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에 와서 보니나도 한 그루 나무 반짝이던 그 푸른 잎들단풍이 들어 떨어지고 어느새 이렇게 되었나빈 가지가 많은 나무 — 시집 《나를 찾는 소리》(불교문예, 2023) 청화1977년 〈불교신문〉,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물이 없는 얼굴》 《사람의 향기》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 등. 현재 정릉 청암사 주지.
벚꽃이 활짝 피었다 이 순간이 멈추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절정의 한때도 찰나가 숙명이 아니던가 붙잡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벚꽃들은 이내 진다 — 시집 《나를 찾아가다》(문학세계사, 2022) 이태수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림자의 그늘》 《물속의 푸른 방》 《꿈속의 사닥다리》 《꿈꾸는 나라로》 등 20여 권. 천상병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전 대구매일 논설주간.
등 뒤 수레에제 몸보다 더 큰 짐 싣고 가파른 언덕길아등바등 오르는 나귀 한 마리 나귀의 입에선열차 화통처럼 허연 입김 뿜어져 나온다 내 할아버지도아버지도 형제들도 모두 그렇게 살다 갔다나도 그렇게 허덕지덕 살았다 — 시집 《생각만 해도 신나는 꿈》(시선사, 2022) 이동순1973년 〈동아일보〉에 시, 1989년 〈동아일보〉에 평론 당선으로 등단.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강제이주열차》 《독도의 푸른 밤》 등.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
토성 부근 사이클론 시속 1천6백 킬로 지구 사이클론 시속 5백 킬로우리 은하 항성계(恒星系)도 온통 태풍 속나라는 것 한낱 바람의 씨앗— 시집 《무의 노래》(실천문학사, 2023) 고은시인 생활 65년으로 시, 소설, 평론 등 저서 160권이 있다. 전 세계 35개 이상 언어로 약 80여 종의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만해대상 등 국내외에서 3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동서양 위인들의 전기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고타마 싯다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룸비니 왕국의 왕자인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꿰뚫어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죽음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이 의문은 ‘위인전 속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아무리 달리 고민해 봐도 ‘그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는 결론을 바꿀
천상천하 유아독존. 명상. 무명. 피안. 삼독심. 화쟁론, 수처작주 입처개진, 개유불성.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 뭣고. 만다라. 병 속의 새. 화두. 삼천 배. 무소유. 팔정도. 영혼. 윤회. 번뇌. 해탈. 열반. 참선. 깨달음. 불교적 삶. 보시. 반야심경. 보살. 플럼 빌리지. 허무주의. 불상에 왜 절하는가. 불교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기 전 적어 본 것들이다. 흔히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깨달음’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나 이치 따위를 생각하고 궁리하여 알게 됨’이다. ‘깨달음’은 불교에만 있는가. 학자들이 부단한
재작년 늦가을 금산사 심원암(深源庵)에 다녀왔다. 김제 금산사에서 30여 분 거리의 모악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다. 지금은 암자 바로 밑까지 차로도 갈 수 있게 길이 다져져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금산사 주차장에서 내려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진 숲길을 걸었다. 50여 년 전 바로 그 길의 풍광을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때로는 한밤중 소나기에 흠뻑 젖으면서, 때로는 꼭두새벽 눈 속을 헤치면서 기어가다시피 절에 당도했던 그때의 추억들이 흐르는 물의 낙화 송이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암자는 그대로였으나 내가 거처했던 암자 뒤
지난 2020년 봄, 코로나19가 심화하자 우리 대학도 예외 없이 방역을 이유로 주 출입문을 하나만 두고 다 막아버리는 바람에 나의 동선도 바뀌었다. 평소 법학관 옥상과 연결된 다리를 가로질러 마을버스 회차장과 주차장으로 올라 다니던 길을 더 이상 오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득이하게 대운동장 쪽으로 돌아서 내려오게 되면서 시간도 더 걸리고 불편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래지 않아 눈 아래 넓게 펼쳐진 비원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악산의 한 줄기인 매봉 기슭에서 내려다보는 비원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우리에게 비원으로 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유학을 마치고 1999년 귀국하여 쉼이 없는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충전과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여 사무실과 집을 광화문 부근으로 옮겼다. 작년에 다시 광화문을 떠났는데 지나고 보니, 광화문에서 산 기간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는 ‘해와 바람과 비와 여름과 겨울의 자연’을 느끼며 문화, 역사, 자연이 어우러진 환경 속에서 참 행복하게 보낸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에는 알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던 행복한 삶이었다.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시골 정취가 남아 있는
2023년 계묘년이 밝았다. 새해를 앞두고 찾아온 절기 소한(小寒)에는 비가 내렸다. 옛말에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갔다가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한은 추운 절기의 대명사다. 그런데 이번 소한에는 비가 내려서 추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봄이 일찍 오려는 것일까.그런데 정작 지난 연말에는 강추위가 연일 계속 매섭게 이어져 주위가 온통 얼어붙을 정도였다. 원경 스님이 대표로 계신 서울 종로의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께 방한(防寒)용품을 나눠드린 지난해(2022) 12월 14일에는 영하 14
나는 ‘생활 일기’와 ‘생각 일기’를 따로 쓰고 있다. 생활 일기에는 그날의 일정과 행사와 만난 인물 등에 관하여 쓰고, 생각 일기에는 언젠가는 타인에게 일부라도 보여줄 의도로 그날그날 떠오른 생각을 쓴다. 그리고 수시로 수정한다. 지나가는 생각을 잡아둔다는 의미도 있다. 처음 쓸 때는 소신 있게 쓴다. 내가 발행했던 잡지 《작은법률》에 거의 그대로 공개하였는데, ‘이 정도 말도 못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이 있다고 밝히면서 지면에 실었다. 이번 글에는 생각 일기에 썼던 불교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골라 조심스럽게 공
