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사회에서 노인의 위상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다.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 대칭 개념이며, 질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 형성된 징후다. 노인이란 인생의 이러한 라이프 사이클에서 왕성기를 지나 쇠퇴기 또는 황혼기에 접어든 연령 계층을 말한다.

인생의 과정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가 있다면 노인에게도 네 가지 고통이 있다. 그것은 빈곤, 건강의 악화, 소외 그리고 고독이다.

첫째, 노인은 빈곤하다. 2020년의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소득분배 지표는 상대적 빈곤율 40.4%, 지니계수 0.376, 소득 5분위 배율 6.62배로 2016년 이후 모든 지표에서 소득분배 정도가 개선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 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주요 국가 은퇴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 통계(중위소득 50% 이하, 2019)에 따르면 한국이 43.2%로 가장 높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프랑스 4.4%, 캐나다 12.3%, 네덜란드 5.2%, 영국 15.5%, 스위스 18.3%)들의 평균 노인빈곤율은 14% 선인 데 비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월등하게 높은 것이다.

노인들의 노후 준비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2021년 56.7%로 2011년의 40.1%보다 높아졌다. 노후 준비 방법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48.4%로 제일 많고 예금, 적금 17.1%, 직역연금 11.1%, 부동산 운용 9.9% 순이었다. 또 생활비 마련 방법에서는 본인과 배우자 부담이 65%, 자녀 등 친척의 지원이 17.8%였으며 정부, 사회단체 17.2%였다. 본인과 배우자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근로 사업소득이 48.3%, 연금, 퇴직금이 35.1%로 노인이 직접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취업을 원하는 이유가 생활비 보탬이 53.3%로 일하는 즐거움 37.3%보다 월등히 높았다.

위의 통계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고령층은 대부분 빈곤하며, 또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며, 생활비 마련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하고 있고, 국민연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2022년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57만 원 정도이며,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임금은 월 27만 원이다.

둘째, 노인은 건강 악화로 인하여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제 기능이 원만하지 못하고 각종 질병의 이환율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인이 질병에 신음한다 해도 빈곤으로 인해 제때 양질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노부부만의 세대는 질병에 걸렸을 때 어려움이 있다. 2021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장기 요양 인정의 비중은 10.3%였고 인구 고령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60대는 1.7%, 70대는 7.1%임에 비해 80세 이상이 28.5%로 나이가 많을수록 증가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각종 질병에 취약해지거나 노화로 인한 건강 저하가 일어난다. 그러나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과거보다 수명이 늘어나고 기대수명 또한 길어져서 노후 건강이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모두가 무병장수를 꿈꾸지만, 사실은 유병장수 시대이다. 고령인구의 가속화에 따라 의료비 지출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2021년 84.5세로 30년 전인 1990년의 70.7세에 대비해 14세가 연장되었다. 이에 따라 노인 의료비 지출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전체 의료비 지출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인구 고령화, 그리고 노인의 건강증진과 질병 관리가 중요한 국가적 정책과제가 되었다.

2020년 현재 65세의 기대여명은 21.5년, 75세의 기대여명은 13.3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남자는 1.4년, 여자는 2.4년 더 높은 수준이다. 65세 여자의 기대여명은 23.6년으로 남자보다 4.4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장수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대개 3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1기는 탄생에서 30년 동안 성장하고 교육받는 ‘성장기’, 제2기는 30세부터 60세까지로 직업을 갖고 생활하면서 자녀를 키우는 ‘사회활동기’, 제3기는 약 60세부터 사망 시까지 일에서 물러나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노년기’이다. 이러한 노년의 삶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냥 늙는 것이 아니라 잘 늙는 것(Well-ageing)이 중요하다. ‘웰 에이징(Well-ageing)’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행복은 항상 유예되거나 아니면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많은 현자들이 말하듯이 ‘지금 여기(here and now)’가 중요하다. 노년이 무조건 가치 있다고 역설할 것이 아니라 노년이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가치들을 찾아내어 젊은 세대와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역할의 상실이다. 노인들은 가족 내에서 몰이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회로부터 냉대받고 있다. 노인의 역할 상실은 직장 퇴직으로 인한 역할의 상실을 포함하여 배우자 사망, 자녀들의 출가로 인한 역할 상실, 가까운 친구, 친지들의 사망으로 생기는 역할 상실을 들 수 있다.

