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위한 마음의 변화 일으켜야 —

포스트코로나 시대, 다람살라 풍경

티베트 망명정부가 위치한 다람살라. 히말라야산맥 중턱인 해발 1,500미터 산간의 이 작은 마을은 그동안 전 세계 순례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유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인적이 끊겼던 이곳이 올해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가 잠시나마 잠잠해지자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사가다와(Saga Dawa)법회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이곳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 정부가 지난 6월 해외여행객에 대한 입국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 같은 흐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다람살라의 경우 여행 규제 완화와는 무관하게 밀려드는 사람들로 한밤중까지 큰 혼잡을 빚고 있다. 50도에 육박하는 때 이른 더위를 피해 이곳을 찾은 인도 관광객들이 다람살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람살라는 세계의 영성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인도 중산층들이 찾는 매력적인 휴양지로 변모하고 있다.

인도는 경제개발 흐름을 타고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012년 1,496달러에서 2022년 2,318달러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휴양과 관광의 수요가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다람살라가 인도 중산층의 인기 관광지가 되고 있다. 다람살라에 대한 산업자본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인도 재벌 중 하나인 타타모터스의 자회사인 타타엔터프라이즈는 지난 1월 다람살라에 케이블카 공사를 완료하고 운영을 시작했다. 다람살라 아래쪽(Lower Dharamsala)과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있는 위쪽(Upper Dharamsala) 맥그로드 간즈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다람살라 스카이웨이’가 그것이다. 조용한 순례객의 도시였던 다람살라가 어느새 밀려드는 인도인들로 여느 관광지처럼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다람살라에 모여 사는 티베트인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티베트 망명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인도를 찾던 망명객들의 수가 10년간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줄어드는 망명객과 더불어 출가자 수도 감소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한국 등에서 티베트불교를 배우기 위해 다람살라 불교학교에 등록했던 학생들도 크게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변화도 감지된다. 다람살라에서 이들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많지 않다. 이들은 인도인들이 차지한 상권의 주변에서 작은 숙박업소를 운영하거나, 기념품 판매, 식당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티베트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세계 각국이 내미는 특별이민 비자다. 어렵게 비자를 받아 이곳을 떠나 교육과 이주의 기회를 잡는 것이 티베트 젊은 세대의 바람이 되었다.

코로나로 중단됐던 다람살라 남걀 사원의 법회는 2년여 만에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다람살라의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소리 없는 변화가 시작된 다람살라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곳을 흔드는 변화의 물결을 들여다봤다.

코로나 이후 첫 대면법회

티베트불교의 상징 달라이 라마 존자가 계신 다람살라의 남걀 사원. 매일 아침 이곳의 불자들은 사원을 둘러싼 꼬라길 순례로 하루를 시작한다. 꼬라(Kora)는 순회, 혁명을 뜻하는 티베트어다. 사원이나 유적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마음을 일깨운다. 손에는 작은 염주를 들고, 나지막한 소리로 만트라를 외우며 느리게 느리게 이 길을 순례한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피해 이곳으로 망명했다. 달라이 라마에게 다람살라의 거처를 마련해준 것은 당시 인도 수상이었던 자와할랄 네루. 영국인들이 휴양지로 선택했던 히말라야 산록의 작은 마을 다람살라는 조국을 떠나 이곳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로 인해 유명해졌다. 달라이 라마를 따라 망명의 길을 떠난 티베트인들도 이곳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달라이 라마에게 지난 2년은 새로운 시간이었다. 87세의 고령, 계속되는 건강 이상설에 코로나가 더해지면서 해외 일정은 거의 취소됐다. 남걀 사원에서 열리던 법회는 줌을 이용한 온라인 비대면 법회로 대체됐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온라인을 통해서 여전히 활발히 세계인들을 만나왔다. 교육자, 과학자, 종교인 등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그러던 중 코로나의 여파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제 대면법회에서 불자들에게 법문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 13일과 14일 이틀간 열린 부처님오신날 기념 법회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2년여 만에 달라이 라마 존자를 뵙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렬도 길었다. 오전 7시에 시작되는 법회를 기다리는 긴 행렬은 새벽부터 만들어졌다. 5천여 명이 넘는 불자들이 남걀 사원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날 열린 법회는 사가다와(Saga Dawa) 즉 티베트불교의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행사다. 사가(Saga)는 음력 4월에 가장 잘 보이는 별의 이름으로, 부처님을 상징한다. 다와(Dawa)는 한 달을 의미한다. 티베트불교는 티베트력 음력 4월 한 달을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열반일이 함께하는 달로 생각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부처님의 탄생에서 열반에 이르는 기념일을 따라 수행하고 공덕을 짓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사가다와에 행하는 수행과 공덕은 평소의 1만 배 이상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사가다와 기간에는 계율을 더욱 청정히 지키고, 육식을 금하며 지낸다. 스님들을 찾아 보시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고, 방생을 하는 것도 사가다와 풍습이다. 사가다와 법회가 열리는 날이면 인근 지역의 걸인들은 사원 주변으로 모여든다. 남걀 사원의 주변에 모여든 걸인들은 불자들의 자비심에 의탁해 또 하루를 지낸다.

