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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을 위한 불교적 패러다임
특집 | 불교, 거듭 평화를 말하다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이지범 abc992005@naver.com

1. 들어가는 말

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는 반세기 동안의 역사적인 뿌리를 갖고 누적된 것이다. 그간 정치 ·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평화통일의 문제에서 비켜나더라도, 이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다뤄야 하는 조계종단 등 불교계는 최고지도자의 책임감 부재와 교단의 이해관계에 갇혀 참여적 기회마저 놓친 바 있다. 그간 국민과 불자들의 적극적 호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 내부에서 종무적(宗務的) 판단이 제고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지적받고 있다.

불교종단 내의 통일종책을 담당하는 창구 내지 단체는 거대한 통일담론만을 이야기하거나 단순 교류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종단 내에서 준비되지 않는 통일담론을 외부 강사 의존 식의 아카데미컬(academical)한 목적사업으로 추진하거나 종단의 포교(宣敎)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단순 교류를 추진한 결과도 이에 한몫했다.

그러한 측면들로 인해 불교계는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한 정책적 지표와 대안에 대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정책적인 과제들은 비단 종교계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2000년대로부터 남북공조에 의한 사찰복원 등 불교계는 교류와 협력에서 선도임을 자처해왔다. 남북교류 역사에 다시없는 초유의 기록을 보유하게 되면서 불교계는 한국사회로부터 공개적인 책무를 담당해야 할 중점 대상으로 부상한 것이다. 국가가 아닌 민간 차원의 대형사찰 복원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공조에 의한 사찰복원 등과 같은 사업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풀어가는 데 이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계로도 나타났다. 북한 지역의 옛 사찰 복원사업으로서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남북관계가 급변한 가운데,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제3세대로 바뀐 상태이고, UN 등 국제사회의 온갖 경제적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2017년 5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 · 북 · 미 간의 새로운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가운데, 아시안게임 남북공동 참가와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교류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과 9월의 남북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종전선언 등과 같은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이 기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순탄치는 않겠지만, 정치공학적으로는 가능한 상수(常數)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그간 한반도 운전자론에서 벗어나 평화통일정책 추진을 치밀하게 강화하고,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꾸준히 전개하며 교류와 협력의 규모를 확장하는 데 정책적 역량이 집중되도록 기조를 정하는 것이 우선의 과제이다. 여건이 어려울수록 길게 보면서 핵심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평화통일의 지름길인 것이다.

불교계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 양 정부와 정책적 보조를 같이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불교적 어젠다(Agenda, 議題)와 교류창구 등을 개선할 수 있는 ‘종단적 합의화(合意化)’ 그리고 ‘추진 가능한 교류사업’에 필요한 동력(動力)을 공동으로 모색하고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을 전제로 본 고찰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불교적 패러다임(paradigm)을 찾아보고, 대안을 수립하고 그리는 데 있어 기초적인 토대로서의 공유성에 목적을 두었다.

 

2. 통일과 평화를 위한 불교적 패러다임

1) 통일과 통일운동의 흐름

통일은 우리가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를 넘어선 국제적인 문제이다. 특히 동북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주변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통일의 문제는 분단 이후 오늘날까지 남북한 사이에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로 간주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남북한 간의 이질화는 분단 당시보다 더 심화하였으며, 6 · 25전쟁 이후 형성된 두 국가 사이의 적대감도 약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의 문제는 이 문제가 발생한 당시로부터 인식되고 적용되어 온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문이 많다.