2021년 65세 이상 고령자 중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44%였으며, 28.7%는 사회단체 참여 경험이 있으나 전체 연령층의 참여율(35.8%)보다 낮았다. 이는 나이가 들면 대인관계가 소원해지고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인간관계나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가 낮은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욕구를 실현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을 뿐이다. 따라서 노인들은 여가를 유의미하게 보내게 해야 한다. 사회적 역할을 촉진하고 본인의 생활 만족도를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봉사 참여를 위한 체계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넷째, 소외와 고독감이다. 노인의 소외, 고독감은 가족부양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부양은 물질적 부양, 심리적 부양, 신체적 부양이 있으나 특히 심리적 부양 문제가 가장 큰 작용을 한다.  서구의 노인들이 유년기부터 독립심이 내면화되어 자녀들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는 횡적(橫的) 가족관계라면, 우리나라는 종적인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관이나 역할 분담에서 갈등이 일어나기 쉽다.

스웨덴의 사회학자인 라스 토른스탐(Lars Tornstam)은 삶의 만족도가 높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하여 그들의 심리적 특성을 ‘노인초월(Gerontranscendence)’이라고 지칭했다. 노인초월은 첫째, 자기 존재와 늙어감의 실존적 상황을 우주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이다. 이는 이기적인 삶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후원하는 이타적 삶으로 변화시키면서 인생의 새로운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셋째, 대인관계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형식적, 피상적 관계가 아니라 진실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설정하고 사회적 역할과 대인관계에서 더 자유로운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토른스탐에 따르면 모든 노인이 노인초월에 이르는 것은 아니고, 약 20%의 노인들만이 우울과 불안,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노년기의 성숙한 과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문제를 논의할 때 유념할 만한 자료다.

 

2.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사회복지정책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효과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작동해왔다. 정부 주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복지는 따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엄청나게 빠른 경제성장으로 복지 욕구가 채워졌다. 그 결과 한국적 현상인 ‘지체된 복지국가’가 잉태되었다.

이승만 정부부터 전두환 정부에 이르기까지는 공공부조 중심의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주의적 최소 복지단계였다. 생활보호 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자격 있는 빈자(deserving poor)’들인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빈곤층에게 복지를 시행했다. 이후 등장한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사회보험 중심의 보편적 규제복지를 택했다. 이때 보편화한 사회보험 중심의 사회복지제도의 재원은 정부 지출을 최소화하고 사회보험을 강제화하였다. 말하자면 ‘수익자 부담의 보수주의 복지체계’였다. 그 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한국 복지는 선별주의적 사회안전망 확충 단계였다. 이때의 복지체계는 ‘미국 따라 하기’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 강화가 특징이었다.

이제 한국의 자본주의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는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양극화다. 고령화의 심화는 세대 간 부담의 불공정을 낳고, 장수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버리는 문제로 이어진다. 세대 간의 형평성 그리고 부담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복지국가의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 문제를 거론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는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복지 발전의 수준에 맞는 세금, 보험료, 이용료의 납부를 통해서 부담과 복지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과 유럽대륙의 고부담 고복지 전략, 앵글로 · 색슨 국가들의 중부담 중복지 전략, 동남아시아 국가의 저부담 저복지 전략은 이러한 원칙에 부합된다. 그러나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저부담 고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복지 포퓰리즘이다. 이는 국채 발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현세대는 잔치를 벌이고 후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불공정복지는 미래가 불안하다. 이제부터라도 중부담 중복지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사회복지란 무엇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복지’라는 개념은 한마디로 ‘행복’의 내용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말도 복지를 의미한다. ‘사회복지’를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본다면 첫째, 요보호 대상자(Client)를 위한 시책, 제도, 법률, 사업을 말한다. 둘째는 위의 요보호 대상자인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 등에다 소득보장, 의료보장, 교육, 노동 등을 합친 개념을 말한다. 셋째는 가장 넓은 의미로서 일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복지국가(Welfare State)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의 일상적 사회보장과 위험을 해결하고 복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간이 복지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강국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통계마다 다르긴 해도 145개국 중 대략 70위 내외이다. 경제 수준과 행복의 순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비경제적, 비물질적인 마음의 복지가 더욱 중요하다.

