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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
특집 | 불교, 거듭 평화를 말하다
[76호] 2018년 12월 01일 (토) 허우성 woohuh@hanmail.net

1. 붓다의 자식 사랑 권유

《숫타니파타》의 《자애(慈愛, mettā)경》에 다음과 같은 붓다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흡사(yatha)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듯이, 그렇게 모든 생명에 대해(sabbabhūtesū) 무량의 마음(mānasaṃ aparimānaṃ)을 일으키시오. 또 모든 세계에 대해 무량의 자애를 일으키시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averaṃ) 적의 없이(asapatttaṃ) 자애를 행하시오(149∼150).” 붓다는 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사랑의 지극한 모습을 본 것 같다. 다른 모든 생명이 ‘흡사’ 모두 외아들이라고 상상하고 거리낌 없이, 원한, 분노, 그리고 적의 하나 없이 사랑해보라고 한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 특성은 무엇인가? 그 특성은 특수성, 구체성과 즉시성, 즉 바로 그 아이의 구체적인 필요에 즉시 응답하는 것이다. 엄마는 보통 자식의 구체적인 결핍이나 고통에 즉시 반응한다. 배가 고파서 울면 젖을 줄 것이고, 넘어져 무릎이 까져서 울면 얼른 안아 일으켜 세우고 상처를 치료해준다. 아이가 성장하면 그 마음의 고민도 돌보게 된다. 어버이의 자식 돌봄은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 사랑과 같은 이기적 사랑은 흔히 타인이나 타민족 등에 대해 편협하고 적대적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식 사랑을 모든 생명에까지 확장할 수만 있다면, 사람은 가정, 민족이나 국가도 넘어가서 인류 전체, 그리고 인류 이하의 동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란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가 역설한 이기적 유전자에 비춰보지 않아도, 이런 사랑은 일반 시민 중생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붓다의 자비명상

붓다는 왜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권유했을까? 싯다르타 태자는 아들 라훌라를 두고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다음 승단을 만들어 불법을 폈고, 라훌라도 출가한 탓에 석가 가문의 족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붓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분이다.

무한 사랑에 대한 붓다의 이런 가르침과 실천은 그분의 전생과 금생에 걸친 오랜 수행의 결과였다고 해보자. 그 수행의 한 장면은 상응부경전(SN 4, 13)의 《파편경》에 나온다. 붓다는 발이 돌조각에 찔려서 심한 통증을 느꼈고, 신체적 고통(sārīrikā dukkhā)이 크고, 심하고, 신랄하고, 불쾌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그분은 정념하고 정지(正知)하며 누워 있었다.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비웃으며 “나태하게 누워 있는가? 시작(詩作)에 빠졌는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가?” 하고 묻자 붓다는 “나는 누워 있으면서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으로 가득 차 있다(sayām aham sabbabhūānukampī).”라고 응수했다.

붓다는 자신의 통증 안에서, 모든 생명이 느끼는 신체적 고통과 무명에서 오는 고(苦)까지 포함해서 일체의 고통에 대해 자비심을 느꼈을 것이다. 2천 수백 년 뒤에 달라이 라마(1935〜 )는 붓다의 바로 이 경험에서 똥렌 명상법-상대방의 나쁜 감정을 내 속으로 받아들여서 변화시키고, 내가 기른 좋은 감정은 상대에게 주는 명상법-을 익혀서 중국공산당의 지도부를 상대로 실천한다고 했다. 그런데 침략군의 지도부가 어찌 내 자식과 같으랴?

2. 사명당 유정(惟政, 1544~1610)의 분신

1) 시심(詩心)

불교 수행자가 살인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포악한 무리가 백성을 짓이기는 경우이다. 사명당이 그런 수행자였다. 하지만 그는 여느 출가자처럼 자연과도 깊이 교감한 것 같다. 〈복주의 성루에 묵으며(宿福州城樓)〉라는 오언율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夜久角聲微   밤 깊어 뿔피리 소리 희미할 뿐
千家人迹稀   일천 집에는 사람 자취 드물어라
露生池館草   못가 관소의 풀잎에 이슬이 돋고
螢入定僧衣   정(定)에 든 중의 옷에 반딧불 날아드네
悄悄坐 無語   초초히 말없이 앉아 있노라니
悠悠漸息機   유유히 기심이 점점 없어지네
星廻月墮嶺   별이 돌고 달이 고개를 넘어가니
城樹曙鴉飛   성루 나무에서 새벽 까마귀 날아가네

각성이 군악으로 쓰는 호각의 일종이면, 성루와 함께 전쟁 용품이다. 하지만 전쟁터에도 해가 져서 밤은 찾아오고 인기척은 끊어진다. 밤이 깊어져 풀잎에 이슬이 맺히고, 사명당은 참선하는데 옷깃에 반딧불이 날아든다. 그리고 묵언 중에 기[機心] 곧 분별심이 없어진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별과 달의 움직임을 본다. 새벽이 오면 까마귀가 날더라. 반딧불이 참선하는 사명당의 옷에 살포시 앉았을까?

