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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35권의 시집이 있다가난한 공무원인 나를 만난 후 쓴 시(詩)다제목은 가계부출판사는 주부생활이다//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어김없이 출간된 시집이지만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그런 나를 아내는 너그러이 용서했다//아내의 시집이 늘어날 때마다나와 네 명의 딸들은하나씩 꿈을 이루어갔다아내의 시집(詩集)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닐까//아내의 회갑 날이다나는 그 시집 한 권을 훔쳐본다“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쬐끔만 참자”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다 — 시집 《아내의 시집(詩集)》(청어, 2021) 이남섭2004년 《현대문예》로 등단. 시집 《마
내 마음의 시
이남섭
2022.0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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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밤 더듬더듬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어머니의 말씀은 “세상이 다 책상이다”사소한 바람까지도 허공 위의 책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물살에도 길이 있다민들레 꽃씨 나는 것을 허투루 보지 마라꿈이란 아무 곳에나 머무르지 않는다 — 시조집 《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책만드는집, 2021) 최도선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겨울 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그 남자의 손》 등과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 등. 《시와 문화》 작품상 수상.
내 마음의 시
최도선
2022.0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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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은 왜 머리를 깊이 숙이고새들은 할끔할끔 눈치를 보는지나는 왜 구걸처럼수없이 이마를 조아렸나 몰라.먹어야 하나또 한 끼 절을 하며 먹어야 하나.수저를 놓다가도그보다 더 고개를 들 수 없는 건말없이 먹을 걸 내주는 저 천지에부끄러워 저절로 그런지 몰라.— 시집 《나의 봄 우리 여름》(넓은마루, 2021) 홍우계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옥가락지》 《마당에 뒹구는 반달》 《가라앉는 섬》 《바보꿀벌》 《백묵을 던지고》 등. 충북 보은고, 안양예고 등에서 교편생활.
내 마음의 시
홍우계
2022.0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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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는 것이구나 서로를 위한 간격을 두고행여 누구라도 뒤처질세라부단한 인고(忍苦)의 날갯짓하면 더러 앞선 자가 힘들 때에는울음으로 힘을 보태는 염려(念慮)의 대열 멀고 험한 길 함께 가려며그래,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구나 — 시선집 《아름다운 적멸》(동학사, 2021) 박호영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등단, 《시와 시학》으로 시작 활동. 시집 《오두막집에 램프를 켜고》 《바다로 간 진흙소》 등과 평론집 《현대시 속의 문화풍경》 등. 한성대 명예교수.
내 마음의 시
박호영
2022.0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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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애가 텅 빈 항아리 같다폭풍처럼 몰아치던 파도도 고요해지고창문에 반짝반짝 별빛을 매달고 달리던야간열차의 기적 소리도 아스라이 잦아지고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 오직 적막한때는 부글부글 들끓음으로 가득 찼으나 한때는 한기 돋는 소소리바람에도 출렁거렸으나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오직 적막 — 시선집 《있으라 하신 자리에》(문예바다, 2021) 허형만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비 잠시 그친 뒤》 《첫차》 《눈먼 사랑》 《그늘이라는 말》 등.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목포대 명예교수
내 마음의 시
허형만
2022.02.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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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이 우는 날은 누군가 올 것 같아가슴을 비우고 기다린다— 정휴 스님 가을이라는데, 찐 가을이라고들 하는데… 유리창을 통해 볕살이 바안히 들어온다. 손바닥 위에서 햇살이 고물고물 논다. 11월엔 어딘가로 떠나볼까. 문득 도솔암 내원궁 오르는 석계가 그립다. 돌계단 한편에 발그레 물든 혹은 나처럼 머리에 서리 얹은 풀잎들의 마음자리가 더없이 쓸쓸하겠고 바스락대는 가랑잎의 가을을 와사삭- 밟고도 싶다. 도솔암 출입은 큰 아이가 대학 들어가던 정초이니 어언 20여 년, 신도도 아니면서 순전히 아이의 합격을 기원하는 기복이 목적이었다.
사색과 성찰
김추인
2022.02.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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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스님“스님, 득도(得度)하셨다는데, 해탈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릅니까?”전강 스님께 절을 올리고 앉자마자 대뜸 물었다.“누가 해탈했다고 해?”“사람들이 다 우리 전강 스님은 젊어서 견성(見性) 득도하셨고 대덕고승(大德高僧)들께 인가(印可)도 받았다고 합니다.”“쓸데없는 소리!”“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용맹정진(勇猛精進)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경지에 큰 변화가 있지 않았겠습니까?”보채는 아이처럼 더 칭얼거렸다.“한가한 소리 할 시간 있으면 공부해. 둘 다 벽 보고 돌아앉아. 가부좌 틀고 화두를 잡아. 화두가 뭐야? ‘이
사색과 성찰
신상철
2022.02.2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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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3년여에 걸쳐 내 생의 마지막 소설 2권을 완성했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 40여 년 전에 발표한 《솔바람 물결소리》와 속편 《연꽃을 피운 돌》 그리고 30여 년 전에 발표한 《우담바라》에 이은 장편이다.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이 불교의 문턱에 서서 설레는 마음으로 불교를 바라보는 소설이라면, 《우담바라》는 불교 안으로 들어와 불교와 호흡하며 마음껏 불교를 향유했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우담바라》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70대 중반에
사색과 성찰
남지심
2021.12.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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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남편과 아내는 병고(病苦)를 겪으며 서로 간병인이 되기도 한다.나는 약골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잔병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는 큰 병을 앓아 한 달 넘게 입원한 적이 있다.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아내가 극진히 나를 간호하여 병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은 의사가 고치지만 건강 회복은 아내의 정성스러운 병간호 덕분이었다. 아내는 입원 중에도 병원식과 별도로 이런저런 건강 음식을 구하여 먹도록 하고 퇴원 후 학교에 출근할 때는 건강에 도움 되는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었다. 더구나 아내는 같은
사색과 성찰
정천구
2021.12.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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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대형 서점의 문구 코너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특히 새해 수첩을 파는 코너에 젊은 여성들이 많다. 문방구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정이라 나도 그 속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훑어본다. 요새 우리나라에도 해외의 명품 플래너, 공책, 수첩들이 들어와 있다. 고급품은 20만 원이 넘는 프랭클린 플래너도 있고 헤밍웨이, 고흐, 피카소가 즐겨 썼다는 몰스킨 공책, 가죽 커버에 고무줄로 허리를 묶어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시아크도 있다. 내가 좋아했던 물품들이다.진지하게 수첩을 고르는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새해에 대한 꿈은 어
사색과 성찰
이창숙
2021.12.0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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