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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설사 상대방이 먼저 손 내밀어 청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생경한 곳으로 옮겨 앉는 일은 그리 녹녹지 않음이 틀림없다. 하물며 오랜 세월 집약된 사상이나 종교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녹아드는 일이란 기적에 가까울 만큼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교나 사상이 새 장소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김용남
2009.04.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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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길 보통 선은 당대(唐代)에 황금기를 누렸고 이후에는 세력이 약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오(圓悟, 1160~1125)와 대혜(大慧, 1089~1163), 그리고 굉지(宏智, 1091~1157)의 활동을 보면, 송대에도 선은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유학은 사대부의 시대인 송대에 불교 비판을 자양분으로 하여 발전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인식되고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변희욱
2009.04.2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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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주렴계(周濂溪, 名 敦헊, A.D. 1017~1073), 소강절(邵康節, 名 雍, A.D. 1011~1077), 장횡거(張橫渠, 名 載, A.D. 1020~1077) 등은 도학(道學)의 문을 연 유력한 학자들이지만, 그러나 송·명 도학을 체계적으로 확립게 한 것은 낙학(洛學)이라 불리우는 정명도(程明道, 名 顥, A.D.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송재운
2009.04.2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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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修)’란 무엇인가? 수행·수양·수련이란 개인이 지니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적 체계를 기반으로 심신을 단련함으로써 현상적 자아를 변혁시켜 본래적 자아에 도달하려는 자기완성의 노력을 말한다.(불교에서는 ‘자기완성’을 추구한다기보다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본래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이승환
2009.04.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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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한국사회의 유불의 교류는 유교와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교류하여 역사적으로 소통(疏通; communication)하거나 통변(通辯; interpretation)하거나, 통달(通達; conversance)하는 심연의 과정을 보여 준다. 한국 유교의 소통 주체는 유학자나 선비를 포함한 유교인이며 한국 불교의 소통 주체는 선지식이나 보살을 포함한 불교인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김용환
2009.04.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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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새삼 보살과 선비를 떠올리는가? 우리 시대는 보살과 선비의 시대가 아니다. 보살과 선비의 공통적인 삶의 지향으로 상정될 수 있는 이타행과 천명(天命) 또는 다르마(dharma)에의 지향은 더 이상 이 시대 주인공, 즉 시민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시민들은 이기성과 고립성을 전제로 삼아 합리적인 이익 고려의 원칙 정도의 윤리만을 요구받을 뿐이다.
불교속의 유교,유교속의 불교
박병기
2009.04.23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