사명당은 다른 시에서도 비, 기러기 등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오언율시 〈화진주자사(和眞珠刺史)〉는 다음 구절로 끝난다. “좌망을 했는지라 아아도 없이 오직 물새와 어울려 노닐 따름(坐忘無我我 唯與自鷗群)”이라고. 좌망과 ‘무아아’는 각각 도가와 불가의 용어이다. 아(我)는 없어지고, 물새와 노는 시심(詩心)이 보인다.

 

2) 혈기와 수치 사이에서

무아의 도리를 깨닫고 반쯤 시인이 된 사명당이지만 침략자 왜군의 행위는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래 두 시에 사명당이 의승을 일으킨 동기가 나온다.

〈시월삼일에눈이오기에 회포를 적다(十月初三日雨雪寫懷)〉

赤頭綠衣兮絡繹縱橫   적두와 녹의가 종횡으로 줄을 이어
魚肉我民兮相枕道路   어육된 우리 백성 길가에 즐비하네
痛哭兮痛哭   통곡하고 통곡하나니
日暮兮山蒼蒼   날은 저물고 산은 창창하네
遼海兮何處   아득한 바다는 어느 곳에 있는고
望美人兮天一方   하늘 한쪽 임금님 바라보네

〈임진시월에 의승을 이끌고 상원을 건너다(壬辰十月領義僧渡祥原)〉

十月湘南渡義兵   시월에 상남 건너는 의병이여
角聲旗影動江城   뿔피리 소리 깃발 그림자 강성을 뒤흔드네
匣中寶劒中宵啂   상자 속의 보검이 한밤중에 우나니
願斬妖邪報聖明   요사의 목을 베어 성명에 보답하려고

이 두 편의 시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6개월 뒤쯤 지은 것이다. 첫 번째 시에서 사명당은 눈 내리는 날, 적두와 녹의의 왜군에 의해 짓밟혀 어육처럼 나뒹구는 백성에 대해 통곡하고 있다. 여기에 파천한 임금, 이 두 사건이 사명당이 의병을 일으킨 직접적인 동기로 보인다.

사명당이 갑오년(1594) 9월에 선조에게 올린 〈갑오상소문〉의 앞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마침내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한 죄인이 되었습니다.(遂爲無父無君之一罪人) …… 통탄스럽게도 이 훼갈(虺蝎, 독사와 전갈) 같은 무리들이 큰 나라를 제 마음대로 해쳐서 생민이 어육(肆毒大邦 生民魚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족히 말할 것도 못 되옵고 더욱이 종사(宗社)가 몽진하고 임금의 행차가 파천까지 하셨사오니 혈기가 있는 자라면 그 누가 분격해서 팔뚝을 걷어 올리지 않으오리까(凡有血氣 莫不扼腕). [중략] 맹세코 그들과는 같이 살지 않으려 했습니다(誓不與俱生). [중략] 신(臣)은 본래 미록(고라니와 들사슴)의 몸(臣本麋鹿之身)으로서 병가의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하오나 적 하나라도 죽여서(殺一敵) 성상(聖上)의 망극한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오니 어찌 의관(衣冠)을 갖춘 사람들에게 뒤지오리까.

이 인용문의 바로 앞에는 출가 동기가 나온다. 15, 6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고 친척 없이 외로이 지내다가 출가하게 되었다고 했다. 무부무군의 죄인은 유가가 불가를 비판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왜 그런 죄의식이 있었을까? 전쟁기에 왕에게 보내는 상소문이어서 그랬을까? 평소에 산승으로 있었을 때도 그랬을까?

