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속의 유교, 유교 속의 불교

1. 왜 새삼 보살과 선비를 떠올리는가?

우리 시대는 보살과 선비의 시대가 아니다. 보살과 선비의 공통적인 삶의 지향으로 상정될 수 있는 이타행과 천명(天命) 또는 다르마(dharma)에의 지향은 더 이상 이 시대 주인공, 즉 시민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시민들은 이기성과 고립성을 전제로 삼아 합리적인 이익 고려의 원칙 정도의 윤리만을 요구받을 뿐이다. 그나마 그 요구마저도 상당 부분은 이기성이라는 공인된 본성의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우리 사회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명실상부한 시민사회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 이후에도 20여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이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또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사회 성격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건너면서 우리 시민들의 관심사는 정치에서 경제로 그 흐름을 바꾸고 있고, 그 흐름에 힘입어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그 경제가 어떤 경제여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건너뛰어 토목공사적인 일자리 창출과 아파트 값 올리기를 통한 경제 살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듯한 절망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수상한’ 시절에 난데없이 보살과 선비를 떠올릴 만한 빌미가 있을 수 있을까? 만일 그 빌미가 없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한가한 학자의 공론(空論)이거나 세상의 흐름을 외면한 돈키호테적인 망상의 표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은 단지 타자(他者)만을 향해 있지 않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내면에 직선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담론의 세계에 머물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시간과 공간을 할애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쩌면 이런 궁색한 정당화 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우리 담론의 전개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의 당위(當爲) 또는 가치(價値) 관련 논의의 현재성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이 늘 절박하다고 느끼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일은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菩薩)이나 선비[士]에 관한 이야기는 가치와 당위를 담지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이야기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약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는 사실이 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왜 또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 나 자신과 타자들을 괴롭히고자 하는 것인가?

여러 어려움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와 있고 그중 어떤 것은 실제로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경제력 자체나 사회 보장의 수준이 아주 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경제력 규모로 세계 200여 개 국가 중에서 12, 3위를 차지하고, 의료보험 제도나 극빈층 가정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제도가 어느 정도의 안전망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각보다는 훨씬 더 풍요로운 사회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단군 이래로 가장 풍요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아파트 공터에 버려진 멀쩡한 가구들은 여전하고 식당에 가 보면 먹는 것보다 버려지는 음식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다. 아이들은 값비싼 옷이나 학용품들을 잃어버리고도 한 번도 제대로 찾지 않고 있고, 어른들도 제대로 입을 수도 없을 정도의 옷을 사서 옷장을 비좁게 하다가 시간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은 물론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낭비와 무절제의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이제 우리는 최소한 외적으로는 이미 생존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를 건넜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판단에 동의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치와 당위에 관한 논의가 학자들의 담론 수준을 넘어서 시민들의 삶 속으로 확산되는 시기여야 한다는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이런 요청으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런 괴리를 어떻게 메워 가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귀납적으로 그런 요청이 이끌려 나오고 그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수행자 공동체가 있어서 연역적인 방식의 대안을 제시하는 가운데 두 주체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징후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꽤 오래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계가 이런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해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불교계도 이미 자본주의적 일상의 한 귀퉁이로 편입되어 있어서 기대할 것이 없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사람도 많다. 이러한 낙관과 비관을 운명론적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살아 있는 실천 전통’으로서 불교를 전제로 해서 우리 불교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해 온 보살과 조선 성리학의 도도한 전통 속에서 역사적 업적과 과오를 모두 껴안아야 하는 비운의 주체였던 선비를 오늘 우리의 이야기 주인공으로 다시 불러내 보는 일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과 사회를 자본주의적 일상에 내맡겨 놓을 수 없다는 처절한 비명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2. 시민사회에 관한 논의에서 전통의 문제

오늘 우리의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개념은 전통이다.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전통, 즉 맥킨타이어(A. MacIntyre)의 개념을 빌리면 ‘실천 전통(practices)’은 대체로 유교와 불교가 섞인 그 어떤 것이다.1)  1)  A. MacIntyre, The Tasks of Philosophy(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50~51쪽 참조. 이 글에서 맥킨타이어는 사회나 문화의 상대성에 관한 담론이 가치의 상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실천 전통(practices)에 근거한 합리성을 가치판단의 준거로 삼을 수 있다는 그의 담론에 대한 지속적인 반론을 염두에 둔 끈질긴 재반론의 일환으로 읽을 수 있다. 

