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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行願)의 삶, 바람 같은 삶 / 최정희
추모 특집 | 설악무산 스님, 그 흔적과 기억
[75호] 2018년 09월 01일 (토) 최정희 전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

묵묵부답의 속뜻

1984년 전후의 어느 해였다. 오현 스님(그때는 필명인 오현 스님으로 불렸다)이 내가 근무하는 〈불교신문〉에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오셨다. 지난날의 희미한 기억 가운데 스님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 무렵 불교신문사에는 오현 스님 외에 스님이 한 분 더 계셨다. 신문사 경영을 맡은 그 스님은 오현 스님보다 후배였지만 신문사 경력이나 직함은 위였다. 두 스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파안대소하는 좋은 사이였으나 그 스님은 가끔씩 오현 스님에게 언성을 높였다. 성질이 급하고 목소리가 큰, 그러나 뒤끝이 없는 그 스님이 화를 내면 오현 스님은 듣기만 할 뿐 묵묵부답이었다. 어쩌다 경상도 사투리로 ‘알았다’ 하면 대화는 끝났다. 직원들은 그런 오현 스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경지가 다른데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오현 스님은 상대방 스님의 화를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해도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뜻일 게다.

골 부리는 사람에게 스님이 대처하는 방법은 묵묵부답, 묵빈대처(默擯對處)였다. 스님은 그렇게 화를 잘 내는 스님을 대했다.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35년 전 오현 스님의 도(道)는 벌써 그렇게 익어 있었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

어느 날 스님은 미당 서정주 선생님 대담을 주선하라고 하셨다. 왜 그 기획을 했는지 어떤 내용의 대담을 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다만 스님을 모시고 사당동 예술인마을의 미당 선생님 댁 봉산산방(蓬蒜山房)에 간 것과 오현 스님이 ‘미쳐야 미친다’는 뜻에 대해 질문을 하신 것이 머리에 각인돼 있다. 미당 선생님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는 시가 나올 수 없다’고 답하시면서 왜 간절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지(不狂不及)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 같다.

시인으로 큰 뜻을 품은 오현 스님은 미당과 어떤 거량을 하시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나는 오현 스님의 시에 대해 잘 몰랐다. 스님께 죄송한 일이었다.

미국으로 떠난 만행

오현 스님은 정휴 스님과 요즘 말로 절친이다. 정휴 스님이 〈법보신문〉을 창간하시고 인사동 입구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곳에서 두 분 스님이 담소를 나누셨는데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두 분이 나눈 이야기 속에 기억나는 한 대목이 있다.

오현 스님은 미국의 식당에서 접시 닦기 알바를 하셨다. 왜 미국에 가셨는지, 알바를 할 때 어떠셨는지 말씀을 하셨을 텐데 그건 별로 기억이 없다. 다만 ‘스님께서 드넓은 미국으로 만행을 떠나셨구나’라는 생각만 머리에 남아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스님께서 《유심》을 복간하시고 한국 시조문학 선양에 힘쓰실 때 스님은 인연이 있어 하버드대학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했던 생각. 스님은 아마 이 세상에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열반이므로. 그러나 만약 조금은 미진한 아쉬움이 있어 다시 사바세계에 오신다면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선미 물씬 풍기는 선 시조를 강의하실 것 같다. 그때도 ‘모든 것은 바람에 이는 파도일 뿐’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다. 서양에서 선시조가 널리 읽힐 때 다음 생의 오현 스님에게 노벨상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약풀이 되고 쌀이 되어

가 불교방송에서 ‘BBS 초대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초대손님으로 어떤 시인 스님이 나오셨다. 그 스님은 형편이 안 돼서 시집을 못 내고 있었는데 오현 스님의 도움으로 첫 시집을 내게 됐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 일은 또 있었다. 초대손님에 또 다른 시인 스님이 오셨는데 오현 스님에게 똑같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오현 스님은 그런 분이었다. 이웃이 청하기 전에 먼저 감지하시고 돕고 나누셨다. 스님에게는 남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웃의 일이었다.