사명당에게 생민을 어육으로 만드는 왜적은 독사와 전갈의 무리와 같았고, 이 무리를 죽이는 일은 왕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었다. ‘혈기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팔뚝을 걷어 올린다’는 구절처럼, 사명당이 화를 내고 팔뚝을 걷어 올리면서 불구대천지원수라고 맹세했다면, 그 순간 그는 사찰 초입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같이 무서운 분노의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상소문의 사명당은 호모 이라쿤두스(분노의 인간)의 전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명당은 왜군을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로만 본 것이 아니라 자비행을 권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도 보았다. 사명대사의 행적을 담은 허균의 석장비문(石藏碑文)이 그걸 말해준다. 허균의 관찰이 옳다면 사명당의 자비심은 죽임을 당하는 조선의 생민과 포악한 왜군 모두에게 향한 것이다.

3) 실신(實身)이 분신(分身)으로 바뀌다[翻成]

그런데 의승장이 된 것은 분신(分身) 곧 화신(化身)이라는 의식이 사명당에게 있었다. 임란 후 1604년 일본에 사신(使臣)으로 가면서 지은 시 〈죽령을 넘으며(踰竹嶺)〉에서, 승려의 몸에서 사신으로 바뀐 것을 번성(翻成)으로 부르고 있어서이다. 승려에서 병사로 된 것이 전시(戰時)의 변신이었다면, 전후에 사신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은 또 한 번의 변신이다. 하지만 “백억의 분신을 누가 거짓이라 하는가(分身百億誰云妄)” 하고 되묻는다. 백억의 생령을 구하기 위해 백억의 분신이 필요하고, 중생의 고통이 거짓이 아니니 분신도 거짓일 수는 없다.

분신에 대한 자각은 미록지신과 같은 본신(本身)이나 실신(實身)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는 본신과 화신 사이에서 때때로 수치를 느낀 것 같다. 다른 시에 나오는 “석장 날리며 병사를 말한 잘못도 애당초 부끄러워(飛錫初羞誤說兵)”라는 구절이 바로 그 증거이다. 승려로서 ‘석장(錫杖)을 날리며’ 돌아다니고 병사(兵事)를 말한 것이 수치란다. 그는 전쟁 중 미록지신 곧 숲에 사는 출가자와 왕의 신하 사이에서, 그리고 수치와 혈기 사이에서 고뇌했던 것으로 보인다. 붓다, 간디, 달라이 라마는 백성이 어육처럼 짓밟힐 때 살생을 범한 사명당을 어떻게 보았을까?

 

3. 달라이 라마의 사랑과 용서의 역사기술법

1) 고전과 현대의 가르침을 함께 갖추다

불교 수행자 달라이 라마는 현대의 인물답게 여러 정치적 가치들, 즉 자유민주주의, 언론과 결사의 자유, 인권, 민족자결 등을 적극 수용하면서, 이들이 티베트와 중국에서 실현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가치들이 불교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본 것 같다. 침략자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그의 ‘사랑’에 대해, 어느 나라의 민족주의자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티베트의 현대사는 참으로 비극적이다. 달라이 라마의 자서전에 그렇게 나와 있다. 1950년부터 1983년까지 감옥과 전투에서 그리고 기아로 120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일백 수십 명의 티베트인이 독립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것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적이 없다고 하고 “어떤 의미로는 그들은 가장 좋은 우리 스승”이라고 말한다. 그는 베이징의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지칭하며 “특히 티베트와 나를 향해서 분노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자들은, 나의 특별한 기도를 얻습니다.”라고도 했다. 하!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2) 무자비한 중국

1950년에 시작된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탄압은 희생자의 수로만 보아도 일본의 조선에 대한 탄압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해 보인다. 1958년 캄(Kham)과 암도(Amdo) 지역에서 티베트의 자유투사들과 중국 군인들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잔혹한 행위를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 “십자가형, 생체해부, 희생자들의 창자를 들어내거나 손발을 자르는 일은 보통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머리를 베거나 태워 죽이고, 죽을 때까지 때리거나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달라이 라마 만세!’를 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그들의 혀를 손으로 찢었다.” 당시 저항군에 가담하고 있던 자들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이 뒤따랐다. 이들에게 고문을 가한 사람들은 승려였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단순하고 종교적인 사람들은 체포된 뒤에 자신들의 종교적인 독신 서약을 부정하도록 강요당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죽이도록 강요당하기까지 했다.”고 적고 있다. 비구니 승려에 대한 성적 고문도 언급했다. 무자비하기 짝이 없다.