유교 중에서도 정주학(程朱學) 또는 성리학(性理學)의 전통이 살아남아 있고, 불교 중에서는 주로 화엄 교학에 뿌리를 두고 참선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불교(禪佛敎)의 전통이 살아남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이 우리에게 어떻게 남아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인식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조선 성리학을 대변했던 서원(書院)을 방문해 보면 대부분 관광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뿐 실제로는 죽어 있는 공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임을 쉽게 알 수 있고, 이 시대에 과연 성리학자들이 명실상부하게 살아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영역으로 논의의 초점을 바꾸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과연 이 시대에 선비정신이 살아남아 있는가?

선비정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정의한다고 해도 우리 시대에 선비정신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는 선비나 선비정신이라는 개념 자체는 역사적인 것일 뿐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것일 뿐 이 시대에 살아서 계승되고 있는 실천 전통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는 어떠한가? 조계종을 중심으로 삼아 전국에 본사와 말사가 포진해 있고, 전 국민의 약 4분의 1이 불교라는 통계를 보면 성리학에 비해 한국 선불교는 조선 성리학처럼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확실히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까지 절에서 머물며 수행의 시간을 공유하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나, 결제철이 되면 전국의 선원에 수행을 위해 어김없이 모여드는 수행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 불교가 현재까지 살아 있는 실천 전통이라는 평가를 확증해 주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 불교는 광복 이후의 현대사 속에서 대처 승단과 비구 승단 사이의 대립과 갈등, 폭력에서 비롯된 어두운 측면을 여전히 벗어 버리지 못하는 약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이러한 표면적인 갈등은 대체로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의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못하다. 본사 주지들의 부정과 선거를 둘러싼 잡음들, ‘고급 외제 자동차를 타는 스님들’, ‘룸살롱을 드나드는 스님들’과 같은 부정적인 기사들이 가끔씩 터져 나와 퇴옹 성철과 숭산 행원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 고승들의 수행과 포교의 모범을 근본부터 뒤흔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잡음들은 단지 불교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신교의 경우에도 일부 목사들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이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고, 물량주의에 내몰린 채 예수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일부 대형 교회들의 공격적인 전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타 종교의 부정과 비리가 불교계의 비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 무상(無常)과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에 그런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은 다른 종교의 그것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불교와 유교의 전통 이외에도 무속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고, 200여 년 전부터는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어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그리스도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는 광의의 기독교는 단순한 서구 종교가 아니라 우리 전통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있다. 전 인구의 약 3분의 1이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인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가치판단이 그리스도교적인 기준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우리는 배우자나 친구, 또는 자신이 그리스도교일 가능성이 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이때의 그리스도교는 이미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관행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2008년은 그러한 그리스도교 전통 중에서 개신교와 불교가 표면적인 갈등을 빚은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근본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색채를 지닌 서울 강남 한 교회의 장로인 대통령과 역시 개신교의 부흥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찰청장이 보여 준 배타적 태도에 불교계 전체가 분노하여 항의 법회를 열었던 사건은 그동안 잠복해 있었던 오래된 전통으로서의 불교와 새로 전통의 한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주목해 볼 만한 사태임이 틀림없다.

