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활 일기’와 ‘생각 일기’를 따로 쓰고 있다. 생활 일기에는 그날의 일정과 행사와 만난 인물 등에 관하여 쓰고, 생각 일기에는 언젠가는 타인에게 일부라도 보여줄 의도로 그날그날 떠오른 생각을 쓴다. 그리고 수시로 수정한다. 

지나가는 생각을 잡아둔다는 의미도 있다. 처음 쓸 때는 소신 있게 쓴다. 내가 발행했던 잡지 《작은법률》에 거의 그대로 공개하였는데, ‘이 정도 말도 못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이 있다고 밝히면서 지면에 실었다. 이번 글에는 생각 일기에 썼던 불교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골라 조심스럽게 공개하고자 한다. 그저 한 촌부의 생각이라고 여기고 가볍게 넘겨주시기 바란다. 

 

한자 표기 문제

먼저 이제라도 모든 절에서 한문과 한자를 버리고 한글과 우리말을 사용하시기를 바란다. 제발. 참고로 구세대인 저는 한자 공부 많이 했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나는 절에 자주 간다. 기도, 답사 그리고 삼사순례 등으로 전남 · 광주 근처는 물론 두 시간 거리 이내에 안 가 본 절이 없을 정도로 다녔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일주문에 예를 들어 ‘伽倻山 海印寺(가야산 해인사)’처럼 한자로 쓴 현판이 보인다. 유명 인사가 아주 잘 쓴 글씨이고 문화적 가치도 있겠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자를 좀 안다고 해도 예스럽게 개성적으로 쓴 글씨일수록 읽기가 어렵다. 

한글세대는 거의 읽지 못한다. 읽을 생각 자체가 아예 없다. 한글세대가 주류인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읽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大雄殿’ ‘大雄寶殿’ ‘大寂光殿’ ‘觀音殿’ ‘冥府殿’ ‘山神閣’ 등등 모두 마찬가지다. 아빠의 손을 잡고 놀러 온 아이가 “아빠 저거 뭐야?” 물어도 아빠는 대답할 능력이 없다. 아빠는 무색해서 그냥 가자고 한다. 아빠의 권위가 실추된다. 다음에 절 오기가 싫어진다.

이제 절에 있는 모든 현판, 주련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한글로 ‘대웅전’이라고 써서 달고(한 걸음 더 나아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표기하면 더욱 좋고), 주련은 쉬운 말로 번역해서 달아야 한다. 요즘 가끔 그런 현판들이 보인다. 어느 절에서 본 한글 ‘관음전’ 현판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우리말로 번역한 한글 주련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이해되었다. 부처님상과 보살상 앞에 한글로 된 명패를 놔두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공인 번역본

한자로 된 불교 경전과 불교 서적도 불경 번역원 등에서 공동으로 번역하여 종단이 공인한 번역본이 필요하다. 한문 불경 및 서적은 연구 대상으로 분류하여 전문가들에게 연구를 맡겨야 한다. 적어도 종파별로라도 통일되고 번역된 불경이 필요하다(현재 번역본이 많으나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번역본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번역본마다 아주 다르게 표현하고 주관적인 주장이 많아서 번역본을 읽기가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다.). 

공인된 불경 외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책을 쓰거나 글을 쓸 때도 그 경전을 인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믿고 찾아볼 수 있다. 제대로 된 번역본은 분량이 적고 문장이 짧다. 주석도 달 필요가 없다. 주저 없이 책을 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번창한 이유 중 하나는 성경을 히브리어도, 라틴어도, 영어도, 한문도 아닌 한글과 우리말로 번역한 통일 성경을 읽도록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민층에서 환영받은 것이다. 만약 기독교계에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이 수입되었다면 누가 읽을 수 있었겠는가? 서민들이 하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신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겠는가?

 

스님 충원 및 양성 문제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요즘 불교계의 고민은 출가자(행자)가 없어 스님 없는 빈 절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비구니 스님은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전처럼 ‘출가 인연’만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한문을 포기하고(한문 경전이 어려워 출가 자체를 망설임) 행자가 하던 허드렛일을 인부를 고용하여 해결하고, 나이 제한 폐지하고, 천주교에서 사제를 양성하듯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대응하는 ‘불교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규 학교로 인가를 받고 그 학교를 졸업하면 졸업장과 학위와 등급별 스님 자격을 주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학비를 면제하고 기숙사를 제공하고 절에서 일정 기간 연수하도록 하고 도시에 거주 여건을 마련하면 스님들이 늘어날 것이다. 

‘불교 역사’ ‘불교문화사’ ‘불교철학’ ‘선불교’ 등을 필수과목으로 교육하고 유학도 보내주는 방법을 검토하여야 한다. 스님들의 수준이 향상될 것이고 졸업생을 종단에 소속시켜 발령도 내고 급여도 주고 노후도 보장해주고 죽은 후 예우까지 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승과시험이 있었고, 스님 계급이 있었으며, 생계와 미래가 보장되었기에 불교가 전성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찰의 불친절 문제

또 하나의 생각. 절은 조용하다. 그러나 불친절하다. 생각건대 출입 금지 구역을 만들어 스님들이 숨어 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찰을 개방하는 시간에는 당직 스님 한 분 정도는 승복을 갖추어 입고 돌아다니면서 안내도 하고 설명도 하고 대화도 하고 차도 같이 마시며 방문객에게 스님들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스님 수가 적으면 일정 시간을 정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스님들이 예불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일상도 일부 공개하고 방문객에게 친절하여야 한다. 신도이건 관광객이건 그냥 손님이건 절에 가서 ‘건물과 불상만 보고 오는 현재의 모습’은 불교가 대중과 멀어지는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찰 화재와 종합사찰

마지막으로 절에 화재가 잦다는 것을 생각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손실도 크고 엄청난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하니 대웅전 등 사찰의 대표 법당 이외에는 목조가 아닌 돌이나 철근 시멘트로 건물을 신축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그러면서도 겉모습은 한옥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모든 사찰 건물이 왜 한옥이어야 하는가? 그것도 외견상 한옥일 뿐이고 내부는 현대식이고 아파트식이지 않은가? 아마도 주방은 완전 현대식일 것이다. 장작불은 때지 않을 것이고, 난방은 보일러일 것이고, 건물 내부에 샤워실도 있고 화장실도 비데가 설치된 수세식일 것이다. 겉모습만 한옥이고 목조라는 것이다. 이래서는 의미가 없다. 엄격한 심사로 선정된 전통사찰 이외에는 앞으로 모든 건물을 현대식으로 짓도록 유도하고 보조금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참고로 필자는 예전부터 종합사찰, 사찰의 모든 것이 한곳에 모인, 해설이 있는 사찰, 관광 및 학습용으로 대규모 사찰을 짓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도시 근처에 세계적인 사찰(한국불교의 랜드마크)을 하나 짓자는 것이다. 자금 마련은 1,000만 불교 신도가 각자 만 원씩만 내도 1,000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제는 절이 시내로 들어와야(하산해야) 한다. 성당도, 교회도, 원불교 교당도 대부분 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두서없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제안이다. 1975년부터 불교를 알기 시작한 나는 그런, 약간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를 생각 일기에 적어 본 것이다. 

 

노영대 / 법무법인 법가 대표변호사, 전 광주지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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