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 기나긴 산책로를 몇 번을 왕복했는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을 만끽하며 진정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찌나 기뻤는지 중간중간 폴짝 뛰기도 하면서. 첫 패소의 순간 역시 잊지 못한다. 슬픈 예감은 어째서 틀리는 법이 없는지. 침울한 마음으로 멍하게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다른 사건의 소장을 쓰겠다고 손은 모니터에 얹어두고서.

 

승소도 패소도 처음이기에 이만큼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판결 선고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크게 무뎌지지는 않았다. 변론기일에 재판장이 원고와 피고 중 누구를 쳐다보고 말하는지에조차 예민했다. 상대방 변호사는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 것 같은지도 살폈다. 선고기일이 잡히면 부처님께 빌었다. “부처님, 제발 이기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는 달가워하지 않으시겠지만, 아무튼 이기게 해주세요.” 선고 당일이면 종국 결과가 입력될 때까지 몇 번이고 화면을 새로 고침 하면서 기록을 읽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비단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승패에 초연하지 못한 것은. 경력이 많은 선배 변호사들에게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없다고 했다. 선배들도 여전히 승소에 웃고 패소에 운다고 했다. 답이 없다. 이는 소송 업무를 하는 변호사의 숙명인 것일까. 그나마 승패 스트레스가 적은 가사 사건 전문 로펌으로 이직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판결문을 마치 성적표처럼 받아드는 변호사이다. 승패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갈애란 크게 두 가지의 ‘망상분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승소하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라는 착각과 재판의 결과가 나의 소유라는 착각이 그것이다.

승소하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인가? 요즘 유독 넘쳐나는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인 변호사는 이길 가망이 없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사건을 맡아 극적으로 사건 해결의 열쇠를 찾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다. 의뢰인도 꼭 이겨달라는 주문을 하곤 한다. 의뢰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승소라는 것도 십분 이해는 하고 있다. 

그러나 승패가 온전히 변호사에 달려 있지는 않다. 재판이 필요한 사건들의 사실관계는 과거에 이미 확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관련 증거를 추가적으로 생성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돌이켜보면 불리한 사건은 유리한 사건보다 더 열심히 하면 했지, 덜하진 않았다. 없는 증거를 확보해보려 법원에 온갖 사실조회 신청에, 문서 제출 명령 신청에, 증인 신청에, 구석명 신청에……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더는 가능한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때까지 머리를 굴렸다. 영민함과 성실함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 변호사 중 한 분은 스스로를 패소 전문 변호사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경험상 경력과 승소 확률이 비례한다고 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즉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사건을 수행하더라도 승소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판의 승패로 고통받는 것은 승소하는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라는 망상분별에 따라 승소의 갈애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를 변호사의 역량과 곧바로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된 귀인이므로 이러한 욕망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고 번뇌와 망상만을 수반하게 된다.

스스로 재판 결과를 소유한다는 생각은 어떠한가. 승소 판결문을 전리품처럼 저장해두고, 승소 사례를 정리하여 이력에 기재해왔다. 최선을 다해 수행해두고도 패소한 판결은 괜스레 찝찝해하며 부러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재판 결과를 나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승소 결과에 과하게 뿌듯해하고 패소 결과에 지나치게 자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좁은 시야로만 보더라도 재판은 의뢰인과 협력하고, 상대방과 각축을 벌이고, 판사를 설득하며 진행된다. 관련 형사판결에 따라 민사재판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고 감정 결과에 따라 판사의 심증이 달라지기도 한다. 재판정까지 오게 된 당사자들의 분쟁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승패와 관련 있는 요소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재판의 결과가 스스로에게 속한다고 착각하고 이를 변호사로서의 에고와 결부시켜 온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실체가 없는 무엇을 좇게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승패의 허상을 허물고 어떠한 선분별로 변호사 일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까. 부처님의 지혜를 차용(借用)하기 위해 마음을 보리수 아래 앉히고 고민을 마주했다. 무아의 지혜, 그중에서도 사섭법(四攝法) 중 동사(同事)의 지혜가 떠올랐다. 동사란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일심동체로 같이하는 것이다.

승패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의뢰인과 고락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게 달려 있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마음으로 협동하는 것,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이것이 아닐까. 의뢰인이 법적 지식을 갖췄다면 취했을 모든 조치들을 수행했는지를 스스로의 역량과 사무의 완성도에 관한 척도로 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러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갈애를 관조하며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해 정진하려 한다. “김 변호사! 송무 오래 하려면 결과에 너무 연연하면 안 돼. 물론 나도 잘 안되지만.” 선배 변호사가 들려준 걱정처럼 오래 이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눈 뜬 물고기를 본뜬 목탁의 모습처럼 선분별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안내하려 한다. 감정과 상황에 끌려가지 않도록 맞서려 한다.

 

김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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