그보다 앞서 주로 성리학과의 대립과 충돌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 우리의 전통으로 상당 부분 진입한 가톨릭의 경우에는 불교와의 공존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보면, 불교와 개신교 사이의 갈등도 노력과 시간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 속에서 그러한 전통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구성원들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리학과 불교, 그리스도교와 같은 사상적이고 종교적인 배경을 가진 전통들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정착한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은 이 모든 전통들을 흡입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와는 태생적인 친화성을 일부 지니고 있지만, 그 관계에서 당연히 그리스도교는 구심력을 잃고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흡수되는 방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기성과 고립성을 중심에 두는 강한 인간학적 전제를 갖고 있는 민주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은 필연적으로 삶의 의미에 관한 논의를 배제하거나 최소한 경계하는 경향성을 지니게 된다. 자신의 이기적 본능을 영리한 계산을 통해 최대한 확보하는 삶의 지향 이외에 민주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윤리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윤리적 이기주의이거나 잘해야 공리주의 윤리설에 그친다.

물론 이기주의 윤리설이나 공리주의 윤리설 모두 그 나름의 이론적 자족성을 지니고 있고,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논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보완을 해 가고 있는 살아 있는 윤리설임을 감안한다면 그 이론들을 전제로 하는 삶의 의미 구축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유주의적 전제 속에서 작동하다 보면 그런 삶의 의미 문제는 고립된 상태에 있는 각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돌려지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시민사회를 이기적 본능을 전제로 해서 그 본능을 최대한 충족하는 것을 권장하는 사회로 바라보는 관점은 물론 시민사회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관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서구의 시민사회론이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의 고전적 시민사회론에서 출발했음을 감안해 보면 오히려 시민사회가 사회적 삶의 도덕적 비전을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2)   2)  Adam B. Seligman, The Idea of Civil Society(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10쪽 참조.

그 후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정치적 실체로서의 시민사회론이 부각되고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 국가 권력에 맞서는 저항적 시민사회론이 정착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한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람시적 시민사회론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중심체로서 시민과 시민사회를 강조하는 우파적 시민사회론이 동시에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론은 정치와 경제, 교육의 영역에서 그 목표와 방향을 결정짓는 배후로 작동하고 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각각 다른 시민사회의 지향으로 인한 갈등과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기도 하다.

우파와 좌파를 통틀어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민사회론이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강한 도덕적 지향이다. 좌파적 시각의 경우 평등에 근거한 인간다운 삶과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지향을 보이고 있고, 우파적 시각의 경우 자유에 근거한 성장과 보수를 강조하는 지향을 보이고 있다. 그 도덕적 지향 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시민사회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 집단의 도덕적 책임에 관한 공통적인 강조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도덕 문제의 뿌리가 엘리트 집단의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결핍에 있다고 지적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면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전제를 최소한 암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경향성은 상당 부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삶을 살고자 했던 선비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화 논거를 유럽사회 왕족이나 귀족의 모범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당위적 요청을 이끌어 내는 근거는 수양을 통해 자신의 도덕성을 함양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쳐 백성들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는 선비의 삶의 지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분석일 것이다. 유독 일상적인 대화 속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되는 것도 그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감안해 볼 때 결국 우리 시민사회의 분석 과정은 한편으로는 서구 시민사회론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통에 대한 정당한 주목을 필요로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시민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선비 전통에 관한 논의를 포함해야 하고, 더욱 넓은 의미의 시민의 도덕성에 관한 시민윤리 논의에서는 삶의 의미에 관한 고민을 배제하지 않는 최대 도덕의 개념으로서의 보살(菩薩)에 관한 논의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3)   3) 이 문제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졸고, 〈보살과 선비, 그리고 우리 시대의 시민〉,《윤리연구》, 65호, 한국윤리학회, 2007.7., 344-345쪽을 참조할 수 있다.