3) 달라이 라마의 ‘우리’

1959년의 봉기는 달라이 라마에게 아주 특별나다. 자서전에서 “1959년, 참담했던 그 한 해”라고 부르고 자세히 적고 있다. 티베트 일부 지역에 비행기에 의한 폭격과 총 난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1959년 3월에서 그 이듬해 9월 사이에 군사작전에 의한 사망자는 87,000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자살, 고문, 기아로 인한 사망자는 제외한 것이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이 티베트를 탈출하였다. 도중에 중국인들 손에 붙잡혀 죽거나 부상, 영양실조, 혹한,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국경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비참한 상황을 겪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달라이 라마는 많은 성명서나 연설에서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조에는 변함없이, 불교의 자비와 현대적인 가치들에 대한 지지가 혼재해 있다. 두 가지만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는 1989년 12월 10일 스웨덴 오슬로에서의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이고, 다른 하나는 2011년 3월 11일, 봉기 52주년을 기념하는 성명서이다.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의 제목은 〈간디에 대한 찬사〉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 연설을 간디를 기념하는 연설로 삼고 싶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이 노벨상이 붓다와 인도와 티베트의 위대한 성인을 따라서 그가 실천하려고 하는 애타주의, 사랑, 자비와 비폭력의 참된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억압받는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써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수상한다고 했다. 그리곤 “나는 이 상을 마하트마 간디-변화를 위한 비폭력 행동의 현대 전통을 창안한 분-에 대한 찬사의 표시로 수상합니다. 그의 삶이 나를 가르쳤고 영감을 주었습니다.”라고 연설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서 중국 통치하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6백만 티베트인에게,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하는 계산되고 조직적인 책략에 직면하고 있는 동포에게도 이 상을 바친다고 했다.

이 연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연설이 중국인에 대한 분노나 증오, 원한을 고취하지도 않았고, 무장봉기, 테러리즘 등을 선동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어 티베트인과 중국인 모두의 공통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어디에서 왔던 우리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동일한 근본적인 필요와 관심사를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자유를, 그리고 개인과 민족으로서 우리 자신의 운명의 결정권을 원한다. 저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변화들이 바로 이 사실의 분명한 증거이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글이나 연설에서 인간의 공통성-행복은 원하고 고통은 피한다는 공통성-을 종종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자결권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불러서 중국의 억압적인 통치를 비판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중국 내부의 대중 운동이 1989년에 분쇄되었지만 헛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지난 40년간 티베트인들은 고통을 겪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대의명분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폭력은 더 많은 폭력과 고통을 낳을 것이고, 우리의 투쟁은 반드시 비폭력인 것이어야 하고, 증오에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종식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민족에게 고통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수락 연설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불교 승려로서, 나의 관심은 인류라는 전 가족에게, 그리고 고통당하는 모든 중생에게 확장된다. 모든 고통은 무명에 의해서 촉발된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이나 만족에 대한 이기적인 추구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형제애와 자매애에서 온다. 우리는 상대방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지구에 대한 보편적인 책임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과 자비를 내는 일에 불교는 물론, 종교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믿고 있다. 그는 다음 기도로 이 연설을 마친다. “나는 억압자와 친구 모두를 위해, 우리 함께 인간적인 이해와 사랑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그리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여기 중생에는 중국인이 응당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봉기 52주년(2011)에 즈음하여 발표된 성명서를 보자. 여기에 ‘우리’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그 ‘우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분명치 않을 만큼 ‘우리’에 대한 그의 의식은 거의 무제한적이다. 아래의 인용문이 그 좋은 사례이다.

티베트 이슈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에서 우리는 상호 이익이 되는 중도의 접근법을 끈질기게 추구해왔다. 이 방법은 중국인민공화국 내에서 티베트인들의 진정한 자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래된 예전부터, 티베트인들과 중국인들은 이웃으로 살아왔다. 우리 사이의 미해결 차이가 이렇게 오랜 우정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잘못일 것이다. 외국에 사는 티베트인들과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 사이의 좋은 관계를 진작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기울여졌고, 나는 이런 노력이 우리 사이에 더 나은 우정에 기여해왔다는 점에 대해 행복하다. 티베트 내에 있는 티베트인들 역시 우리의 중국인 형제자매들과 좋은 관계를 기르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노력’의 ‘우리’와 ‘우리는 상호이익이 되는’의 ‘우리’는 모두 티베트인을 지칭한다. ‘우리의 중국인 형제자매’의 ‘우리’는 티베트인으로 보인다. ‘우리 사이의 미해결’의 ‘우리’는 중국인과 티베트인이다. 중국인민공화국이 티베트인에게 진정한 자치를 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중국인도 ‘우리’의 일부로 본다. 그래야 함께 공동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성명서는 “모든 중생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라는 말로 마치고 있는데, 여기 중생에는 중국인도 물론 포함된다.

