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35권의 시집이 있다

가난한 공무원인 나를 만난 후 쓴 시(詩)다

제목은 가계부

출판사는 주부생활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어김없이 출간된 시집이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 나를 아내는 너그러이 용서했다//

아내의 시집이 늘어날 때마다

나와 네 명의 딸들은

하나씩 꿈을 이루어갔다

아내의 시집(詩集)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닐까//

아내의 회갑 날이다

나는 그 시집 한 권을 훔쳐본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쬐끔만 참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다

 

— 시집 《아내의 시집(詩集)》(청어, 2021)

 

이남섭
2004년 《현대문예》로 등단. 시집 《마음의 강》 등. 전남문학상 수상. 보성문인협회 회장 역임.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