조선기독교연합회를 계승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KN-CC)는 1988년 2월 개최한 제37차 총회에서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 교회선언’에서 “한반도의 남북분단은 현대 세계의 정치구조와 이념체제가 낳은 죄의 열매이다. 세계 초강대국들의 군사적 이념적 대결과 상호분쟁 속에서 한국 민족은 속죄양의 고난을 당하여 왔다. …… 한민족의 분단은 세계 초강대국들의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이며 남북한 사회 내부의 구조악의 원인이 되어 왔다.”고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성격에 관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1994년 7월 8일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신년사에서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순탄하게 풀어나가도록 후대들에 맡겨도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 체제로의 완전한 통일보다는 남북한 두 체제의 잠정적 존속을 주장한 것이다. 완전한 통일의 실현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를 보전하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교류와 협력의 발전을 통해 통일에 접근하는 남한의 기능주의적 통일방안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주장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1993년 4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공포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기존의 통일논의에 대해 다시 고찰하는 것은 통일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동시에 통일 실현을 위한 현재의 변화된 환경에 다가서기 위한 정책적 함의를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나아가 통일에 대한 논의는 남북한의 체제 경쟁이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 또는 20세기적인 체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과거의 대립 구도를 뛰어넘어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질서에 부응하는 방향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통일 과정은 남한 사회의 변화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생겨난 것은 첫 번째는 4월혁명으로 불리는 1960년의 4 · 19 직후, 학생들과 혁신계에 의해 통일운동이 활발해진 시기이다. 두 번째는 1987년 6월항쟁 직후로, 이듬해 1988년부터 학생운동, 재야단체, 종교계 등에서 통일운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그리고 세 번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된 통일운동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의 통일운동은 분단체제 고착화 또는 국가발전과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것으로 주로 한국교회 등 종교계가 주도해 온 방향이다. 그리고 재야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주도해 온 통일운동은 통일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운동에서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했다. 1986년 5월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시작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후자에 더 가깝다.

국가보안법이 현존하는 가운데, 종단이 아닌 불교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1986년 5월 9일 부처님오신날을 기해 승려와 재가불자 152명이 공동 서명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자유로운 논의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국선언문의 공개발표로 시작되었다. 이후 1988년 5월 19일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민족화합공동올림픽추진불교본부’가 결성되면서 불교의 통일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민족과 불교의 분단 및 그것의 공화를 저지하거나 민족과 불교의 재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불교인들의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노력들”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초기 유식(唯識) 논서의 하나인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에서 “씨는 자비의 물속에서 뿌리를 자라게 하고, 곧고 굳센 줄기는 기쁨에 찬 넓은 마음에서 뻗고,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해지는 것은 정념(正念)에서 생기고, 내연(內緣)이 성숙할 때 아름답게 꽃은 피고, 외연(外緣)이 구족(具足)할 때 열매를 맺는다.”고 한 것과 같이, 그간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진정한 통일의 요건과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가를 살펴볼 수 있는 내재적인 측면들을 생략한 채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통일운동의 한계를 띠었다.

 