3.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보살과 선비

1) 시민윤리와 이상적 인간상 논의

우리 사회에서 시민을 주체로 삼는 시민윤리에 관한 논의는 그 내포(內包)와 외연(外延) 모두의 측면에서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삼는 시민윤리 논의에서 이상적 인간상에 관한 논의는 극히 조심스럽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상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각 개인에게 부여되어 있는 불가침의 권리인 자유의 영역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논의에서도 이론상 이상적 인간상에 관한 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으로 나오게 될 경우에는 각 개인의 사적 영역에 맡겨져야 한다는 강한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공동체주의를 배경으로 삼는 시민윤리 논의에서는 각 개인에게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다양한 도덕적 특성, 즉 덕(德, arete)을 요구할 수 있다. 유교의 대동사회(大同社會)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ce)와 같은 강한 도덕적 틀을 갖는 공동체가 등장하고 그 공동체 안에 있을 때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최대 도덕적 차원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에게 공동으로 지향할 수 있는 공동체에 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관점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다. 보살이 전제로 하는 불교적 공동체나 선비가 전제로 하는 유교 공동체가 각각 강하게 부각될 수 있는 데 비해,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 합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는 한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살과 선비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과 보살, 선비 사이의 연계성과 차별성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논의는 그중에서도 주로 보살과 선비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삼아 각각의 주체가 지니는 연계성과 차별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를 생각해 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로 접어들 단계인데, 순서는 우리의 불교가 내세우는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보살과 성리학에 내세우는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선비 각각의 도덕적 지향을 살핀 후에 그 연계성과 차별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삼고자 한다.

2) 보살의 도덕적 지향으로서 수행(修行)과 자비(慈悲)

보살의 도덕적 지향은 동체자비(同體慈悲)이다. 우리 불교의 역사 속에서 보살사상을 계율의 관점에서 재정립한 것은 원효이다. 그는 보살계에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통해서 보살이 누구이고, 그가 지키는 보살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보살계는 ‘흐름을 돌려서 큰 율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악함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올바름을 성취하는 핵심적인 길’이다.4)   4) 菩薩戒者 反流歸源之大律 去舍就正之要門也, 원효, 〈菩薩戒本持犯要記〉, 《한국불교전서》, 1권 571쪽 상.

이러한 원효의 보살계관(菩薩戒觀)에 근거해서 보면 보살은 일상의 흐름을 한편으로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흐름을 돌려서 근원적인 깨달음의 길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자임과 동시에 사악함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올바름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이기도 하다.

보살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인 육바라밀은 크게 수행과 자비행으로 이루어진다. 지계와 정진, 수행, 지혜가 내면적인 깨침을 향하는 바라밀이라면, 인욕과 자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바라밀이다.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보살행 속에 수행의 과정과 결과가 녹아드는 관련성을 지니게 된다.

지눌에게서 보살은 사람과 사물이 공(空)하다는 인식을 넘어서서 법 자체가 공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존재자로 묘사되고 있다.5)  5) 小乘證人空眞如 大乘菩薩證法空眞如, 지눌, 〈看話決疑論〉, 《한국불교전서》, 4권, 733쪽 중.

주로 중관론에 의거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지눌의 보살관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간사가 공하다는 인식을 넘어서서 법 자체로 공한 것이라는 깨침을 얻는 수준의 존재자이고, 그 공성(空性)에 관한 철저한 깨침에 근거하여 동체자비의 실천행이 늘 가능한 존재자인 것이다.

이러한 원효와 지눌의 보살관에 근거해서 보살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면, 결국 보살은 삶과 진리 자체의 공성을 철저히 깨치면서도 삶의 현실 속에서 보살계라는 도덕적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 생멸(生滅)과 진여(眞如)에 걸쳐 있는 이상적 인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현실 속에서 계율을 경시하지 않으면서 공성에 대한 깨침과 함께 인연을 전제로 하는 동체자비의 실천행(實踐行)을 지속해 나가는 수행자가 곧 보살인 셈이다.6)   6) 고익진도 보살을 수행과 자비행이라는 두 개념에 토대를 두고 정의하고 있다. 고익진, 〈불교윤리와 한국사회〉, 최법혜 편, 《불교윤리학 논집》, 동국역경원, 1996, 302쪽.

