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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쪽 어디에선가 게르니카가 자행되고, 그 야만과 참혹을 누군가는 촬영하여 전시하고 판매하고, 또 누군가는 교양인의 안목으로 전시장을 찾는다. 폭발음 속에서 반쯤 찢긴 치마춤과 끝까지 아이를 놓지 않으려는 한 여인의 손등에 밴 핏발, 멀찍이 나동그라지고 짓밟힌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신발, 숨 몰아쉬면서도 손가락 세 개를 꼿꼿이 펼쳐 든 청년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햇발. 그 처연한 발들이 클로즈업된 작품을 쓱 훑어본 나는, 전시장 2층 레스토랑에 앉아 노을이 잠드는 시간을 뒤적거리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 시집 《하얗게 말려 쓰는
내 마음의 시
김선아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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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꼭꼭 눌러 담지 않는다흘려보낸다물이 하늘 그릇에 넘쳐 비로 흐른다계곡에서 강으로 바다로 흘려보낸다슬픔도 마음에 넘치면 눈물로 흐른다강에서 바다로 넘친 물이 눈물 속에 넘친다한 방울 눈물 속엔 강이 흐르고바다도 함께 출렁거린다 — 시집 《마법의 문자》(미네르바, 2022) 동시영2003년 계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사냥》 《낯선 신을 찾아서》 《십일월의 눈동자》 《비밀의 향기》 외 다수. 한국관광대, 중국 길림 재경대 교수 역임. 동국문학상 등 수상.
내 마음의 시
동시영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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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은 속이 시꺼먼 이중인격자들이야. 자기들은 잡석이 아니고 오석이라고 으스대지만 보잘것없는 돌일 뿐이야. 처음부터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고집불통들이야. 이내 깨어져 모래가 될 형국인데도 끝까지 버티고 입을 앙다문 벙어리들이야.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비정한 인간들이 울려대는 저 단단한 쇳소리를 들어봐. 죽어서 반질거리는 오석에 새겨놓은 공적은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야. 무덤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처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욱거리는 오만한 몽상가들아. — 시집 《꿈꾸는 물》(도훈, 2019) 권달웅19
내 마음의 시
권달웅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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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도 오래 바라보면가까운 산이 된다길을 갖다 버리니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이름을 확 떼어내자진짜 내가 거기 있었다하늘도 빈손으로 받들면저리 가벼운 것을비울 것 다 비우자무거워라. 이슬 한 방울— 시집 《구름 농사》(동학사, 2022) 유재영1973년 등단. 시집 《한 방울의 피》 《지상의 중심이 되어》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와온의 저녁》 등. 중앙시조대상, 편운문학상, 이호우문학상, 가람문학상 등 수상.
내 마음의 시
유재영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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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 강원도 산골학교 운동회 날탕! 달리기 경주 신호가 울리고 저마다 일등을 하려고 내달리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누구나 할 것 없이 멈칫멈칫한다. 웬일? 저만치 뒤뚱뒤뚱 힘겹게 달려오는 장애동무가 가까스로 일행 무리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어깨를 겯고 하낫 둘! 하낫 둘! 함께 나란히 결승선에 들어섰다. 이 가슴 저린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들 박수치고 와와! 함성을 내지르며 환호와 감탄 연발만국기 휘날리는 하늘 눈부시게 참 맑다— 시집 《동행》(푸른사상, 2022) 박시교1970년 〈매일신문〉과 《현대시학》으로 등단
내 마음의 시
박시교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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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가는 길은 억새풀 바다였다천 이랑 만 이랑 벌판을 덮던 물결황량도 아름다울 손, 그 가을의 억새 멀리 해으름은 솔푸른 그늘에 젖고신간고서들 나란히 꽂힌 방안억새풀 우짖는 소리 승속이 따로 없었다 — 시집 《향기 남은 가을》(상서각, 1989) 김상옥1920~2004.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초적(草笛)》 《고원(故園)의 곡(曲)》 《이단(異端)의 시(詩)》 《김상옥 시선》 등. 노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내 마음의 시
김상옥
2023.02.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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