복지국가는 현대판 이상향이다. 인간의 온갖 고통과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이상이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어디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철학자가 지배하는 국가를 염두에 두었다. 이후 토머스 모어(Tomas More)는 유토피아(Utopia) 사회를 상정했고, 장 자크 루소(J. J. Rousseau)는 자연법에 기초한 인민과 군주와의 계약구조를 이상적 국가의 모델로 생각했다. 중국 한나라 장량(張良)이 찾아간 장가계, 《허생전》에 나오는 어느 섬,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릴라’, 불교의 ‘극락정토’, 기독교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도 복지적 이상국가 또는 이상세계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과연 가능한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지점에서 노인문제만을 놓고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복지국가라 하더라도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우선 한국의 노인문제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는 전인구 5,162만 8천 명 중 17.5%인 901만 명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는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이행되는 속도는 아마 한국이 제일 빠를 것이다. 불과 7년에 불과한 시간이다. 또 부부 합계출산율의 2022년 예상은 0.71명이다. 이 통계 역시 세계에서 제일 낮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저출산 고령사회가 진행되면서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노인들은 대한민국 최근세사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낸 분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80대, 90대 노인들은 일제식민지 시대, 6 · 25전쟁, 산업화 이전의 배고픈 시절을 경험했다. 지금 65세가 되어 노인이라는 범주에 든 노인들은 선배 노인이 거쳐온 환경을 전혀 모른다. 같은 노인이라도 ‘동시대인의 비동시적 존재’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없었으며,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 자녀들을 양육하다 보니 한마디로 빈털터리 세대가 되었다. 예부터 내려온 유교 사상에 기초한 가부장적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첩첩산중에 혼자 버려진 듯한 모습이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된다. 우선 노동력이 노쇠해진다. 그리고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다. 소비가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청년들은 노동생산 인구이기에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노인들은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고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취급당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죽으면 동네 박물관이 없어졌다고 슬퍼하지만, 최첨단 정보화 디지털사회인 한국에서 쓸모 있는 정보가 없는 노인은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이는 무조건 오래 사는 것, 장수문화를 구가하는 것 대신에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로마 시대의 문인, 정치가, 웅변가로 활약했던 키케로(CBC 106~ 43)는 그의 저서 《노년에 관하여》에서 노년기가 청년기, 장년기에 비해 취약한 점 4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노년은 노인의 활동을 저해한다. 둘째, 노년은 신체를 허약하게 한다. 셋째,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빼앗아 간다. 넷째, 노년은 죽음과 가까이 있다. 키케로는 소외된 노년기의 세대적 특징을 철학적 테제로 끌어냈다. 이는 노화에 관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메시지이다.