보살에 대한 이상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보살의 도덕적 지향이 우리 시대의 시민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최대 도덕 또는 권유의 도덕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 시대의 보살은 우선 자본주의적 일상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가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수행을 통해 그 지향성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면서 동시에 자신과 인연의 고리로 맺어져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과 실천행을 보여 주고자 노력하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이 시대에 가능한 모형일 수 있을까? 설령 이상적인 인간상으로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자유로운 삶의 의미와 방향 선택의 권리를 갖고 있는 우리 시대의 시민들이 이러한 지향을 선택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민사회에도 보살과 보살정신이 필요하다고 강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일단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불교라는 종교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삶의 가능한 대안, 또는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적 대안으로서 보살상을 제시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고, 삶의 방향과 의미에 관한 철학적 담론의 장에서 하나의 사상사적인 사례로 보살을 제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도에 만족하기 어렵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시대일수록 보살정신을 구현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내는 것이라고 우리 시대의 시민들을 향해 권유하고 싶은 욕구를 쉽게 버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남은 대안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윤리의 개념 속에 보살정신을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치밀한 논의를 토대로 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시민윤리의 교육과도 긴밀하게 연계되는 이러한 대안은 물론 이미 우리의 도덕 교과의 목표로 일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7)   7) 도덕 교과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는 보살정신과 선비정신이 ‘전통 윤리’ 등의 교과목 체제 안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런 정신들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당위만 있을 뿐 이 시대의 시민윤리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2007 개정 고등학교 도덕과 교육과정》, 2007 참조.

그러나 보살정신이 어떻게 시민윤리와 만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배제된 내용만이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 도덕 교육의 장에서는 단편적인 지식의 전수에 그칠 가능성이 큰 것이 문제이다. 이런 사정은 선비정신이라고 해서 결코 나아 보이지 않는다.

3) 선비의 도덕적 지향으로서 수양(修養)과 안인(安人)의 정치

선비는 선진 유교의 군자(君子) 개념이 조선 성리학을 배경으로 삼아 재구성된 것이다. 군자 개념에 대해서는 특히 공자가 다양한 형태로 정의를 시도했고, 그 이후의 유학자들에 의해서 구체화되면서 주희의 성리학으로 이어졌다. 본래 공자에게서 군자 개념은 성인(聖人)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개념으로서 군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가 강조하는 군자는 대체로 소인(小人)이라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간상 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이기적 배경의 시민과 유사성을 지닌 인간상과 대비되곤 한다.

군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지향은 도(道)를 향하는 일관된 수기(修己)의 노력과 소인으로 통칭되는 일반 백성을 그 도의 길로 인도하는 안인(安人)의 실천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라든지, “군자는 덕(德)을 생각하는 데 비해 소인은 안주할 거처를 생각한다.” 등과 같은 공자의 군자에 대한 설명은 군자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의로움을 추구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덕을 지향한다는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경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8)   8)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논어》 〈이인편〉), 君子懷德 小人懷土(《논어》 〈이인편〉)

주희에 의해 성리학의 사서(四書)로 확립된 《중용(中庸)》에서도 군자는 논의의 중심축을 이룬다. 이 책의 주인공은 《논어》와 마찬가지로 공자이지만, 논어의 공자가 중국 고대의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면 《중용》의 공자는 천인합덕의 길을 모색한 성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하다는 김충렬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군자에 관한 윤리학적 고찰은 주로 《중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9)   9)  김충렬, 《중용대학강의》, 예문서원, 2007, 36쪽 참조, 《중용》의 군자론을 군자에 관한 윤리학적 접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주장은 졸고, 〈도덕교육의 목표로서의 군자(君子)와 시민〉, 《윤리교육연구》 15집, 2008.4., 10쪽을 참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수신(修身)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신을 생각한다면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어버이 섬김을 생각한다면 사람을 알지 않을 수 없으며,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하늘을 알지 않을 수 없다.10)  10) 故君子不可以不修身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중용》(여기서는 주희, 《사서집주》, 보경문화사, 1993에서 인용한 것이다.) 같은 책, 35쪽.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하고 땅의 도는 나무의 성장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정치라는 것은 창포와 갈대에 비유할 수 있다.11) 11)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也, 주희, 앞의 책, 34쪽.

