며 그것의 창조적 움직임이 선 (禪)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선의 황금시대》에서 인 상 깊게 읽었던 부분 중의 하나 는 이백의 오언절구와 그에 대한 해석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주렴을 걷고
눈썹을 찌푸리며 슬프게 앉아 있네.
보이나니, 눈물 흘러간 흔적 일 뿐
누구를 탓하는 마음인지 알 수 없어라.

존 C.H. 우에 따르면 이 시의 주렴이 걷히는 순간, 우리는 어 떤 광경을 바라보게 되고 상상력 의 광활한 강을 떠나 신비한 여행을 시작한다.

이 시는 생생하 게 느낀 경험들을 섬세하게 표현 한 파스텔화 같은 느낌을 준다. 완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앞 으로 전개될 일련의 기나긴 통 찰력과 느낌으로 이끄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자아내는 이 시는 경이를 암시할 뿐 절대로 완결된 형태의 시적 감흥을 우리 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를 떠올리며 나는 선적(禪的)인 가슴의 논리학, 가슴 의 이성을 한밤중의 산책에서 곰 곰이 생각한다. 우리의 속설에 는 달 속에 계수나무가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달을 운치 있 게 계월(桂月)이라고도 하고, 8월 을 달리 일컫는 말로서 계월( 桂月 )은 계수나무가 꽃이 피는 시 기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런 계월을 8월의 한여름 밤에 운동 장을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나는 느끼게 되었다. 8월의 폭염에 지 친 노인들이 중랑천에 위치한 살 곶이 운동장을 한밤중에 대화하며 쉼 없이 돌고 있었다.

개중에 어떤 노인이 늦잠을 자서 지금 나왔다는 말이 들렸다. 새벽 두 시도 안 되었는데 늦잠을 자서 지금 나왔다니. 노인들의 발걸음 을 닮은 살금살금한 대화가 나 의 예상치를 벗어나서 엉뚱한 대 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 다. 그러자 나도 발을 꽉 죄고 있 는 운동화를 벗고 맨발로 운동 장을 걷고 싶어졌다. 처음엔 운 동화를 벗고 운동장을 걷기 시 작하자 모래에 찔려서 발바닥을 움츠리게 되었다.

8월 한밤중의 운동장엔 올해 가장 커다란 슈퍼문이 떠 있었 다. 기사에 따르면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에 두 번 째 뜨는 달을 ‘블루문’이라고 하 는데, 다음 블루문은 무려 2037 년 1월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슈퍼문 아래를 걷는다고 생 각하니 ‘블루문을 보면 행복해진 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모래에 찔리던 발바닥이 차츰 달콤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노인들이 오래 살려고 맨 발로 걷는다는 편견이 차츰 사 라져갔다. 운동장을 돌면서 블 루문을 바라보다가 달에 가득한 그늘의 모양이 계수나무를 닮았 다는 느낌이 마음에 진하게 느 껴졌다. 《문학과 종교》에 나온 인간의 정신적 중심을 인간의 육 체적 기관이 상징하며 가슴속에 있는 중심부와 다른 사람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맺는 출구, 즉 인간의 전체를 파악하는 정확 한 기관이 가슴이라는 말이 실 감 났다.

나는 한밤중에 맨발로 걷는 운동장의 견지망월(見指忘月 )에서 이 가슴, 그리고 하늘나 라로 떠난 어머니가 계수나무 아 래 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인. 제13회 유심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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