한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 de Beauvior)는 생명체의 숙명적 노화가 현실이긴 하나 그 운명을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원시사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노년이 사회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지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해 있다. 의료기술은 노화를 늦추는 데 상업화되어 있으며, 미디어는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병약한 노인을 조명하고 있다. 우리는 노인 집단의 생동감 있고 생산적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담론을 긍정적 의미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노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동경하거나 연장함으로써 가능한 한 노인의 모습을 감추려는 사조가 있다. 이러한 부류를 우리는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eing)’라고 하면서 ‘신노년’을 구가하기도 한다. 성공적 노화는 잘 늙는 것(Well-ageing)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인지능력이 있으며 무능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노인 인구가 신노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노년이란 첫째 활동적이며 바쁜 노인이다. 둘째, 성공한 노년의 역량을 가지고 모든 것을 개인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노년이다. 셋째, 이러한 결과는 신노년에 대한 찬사와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무능한 처지의 노인을 비롯한 저소득층, 장애노인 등을 더욱 주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노년이 무조건 가치 있다고 역설하는 것은 문제다. 노년이기 때문에 갖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젊은 세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봄철에 피는 꽃과 안개도 아름답지만, 가을의 단풍 또한 아름답다.

이를 위해 최근의 노년학은 새로운 연구와 접근이 진행되고 있다. ‘노년 공학(Gerontechnology)’이 그것이다. 이는 노인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적응문제를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해결함으로써 노인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부양자, 케어자의 최적 생활을 추구하는 시도이다. 노년 공학이야말로 21세기 초고령사회, 장수사회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분야이다.

 

3. 노인(사회)복지와 불교

불교는 이타사상(利他思想)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와 동근(同根) 관계다. 대승불교의 이상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도 결국 사회복지가 근간에 깔려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불교는 정신적 차원의 중생구제를 중심으로 민중에게 다가갔고, 실천적 차원의 접근은 거리가 있었다. 이제 종교는 대중에게 군림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중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하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

1) 사회복지와 불교

오늘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차원의 정립과 기술적 차원에서 방법론의 조화가 중요하다. 불교의 이념은 인간구제이고 자비심이 핵심을 이룬다. 이 인간구제와 자비의 대상은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 중생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서 ‘정불국토 성취중생(淨佛國土 成就衆生)’을 이루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으로 대승보살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정신이다.

《열반경》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을 강조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를 계승해 중국에서는 ‘초목성불론(草木成佛論)’ 사상까지 전개되었다. 이는 자비의 손길이 유정물은 물론이고 산천의 초목과 무정물까지 포용하는 개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화택(火宅)과 같은 인생의 고뇌와 생로병사의 세계에서 신음하는 일체의 중생을 불교의 가르침으로 구제한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화엄경》에도 사회복지 사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보현행원품〉은 중생을 구원하는 행위가 진정한 수행이라며 이타행을 강조한다. 또 《반야경》에서도 생사고해를 넘어 열반의 피안에 이르는 보살 수행의 행법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의 보살정신은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정신을 고취한 것으로 불교복지의 근본이념이다. “중생이 앓기에 나도 앓는다”는 《유마경》도 보살정신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법화경》의 보살도 실천 대상은 타방세계가 아니라 사바세계이며 실천의 대상도 지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구제에 있다.

이러한 대승 경전의 가르침에 의하면 불교사회복지의 출발은 타인의 아픔, 사회적 고통이 나의 아픔이며 나의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공감하는 동체대비 사상이 곧 불교사회복지의 실천이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타적 행위는 불교의 자비사상에서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존엄성 존중은 인간의 주체성 확립과 불성 계발의 기반이 된다. 불교사회복지 역시 이러한 자비사상을 발휘하여, 사회적 공업(共業) 중생인 사회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나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가치는 사회복지의 역할과 사명의 성격을 규정하며, 사회복지가 어떤 것을 지향하며 무엇을 위해 실천하는가는 그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사홍서원에 “가없는 중생을 모두 다 제도하고자 서원”하는 것이 불교사회복지의 핵심이다. 현대세계에서 인간의 가치와 삶의 평등, 존엄성, 자율성, 기회균등과 사회연대(solidarity)로서 가족과 사회에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사회복지의 세계이다.