올해의 사가다와 기념법회는 관세음보살 무상요가 관정법회로 봉행됐다. 관정법회는 한국인 불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티베트 불교도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법회다. 보살계를 수지하고 몸과 마음의 장애를 정화하는 의식이다. 마음속에 만다라를 떠올려 그 속으로 들어가 티베트 밀교 수행에 나서겠다는 발심 의식이기 때문이다. 관정(灌頂)이란 일체 중생들에게 본래 구족되어 있는 불성의 종자를 본존불의 가피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는 의식이다. 티베트불교를 수행하기 전에 제일 먼저 받아야 하는 입문식과 같다. 곧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주고받는 밀교 의식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 전에 받아야 하는 비자에 비유할 수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꼭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관정 의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열심히 참석한다. 왜냐하면 관정을 많이 받음으로써 그 가피력에 의해 이생의 악업이 소멸되고 선근을 키워, 내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복덕을 두루 갖춘 중생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관정법회에는 5천여 명이 넘는 스님과 불자들이 남걀 사원을 가득 메웠다. 달라이 라마 존자가 2층 법당에서 법문하는 내용은 1층에서도 대형 LED를 통해 볼 수 있게 했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 각국 언어로 통역되어 방송되는 것은 물론이다. 눈에 띄는 모습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불자들 모습이다. 한국과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 베트남, 대만 등에서 온 불자들도 관정법회에 참여해 계를 받고 보살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보편적 이성과 지혜를 강조

달라이 라마 존자는 법회 서두에서부터 보편적 이성에 기반한 지혜를 강조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했다. 불교는 논리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사회에서 서구의 지식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까닭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중생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가져야 함을 몇 번이고 반복해 강조했다. 보리심은 중생을 향한 이타의 마음이고, 그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대승의 첫걸음임을 힘주어 말했다. 티베트의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인 보살은 중생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법문을 하는 동안 달라이 라마의 존자는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어린 시절 스승들께 가르침을 받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문자로만 배웠던 무자성과 공성의 지혜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고도 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아침 일찍 열리는 다람살라의 법회는 중간중간 빵과 차를 나누어 준다. 빵이 먼저 나오자 달라이 라마는 “목이 메겠지만, 천천히 씹으며 법문을 들으라”며 웃음을 보였다. 약간은 거친 밀가루로 만들어지는 티베트 빵이 조금 심심한 맛이지만, 딱딱한 빵 덕에 튼튼한 치아를 갖게 됐다는 농담도 곁들였다. 자칫 무겁고 딱딱해질 수 있는 관정법회는 달라이 라마 존자의 유머 덕분에 부드럽게 마무리됐다. 달라이 라마 존자는 남걀 사원 바로 옆에 있는 관저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었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나서