2) 평화와 평화운동의 흐름

1959년 세계평화연구소 설립과 1964년 세계평화학회 창립을 주도한 북유럽 스웨덴의 요한 칼퉁(Johan Galtung) 박사는 “전쟁이나 살육 행위의 부재 상태는 평화의 필요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소극적 평화’로 규정한다. 그러나 단순히 전투행위가 회피되고 있다는 것이 평화의 온전한 얼굴일 수는 없으며, 사람들과 사회집단 사이의 진정한 통합과 화평이라는 궁극적 목표야말로 평화를 위한 충분조건으로서 ‘적극적 평화’의 개념에 의해서 담보된다.”고 했다. 또한 적극적 평화의 개념에 ‘구조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접합시켰다. 이렇게 확장된 평화연구는 지금까지의 소극적, 미시적, 실증적 차원을 넘어 국제관계, 인종적, 민족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다시 말해서 소극적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이나 거대 제국에 의해 전쟁이 성립하지 않는 상태도 평화로 보기 때문에 현실주의적 관점의 평화로 일컬어진다. 반면, 적극적 평화는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이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을 넘어서 압제와 착취가 중단되고 폭력적 구조가 해체되는 것을 평화라고 본다. 즉, 정의가 함께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다룰 때, 일반적으로 독일의 철학자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 Kant)가 주창한 ‘영구평화론’이라는 고전적인 패러다임을 따른다. 그에 의하면 “영원한 평화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칸트는 무제한의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영구평화라는 목표를 위한 꾸준한 전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갈퉁(Galtung)과 셍가스(Dieter Sengaas)와 같은 비판적 평화연구가들이 주장하는 평화의 개념들을 토대로 하면, 평화를 만드는 일인 평화운동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대 운동이며,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고 삶의 조건들을 확충해 가는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교회협의회(CCA)가 1985년 오키나와에서 개최한 아시아평화회의(ACRP)에서는 “아시아와 같은 나라들에서의 평화는 우선 민중의 삶(life for people)이라고 이해된다.”고 선언했다. 평화운동은 곧 “민중들의 삶을 파괴하는 죽음의 세력들에 대한 투쟁(struggle against the forces of death)”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래서 평화운동은 존재하는 폭력과 전쟁 상태를 제거하는 운동일 뿐 아니라, 그 원인이 되는 갈등과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화해하는 운동이다. 이것은 남북한의 갈등과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교류하며 화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반도에는 분단이라는 장벽에 막히고 냉전의식과 제도, 대중성의 실패를 겪으면서 평화운동이 제 역할을 못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분단은 평화운동의 핵심적인 자양분임에 틀림이 없다.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묶고 한반도의 특수성을 결합시키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평화운동의 주체를 대중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류의 생명과 가치를 지키는 평화운동은 통일의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외에도 민족의 내적인 문제와 국제성이 겹쳐 있는 통일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내야 할 의미 그리고 그 과제를 풀어가야 할 동시적인 책무를 가지고 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등 냉전 시기로부터 비롯된 평화운동과 다르게 불교의 평화운동은 사문(沙門) 고타마 싯다르타가 기원전 588년 음력 12월 8일 새벽에 인도의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붓다(진리를 깨달은 자)’로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성평등(四姓平等)을 역설한 붓다는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주창한 것이다. 붓다는 “마땅히 존중해야 할 것은 살아 있는 것 전부”라고 설했다.

기본적으로 불상생과 비폭력의 실천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식 평화프로세스와 달리 대승불교가 전쟁을 합리화했던 전례(前例)는 과거 청산의 한 과제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기의 일제 군국주의에 복무했던 불교 그리고 또 6 · 25전쟁 때 참가하기를 권장하는 중국의 어느 승려가 1951년, 문학 잡지인 《현대불학》에 기고한 다음의 글을 보면, 대승불교 판 보살도의 극단적 이용인가, 아니면 불교 본연의 보습(犁先)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당대에 행해졌던 비불교적인 내용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불교의 유물론적 사고와 재해석이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직접 항미 원조 국가 보위 인민지원군(抗美援朝國家保衛人民志願軍)에 입대하여, 석가모니께서 자비(慈悲)의 화신(化身)으로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고난을 무릅쓰고 인민을 구제하기 위해 적(敵)들을 죽이는 정신을 실지로 배우는 길이다. 세계의 평화를 깨뜨리는 미제(美帝)를 쓸어 없애는 것이야말로 불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므로 아무도 비난할 수 없을 뿐더러 당연히 공덕을 쌓는 길이다.

— 《현대불학(現代佛學)》(1951년 4월호)

 