4) 주고받기 명상법

달라이 라마는 분노를 극복하고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 여러 수행법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적수에게도 적용한다는 똥렌 명상법만을 간략히 기술한다. 앞에서 붓다가 누워서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대목을 제시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는 붓다의 이 자비명상이 산스끄리뜨 경전 전통 내의 ‘주고받기 명상(Tib. 똥렌, tonglen, གཏོང་ལེ)-남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대신 자신의 행복을 준다는 명상/상상-으로 계승되었다고 본다. 그는 이 명상법으로 자비심을 길러서 티베트인들의 자유를 뺏고 그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중국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보낸다는 것이다.

2008년 3월 라싸와 다른 도시에서 항의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중국 군인은 시위대에게 발포했고 수많은 항의자를 체포했다. 특히 승려들이 많았다. 그때 달라이 라마는 중국 관리들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들의 분노, 의심,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용서를 주었다.”고 한다. 그에게 용서는 가해자들이 사죄하고 반성하고 난 다음에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는 것이다. 이런 용서는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말을 빌리면, 교환적(transactional) 용서가 아니라 무조건적(unconditional) 용서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한국인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런 용서의 방법을 활용할 능력이 있을까?

5)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노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자서전에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망명 역사에서 ‘가장 슬픈 사건’이라고 부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티베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게릴라 단체가 있었는데 달라이 라마는 이를 해산하라고 호소했고, 이 호소를 무시하고 끝까지 저항하려다가 네팔군의 추적을 받아서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건이다. 1960년 망명민 중에서 뽑힌 수천 명의 게릴라가 티베트와 네팔 북부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게릴라는 수차례 중국군들을 괴롭혔다. 이들의 출몰로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던 중국 정부는 네팔 정부로 하여금 게릴라 군대를 무장해제하라고 요구해 왔다. 티베트 게릴라들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무장해제를 강요한다면 극단적인 경우 네팔 군대와 싸울 수도 있다고 공언했다. 바로 이때 달라이 라마는 중재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개인적으로 호소했다. 그의 근위대장인 타크라(P. T. Takla)로 하여금 그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를 그들의 지도자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 내용은 그들이 네팔과 싸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그들이 네팔과 싸울 경우, 네팔에 정착한 수천 명의 티베트 난민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신 네팔 정부에 감사하고, 무기를 버리고 평화롭게 살기를 당부했다. 그는 티베트의 독립투쟁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티베트 게릴라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타클라의 전언에 따르면, 그들은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고 했다. 지도자 몇 사람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목을 잘라서 자살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심란해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의 용기, 티베트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잘못인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이 한 일은 옳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다수의 게릴라는 무기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의 호소를 무시한 100명 미만의 게릴라들은 국경을 넘는 동안 네팔군에게 추적을 당하게 되었고, 마침내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자서전에서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40여 년 뒤 2008년 3월 라싸 봉기 시 중국 군인들이 잔혹하게 진압했을 때, 티베트 청년들이 조직적인 약탈, 방화, 적대적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폭력이 티베트 내에서 2등 국민 취급을 받는 절망감에서 나온 것은 인정하면서도 “만약 티베트 국민이 비폭력의 길에서 이탈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티베트인들의 대변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비폭력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확신은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2001년 9월 심재룡 교수가 비폭력이 과연 달라이 라마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인가에 대해, 자치가 아니라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 일반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달라이 라마는 “결국에는 비폭력 노선이 도덕적으로 바른길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건설적인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티베트인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안중근 의사를 ‘의사(義士)’로 기억하는 사람은 이런 비폭력 노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6) 사랑과 용서의 역사기술법

비폭력주의자 달라이 라마는 승려로서 왜 자서전을 집필했을까?

나는 한 승려로서 이 글을 쓰고 있을 뿐, 내가 사랑하는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중국에는 티베트의 실제상황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는 선량한 인민들이 분명히 많이 있다. 나는 비통함에서 이런 어두운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났으므로, 앞으로의 일을 예비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기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자서전을 쓴 것은 적대감에서가 아니라, 티베트의 참상을 중국의 선량한 인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과거에 대해 달라이 라마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이다. 적대감 없이 “앞으로의 일을 예비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기에 이 글을 쓰는,” 이런 역사기술법을 사랑과 용서의 기술법이라고 불러보자. 또 다른 곳에서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라는 국가나 민족보다는 불교를 더 앞세운다.