2) 노인복지와 불교 이념

현대사회에서 노인문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를 거론할 수 있지만 다음 네 가지가 가장 직접적이다. 첫째는 인구의 노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이다. 둘째는 가족구조의 변화이다. 핵가족제도를 비롯한 가족의 해체 현상으로 노인이 가부장적 권위를 잃게 되고 자녀와 별거하게 되어 부양 문제가 발생했다. 셋째는 산업화, 도시화의 경향으로 인한 도시 과밀인구, 무주택가구, 저임노동자 양산, 가족의 분화 현상이 노인의 가족부양을 곤란하게 한다. 넷째는 세대 간의 가치관 격차를 들 수 있다. X세대, Y세대, Z세대, MZ세대로 지칭되는 신세대의 가치관은 노인 세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다. 같은 지구촌에 살면서 외국인과 사는 형태이며 똑같은 사회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상이하다. 부모 세대는 효(孝)를 배우고 실천했으나 젊은 세대는 서구적 가치관과 동양적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카오스(Chaos)적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서 노인문제는 인간의 고(苦)와 별개가 아니라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된다. 생로병사뿐만 아니라 모든 고의 원인을 아함경에서는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가 생기고, 다른 하나는 범부(凡夫)의 무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범부로서 생존하는 데는 모든 것이 다 고이며(苦諦), 그 고가 집기(集起)되어 그 인(因)이 곧 무명(無明)이라는 것이다(集諦). 늙음의 고(苦) 또한 정신적 어두움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그 근본적인 극복은 무명의 멸진(滅盡)을 통해 가능하다.

불교에서는 노인을 미망(迷妄)의 중생 중 한 개체로 보고 생로병사의 한 과정에 있는 업(業)의 상속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인간은 윤회하기 때문에 현세의 노인은 직접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우리를 양육해준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모두 부양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 이를 위해 불교는 모든 고통의 지멸과 적멸위락을 위한 여러 가지 수행 덕목을 제시한다. 이를 노인복지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섭법(四攝法)

사섭법이란 보살의 이타행을 중요시한 것으로 보시,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포함하며 중생을 잘 섭애한다는 것이다. 첫째 보시섭은 재와 법을 베풀어 중생과 유대를 갖는 것이고, 둘째 애어섭은 부드러운 말로써 상대방을 교화시키는 것이고, 셋째 이행섭은 신(身), 구(口), 의(意)의 모든 행위가 유익하도록 하는 것이며, 넷째 동사섭은 중생의 상대방에 서서 도와준다는 뜻이다.

② 자비사상(慈悲思想)

불교의 사회복지 기능의 가치는 자비사상이다. 《대지도론》에서 “자비는 불교 수행이 뿌리(慈悲是佛道之根本)”라고 하였다. 자(慈, maitrī)는 기쁨을 주고 비(悲, karuna)는 고통을 없앤다는 의미다. 이러한 자비는 동체대비를 의미한다. 이는 자타(自他)의 대립을 부정하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이다. 즉 남과 내가 둘이 아닐 정도로 같다는 것이다.

③ 보시사상(布施思想)

보시는 사람들에게 재물을 시혜함이다. 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이라 하여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중 보시를 으뜸으로 여긴다. 보시바라밀은 재시(財施), 법시(法施), 무외시(無畏施)를 통해 탐심과 집착심을 떠나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또 사시(四施)로서 필시, 묵시, 경시, 설법시도 있다. 이 밖에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하여 안시, 화안시, 언사시, 신시, 심시, 좌시, 방사시를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보시의 구체적인 예시는 사회복지의 실천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④ 복전사상(福田思想)