관정법회가 열리기 전날, 다람살라 취재를 후원해주신 진옥 스님(여수 석천사 주지)과 함께 달라이 라마 존자를 친견할 기회를 얻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경호는 삼엄했다. 꼼꼼하게 짐과 소지품을 검색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을 접견하고 있었다. 어린이부터 팔순이 넘은 노인들까지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진심을 다해 이들을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티베트 사람, 인도 사람, 유럽인을 가리지 않았다. 누구든 만나면 환한 얼굴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전했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지고 이어졌다.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진옥 스님과 만난 달라이 라마 존자는 특유의 친밀감을 보여주었다. 권투를 하는 제스처를 하면서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표현했다. 머리를 맞대고 우리 모두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표시했다. 한국인 불자들의 신심에도 경의를 표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장수를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가급적이면 오랜 기간 이승에 머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인들이 우려하는 달라이 라마의 공백을 걱정하는 듯했다. 11월에는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회를 열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세월의 무상함은 달라이 라마 존자도 비껴가지 않았다. 접견 내내 달라이 라마 존자는 청력이 약해졌다며 비서에게 질문을 되물었다. 오랜 수행으로 불편해진 무릎은 걸음걸이를 어렵게 했다. 하지만 육신의 무상함 속에서도 달라이 라마의 자비심은 잦아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만나는 이들의 질문은 무엇이건 친절히 답했고, 눈 마주치는 누구에게도 연민의 시선을 잃지 않았다.

티베트불교가 맞닥뜨린 물신의 벽

달라이 라마 존자 친견과 사가다와 관정법회 취재를 마치고 며칠간 다람살라에 더 머물렀다. 티베트 스님들이 수행하는 토굴 수행처도 둘러보고, 따시종의 티베트 사원도 방문했다. IBD(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 티베트 승가대학 불교변증법연구소)를 찾아 학인 스님들의 교육과정도 살펴보았다. 오후가 되면 남걀 사원 마당에서 열리는 티베트 고유의 대론수업도 참관했다. 큰 소리로 싸우듯 토론하는 스님들의 수업은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10년이 넘게 수행하고 있는 한국 비구니 스님들도 만났다. 스님들은 수십 명에 이르렀던 한국인 스님의 수가 크게 줄었다며 걱정했다. 현재 IBD에는 2명의 한국인 비구니 스님만 남아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스님들은 티베트불교의 독특하고 치밀한 교학교육에 대해 소개했다. 티베트 스님들의 철저한 공부와 체계적인 승가교육 시스템이 가진 장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람살라가 놓인 상황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티베트 사람들과 출가자 감소 현상은 우리 불교만이 가진 고민이 아니었다. 한때 10만 명이 넘기도 했던 인도의 티베트인 수는 지금 7만 명 남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탈종교화와 티베트 인구 감소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다람살라를 휘감고 있는 물신(物神)의 바람이었다. 인도 산업자본의 끊임없는 투자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경관, 마구잡이로 들어서는 호텔과 유흥업소, 레스토랑은 고즈넉한 히말라야 산록의 작은 도시를 한순간에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게 만들고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티베트 망명객들은 이곳에서 인도의 자본주의를 만나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밀려드는 차량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스님들의 차담과 순례객들의 담소보다 술집의 노랫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온다. 물질과 자본은 이미 종교보다 더 큰 산맥이 되어 다람살라 앞에 서 있다. 이런 흐름은 이미 인도 북서부의 라다크에서도 목격된 바 있다.

모두가 궁핍하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그것이 고통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진 것의 차이가 극명히 대비되고 소비를 통해 감각적 욕망의 만족이 구현되는 자본의 사회 속에서는 다르다.

다람살라의 티베트 공동체는 안락한 욕망을 통해 스며드는 물신의 파도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듯 보인다. 죽음을 무릅쓰고 히말라야를 넘었던 망명자들의 공동체가 이제 맞닥뜨린 것은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신이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견결히 지켜온 티베트인들의 신심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다람살라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

 

유권준
reamont@naver.com. 동국대 지리교육과 졸업, 법보신문과 경향신문, 불교방송, 불교TV에서 기자와 PD로 일했다. 현재 불광미디어 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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