나의 주된 관심은 티베트라는 국가나 민족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주요 관심은 불교와 논리학과 철학이 어우러진 티베트의 전통입니다. …… 인간의 감정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그 감정을 탈바꿈시키는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티베트의 영적 전통을 보호하는 것은 단지 6백만 티베트인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더 넓은 인류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형제자매인 중국인들을 위해 필요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물론 티베트 민족의 운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주요 관심은 민족 자체의 생존이라기보다는 티베트 문화 즉 불교문화-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불교문화-라는 영적 전통에 있고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것도 인류 공동체를 위해, 특히 그 문화를 말살하려는 중국을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티베트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하는 가치였다.

 

4. 나오는 말

이 글은 외아들에 대한 어머니 사랑을 모든 생명에게 확장하라고 권유하는 붓다의 가르침과, 붓다의 자비명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자비명상이 달라이 라마의 똥렌 명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붓다는 이런 무한 사랑이 일반 시민 중생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실천하라고 했다. 사명당의 경우는 백성을 어육처럼 짓이기는 왜군은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자비를 가르칠 수 있는 대상으로도 보았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 무장 게릴라에게 해산을 호소했지만, 게릴라가 네팔 군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소식을 듣고는 한없이 심란해했다.

오늘날 한국인은 저 불가능한 가능성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까? 가정, 학교 등 소규모 집단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인접 국가들 사이에서 가능한 한 실현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일본 중 어느 쪽이 우리에 더 가까울까? 민족과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더 가깝고, 정치적 종교적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제도와 가치를 공유한 면에서 보면 일본이 더 가깝다. 남한의 누가, 북한이나 일본의 정치 지도자를 상대로 똥렌 명상법을 실천할 수 있을까?

현실을 감안하면 일본에 대해서는 달라이 라마의 역사기술의 태도가 필요하다.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인을 죽이지도 않고, 한국의 자유와 자주권을 박탈하고 있지도 않으며, 일본과의 갈등은 주로 과거사를 둘러싸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과 용서의 역사기술법’이 필요하다. 비록 일본의 역사 반성이 부족하다고 해도, 공동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강력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다만 한국 민족주의자들 사이의 감정적 유대와 국가의 ‘유일한’ 역사 해석, 그리고 대법원 판결이 우리 사회 내부에서 비판의 자유를 추호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도 물론 여기에 해당한다.

남한의 누가 북한의 지도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달라이 라마는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듯이, 북한 정치체제의 권력 집중, 비민주성, 폭압성,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의 부재, 인권 탄압을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대의 문제는 신뢰의 문제로 보인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북한의 핵무기나 장사정포가 서울 시민을 현대판 어육인 불고기로 만들 가능성은 제로인가? 한국의 대통령이 제대로 알까? 아니면 국방부 장관이 알까? 살인의 악행을 막는 것도 자비심이다. 적정 수준의 경계심과 함께, 남북한의 미래를 위해 평화와 공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바로 여기에 이성과 민족 감정 사이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계산의 능력인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킨다면 불행을 막지 못할 것이다.

붓다는 불가능한 사랑을 가능한 사랑으로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의 실현은 종종 목숨을 요구한다. 간디가 그랬다. 사명당은 세월이 너무 거칠어서 살생으로 내몰렸지만, 병사로 변한 자신의 몸을 분신이라고 불러서 불편한 심기를 달랬다. 달라이 라마는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자비심을 변용해서 사랑과 용서의 역사기술법을 실천했다. 이런 기술법이 영적인 티베트 불교문화의 소산이라면, 티베트 문화는 한국의 민족문화보다 더 선해 보인다.

달라이 라마는 무한 사랑으로 고뇌도 한없이 깊어졌다. 그가 칭송받는 것은 바로 사랑의 폭과 고뇌의 깊이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시민 중생들에게 애국심이 없다면 모든 생명과 세계는커녕 국가조차 구하지 못할 것이고, ‘적’을 ‘우리’라고 상상하는 명상을 하루에 3분 이상 하지 않는다면 불자로 불리지 못할 것이다. ■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저서로 《근대 일본의 두얼굴: 니시다 철학》과 역서로 데이비드 로이의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문명 정치 종교(마하트마 간디의 도덕 정치사상)》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비폭력연구소 소장,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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