자비의 실천에 목적을 두는 복전은 복덕을 낳는 밭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불법승의 3보, 부모, 고통받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이들을 도와주면 복이 생긴다고 해서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 알의 종자를 심으면 가을에 수확을 거두는 것과 같이 보시는 종자요, 밭은 보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부처님이나 수행자가 바로 복전이다. 이 개념을 확대하면 자비보시의 대상이 되는 노인이나 가난한 사람들 또한 복전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한다 하여도 이 과정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는 것은 큰 공덕이 된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덕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복밭이 된다. 이는 자비 보시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이타의 개념이 아니라 나의 복덕을 증장시켜주는 자리(自利)의 계기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대승 경전에서 보살도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동기가 된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과 그 행도는 사회복지, 노인복지 실천에 매우 중요한 기초사상을 제공한다. 보살도의 행도덕목(行道德目)은 행복의 밭 즉 복전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축생에게까지도 보시하는 것이다. 《범망경》에도 복전을 언급하고 있는데 시물복전(施物福田), 간병복전 등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 보시에 이르는 것까지 모두를 복전이라 했다. 노인복지의 관점에서 볼 때 복전 사상은 노인복지의 이념적 기초라 할 수 있다.

⑤ 지은보은사상(知恩報恩思想)

불교에서는 오종대은(五種大恩)이라 하여 나라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이웃의 은혜, 친구의 은혜를 강조한다. 절에서는 아침마다 종을 치면서 은혜를 잊지 말고 갚아야 한다고 염불한다. 사실 인간은 이웃이나 사회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는다. 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 보은이고 이를 알고 있는 것이 지은이다. 지은보은사상은 동양적인 윤리관과 사회연대주의를 기초한 것으로 보은사상은 적극적인 복지의 실천이다. 보은의 사상은 상하관계의 종교윤리가 아니라 횡적, 평등의 사회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⑥ 생명존중사상(生命尊重思想)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는 “산천초목 실개불성(山川草木 悉皆佛性)” 사상이다. 생명에 관해 우리는 불살생의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존중하고 성불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생명은 윤회의 법칙에 따라 생사와 윤회를 같이한다. 모든 생명은 나의 부모이고 육친 권속이다. 이들을 보호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불교도의 의무다. 계율은 이를 강조하여 생명존중 사상과 방생을 비롯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4. 노인복지를 위한 불교의 역할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가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능엄경》에 이르길 “알고 행하지 않으면 무식한 자이다. 이는 배고픈 자가 음식 이름을 많이 외운다고 해서 배가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보살은 중생이 없으면 부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복지, 노인복지 활동은 보살행이고, 수행이며, 기도이고, 염불이며, 참선이기 때문에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중생 없는 불교가 존재할 수 없듯이 보살행 없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의 노인복지사업도 모든 역량을 집결해 문제해결에 매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불교는 복지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불교가 가진 잠재력이나 그 가능성에 비하면 아직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불교의 외적 요인으로 사회와 개인의 세속화 경향, 다종교사회, 서구화의 급격한 진행, 불교 신도들의 기복적 성향,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의 문화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과정에 편승하여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불교의 내적인 요인으로 한국불교의 득도수행 중심의 전통이 자비행을 실천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또 사회복지, 사회봉사, 노인에 대한 봉사 등이 종단의 무관심과 경시에 의해 신도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종단의 분규, 승려의 일탈행위 등이 종단의 위상에 손상을 가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기능, 사회복지 활동에 제약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복지가 포교의 가장 좋은 방편이라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여러 종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제 활동을 통해 종교적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다. 사회복지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자신들 종교의 고유한 기능으로 활용함으로써 종교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 부산물로 포교, 선교 활동의 극대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복지에 대한 종교의 참여는 간접적 포교 효과는 물론 당사자인 사회적 약자에게는 결정적인 포교 효과를 지닌다.

이상적인 승가상으로 복지활동 등을 통해서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실천 수행자상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종교기관의 재정 지출의 큰 부분은 교당 신축이나 포(선)교 활동이었고,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대개 2%부터 많게는 8%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단 외적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요구나 변화를 파악하면서 국가의 복지정책과 연계해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하드웨어라면 불교종단의 복지사업은 소프트웨어로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또는 노인복지를 위한 불교의 역할 중 몇 가지 사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대만의 자제공덕회와 한국의 연꽃마을 사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자제공덕회는 노인복지를 전문으로 하는 봉사단체는 아니지만, 이 단체는 복지 활동을 통해 넓게는 종교의 본질적 가치를 실천하고 좁게는 요보호 대상자의 행복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① 대만 자제공덕회

대만 자제공덕회는 1966년 증엄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창설한 단체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자 증엄 스님은 가난과 죽음 그리고 질병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다. 그녀는 “가난한 이를 돕고 부유한 이를 교육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자제공덕회를 창립했다.