북한강은 흐른다(Der Nord-Han fließt). 운길산 수종사 아래에 나 있는 북한강변길을 따라서 3시간 정도 걷는 일은 요즘 나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다. 길을 걸으면서 수천 년 전 북한강 변에서 조개와 작은 물고기를 채취해서 운길산의 나무 열매와 함께 주식으로 삼고 살았던 선주민을 생각해 본다. 나는 걷기 · 산책에 빠져 있는 거의 산책중독자다. 하루도 걷기 위해서 집을 나서지 않는 날이 없다. 초등학교 때는 왕복 8km를 걸어서 다녔고, 중 · 고교 때는 팔공산 · 가야산을 수시로 오르내렸고, 대학 이후에는 숙소 또는 근
매년 정초에 나는 만년필로 한자 덕담을 써서 지인과 제자에게 보내곤 한다. 올해의 덕담은 ‘기통화평(氣通和平)’이다. 검은 토끼해의 역동성으로 기의 흐름이 원활하고 만사 화평한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의미이다. 토끼해라 기(氣)를 택했는데, ‘끼가 있다’라고 할 때의 끼가 바로 기(氣)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지만, 불혹(不惑)을 넘기면서 문사철(文史哲)에 관심을 갖고 전공 서적 이외의 다양한 책을 읽고 있다. 약 10년 전에는 아들이 군에 입대하였는데, 그 시기에 나는 산간마을 옆집의 강아지와 약 1년 동안
첫 승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 기나긴 산책로를 몇 번을 왕복했는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을 만끽하며 진정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찌나 기뻤는지 중간중간 폴짝 뛰기도 하면서. 첫 패소의 순간 역시 잊지 못한다. 슬픈 예감은 어째서 틀리는 법이 없는지. 침울한 마음으로 멍하게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다른 사건의 소장을 쓰겠다고 손은 모니터에 얹어두고서. 승소도 패소도 처음이기에 이만큼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판결 선고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크게 무뎌지지는 않았
1. 들어가며중화권에서는 ‘성운대사(星雲大師)’나 ‘불광산(佛光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록 대만에 근거지를 두고 있지만 성운 스님은 중국 본토(대륙)와 해외의 중국계 사회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은 불교 지도자이다.불광산을 창건한 성운 스님은 1927년에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태어났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어머니를 따라 남경(南京)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나갔다가 서하산(棲霞山)에서 지개(志開)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오철(悟徹)이라는 법명과 금각(今覺)이라는 호를 받았다. 그 후 초산불학원(焦山佛學院)에서 체계적인
동양의 근대는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듯,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동양으로 침범해 들어오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로, 동서양 문화와 사상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갈등 · 융합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동서양을 포함하여 세계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를 들었다. 근대 이후로는 마르틴 루터, 베이컨, 데카르트를 근세의 성인(聖人)으로 꼽았는데, 이들 사상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 엄복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이 중
1. 머리말스리랑카는 인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나라다. 열여덟 차례의 식민통치를 받는 등 여러 서양 국가의 식민지 시대를 거쳤다. 식민지 역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한 득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450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러한 무형의 의식 지배로 인한 갈등 끝에 결국 ‘국가부도’를 불러온 상태이다.이런 국가 위기를 진단하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 인식을 새롭고 올바른 방향을
1. 씨줄과 날줄 위에서 선 술락의 90년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틱낫한 스님이지만 국제 참여불교운동을 실질적으로 조직화하고 이끌어온 지도자는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1933~ ) 박사이다. 1989년 술락 시바락사의 주도로 아잔 붓다다사,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여러 나라의 불교운동 지도자와 활동가, 학자들이 결합한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가 창설되었다.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날줄인 경도와 씨줄인 위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1. 암베드까르(1891~1956)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폐지하고 1858년부터 인도를 직접 지배했다. 이를 위해 1858년 인도통치법과 1861년 인도입법위원회법(Indian Councils Act, 1861)을 제정하고 이후 영국의 정책에 따라 수차례 개정했다. 한편으로 1835년의 매콜리(Thomas Babington Macaulay)에 의한 교육안, 1854년 우드교육특송문(Wood’s Educ-ation Despatch) 등에 의거하여 인도의 교육제도를 수립하였고 커즌 총독은 1902년에 인도대학위원회를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불교 명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할 때 대개 한국의 간화선과 남방불교 특히 미얀마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수행이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위빠사나 수행법이 한국에 알려진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미얀마의 수행 선사들이나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을 체험한 한국의 수행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런데 30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의 불교 명상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빼놓을 수 없는 수행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법이 지닌 몇 가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