3) 통일과 평화에서의 역학적 관계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인 요한 갈퉁 박사는 2007년 10월 남북평화재단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말할 때 어떤 통일이냐고 묻고 싶다. 사람과 민족 간의 통일은 국경을 오고 가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의 통일은 단일국가, 연방국가를 의미한다. 국가의 통일 없이 민족의 통일이 가능한가? 아니면 민족의 통일 없이 국가의 통일이 가능한가? 이것은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사회가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예시에 있어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그 핵심 고리이다. 이 분단체제는 세계적 냉전체제의 하위체계로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적 대결구조에서 비록 ‘차가운 평화’였지만, 역설적으로 상당 기간 총성이 멎은 ‘분단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통일과 평화를 따로 분리하여 접근하기는 어렵다. 평화의 원칙으로 그리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통일을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통일과 평화는 반드시 현실 가능성(feasible)의 차원에서 바람직한(desirable) 목표를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방향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의 단기적 성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장기적 정향을 분명하게 설정하면서, 각각의 상황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기다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통일의 방식이나 통일 이후의 상황을 논의하기보다는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면서 통일이 가능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남북관계에 따른 전략적인 고려에서도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낼 수 있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남북의 평화적 전환(peaceful transition)의 추구에서 미국의 신학자인 니부어(Helmut Richard Niebuhr)가 말한 것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바꿀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것은 아직까지 ‘냉전의 마지막 고도(孤島)’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 더 유효한 지적이다. 또한 두 정치체제가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수준의 갈등 원인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쌍무적 관계이다. 이 관계는 단순히 지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수준의 갈등으로의 확산과 한반도 수준에의 직접적 영향의 가능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적의 이미지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실질적인 안보적 고려 이외에도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적 평화(democratic peace)’에 대한 장애로 상정되고 있기에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물음과 접근방식에 대하여 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3월 8일 독일 베를린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김 대통령은 “우리의 당면 목표는 통일보다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이다.”라고 했다. 이 선언적 메시지는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인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문제’에 관한 표현과 거의 같은 연장선에 있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와 그리고 ‘흡수통일을 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하려는 숨은 뜻도 엿보인다. 특히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는 ‘통일은 늦게 가더라도 평화를 먼저 정착시키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당시에 김 대통령의 뜻이 평화가 통일보다 우선한다는 점은 국내의 보수 논객으로 자처하는 지만원의 견해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나는 평화통일이라는 말을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개의 낱말로 분리시키고자 한다. 여기에는 엄청난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먼저 추구하면 ‘통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다가오겠지만, ‘통일’을 먼저 추구하면 ‘평화’가 깨질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우리가 통일 과정을 남북한의 적대적 대결을 해소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현 상황을 통일 시기로 진입하는 단계로 이해하는 역동적인 역사 인식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평화공존의 단계에 분단의 한 형태가 아닌 ‘통일시대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라는 의미를 같이 부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분단 이후, 우리 사회 내에서 그간 담론화된 개념들을 정리해보면 통일은 ‘두서너 개로 나눠진 것을 하나로 합치는 일’이다. 평화는 ‘어떠한 적대감도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를 뜻한다. 평화통일은 ‘서로 나눠진 것을 합쳐서도 어떤 적대감도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어젠다로 다시 정리하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를 위해 통일을 이룰 것인가? 즉, 통일을 통해서 평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평화로운 통일을 전제로 할 때이다. 둘째는 통일을 위해 평화가 필요한가? 즉, 평화가 통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통일로서의 평화구축을 전제로 할 때이다. 셋째로는 평화통일을 통해서 민족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즉, 평화통일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하는 것인데 목표를 우선시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또한 통일의 목적과 방향성에 따른 불교적 통일 논의에는 불교통합의 문제로 국한하여 검증하는 과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통합(integration)의 개념은 “민족 또는 국가 내부의 다양한 구성 부문들 가운데 상호 등질적 부문 간의 조화와 융합의 과정(process)을 말한다. 예컨대 경제 통합, 군사 통합, 사회문화 통합 등을 말한다. 통합이 각 부문의 내적 결합의 정도와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민족통합의 경우는 민족 내부의 결합 수준을 의미하는 비논리적인 개념이다. 즉, 민족통일이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민족통합이라는 말은 그릇된 표현이다. 이와 달리 흔히 ‘국민통합’은 일반적으로 대립적 이념을 비롯하여 계층, 지역, 세대 간의 갈등과 차별성의 해소와 관련된 개념으로 사용된다. 또한 남북한 각 부문의 통합은 ‘통일 이전 단계에서도 추진되지만 통일 후에도 지속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적 통일보다는 불교통합의 단계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통합의 개념이 통일이란 이론적 구조에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불교계에서는 남북한 불교의 통합을 위한 정책적인 기조와 세부 실행안을 수립, 시행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대안적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평화와 통일의 과정으로부터 나타나는 역학적 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 페이지의 〈표 1〉과 같다.