자제공덕회는 1966년부터 빈민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 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해 빈민 의료검진 시설을 화련시에 건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운영을 시작했다.

자제공덕회는 불자들의 공양, 시주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업을 통해 자체적으로 운영비를 마련하고 독립적인 경영을 해오고 있다. 자제공덕회 스님들은 대중공양도 받지 않으며 자제위원들은 모든 경비를 자부담으로 하고 자원봉사와 모금활동으로 자제공덕회를 운영한다. 그리고 매월 정기적으로 전 세계 400만 명의 후원회원에게 경비사용 내역을 공개한다.

자제공덕회는 국제구호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을 진두지휘하는 증엄 스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강조한다. 또 “한 사람의 손이 1,000명의 손을 움직인다.”는 믿음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손길이 되어 이 땅에 자비희사의 꽃을 뿌리내리고 있다. 자제공덕회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재난과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 달려간다. 지진이 일어난 현장에도 제일 먼저 자제공덕회 봉사대가 도착하고, 미국의 9 · 11사태 때에도 자제공덕회 봉사대원이 파견되었다.

증엄 스님의 자제공덕회는 ‘인간불교’에 대한 제창과 단순히 사람들의 육체적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뇌를 제거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우리나라에도 앞장서서 재난구제와 복지 활동을 펼치는 불교 봉사단체가 많지만 자제공덕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② 연꽃마을

고(故) 김각현 스님에 의해 창립되고 운영되어 온 연꽃마을은 서울 18개소, 경기도 41개소, 대구 1개소 도합 65개의 시설을 운영하며, 종사원 수가 2,800여 명에 달한다. 복지시설은 주로 노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장애인시설, 쉼터, 푸드뱅크, 아동시설 등 복지영역 전반을 망라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 자매 법인 국제연꽃마을도 운영하고 있는데 베트남 종합복지타운, 베트남 한글학당, 직업훈련원, 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각현 스님은 평소 베트남의 ‘라이 따이한(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염두에 둔 시설을 베트남에 세웠다. 또한 연꽃마을 노인작품 전시회를 하면서 노인들의 예술문화 감각을 일깨우고 성취감을 고취시키며 삶의 가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왔다. 더불어 ‘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효사랑 마라톤 대회, 효도 큰잔치를 하여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효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불교단체에서 노인복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불교복지단체가 좀 더 효율적인 사업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사회혁신에 맞추어 조직혁신을 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복지는 다양한 복지 요구(needs)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에 대응하는 조직혁신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체격에 알맞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현대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 진보의 시대이다. 현재의 사회복지 실천 현장은 기술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지 현장에서 지능 정보기술의 활용을 위한 스마트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 종사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교육, ICT 활용 프로그램 개발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매너리즘이나 형식적인 서비스를 떠나 ‘따뜻한 복지’를 실천해야 한다. 따뜻한 어머니 마음 같은 복지 마인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정신적 모토는 임제 선사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로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정신적 자세가 필요하다.

노인복지를 위한 불교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서 종단에서는 중앙종무기관, 교구, 단위사찰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에 알맞은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또 기존의 불교 노인복지기관과 시설의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고 자원봉사자, 후원자를 양성해야 한다.

노인이 되면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노인의 사회봉사 인구는 전 노인의 5%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불교계에서 산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자원봉사 활동을 체계화함으로써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고 주민 공동의 목표를 구현하며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 체계와 운영형태, 자원봉사 센터를 재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인의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자신의 건강을 도모하고 남의 어려운 사정을 돌봄으로써 상대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 노인 자원봉사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찰 중심의 자원봉사센터 설치와 봉사영역관리, 대상자 모집 및 자원봉사 노인에 대한 교육, 훈련 등이 필요하다.

