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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는 반세기 동안의 역사적인 뿌리를 갖고 누적된 것이다. 그간 정치 ·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평화통일의 문제에서 비켜나더라도, 이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다뤄야 하는 조계종단 등 불교계는 최고지도자의 책임감 부재와 교단의 이해관계에 갇혀 참여적 기회마저 놓친 바 있다. 그간 국민과 불자들의 적극적 호응이 있었음에
불교와 평화
이지범
2018.12.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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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 일본의 반전사상일본의 근대를 관통하는 핵심어의 하나는 전쟁이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의해 탄생한 신정부는 유럽 문명을 추종하여 부국강병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당시의 유럽이 그랬듯이 약육강식의 근대는 대외침략을 통해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의 국가적 사명이었다. 국가를 확대하는 것, 힘없는 나라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야말로 국가
불교와 평화
원영상
2018.12.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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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워다야 평화운동을 중심으로1. 머리말전쟁과 평화는 분노와 자애로 풀이할 수 있다. 그동안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일으켜 왔으며,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힘과 전쟁의 논리에 의해 단정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인류의 역사 속에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종교를 통해 평화가 주로 언급되어 왔다. 하지만 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
불교와 평화
담마키띠
2018.12.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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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를 위한 틱낫한의 제안여는 말: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습니다.”불교는 평화의 종교다. 하지만 불교는 평화의 때, 평화의 땅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붓다가 살았던 시대에는 경쟁하던 도시왕국들 사이의 전쟁이 격렬했다. 특히 무기와 전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전쟁은 이전보다 더 파괴적 양상을 보였다. 전쟁 동안 인간을 죽이는 물리적 폭
불교와 평화
정경일
2018.12.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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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붓다의 자식 사랑 권유《숫타니파타》의 《자애(慈愛, mettā)경》에 다음과 같은 붓다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흡사(yatha)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듯이, 그렇게 모든 생명에 대해(sabbabhūtesū) 무량의 마음(mānasaṃ aparimānaṃ)을 일
불교와 평화
허우성
2018.12.2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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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평화란 전쟁이나 갈등 없이 평온함을 말한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제발 전쟁만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몸을 떤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바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선 먼저 내가 평화로워야 한다. 내가 평화로운 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라 할 수 있다. 열반은 곧 적정(寂靜)이며, 적정은 산스끄리뜨 샨띠(ś
불교와 평화
이철헌
2018.12.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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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지금 세계에는 폭력과 평화가 교차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만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향하여 어렵지만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판문점에도 무장병력이 철수하고 사람, 정보, 물류가 휴전선을 넘어 오고 갈 기운들이 무르익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면전의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인류는 역사 이래, 정확하게 말하자면 농경시대 이후 파멸과
불교와 평화
이도흠
2018.12.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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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불교는 오랫동안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로 인정받아왔다. 이렇게 불교가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로 인정받아온 데에는 불교가 초기불교 시대 이래로 종교를 이유로 전쟁을 일으킨 역사가 없다는 것에도 기인할 것이다. 즉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역사를 가진 다른 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불교를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역사를 찾기 힘든 것이다.또한 불교에서 불
불교와 평화
장성우
2018.12.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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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 스님과의 인연은 칼에서 시작되었다.2004년 여름이었다. 만해마을에서 오현 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은 칼 두 자루를 만지고 계셨다. 영국왕실에서 받았다는 그 큰 칼들에는 ‘로빈 후드(Robin Hood)’라는 글자와 영국왕실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처음 스님을 만났을 때 성형외과 의사인 내 직업을 ‘칼잡이&rsqu