이러한 공자와 주희의 군자관을 요약한다면, 천명(天命)이라는 하늘의 도(道)를 중심에 두고 먼저 그 도를 추구하는 수신(修身)의 경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자신이 속해 있는 몽매한 백성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치인(治人)의 자세를 함께 지니고 있는 존재여야 한다.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동일 선상에 두는 이러한 유교의 군자관은 수신에서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일련의 윤리적인 명령을 구체적인 도덕규범으로 확립하여 동아시아의 전통 윤리관의 중핵을 이루어 왔다.

선비는 이러한 군자관이 조선에 와서 정착한 구체적인 인간상이다. 선비를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조선 5백 년을 이끌어 온 성리학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학문과 예술을 기본 소양으로 삼아 수양(修養)을 생활화하여 도덕적 실천 능력과 도학정치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자’라고 정의될 수 있다.12)   12) 정옥자는 그중에서 정치적 능력은 제외하고 도덕적 실천 능력을 선비의 주요 능력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정옥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현암사, 2002, 12쪽 참조.

선비들은 이와 같이 개념적인 수준의 논의에만 존재하는 이상적 존재자가 아니라 조선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실체적인 존재자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한 전형적인 조선 선비의 예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율곡 이이를 꼽는다.

퇴계는 학문과 수양의 모범을 보여 주었고, 남명은 분명한 출처관(出處觀)을 전제로 하여 절의와 교육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며, 율곡은 벼슬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치인(治人)의 한 경지를 보여 준 선비로 꼽힌다. 남명의 경우에는 삶의 내면적 지향에는 경(敬)을, 외면적 지향에서는 의(義)를 실천하고자 했던 선비의 삶을 보여 주어 그 시대 조선 선비의 추상같은 엄격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기도 했다.13) 13)  內明者敬 外斷者義, 《남명집》, 한길사, 2001, 472쪽.

이처럼 조선 선비들의 삶의 지향과 정신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난 후에 우리는 보살에 관한 논의를 전개했을 때와 동일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과연 조선의 선비가 이 시대에 온전히 자신의 정신을 구현해 낼 수 있을까? 그들이 내면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수양(修養)은 각 개인의 선택에 따라서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하늘의 명령에 대한 인식의 차원에서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삼아 그 도를 펼치고자 하는 도학정치(道學政治) 또는 도덕정치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가능한 정치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가?

그런 질문들에 앞서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생업을 직접적인 노동을 통해 해결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시대에도 종교 지도자들 상당수가 생업을 면제받은 채 자신의 종교를 지키는 데 몰두하고 있고,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최소한 임기 안에는 생업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선비를 그들과 대비시키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유비(類比)는 여전히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몇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중의 하나는 아마도 조선 시대 선비의 위상과 이 시대 시민의 위상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일 것이다. 선비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통치자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는 데 반해 시민은 신분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적 시민사회론에 근거해서 시민들 사이의 계급 구분은 가능하지만, 그 계급은 태생적 세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분과 본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더욱이 마르크스주의적 시민사회론에서도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이중적 위상을 지니게 되는 점을 고려해 보면 단순한 지배층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던 선비와는 다른 위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요소는 생업으로부터의 거리 문제인데, 오늘날 일부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를 감안한다고 해도 그들과 선비를 동일시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선비정신이 오늘날 시민의 최대 도덕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민윤리의 한 내용이라는 주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최대 도덕으로서의 시민윤리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을 시민사회적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거나 요청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논의는 우리의 관심과는 조금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제 다시 초점을 보살과 선비 사이의 관계성으로 돌려서 잠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4. 보살과 선비: 연계성과 차별성, 그리고 현재성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보살과 선비는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보살의 경우 통일 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정치 이데올로기이면서 민중들의 가치판단 준거로 정착했던 선불교 중심의 한국불교가 최종적인 지향점으로서 붓다와 함께 거의 동일한 선상에 놓기도 했던 이상적 인간상이다.14) 14) 초기불교에서 붓다와 아라한이 동일한 개념으로 혼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북방불교권에서 붓다와 보살도 때로는 거의 동일한 수준의 깨침을 얻은 존재자로 묘사되곤 한다.