불교계가 노인을 활용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를 대대적으로 실행한다면 신도의 증가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찰에서는 활성화 차원에서 자원봉사 프로그램 개발과 활동 지도 등의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5. 결론

불교의 근본정신은 인간구제이고, 자비실천이다. 이 인간구제와 자비의 대상은 고(苦)를 겪는 중생이다. 고통에 신음하는 일체중생을 자비로 구호하는 것은 불교사상의 바탕이다. 한마디로 자비실천이 없는 불교는 불교라고 이름할 수 없다. 예컨대 《화엄경》 〈보현행원품〉은 ‘보살도의 실천이 없이는 보리를 이룰 수 없다(以普賢行悟菩提)’라고 강조한다. 대승보살이 불도를 완성하는 것은 보현행 즉 어려운 이웃에 대한 자비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런가 하면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은 일체중생이 모두 미래의 부처님이므로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존중하겠다고 한다. 대승불교의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비실천을 강조하는가를 알게 해준다.

실제로 중국과 한국의 불교 역사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많은 활동이 있었다. 승단과 승려를 위한 공양 행사의 하나로 국가에서 무차법회(無遮法會)나 반승법회(飯僧法會)를 시행했으며, 일반 민중에게 보시를 행하는 자혜원 같은 기관은 국가의 지원 아래 불교계가 운영하던 복지시설이었다. 이는 불교가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활동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단위 사찰, 또는 불자 개인적으로 행한 복지활동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에는 정수 법사가 추운 겨울에 출산한 산모를 위해 가사 장삼을 벗어주고 절로 돌아왔다는 미담을 싣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는 이름 없는 승려들조차 어떻게 자비를 실천했는가를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에도 여전하다. 초파일이나 성도절이 되면 절에 찾아오는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공양을 대접한다.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자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사회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복지활동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는 최악의 빈곤이나 질병에 대한 사회보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방법은 매우 부족하다.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인복지정책으로는 소득보장, 건강보장, 사회서비스 정책이 필요하고, 민간 차원에서는 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 프로그램의 실행 주체는 노인복지관, 사회복지관과 사회복지시설의 확충이다. 다시 말해 잘 먹고 잘사는 노인은 논외로 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힘들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불쌍한 노인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불교적 차원의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

불교계가 형편이 어려운 노인에 관한 사회적 보살핌에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론적 얘기는 수없이 많이 오간다. 그러나 철학적, 관념적 차원의 담론을 떠나 현실적인 대응 방안은 사실 손에 잡히는 것이 별로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노인문제에서 점점 큰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빈곤 못지않게 소외와 고독이다. 전국의 68,000개 경로당이 있지만 여기서 노인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시간 때우기 프로그램이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점은 불교가 주의를 기울여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정부의 노인을 위한 여가정책이 빈약할뿐더러 이들이 사회 속에서 통합적 역할을 기대할 수가 없는 현실에서 불교는 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노인에 대한 맞춤형 복지 정책을 새롭게 구상하고 그 복지의 실행은 불교 이념적 차원을 전제로 각종 프로그램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노인복지시설 외에도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은 불교노인복지의 새로운 과제다. 노인을 위한 불교계의 복지와 문화는 앞으로 더 많은 정책적, 행정적, 신행적 차원의 배려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경문(經文)에만 남아 있는 자비복지를 현실에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

 

황진수
bohwa223@hanmail.net 동국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원 졸업(복지행정 박사). 한성대 교수, 위덕대 석좌교수, 한국노년학회 회장, 대한노인회 선임이사 등 역임. 주요 저서로 《행복한 노년의 삶은 무엇인가》 《사회복지행정론》(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대한노인회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 한성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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