이 같은 역학적 구조는 첫째로 평화와 통일의 효과적 관계에서 보면, 어떻게 하려고 추진되는 힘에 의해 상황을 전환 또는 바꿀 수 있는 조건[動機]이 되는 모멘텀(momentum)으로부터 진행성에 그 가치를 둠으로써 필요충분조건에 따라 상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도이다. 둘째는 통일과 통합의 비례적(比例的) 관계에서 보면, 여러 가지 현상과 연관된 내용을 규칙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세스(process, 過程)에 의한 실행성에 그 가치를 우선함으로써 상호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구도이다. 세 번째는 평화와 통합의 등가적(等價的) 관계에서 보면, 추구하는 경향에 따라 어느 쪽을 사용해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패턴(pattern)에 의한 목적성에 그 가치를 우선함으로써 필요충분조건에 따라 상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와 통일 그리고 통합과정에서 변곡점(inflection point)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고, 동력(動力)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관계적 운동성(運動性)은 이들 세 가지 요소가 가지고 있는 관성의 법칙과 회귀 현상을 모두 반영한다. 또한 미국의 주가분석가 그랜빌(J.E. Granville)이 고안해낸 투자전략인 ‘이동평균선 법칙(일명 그랜빌의 법칙)’에서와 같이 “평화는 통일의 평균선과 멀어지면 다시 돌아가고, 가까워지면 멀어지려는 경향[性質]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불교와의 통합을 이루고자 노력을 하면 할수록 평화와 통일의 목표와는 점점 더 멀어지다가 우리가 한 발자국 물러나면 북측에서 통일과 평화를 다시 제안했던 지난 남북불교 교류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관계적 운동성은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법(緣起法)을 통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조건 지어져 있고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關係性)’을 뜻하는 연기법은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라 한다. 연기의 법칙은 4행시로 표시되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此無故彼無)
이것이 멈추므로 이것이 멈춘다.(此滅故彼滅)

— 잡아함 제30권, 335경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3. 나가는 말

붓다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평화운동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부터 네팔,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공동 목표이다. 분단 이후에 시작된 한반도의 통일운동은 대학생들과 민간단체의 열망과 더불어 1998년 6월 16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으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그 당시 세계적인 톱뉴스였던 소 떼 방북에 대해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 파리대학 교수는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1998년 6월의 소몰이 퍼포먼스는 신선한 충격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차로 소 500마리를 싣고 휴전선을 넘는 트럭 50대의 행렬은 남북의 닫힌 마음을 여는 한마당 축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시간과 공간에 의지하는 분단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통일과 평화에서도 막연한 보상을 기대할 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지금도 숱한 위정자들은 자신에게 유용한 시간과 공간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끝없는 갈등과 대립, 공포와 불안, 분단과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바라는 위정자들은 하늘의 끝을 찾으려는 나비와 같다. 지금도 아부, 아첨하는 무리들이 위정자들로부터 받는 칭찬은 날카로운 칼 위의 꿀과 같다. 이러한 위정자들과 아첨꾼들은 통일과 평화가 이루어질 때면, 지금까지 그들이 사용해온 온갖 수단과 목적을 다 버리고 전혀 다른 모습과 행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더 좋은 행복이 나타나면 지금의 행복을 쉬이 버리는 그들의 속성처럼.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의 이중적 가치가 하나로 합치되지 않는 한 평화가 통일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핵 문제의 돌출로 인한 한반도의 위기 국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지금까지 평화구축 문제가 가장 절실한 과제이자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강조되어 왔다. 특히 2000년 6 · 15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열린 교류협력 시대의 통일 논의는 북측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통일의 방식과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둘러싸고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자제되고 유보되었다. 최근까지는 한반도 평화론이 담론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왔고, 더욱이 수사적인 의미로 평가한 ‘평화 언술(言術)’ 자체를 전쟁 반대 논리로 환원시켜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경쟁과정에서 도덕적 가치로 독점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역사의 신(神)이 있다면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명제가 가능하다고 할 때, 통일을 장구한 평화 과정의 끝에서 기다릴 것인가, 그렇잖으면 지금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과 집중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평화체제 구축으로서, 평화체제 구축의 문제도 지난한 과제이지만 남북한 균형의 회복과 안정적인 경제 발전이 이루어질 경우에 한하여 ‘분단평화의 시대’를 종언할 수 있는 미래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통일은 양측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게 편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말했다. 즉, 필요하다면 몇 대(代)에 걸칠 때까지 통일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북정책 기조는 그의 햇볕정책을 통해 드러났다. 북한의 개혁은 생존의 핵심이며 햇볕정책이 이를 위해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독려하고 뒷받침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갑작스러운 북한의 경착륙을 피하려는 목적도 같이 숨어 있었다.

