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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모검 / 황건
추모 특집 | 설악무산 스님, 그 흔적과 기억
[75호] 2018년 09월 01일 (토) 황건 인하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오현 스님과의 인연은 칼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여름이었다. 만해마을에서 오현 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은 칼 두 자루를 만지고 계셨다. 영국왕실에서 받았다는 그 큰 칼들에는 ‘로빈 후드(Robin Hood)’라는 글자와 영국왕실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처음 스님을 만났을 때 성형외과 의사인 내 직업을 ‘칼잡이’라고 소개했던 까닭에 스님이 칼을 보여주신 것이리라. 그 무거운 칼이 스님의 번뇌를 잘라내는 ‘취모검(吹毛劍)’이란 생각을 하는 중에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시며 나도 하나 써오라고 지시하셨다. 서예를 배운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수술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15번 수술칼을 모아서 ‘활인검(活人劍)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보내 드렸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이다. 핀란드로 학회를 갔을 때, 도검 전문점에서 청룡도처럼 생긴 칼을 보았다. 날이 서지는 않았으나, 두텁고 무거운 그 칼이 한눈에 탐이 났다. 북쪽 지역에서 나뭇가지를 쳐내며 전진할 때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가죽으로 된 칼집에 들어 있었다. 스님 생각에 바로 구입했다. 여행 가방에 넣고 수화물 칸에 실었는데, 인천공항에서 세관에 걸렸다. 도검류는 국내 반입금지품이라고 하였다. 칼집까지 압수하려기에 칼집이 무슨 무기냐, 이것이라도 허락해달라고 우겨서 가져왔다. 칼집과 압류서류를 스님에게 부쳤더니 전화가 왔다.

“이 뭣꼬?”

“칼집입니다.”

“칼은 어데 있노?”

“공항에서 뺏겼습니다. 서류가 있으니 가능하시면 찾아오세요.”

“도검은 못 들어온데이.”

비록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스님의 입에서 “이 뭣꼬?”라는 말씀 한마디를 들었으니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잃어버린 그 칼 생각을 할 때마다 “중놈 소리 들으려면 취모검(吹毛劍)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한다는 스님의 시가 떠오른다. 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취모검. 스님의 그 경지를 내가 어찌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2005년이었다. 오현 스님은 내가 쓴 몇몇 글들을 읽어보시고 《시와시학》에 추천해 주셔서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서울의 숙소로 찾아뵈었다. 천리마를 알아보시는 말 감별사 ‘백락(伯樂)’ 같은 눈을 가지셨다고 스님께 감사 말씀을 드렸다.

몇 달 뒤 부르시더니 두 액자 중 하나를 가져가라고 보여주셨다. 하나는 중광 스님이 그리신 새 그림이었고, 또 하나는 오현 스님이 쓰신 ‘백락일고(伯樂一顧)’였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성어였다. 지난번에 뵈었을 때 ‘천리마’ 이야기를 들으시고 내게 주려고 일부러 쓰신 것이었다. 당연히 ‘백락일고’를 들고 와 연구실 책장 위에 걸었다. 천리마도 알아보는 감별사가 없다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평생 짐수레만 끌 터였다.

나는 인천의 한 장애인시설의 환자들을 수술해주어 장애인의 날에 인천시의회의장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시의원이 내게 물었다.

“어떤 공으로 상을 받으셨나요?”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와 양나라 왕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많은 사찰을 세우고 승려들을 양성한 자신의 공덕에 대하여 양나라 왕이 묻자 달마대사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나도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였다.

“공덕이 없습니다.”

이때 느꼈던 생각을 의협신문에 발표하였고, 신문을 오려서 오현 스님에게 보냈다. 몇 달 뒤 안거 해제 때 법문에서 오현 스님은 “황건이 쓴 글을 보니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니, 스님은 진정 스스로를 ‘무공덕’이라 하신 것이다. 신흥사와 백담사에 선원을 짓는 등 크게 발전시키고, 복합문화공간 만해마을을 건립하시어 만해 스님의 사상을 크게 선양하신 공로를 결코 드러내지 않으시더니, 수년 후 만해마을을 동국대학교에 기증하셨다.

지난 5월 말, 오현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문상은 다녀왔으나, 다비식에 갈 형편이 못 되었다. 그 시각 수술실에서 하늘의 구름만 올려다보았다.

며칠 뒤 건봉사 연화대를 찾았다. 넓은 황토밭에 타고 남은 검은 숯과 재가 헬기장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있었다. 모셨던 자리에 쭈그려 앉아 고운 재를 손끝으로 느껴보았다. 관 뚜껑을 덮었던, 반쯤 녹은 못들이 손가락 사이에 걸렸다. 못들을 주워 와서 투명한 수지에 넣고 굳혔다. 연구실에 걸려 있는 ‘백락일고’ 액자 옆에 크리스털에 들어 있는 못을 사리탑처럼 세웠다. 내가 만든 스님의 사리탑을 바라보며 만해의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구절을 외웠다.

스님은 내 인생에 칼보다 더 깊숙이 자국을 남기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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