설악 무산스님
황건
2018.09.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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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부답의 속뜻1984년 전후의 어느 해였다. 오현 스님(그때는 필명인 오현 스님으로 불렸다)이 내가 근무하는 〈불교신문〉에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오셨다. 지난날의 희미한 기억 가운데 스님에 대한 일화가 있다.그 무렵 불교신문사에는 오현 스님 외에 스님이 한 분 더 계셨다. 신문사 경영을 맡은 그 스님은 오현 스님보다 후배였지만 신문사 경력이나 직함은 위였
설악 무산스님
최정희
2018.09.0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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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데 계신교?” “집입니다.” “뭐하시는교?” “그냥 있습니다.” “펏뜩 오이소.”오현 스님이 계시는 오피스텔과 내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서둘러 갔더니 스님은 자그마한 방 안에 홀로 동그마니 앉아 계신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설악 무산스님
유자효
2018.09.0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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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꿈에도 몰랐다’ 등등 다른 표현도 많다. 외람되더라도 할 수 없다. 솔직히 표현하면 ‘속았다’는 게 맞다. 그리 급히 가실 줄은 몰랐다. “보고 싶은 사람들 몇몇 불러서 다 만났다. 임종게도 써놓았다. 그리고 내 행장(行狀)도 맡겨 놨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설악 무산스님
김한수
2018.09.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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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저녁 무렵 지리산 산행 중에 스님께서 원적에 드셨다는 부음을 들었다. 순간, 사방이 홀연히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면서, ‘당래의 의지처이신 스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라고 속으로 되뇌고 외쳤다.바로 산행을 중단하고 동반 산인들과 헤어져 서울로 올라왔지만…… 당래의 의지처이신 스님은 어디에 계십
설악 무산스님
김희옥
2018.09.0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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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75년 여름 이맘때쯤 설악산 신흥사에서였다. 그때 나는 불문에 들어 성준 화상에게 어리석은 몸(癡身)을 맡기고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공동생활을 하는 절에서는 각자 소임이 맡겨지는데 나는 성준 화상의 시자(侍者)였다. 시자란 세속 말로 비서라는 뜻이지만 나는 은사 스님의 심부름이나 하는 어린 수행자였다.어느 날 영남에서 스님 한
설악 무산스님
김병무
2018.09.0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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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연설악무산 스님과의 인연은 내 나이 삼십 대 초반 초가을 어느 한 날에 맺어져, 내 나이 오십 대 중반 강릉의 한 병원 응급실까지 이어졌다. 이 질긴 인연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삼십 대 초반 어느 날, 기자 생활이 싫어 잠시 잠수를 탔던 나에게 고 이성선 시인께서 연락을 주셨다. 내설악 백담사의 어느 스님께서 이 시인을 찾으니까 한번 뵙고
설악 무산스님
이홍섭
2018.09.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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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원래 내 것은 없는 거야. 아무것도 붙들어 둘 수는 없어. 돈도 사람도 집도. 돈은 아지랑이 같은 거야. 잡으려고 하면 안 잡혀. 돈을 버릴 줄 알아야 돈이 들어온다. 돈의 성품이 아지랑이다. 아지랑이. 아지랑이만 아지랑이가 아니라 모든 게 아지랑이다. 사물 자체가 다 그렇다. 설악산을 다 갖고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지랑인 줄 알면서 열심히
설악 무산스님
홍성란
2018.09.0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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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북 김천법원에 근무하던 1993년경 금오산 해운사에 계시던 정휴 스님을 몇 차례 찾아뵌 일이 있었다. 그해 연말 강화도 전등사에 갈 일이 있다고 말했더니 기왕 나선 김에 양양 낙산사에 계시는 오현 스님을 꼭 한번 찾아뵈라는 것이었다. 12월 30일을 전등사에서 묵은 다음 몇 시간을 달려서 섣달 그믐날인 31일 오후 3~4시경 낙산사에 도착했다. 종무
설악 무산스님
주호영
2018.09.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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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의 어느 봄날 오후였을 것이다. 경복궁 동십자각 건너편, 지금은 헐려 새 건물이 들어선 한국일보사 13층의 송현클럽에서였다. 그때 나는 제4회 녹원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하였는데 식후의 간단한 연회에서 한 스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기품이 있어 보이는 분이었다. 시조시인이자 이 상을 제정한 녹원 스님의 문도(門徒)라서
설악 무산스님
오세영
2018.09.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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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도반 무산 화상이 떠났다. 우리가 벌써 이렇게 헤어질 때가 되었단 말인가.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이다. 풋중 시절 우리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그때는 천하가 다 내 품 안에 들어올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동안 품었던 것들이 하나둘 다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 곧 나도 그렇게 떠나가야 하리라.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도 이렇게 하늘이 푸르렀다. 1964년 여름이
설악 무산스님
성우
2018.09.02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