선비도 선진 유교와 신유학의 군자(君子)와 사대부(士大夫) 개념에 조선 성리학의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했던 역사적인 개념으로서 성격을 우선적으로 지니고 있다.15)    15) 중국사상사에서 사대부 개념이 정착하는 과정과 사대부 개념이 지니는 역사성에 관한 더 상세한 고찰은 고지마 쓰요이, 신현승 옮김, 《사대부의 시대》, 동아시아, 2004, 1장 ‘사대부의 시대’를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개념으로서 보살과 선비는 각각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엘리트로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고, 그 역할 범위만큼이나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물론 선비의 경우에 두드러지고 보살의 경우에는 그 정치적 위상이 분명치 않다는 점 때문에 평가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 과정에서 이미 일정하게 선비와 보살, 또는 보살과 선비 사이의 연계성과 차별성이 드러났다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앞의 논의가 주로 각각의 개념과 시민 개념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 지점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앞선 논의에서 밝혀진 보살과 선비 사이의 연계성은 우선 이 둘이 모두 시민과 비교하여 최대 도덕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확보된다.

보살과 선비는 모두 다르마(dharma) 또는 천명(天命)을 전제로 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치열한 노력을 전제로 해서 성립되었던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다. 시민의 경우에도 합리성, 문화성과 함께 도덕성을 시민윤리의 차원에서 요구할 수 있지만, 이때의 도덕성은 다른 사람과의 이익 충돌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 안에 머무는 최소 도덕의 개념이라는 점에 차별화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논의의 주된 결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비와 보살은 선비가 단순한 도덕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정치적 차원의 지배층이었다는 점에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에 주로 머물면서 인간의 정신적인 삶의 영역을 이끌었던 보살과 차별화된다. 물론 고려 시대에 일종의 지배 신분으로서 승려 계층이 존재했고, 그들이 보살적 지향을 가지고 있었던 보살 담론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차별성도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지도 모른다. 또한 그들이 왕족이거나 귀족의 신분을 실제로는 유지하는 선에서 활동한 경우도 있었고 왕사(王師)나 국사(國師)라는 지위를 통해 실제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차별성이 어느 정도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상사 속에서 보살은 대체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상으로서 위상을 쌓아 온 데 비해서 선비는 도덕적인 위상과 함께 정치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보살은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신분 개념이 아니고 붓다와 함께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지향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본질적인 차이점이 부각될 수 있다.

선비는 고려 중기 이후 성리학이 정착하는 과정과 함께 우리 역사 속에서 활동했던 역사적인 존재자들이고, 보살은 북방불교가 한반도에 정착하는 과정 속에서 붓다와 함께 깨달음의 단계에서 지향해야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존재했던 일종의 이념적 존재자들이라는 대비가 가능하다. 물론 이 두 존재자들이 각각 모두 내면적인 지향으로서 수행과 수양을 공유했고, 외면적으로는 중생과 백성들을 향한 보살행과 치인(治人)의 덕치행(德治行)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경시할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종교의 영역을 전제로 해서 살아남아 있는 보살의 전통과 가치관의 영역 속에 선비정신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넘어서서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되살아나기도 하는 선비정신의 전통을 시민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하는 지난한 과제이다. 그래도 보살의 전통은 자본주의적 일상의 공허함에 대한 자각이 확산되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현대 한국인들에게서 시민의 최소 도덕으로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화두(話頭)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선비의 전통도 그 신분과 생업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전제하에서 인간의 고립성과 이기성을 넘어서는 관계성의 자각과 일정하게 직업으로 정착하고 있기도 한 엘리트 집단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준거로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써 의미 있게 되살려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

 

박병기 /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행복심리학(역서)》 등 다수의 논저서가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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