2000년대 초,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평화적 시그널은 ‘평화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이겨내고 통일은 불편하더라도 참아내는 것’이었다. 2018년 4월부터 시작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세계 교섭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평화이든 통일이든 거기에 이르기까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북한의 비핵화보다 더 큰 과정이 평화 프로세스인데 여기에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물리면서 2013년 4월부터 미 · 중 관계는 ‘투키디데스 함정(Thuydides trap)’ 즉, 상대에 대한 공포에 의해 양국이 전쟁 상태에 빠지는 결과를 방지해야 한다. 또한 국제 질서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해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미국은 중국이 너무 강한 것과 약한 것 모두를 걱정해야 한다.”며 “투키디데스 함정과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 대공황)을 모두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과의 이해관계에서 북한을 구조적 위험요인으로까지 여기면서 한반도의 평화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확정되기에는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2018년 6월부터 동북아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북한이 한국과 미국과의 대화를 가지면서도 중국과의 대화는 물론 관계 복원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1992년부터 ‘두 개의 코리아’라는 양면정책으로 전환한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 않기에 의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인 종전선언이 애초에는 가벼운 정치적 의미였는데, 중국의 직접 참여로 인해 평화체제 구상 수준으로까지 격상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한반도 관계에서는 복잡한 것보다 가장 간단한 것이 좋다. “불필요하게 다수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법칙을 북한에 적용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 북한은 인도식 협약(미국-인도 간의 핵협정)을 원한다. 또 비핵화와 개혁개방 과정 중에서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형태의 ‘정권 안전보장’을 원한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각이 깨어 있다고 해도 그의 권력 계승을 뒷받침하는 사상 때문에 진정한 개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이 바랐던 것처럼 통일이 점진적으로(漸修)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 아마도 갑작스럽게(頓修) 찾아올 것이다.”라는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인 빅터 차(Victor Cha)의 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새롭고 최종적인 통일의 담론은 첫째로 이념보다 ‘실용주의’에 근거한다. 둘째로는 냉전시대의 제로섬(zero-sum) 경쟁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더욱 ‘국제주의적’이고 투명하며 개방적일 것이다. 즉, 한국이 통일을 위해 세계에 손을 뻗는 것으로 통일의 사회화 과정을 가리킨다. 이것은 통일에 대한 과거 한국의 태도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셋째는 (어떤) 권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에 관한 것이다.44) 그 일례로 ‘아라트(ARAT)’는 “북한을 인정하고 변화를 인식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인데, 즉 1991년 9월 17일 UN에 동시 가입한 북한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Acknowledgment), 한 국가사회의 변화를 인식하며(Recognition), 그간 다르게 형성되어온 사회문화 등의 다름을 인정하는(Admit to) 전통적 가치(Traditional value)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북한과 그 주민들을 교류와 협력의 실질적인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종단과 불자들의 심리적인 절차라 할 수 있다.45) 우리 민족이 바라는 통일은 남북이 이념과 노선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 스스로가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통일의 담론은 위험이 아닌 ‘기회’에 관한 것이다. 단기적 리스크(risk)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통일은 관련국 모두에게 아시아에서 가장 큰 포지티브섬(positive-sum) 전략이 될 수 있다.46) 이것은 21세기 냉전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구촌의 모든 이들에게 평화 실현과 보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인류 최대의 사건이 될 것이다. ■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2000년부터 평양, 개성, 금강산 등을 총 23회 방문한 바 있으며, 북한의 불교문화 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 이탈주민의 치유방안 연구〉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과 저서로 《남북불교교류 60년사》 《고려대장경의 비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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