직장을 옮겨 〈현대불교신문〉에서 편집국장을 할 때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가깝게 지내던 일간지 선배가 “오현 스님께 말씀드려 반야심경 병풍 서예작품을 하나 받아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어 죄송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다. 스님은 알아보겠다고 했고, 오래지 않아 내 앞으로 소포가 왔다. 받기 쉽지 않은 유명 서예가의 작품이라며 잘 전해주라고 하셨다.

스님은 이렇게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이웃의 청을 저버리지 않았다. 스님들의 시집을 내는 데 도움을 주었듯이 먼저 다가갔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용대리 마을에 보내는 장학금도 그렇고, 백담사-용대리 간의 셔틀버스 운영권도 그렇다. 세월이 흐르면 오현 스님은 용대리에서 전설 속의 도인 스님으로 구전될 것이다.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는 백담사 도인 스님의 장학금으로 공부하여 판사가 돼 집안을 일으켰단다. 누구네 집에서는 대학교수가 나왔고, 그 옆집에서는 의사가 나왔지. 우리 마을이 이렇게 번듯해진 것은 다 그 도인스님 덕분이란다.”

오현 스님은 이렇게 설악산과 용대리 마을, 그리고 한국불교와 시조문학사에 늘 계실 것이다.

작은 공양도 빚으로 여긴 스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스님은 《불교평론》 홍사성 주간을 통해 나를 어떤 여행에 초대하셨다. 여러 명이 함께 떠난다는 그 여행의 초청을 받다니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이유냐고 물었더니 스님께서는 내게 신세를 졌다며 초청자 명단에 넣으셨다는 것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동참은 못했지만, 그나저나 스님께서는 도대체 내게 무슨 신세를 졌다는 걸까. 생각해보니 신세라 할 것도 없는 어떤 일이 떠올랐다.

〈불교신문〉에 근무하실 때였다. 스님은 장삼 속에 회색에 가까운 푸르스름한 운동복을 입고 계셨다. 좀 낡아 보여서 어느 날 스님께 셔츠 하나를 사서 공양을 올렸다. 겨우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인데 내게 여행에 초대하셨으니 뜻밖일 수밖에. 잊으셨을 법한 작은 공양을 잊지 않으시고 크게 갚으시려는 스님의 뜻은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빚지지 말고 살되 작은 것도 크고 소중하게 받고 크게 갚자.’ 나의 이 다짐은 여행 대신 오현 스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얼마 뒤 스님은 신문사를 그만두셨다. 스님은 떠나면서 나에게 ‘홍 기자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당시 홍사성 기자는 나와 같이 편집국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절집 인연으로는 스님의 사제였다. 스님은 그 사제가 걱정됐던지 내가 오래된 기자이니 고참티 내지 말고 잘 챙겨주라고 당부했던 것 같다.

스님은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인편에 조의금을 보내왔다. 어머니와 이별하는 슬픔을 달래주려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때도 뜻밖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스님의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이 기뻤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안 돼서 문자로 인사를 남겼다. 그때 그 문자는 읽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제는 통화도 문자도 보낼 수 없으니 어디로 안부를 여쭈어야 할지. 이런저런 옛 생각을 하자 목젖이 울컥거렸다.

돌아볼수록 오현 스님은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문처럼 약풀이 되고 쌀이 되어 이웃을 돕고 나누었던 분이다. 행원(行願)의 삶이면서 바람처럼 걸림 없는 삶이었다. 그 이타행은 ‘머문 바 없이 내는 마음(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자비였다. 그런 분을 알고 지낸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스님. 가뭄에 단비가 산천초목을 적시듯, 스님이 살고 가신 세월 동안 법비가 만인의 가슴에 스몄습니다. 스님과의 인연에 감사의 삼배를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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